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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는 시나리오의 작가이며 무대의 감독

이정랑 중국 고전 연구가 l 기사입력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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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랑     ©브레이크뉴스

통치자가 대개 대권을 잃는 것은 곧 그의 치국(治國)의 실패를 의미한다. 통치자가 신하에게서 목숨을 잃는 것도 그의 용인술(用人術)이 비극이었음을 의미한다.

 

도(道)란 만물의 근원이며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통치자는 도를 지킴으로써 만물의 근원을 알고 도를 연구함으로써 일의 성공과 실패의 조짐을 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기다려 스스로 좋은 명분을 만들고 좋은 일을 정한다. 마음을 비우면 실제 사정을 통찰할 수 있고 조용히 있으면 행동하는 자의 본심을 알 수 있다. 할 말이 있는 자는 이를 스스로 말하게 되고 하려는 일이 있는 자는 그 실적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실적과 명분을 검증하여 양자가 부합되면 통치자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실정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공허한 중에도 실제 정세를 통찰하고 고요한 중에도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는 통치자는 결코 방관자가 아니다. 그는 공허하고 고요해 보이면서도 열렬(熱烈)함과 충실함, 그리고 적극적 해결의 의지를 갖고 있다.

 

이름은 공허(空虛)이며 형체는 실질(實質)이다. 또한 말은 공허이며 일은 실질이다. 통치권자의 도는 공허를 실질로 삼아서도, 실질을 공허로 삼아서도 안 된다. 명분과 실질이 일치해야만 현실을 다스릴 수 있다.

 

통치자는 반드시 도를 지키고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물고기가 연못을 떠나서는 안 되듯이 나라의 이기(利器-날카로운 무기, 즉, 통치하는데 편리한 도구나 제도를 말함)도 남의 손에 넘겨서는 안 된다. 통치자의 허정(虛靜)은 곧 도를 지키는 방법인 동시에 자제의 방법이다. 담담한 표정 속에 활발한 사유가 있고 침착한 태도 속에 예리한 눈빛이 있다. 또한 이름과 형체를 관찰하고 말과 일을 파악한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에 모두 훤하다. 통치자는 일종의 수수께끼다. 통치자의 도 역시 수수께끼다.

 

통치자는 자기의 지혜를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된다. 통치자는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이다. 그의 욕망, 생각, 덕행, 지혜, 재능, 용맹함은 모두 재화이다. 통치자는 수많은 백성들에게 이 재화를 사용한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그것들을 절대 밖으로 내보여선 안 된다. 통치자가 욕망을 내보이면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온갖 화려한 언사로 그의 비위를 맞추려든다. 그러면서 통치자의 욕망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한다. 이 순간부터 통치자의 욕망이 고위관료들의 욕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한 통치자가 함부로 생각을 내보이면 관료들은 제각각의 주장을 펼친다. 나라의 기치 위에는 오직 ‘통치권자’를 내세우지만, 그 아래에 있는 관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좋음과 싫음, 사랑과 증오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관료들 역시 통치자의 욕망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야 소신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통치자가 습관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지혜가 있어도 밖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 관료들은 그의 심중과 의도를 추측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조심하기에도 급급할 텐데 어찌 감히 제멋대로 희한한 주장을 떠들어 댈 수 있겠는가, 설사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더라도 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다.

 

통치자는 지혜가 있어도 만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지 않아야 한다. 만물은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아울러 훌륭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이 유능하다고 생각지 말고, 각료들이 무엇에 의지하여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넘치는 용맹함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용맹함을 믿는 것보다는 각료들이 온전하게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정권은 집권자의 것이지만 때에 따라 집권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정권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각자 재능을 발휘해 멋진 드라마를 펼쳐 보이면 통치자는 자신의 지혜와 용맹함을 제거’하고도 한층 명철하고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지혜와 용맹함을 제거한다는 것이 자신을 정말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혜와 용맹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지혜와 용맹함이 없는 척 꾸미면서 지혜롭고 용맹한 수하들을 다스리는 것이 통치자의 참된 역할이다. 통치자는 오직 그들을 각자의 특성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주면 된다.

 

통치자가 침착한 태도를 보이면 수하들은 그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로 느낀다. 그리고 통치자가 높은 자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과시하면 고위관료들은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통치자는 확고히 권력을 장악하여 나라의 근본을 안정시킬 수 있다. j6439@naver.com

 

*필자 : 이정랑, 언론인. 중국 고전 연구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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