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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력이 중원에 일어난 것이다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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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장강! 길고도 긴 대하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대하의 도도한 흐름은 거대한 용이 제 몸을 꿈틀거리는 것 같고 어찌 보면 거대한 빙벽이 녹아 허물어져 무너 내리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 강물이 햇빛을 받아 비늘들을 번쩍거릴 때마다 하늘에서는 우레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마침내 땅 모형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그때가 다가와 한 위 진 삼국이 연이어 멸망한 후 그들의 후예들로 이루어진 대륙의 왕과 제후들도 온갖 풍상을 다 겪어내며 종착지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방의 핏줄기인 유연이 세운 한나라로서 그 이름이 유요 때에 와서 조나라로 변신하였다. 이 조나라를 대륙풍운에서는 전조(前趙)로 표현했으니 이는 조늑 즉 석늑의 후조(後趙)와 구별하기 위함에서 이다.
 아무튼 그 전조가 멸망하고 그 황제 유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가 바로 유연이 한나라를 중흥한 지 25년이고 유요가 국호를 조로 바꾸고 황제로 등극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었다.
 유요는 포판의 싸움에서 석호의 4만군을 궤멸시켜 하남땅에서 당했던 원수를 갚고 그 여세를 몰아 서량땅을 쳐서 항복받아 그 기세가 당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기는데 맛을 들인 유요는 계속 전쟁을 일으켜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국력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그러나 유요는 전쟁광이 되어 정복욕을 억제치 못하고 군비 확충에만 혈안이 되어 휼민(恤民)하는 일은 도외시했다. 이에 보다 못한 유자원 화포 교예 임의 등 조정의 중신들은 황제의 그러한 야심을 숙이라고 극간하였으나 유요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와 같았다.
 한편 포판싸움에서 4만 정병을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금용성 석생에게로 도망친 석호는 황제를 뵐 면목이 없게 되었다. 더구나 포판 출병은 황제의 허락 없는 전쟁이 이었다. 순전히 석호의 공명심에 불 탄 자기 독단으로 감행된 전쟁인 만큼 패배에 대한 책임은 무엇보다 컸다. 이에 생각다 못한 석호는 석생과 의논하고 나서 황제에게 사죄의 표문을 작성해 올렸다.
 표문을 받은 석늑은 노여움이 가시지 않고 오히려 성을 버럭 내며 석호를 잡아다 대령하라 불호령을 내렸다. 이에 상서령 정하가 앞으로 나와서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대장군의 죄를 어떻게 다스리려 하시나이까?”
 “오로지 군법이 있을 뿐이오!”
 정하는 이미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는지라 석호를 위해 강력히 탄원하기를
 “불가하옵니다. 폐하께서는 대장군의 죄를 군법으로 다스리려 하시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옵니다. 신은 일전에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용맹만 앞세우는 대장군을 멀리하시라고 상주한 일이 있사오나 지금 그에게 패전의 책임만을 물어서 군법을 시행하신다면 당자는 폐하에게 원한의 마음을 품을 것이고 주위의 적국들은 손뼉을 치고 기뻐할 것입니다.”


 정하의 말은 석호의 절륜한 무용을 아끼자는 뜻이었다. 정하의 빈틈없이 정연한 말을 듣자 석늑은 말이 없었다. 이에 정하가 황제 가까이 가서 다시 아뢰기를
 “신에게 한 계책이 있으니 이대로 시행하신다면 어떠하오니까?”
 그리하여 다음날 정하는 밀사를 금용성 석생에게 보내어 석호를 달래서 조정으로 올려 보내라고 훈령을 보냈다. 마침내 석생의 말을 들은 석호는 수의를 입고 등에는 한 짐의 형장을 짊어지고 석늑 앞에 가서 엎드려 대죄했다. 석늑은 석호가 와서 대죄하는 것을 보았으나 3일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석호는 내심 매우 두려워서 3주야를 대죄하자 행색이 초췌해졌다. 이런 석호를 살펴보고 난 정하가 황제께 아뢰기를
 “대장군 석호가 죄책감을 못 이겨 계하에 대죄하였사오니 폐하께서는 그 죄를 다스리십시오.”
 그러나 석늑은 그 날도 석호의 죄를 용서하려 들지 않았다. 정하가 뿌리치고 나가려는 황제의 곤룡포 자락을 잡고 간하기를
 “대장군 석호의 죄는 무겁사오나 그 근본을 생각한다면 폐하와는 부자지간 이십니다. 이제 그가 황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군사를 움직여서 패전을 자초하였나이다. 하오나 이것은 충성을 다 하려던 것이 운이 사나워서 실패한 것뿐이옵니다. 더구나 이번 책임이 대장군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에서 그 잘못된 출병을 방지 못한 신 등에게도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정이 대장군을 용서치 않으신다면 신 등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함께 복죄할 수밖에 없는 줄로 아나이다.”


 말을 마친 정하가 조복을 벗어버리고 계하에서 대죄하려 하자 관원들도 모두 그 뒤를 따랐다. 이에 당황한 석늑이 손을 들어 백관들을 말리고는 석호를 향하여 준절히 꾸짖기를
 “너는 신하된 몸으로 임금의 명령을 빙자하고 동병하여 패전을 당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을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너를 위해서 신변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주청한 백관들의 면목을 보아 특히 주륙을 면하니 이후로는 결단코 죄를 거듭함이 없어야 한다.”
 땅바닥에 엎드린 석호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이런 후 금용성의 수장 석생의 급보가 조정에 날아들었다. 유요가 5만군으로 서량을 쳐서 항복받았다는 것과 다시 하남 하서의 땅을 노리고 군비를 증강한다는 보고였다. 이에 석늑이 정하에게 묻기를
 “지금 유요는 서량을 쳐부수고 다시 우리의 하남과 하서 땅을 엿보려고 군사를 기른다는데 경은 이 일을 어찌 생각하시오?”
 “유요는 본성이 호전적이고 욕심이 강한 임금입니다. 그가 지난번 형양성 싸움에서 우리 군에게 크게 패하였으니 그의 성미로 보아서 언젠가는 반드시 원수를 갚고자 기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쳐부수어 후환을 없애는 것이 상책인 줄 아옵니다.”
 석늑은 그 말을 듣자 매우 기뻐하며 20만 대군을 친히 이끌고 유요를 치려고 결심하였다.
 이때가 유요의 광초 11년 이고 석늑의 태화 10년이며 진성제 함화 3년 초가을이었다.


 석늑은 출정에 앞서 먼저 사신을 동진에 보내어 화평하게 지내기로 약속을 받아 뒤를 튼튼히 하고 대군을 휘몰아 유요에게 빼앗겼던 형양 사영 등 하남 땅을 쳤다. 이에 그곳을 지키던 유요의 수장이 급보를 장안으로 올렸다. 그러나 이때는 유요가 서량에서 개선한 지 2개월에 지나지 않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고통 받고 있던 중이었다. 유요는 보고를 받자 이를 갈며 분해하자 유자원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거듭되는 전란으로 민심의 동요가 크고 전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옵나이다. 하오니 적의 강력한 도전이 있을 지라도 응전하지 마시고 굳게 지키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적은 저절로 물러갈 것이옵니다.”
 그러나 유요는 서량과 포판에서 거듭 이기어 오만해졌는지라 신하들의 말을 전혀 들어 주지 않았다. 유요는 마침내 새로 초모한 강병(羌兵) 5만과 다른 군사 10만으로 기병하여 하남땅으로 출전할 결심을 했다.
 유요는 친히 중군이 되고 유윤과 평선을 좌우선봉을 삼고 유자원 화포 교예 등 중신들은 장안에 남아서 태자 유희를 돕게 했다. 유자원은 태자와 함께 10 리 밖까지 황제를 전송하려 나갔다. 그런데 유요가 전과 달리 중신들에게 골고루 술잔을 돌리면서 태자를 잘 보필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요가 광포한 마음이 사라지고 상당히 인간적인 마음이 되어 고국산천을 뒤로하고 떠날 때는 깊은 향수에 젖어든 모양을 보였다. 그런 황제를 배웅하는 여러 중신들도 전과 달리 비감에 젖어 서정적인 냄새를 물씬 풍겼다. 아무튼 이런 감정의 흐름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는 모르나 소소히 불어오는 추풍의 정취가 사람의 마음을 쥐어짜게 하였다. 유요가 형양성을 구원코자 기병했다는 소문을 들은 석늑은 더욱 공성의 손길을 급히 했다. 그러므로 성 밖에는 매일 석늑군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고 성안을 향하여 쏘아대는 석노와 화전은 빗발처럼 날라들었다. 이미 비축미가 떨어진 성안의 군민은 물과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이같이 며칠만 더 지내면 군마와 노약한 백성들마저 군사들의 먹을거리가 되고 말 지경이었다. 그러나 유요의 구원을 믿는 수장은 굳게 농성하며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석늑은 탐색병으로 부터 유요가 친히 15만 대군을 이끌고 호곡관을 지나 하남땅 경계에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군사를 2길로 나누어 한쪽은 석호에게 맡기어 계속 성을 치게 하고 자신은 친히 10만 대군을 영솔하고 경계로 나가 진격해 오는 유요군을 기다렸다. 군사 정하가 나와서 계책을 말하기를
 “적은 먼 길을 달려왔으니 반드시 피로하고 지쳤을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신에게 일지군을 주신다면 앞으로 나가서 매복해 있다가 적의 배후를 치겠습니다. 이처럼 앞뒤로 공격을 받는다면 유요가 비록 15만 대군을 데리고 왔다하나 패배할 것은 명확관화(明確觀火)한 일입니다.”
 정하의 계책을 옳게 여긴 석늑은 정하에게 5만군을 때주어 경계 뒤쪽에 매복케 하고 장군 이농과 석정 석민을 보내어 싸움을 돕게 했다. 정하가 매복한 지 반나절이 조금 지나자 유요는 유윤 평선을 앞세우고 경계를 향하여 진격했으나 깊이 매복한 정하의 5만군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경계에 당도한 유요군이 석늑군과 만났다. 양군은 곧 진세를 벌리고 마주섰는데 석늑은 허장성세를 부려서 기치창검을 늘어 세워 유요의 장수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게 하였다. 석늑군 쪽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일원대장이 머리에 금빛 투구를 쓰고 몸에는 오동으로 조각된 갑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른 쪽에는 석량 이륭 등 열 장수를 거느렸고 왼쪽에는 주보 지굴륙과 같은 맹장들이 늘어섰다. 그 대장은 바람에 날리는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앞으로 나와 말채찍으로 유요를 가리키며 말을 걸기를
 “유공, 그동안 무고했는가?”


 유요는 석늑의 조롱소리를 듣자 눈알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곧 큰소리로 석늑이 자신을 능멸하여 깔보는 죄를 꾸짖고 좌우를 돌아보며 명하기를
 “누가 나가서 저 배은망덕한 오랑캐 놈을 잡아 오겠느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평선과 강영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뛰쳐나갔다. 석늑의 진에서도 이농과 지굴륙이 각각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와 싸우니 금방 주변은 4필의 말굽에서 이는 자욱한 티끌로 별천지를 만들어 버렸다. 싸움은 80여 합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평선이 장모를 겨누어 이륭의 가슴팍을 찌르면 지굴륙이 잽싸게 평선의 배후를 칼로 내리쳤고 평선이 지굴륙의 칼끝을 피하면 장영은 곧장 지굴륙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려 했다. 불꽃 튀기는 난전이 계속되었다. 이 모양을 본 유아 서막 하경 신서 등 유요의 장수들이 일제히 평선과 장영을 도우려고 칼과 창을 휘두르면서 달려 나왔다. 이에 석늑의 진영에서도 이륭과 지굴륙이 곤경에 몰리자마자 공장 도표 두 노장을 비롯하여 사공 장박 왕화 등이 각기 일지군을 이끌고 달려 나왔다. 이리하여 기병과 보졸이 총동원된 일대 접전이 날이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석늑의 군이 비록 날래다 하지만 5만군으로 유요의 15만 대군을 당해내지 못했다. 더구나 유요가 강장 양백우가 이끈 5만 강병을 앞세우자 석늑군은 일제히 무너져서 형양성 쪽을 바라보고 패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였다. 이미 날이 저물어 사위가 어두워지는데 추격하기에 여념이 없는 유요군의 배후에서 산천을 쪼갤 것 같은 함성이 울리더니 정하 석민 이농 등이 이끈 5만 복병이 일제히 횃불을 켜들고 달려들었다. 배후를 기습당한 유요의 후군은 순식간에 대오가 흩어졌다. 그 틈을 탄 석민과 이농은 대뜸 유요의 중군을 무찌르며 황가(黃駕)위에 앉은 유요 앞에 나타났다. 석민이 유요를 보자 벽력같이 크게 소리를 지르기를
 “호분장군 석민이 여기 있다. 유요란 놈은 냉큼 나와서 나의 칼을 받아라!”


 그만 당황한 유요는 얼른 철편을 들어 석민의 예리한 칼날을 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농이 배후를 시살하면서 유요가 탄 황가를 향해 곧바로 육박해 왔다. 유요가 탄 황가를 호송하던 호연유와 마충은 얼른 달려가서 각각 이농과 석민을 막아 싸웠다. 그러나 워낙 먼 길을 달려와서 잠시의 휴식도 갖지 못한 유요군은 전후로 협공을 당하자 마침내 지리멸렬하여 대패했다. 더구나 도망치던 석늑군이 배후에서 일어난 정하군의 선전에 힘입어 일제히 걸음을 돌려서 반격을 시도하였다. 그러자 양백우와 함께 강병을 지휘하던 송정은 석늑의 장수 석량의 한칼에 맞아 죽고 평선과 유윤은 적진깊이 들어갔다가 지굴륙 이륭 등이 이끄는 석늑군의 반격을 만나 태반의 보졸을 잃었다. 이리하여 초반전에서 크게 패한 유요군은 형양성 40리 밖으로 후퇴했다.
 한편 형양성을 공격하던 석호는 더욱 치열한 공격을 감행하여 마침내 성곽 일부를 허무는데 성공하였다. 형양성의 수장 양서는 유요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구원하러 온다는 보고를 받고 힘들여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특히 오래 동안 굶주리며 싸우다 보니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백성과 군사가 모두 기아에 지치다보니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그런 성안의 군사와 백성들에게 비보가 날라 들었다.
 ‘유요황제가 석늑에게 대패했다.’
 유요의 가슴 아픈 패전 소식에 성중의 백성들은 앉아서 굶어 죽느니 보다 성 밖으로 치고 나가서 유요군과 합세하여 싸우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달리 도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야심한 밤중에 성문을 열고 빠져 나갔는데 양서가 이끈 성안 군사는 5 리도 가지 못하고 석호군에게 발각되어 대부분 창칼을 맞아 죽었다. 다만 양서와 졸병 몇이 살아서 유요의 진영으로 도망하였지만 그날 밤 형양성은 석호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전세가 이처럼 불리해 지자 유요는 수하막료들을 모아 놓고 숙의하자 장군 유아가 나서서 아뢰기를
 “형세가 이같이 험하게 된 바에야 차라리 얼른 장안으로 회군해서 굳게 지키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유요도 그 말을 옳게 여기고 그 날로 영채를 뽑고 후퇴령을 내려서 평선과 양백우는 뒤쳐져서 추격해 오는 석늑군을 끊게 했다. 이 소식은 그날 밤 탐색병에 의해 석늑에게 보고되어 곧 석호에게 5만군을 주어 지름길로 앞질러서 관에 나가 유요의 퇴로를 차단하게 했다. 그리고 석늑 자신은 틈을 주지 않고 바짝 유요 군의 뒤를 추격했다. 꼬박 1주야의 맹추격을 당한 유요는 패잔병을 수습하여 호곡관에 당도했다. 경계를 벗어날 때 석늑군에게 발각될까봐 대부분 양초를 버리고 떠나온 유요의 군사들은 관 밑에 당도하자 몹시 허기가 졌다. 중화 때가 지났으나 관 주변은 보인 것이 산뿐이라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군졸들은 배낭 밑을 들여다보며 허탈감에 빠져 버렸다. 유요군은 굶주려 새우등을 하고 이를 갈았다. 그런데 이미 지름길을 강행군한 석호가 5만군으로 관 주변을 촘촘히 매복군으로 채워둔 줄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밤이 들자 피로에 지친 유요군이 잠이 들어 녹아 떨어졌을 때 석호는 유요군의 영채에 일제히 화전을 쏘면서 야습을 감행했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유요는 군사를 독려하여 관을 넘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석호군이 유요군 영채 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해 버린 후였다. 전후좌우가 모두 석호군이었다. 밑에도 불 옆에도 불이 붙고 있었다. 불길과 적이 일시에 밀려드는 바람에 얼이 빠져버린 유요의 군사들은 천방지축 절름거리는 발을 끌고 일제히 관을 버리고 산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산에도 매복한 석호군은 나무 등걸 뒤나 바위 틈새에서 갑자기 나와 기어오르는 유요군의 목을 후려쳤다. 유요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대장 평선도 난군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오로지 유아와 하경과 호연유가 혈로를 뚫기 위해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석호군이 계속하여 공격의 손을 늦추지 않는 바람에 호연유는 몇 군데 창상을 입었다. 그런가 하면 하경도 화상을 입어서 바른 팔이 자유롭지 못했다. 황가도 불길 속에 잃어버린 유요는 얼른 말을 타고 관문을 향해서 도망쳤다. 그 뒤를 호연유 유아 하경 양서 마충이 따랐다.
 이때 석호는 관문에서 두어 마장 떨어진 곳에 있는 암벽 위에서 군사를 독전하고 있었다. 그는 유요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할 것이라 믿고 암벽 곳곳에 강한 노궁을 쏘는 군사들을 매복시켜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요의 영채에 화광이 충천한 후 두 시간 쯤 지나자 몇 명의 장수가 병졸을 거느리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쓴 황금 투구와 몸에 두른 금포로써 유요를 가려내기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유요를 따르던 장졸이 말을 버리고 암벽에 기대어 산을 오르자 석호는 낮은 목소리로 노궁수들에게 사격준비 명령을 내렸다. 얼마간에 긴장이 흘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위로 오르던 유요군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석호는 바위위에 올라가서 우렁차게 고함을 질렀다.


 “무도한 역적 유요는 내 앞에 나와서 대죄하라! 대장군 석호가 여기 있다.”
 유요가 깜짝 놀라 산위를 쳐다보면서 석호를 꾸짖기를
 “이 오랑캐 자식 놈아! 일찍이 짐은 그대의 아비를 양국에 봉왕하여 후대했거늘 그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느냐!”
 말을 마치고 유요는 철편을 휘두르며 석호를 취하려고 유아 호연유와 함께 산위로 쳐 올라갔다. 그러나 석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빗발치는 강한 쇠뇌는 마침내 유요의 걸음을 묶어 버렸다.
 ‘전조황제 유요가 사로잡혀.’
 유요군은 저항력을 잃어버리자 석호군은 일제히 암벽과 나무숲에서 뛰어내려와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유요와 그의 장수들을 손쉽게 포박했다. 석호는 이들을 곧 석늑의 대채로 호송했다. 금포까지 흠씬 피가 밴 유요가 묶여서 앞으로 끌려나오자 석늑은 호탕한 목소리로 웃으며 유요를 희롱하기를
 “유공의 모습이 왜 이리도 처량하오?”


 유요는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 때문에 말문을 열지 못했다. 오직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석늑을 쏘아 볼 뿐이었다. 그런 유요를 석늑은 참형으로 다스렸다. 애당초 석늑은 유요를 살려두고 한 급을 강등해서 봉왕을 할 생각도 가졌으나 좌우에 시립한 석호와 정하는 그와 같은 석늑의 뜻을 정면으로 반대하기를
 “옛 부터 이르기를 칼을 칼집에서 빼면 반드시 피를 본 연후에 꽂으라 했습니다. 오늘 유요왕을 살려두신다면 그의 성미로 보아 후일 틀림없이 폐하의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더구나 유왕은 한나라의 제왕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옵니다. 그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살기보다 죽음을 택할 것인 마땅히 죽여서 그 이름에 흠이 가지 않도록 하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이리하여 석늑은 유요를 참형에 처하고 그 시체를 제왕의 예로 후하게 장사 지내게 하였다. 유요의 시신은 이제 호곡관 험산에 묻혔으나 넋은 슬피 흐느끼며 구천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유요를 참형에 처한 석늑은 장안에 대한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석늑군이 호곡관을 점령하고 그 승세를 몰아 질풍노도와 같이 장안으로 진격하자 장안에서 태자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유자원은 무도왕 양난적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양난적이 당도하기도 전에 석늑의 20만대군이 장안성 10리 허에 육박하였다. 이에 유자원은 긴급조치로 화포 조예 등 중신들과 의논한 후 태자를 모시고 상규로 피난했다. 상규는 일찍이 진안의 본거지로 성지가 튼튼하고 양초가 많이 비축되어 있어 방어하기 편했다. 석늑은 태자 유희가 상규성으로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자 곧 석호에게 10만군으로 상규를 치게 하고 자신은 장안성으로 무혈 입성했다.
 태자 유희와 함께한 유신들은 황제 유요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상규성에 들어앉았다. 그러나 요새와 같은 성도 이듬해 봄에 석호의 맹렬한 공격 앞에 무너졌다. 그해가 함화 4년이었다. 태자 유희는 석호에게 생포되어 양국으로 호송되었다. 유자원이하 유신들도 자결하여 충절을 지켰으나 생포되어 후조국으로 끌려가서 굴욕을 맛보기도 하였다. 이로써 광문황제 유연이 한나라를 중흥한지 6대 26년 만에 전조(유요)가 멸망하자 후조(석늑)가 그 세력을 북방까지 떨쳐서 기업을 더욱 튼튼히 하였다.


 후조황제 석늑은 전조를 멸망시켜 유씨의 왕권을 중원에서 사라지게 하고 조씨가 대신 중원을 차지하게 했다. 그러니까 유비현덕의 자손이 가진 왕권을 조운 자룡의 자손이 대신하여 차지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숙원이었던 중원을 완전 통일하는데 석늑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석늑은 불과 4년을 황권을 지켰다. 다시 말해서 석늑은 진성제 함화 8년. 태화 15년에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가 죽자 태자 석홍이 계승했으나 수개월 만에 석호가 석홍을 죽이고 제위를 차지했으니 그가 후조의 무제다. 조무제는 즉위하고 다음해 도읍지를 업성으로 옮겨서 전연과 전량 등 여러 나라를 공략하고 그 위력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조무제도 동진 영화 5년(349)에 죽고 그의 아들 석준과 석감이 계속하여 제위에 올랐으나 이듬해에 일족 중 염민이 일어나서 석씨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세우니 후조국도 5대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동진국은 왕돈의 난을 평정하고 나서 한 때는 국내가 평온하여 국력이 신장된 듯하였다. 그러나 유태후의 오라비 유량이 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사를 사사로이 전단하다가 마침내 역양내사(歷陽內史) 소준의 반란을 당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한 때는 사직의 존속이 위태로웠으나 명신 왕도와 은교 도간 변호 의 노력으로 사직의 명맥만을 보존할 수 있었다.


 또한 성나라는 성무제 이웅이 죽자 고명으로 조카 이반이 대위를 승계했으나 수일 만에 이웅의 직계 장자인 이기가 난을 일으켜 이반을 죽이고 제위에 올랐으니 그가 유제이다. 성유제도 대위에 오른 지 불과 4년 만에 이양의 아들 이수가 제위를 차지하니 그가 소문제다. 그러나 이 성나라도 소문제의 뒤를 이은 귀의후(歸義候) 이세 때 전진(前秦)의 부견에게 멸망당했다. 새로운 세력이 중원에 일어난 것이다.


 이리하여 후삼국이었던 진 성 조 삼국이 일어나 전전시대인 한 위 진의 모든 판도를 바꾸어 중원 천지가 크게 진동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장강의 물줄기 속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물거품과도 같은 것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장강은 굽이쳐서 용과 같이 꿈틀거리고 흐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이니 영웅호걸도 바람처럼 그렇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대미(大尾)>.


<필자주>을미 3월 초아흐레 날. 남양자가 가장산방에서 7년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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