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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희호 여사의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장성민 전 의원 l 기사입력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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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희호 여사.  ©브레이크뉴스

 

한국은 혁명의 나라이다. 그만큼 정치, 사회적 변혁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급변한 나라라는 의미이다. 가난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킨 산업화가  ‘경제혁명’이라면 억압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킨 민주화는 ‘정치혁명’이다. 그럼 '사회혁명'(Social Revolution)은 무엇일까? 이 사회혁명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게 내려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남녀 성차별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성평등이 곧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회혁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경제혁명인 산업화가 우리에게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면, 정치혁명인 민주화와 사회혁명인 성평등화는 억눌림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사회의 성평등화는 어떻게 진화되었을까? 전통 유교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지배 문화와 봉건적 장자 상속의 가족 문화의 틀은 어떤 과정을 통해 창조적 파괴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 첫번째 요인은 물질적 풍요를 이룩한 성공한 산업화이다.

 

두번째 요인은 억압적 권위주의 지배문화를 타파한 성공한 민주화이다.

 

그리고 세번째 요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며, 특히 남녀 간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제도적 장치의 법제화와 성차별, 성폭력에 맞선 피눈물나는 여성해방운동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 이희호 여사 저서.    ©브레이크뉴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특히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조국은 외부로부터의 자유는 얻었으되, 내부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이중, 삼중으로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유교질서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봉건적 차별체제였다. 여성들은 남성과 한 식탁에서 함께 밥도 먹을 수 없었고 남성들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었으며, 투표도 남자가 찍으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따라야만 했었던 ‘차별의 상속자’였다. 당시 조국 대한민국은 이처럼 절대적 차별이 지배하는 암흑의 사회였다. 바로 이때 성차별을 없애고 남녀간 성평등을 이룩하겠다는 겨자씨만한 사회 혁명의 씨앗을 품고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한 여성인권운동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며칠 전 우리 곁을 떠난 이희호 여사이다.

 

그는 1954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렘버스 대학(Lambuth College)에서 사회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스카릿대(Scarritt College)대학원에서 ‘차별받는 흑인 공동체 문제에 관한 현장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58년 귀국했다. 그런 그가 맨 처음 사회적 활동을 시작한 곳은 YWCA(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였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성평등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그의 사회적 혁명을 위한 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왜 이희호 여사는 정치인 김대중을 선택했을까? 무엇 때문에? 이 부분은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의 내용을 바탕으로 요즘 SNS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집에서 이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저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를 따 한국에 돌아왔고 풍족한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의사여서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남자는 고졸이고 현재는 직업이 없지만 정치를 하고 싶어 합니다. 웅변학원을 잠깐 했었는데 선거에서 몇 번 떨어지고 지금은 무일푼으로 월세 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홀어머니가 편찮으시고 시누이가 하나 있는데 심장이 안 좋아서 결혼하면 둘 다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재혼입니다. 첫사랑과 결혼해서 지금은 사별하고 중학생 아들이 두 명 있어요. 물론 제가 키워야 합니다. 전 초혼입니다. 전 그를 사랑하는데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 결혼을 반대하네요.  인물 됨됨이는 정말 훌륭한데. 그는 내가 필요하고, 아이들을 돌봐주길 원하네요..그리고 절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 결혼 괜찮을까요?”

 

▲고 이희호 여사가 영정사진으로 선택한 사진.     ©브레이크뉴스

미국으로부터 유학을 마치고 이제 막 귀국한 신여성(新女性) 이희호에게 무엇이 이 모든 어려운 조건을 뛰어 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세상을 현실타협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하고 바라보는 세속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 말씀에 기초한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성인권과 여성권익향상을 위해 자신(이희호)보다는 똑똑하고 미래가 유망한 정치인 김대중을 앞장 세워서 밀고 나가는 것이 훨씬 파워풀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희호 여사의 관점은 적중했고 실행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킨 많은 법안을 제정, 개정하게 된 것은 사실상 이희호 여사의 역할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가족법 개정은 유교의 권위주의적 봉건질서를 무너뜨린 사회혁명의 결정판이었다.

 

혁명적인 가족법 개정은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려 민주적인 가족제도를 지향했고, 상속에서 남녀 차별적 요소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이혼할 때 배우자 재산 분할청구권이 신설되고, 자녀에 대한 친권 규정을 개정하여 이혼한 어머니도 친권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야당 당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혁명적인 차별 법들을 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이희호라는 여성인권운동가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있었기 때문에 강행했던 것이다.

 

이런 이희호 여사의 여성권익향상에 대한 열정은 정치인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더욱 뚜렷해졌다. 국민의 정부가 탄생된 이후 1998년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고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결정적 역할자도 바로 이희호 여사의 노력 때문이었다. 국민의 정부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서리로 장상 전 이대 총장이 임명되었고, 여성의 장, 차관수가 크게 늘었으며 여성가족부가 만들어 진 것도 이희호 여성인권운동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실로 여성인권향상에 놀라운 역사적 족적(足跡)을 남긴 것이다.

 

▲ 이희호 여사와 장성민 전 의원(왼쪽).     ©브레이크뉴스

 

그럼, 이런 이희호 여사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1983년 5월 12일, 미국 망명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초청강연 내용에 잘 드러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결혼한 이후, 아내의 내조는 정말 값진 것이었다.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아내의 내조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오늘 내가 여러분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이희호 여사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의 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회고한 내용을 엮은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사랑」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고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장성민 전 국회의원.    ©브레이크뉴스

“남편이 고백했듯이 ‘우리는 동역자’ 관계였다. 남편은 여기에서 ‘내조’ 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것은 편의상 그렇게 썼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동역자적인 관계에서 살아 왔다. 달리 표현하면, 나는 그와 결혼할 때 이미 그와의 동역자 관계를 결심한 것이다. 그것은 곧 서로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남편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약점과 단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내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곧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의지와 신념과 관용과 멋스러움을 사랑하고, 특히 남녘 땅 그의 고향 내음이 묻어나는 그 활짝 웃는 모습을 몹시 사랑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그의 ‘동역자’로서의 나의 인생을 그에게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국을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랑은, 아니 우리의 사랑은 곧 조국이었다.”

 

이희호 여사가 꿈꾸는 조국은 자유와 평등과 정의 안에서 평화를 구가하며 온 국민들이 복된 삶을 이루고 사는 나라이다. 견디기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정의와 진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차별이 없는 자유의 나라, 이러한 가치에 국민 개개인들이 신념과 확신을 갖고 부활을 꿈꾸며 사는 나라이다. 그는 불꽃같은 삶을 살아온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조국을 꿈꿨고 이토록 조국을 사랑했다.

 

*필자/장성민.

전 국회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비서 출신. 김대중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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