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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김정은, 왜 케미(잘 어울리는 관계)가 되었나?

권기식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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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2019.06.30.  ©뉴시스

 

우리는 흔히 잘 어울리는 관계를 케미라고 한다. 화학반응을 뜻하는 영어 chemistry의 줄임말로 드라마나 영화속의 남녀 주인공이 실제로도 잘 어울릴 때 사용하는 신조어다. 회사 인수 합병시 회사의 분위기나 사풍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릴 때도 사용한다.

 

이런 뜻에서 보면 요즘 국제 정치 무대에서 가장 좋은 케미를 과시하는 관계 중 하나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흡족한 마음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저는 북미 정상이 또 다른 만남을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3장 분량의 정말 아름다운 편지를 썼습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불만에 동의하는 듯한 발언도 해서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쯤 되면 단순히 좋은 관계를 넘어 사귀는 수준의 관계로 느껴지기도 한다. 트럼프는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수많은 동맹국 지도자들의 친서를 받았지만 이런 정도로 우호적인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 한국전쟁에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대 국가 지도자 관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지난 6월 30일 판문점을 깜짝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세기의 만남'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기다리던 극우 태극기 부대들을 외면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김 위원장은 친구"라는 말을 연발해 국내 보수세력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는 과거 미국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김일성, 김정일 등 선대 북한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시 영상을 본 사람들이 사이 좋은 부자지간 또는 삼촌과 조카 관계를 떠올렸을 정도다.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구상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지도자들의 모습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의 케미 관계라는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북미 관계를 전망하는 데 유용한 분석의 틀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46년생인 트럼프와 1984년생인 김정은이 부자지간 뻘 되는 나이차와 정치문화적 이질성을 뛰어 넘어 독특한 케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브레이크뉴스

첫째는 특유의 카리스마적 추진력으로 아웃사이더에서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는 공통점이다.

 

김정은은 당초 권력 승계 가능성이 희박한 존재였다. 유교적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권력은 장자승계가 원칙이었다. 당연히 김정남이 승계 서열 1위였고, 김정은은 김정남이 최고지도자가 되면 생존을 걱정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김정남은 조선조 사도세자 처럼 망나니짓으로 스스로 무너졌고, 김정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력 승계에 적극 뛰어들어 승자가 됐다.

 

트럼프 역시 공화당 경선에 나설 당시만 해도 대통령은 커녕 공화당 후보가 되기도 어려운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략적 돈키호테의 모습으로 선거판을 주도하며 힐러리 진영을 뒤흔들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둘째는 비즈니스형 정치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을 통해 트럼프 왕국을 건설하고, 미국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이다. 흔히 부동산 개발은 정치와 가장 근접한 비즈니스라고 불린다. 정치가 종합예술이듯 부동산 개발도 종합예술이다.

 

김정은 역시 자신의 고향인 원산의 개발과 평양의 재개발을 통해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북한의 부동산 개발에 대해 적극 교감할 수 있는 비즈니스 케미 관계이다.

 

세번째는 이들이 군사문화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 작전과 상명하복, 전략전술의 개념을 잘 이해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후계수업 과정에서 포병을 위시해 다양한 병과의 군사경험을 했다. 공산주의 국가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 처럼 군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요건 중 군사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가장 공들인 것이 군사경력을 만드는 것이었는 데, 이 부분에서 김정은은 상당한 능력을 보여 김정일을 흡족하게 했다.

 

트럼프는 13세에 뉴욕군사학교에 입학해 군대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2차 대전 참전 용사인 시어도어 도비아스 교관을 롤모델로 삼아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 보다 뛰어난 학생으로 성장했다.

넷째, 두 사람 모두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농구경기를 하면 승부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함께 농구를 했던 형 김정철이 경기후 휴식을 하며 노는 동안 김정은은 승리를 위해 선수들과 경기분석을 하고 팀워크를 다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역시 강한 승부욕을 가진 인물이다. 뉴욕군사학교 시절 교관이었던 시어오어 도비아스는 "트럼프는 무엇을 하든 항상 1등이어야 했다. 무슨 수를 쓰든 꼭 이기려고 했다. 그런 면에서는 정말 골칫덩어리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싸움닭'으로 불릴 만큼 국내외에서 전방위적으로 싸움을 거는 인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우방인 유럽국가 지도자들과도 거침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는 유독 돈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단순히 재선용 정치전략으로 치부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에서 지도자 상호간의 인간적인 신뢰가 국가 관계를 변화시킨 사례는 너무나 많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서로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과 이를 기반으로 한 케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지도자들의 케미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청와대 정치국장과 영남매일신문 회장, 인간개발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 교수를 지내며 동북아 국제정치를 연구한 뒤 현재 한중 공공교류 전문기관인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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