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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불길을 잠재우고...

김덕권 시인 l 기사입력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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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저는 한 때 권투사업에 종사하면서 탐욕의 불길을 활활 불태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일확천금을 꿈꾼 것이지요. 한 때, <지옥의 악마 카라스키야>를 서울로 불러 장충체육관이 터질 정도의 흥행(興行)으로 돈을 가마니로 긁어모았었습니다. 그러나 제 사전에 일확천금은 없었습니다. 탐욕의 불길은 결국 제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마침내 영혼까지 피폐하게 만들었지요.

 

그래도 제가 불연(佛緣)이 있었던지 친구의 손에 끌려《일원대도(一圓大道)》를 만나 그 탐욕의 불길을 잠재우고 마침내 행복의 나라에 닻을 내리고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소유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도처에 갖가지 유혹들이 넘실대고 있기 때문에 옛날의 저처럼 인간들이 쉽게 욕망의 포로가 되어 맹목적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지요. 

 

이와 같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모르는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헛된 꿈과 욕망을 갖고, 심지어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 될 일까지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매일 같이 보도 되는 횡령, 절도, 강도, 마약, 살인, 사기 등은 모두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은 지나친 욕망과 허망한 일확천금의 꿈 때문에 즐거움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잃어버린 채 늘 불평과 불만만 입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자족(自足)하는 사람은 욕망에 집착하지도 않고, 지배당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자족하는 사람은 욕망을 아주 무의미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조금 채우게 되면 그것만으로 행복해하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은 깨끗이 포기하고 그 허망한 꿈에 집착해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단순한 포기라면 욕망과 유혹 앞에서는 무너지기 쉽습니다. 바로 그 욕망을 완전히 제거 하는 방법은 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옛날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주방 근처에서 한 요리사가 행복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채소 다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은 요리사를 불러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폐하, 저는 말단 요리사에 불과 하지만 제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고,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집 한 칸과 배를 불릴 수 있는 따뜻한 음식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물건을 가져가도 제 가족은 기뻐합니다. 그러한 가족으로 인해 세상을 살아 갈 힘을 얻으니 기쁘고 행복할 수밖에요.”

 

왕은 요리사를 물러가게 하고는 현명하다고 알려진 한 재상을 불러 요리사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재상이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폐하, 저는 그 요리사가 아직 ‘99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99의 노예, 그게 무엇인가?” 하고 왕이 의아해하니 재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 ‘99의 노예’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가죽 주머니에 금화 99개를 넣어서 요리사의 집 앞에 가져다 두십시오.” 그날 저녁 왕은 재상의 말대로 금화 99개가 든 주머니를 요리사의 집 대문 앞에 몰래 가져다 두게 하였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요리사는 집 앞에 있는 주머니를 발견했고, 얼른 집안으로 갖고 들어가 금화를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금화는 99개였습니다. 그러자 요리사는 혹시나 한 닢을 어딘 가에 떨어뜨렸나 싶어 집 안팎으로 금화를 찾으러 다녔지만 금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더 열심히 일해서 금화 100개를 마저 채워야겠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출근해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습니다.

 

예전처럼 콧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나 일에 몰입했던지 왕이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요리사를 보면서 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금화가 생겼는데 더 행복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해지다니!’

 

왕이 재상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폐하, 그 요리사는 이제 ‘99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99의 노예’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한 1을 채워 100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혹시 우리도 부족한 1을 채우기 위해 ‘99의 노예’가 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일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 모두 부족한 ‘1’ 의 욕심 때문에 가지고 있는 ‘99’의 기쁨과 행복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가진 자가 나누는 것이 삶의 미덕임을 알지 못해 탐욕과 아집(我執)의 노예가 된다면 자아(自我)몰락의 딜레마인 덫에 기필코 걸리기 쉽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인생인데 왜 우리가 탐욕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대종경(大宗經)》<수행품(修行品)>에 욕심에 끌리지 않는 방법을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범상한 사람에게는 무슨 일에나 지혜 어두워지게 하는 두 가지 조건이 있나니, 하나는 욕심에 끌려 구하므로 중도를 잃어서 그 지혜가 어두워지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의 소질 있는 데에만 치우쳐 집착되므로 다른 데에는 어두워지는 것이라, 수도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조건에 특히 조심하여야 하나니라.」

 

어떻습니까? 탐욕의 불길을 제거 하는 방법이요? 우리 작은 욕심을 큰 욕심으로 키우고, 항상 무심으로 천만경계를 대하며, 지극한 서원으로 수행 정진하면 마침내 탐욕의 불길을 잠재우고 불보살의 위(位)에 올라 ‘안심입명’,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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