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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고산 삼태극(三太極) 두 물머리

이승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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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브레이크뉴스

 

완주 고산 삼태극(三太極) 두 물머리 . 이 자리는 구() 고산교(高山橋) 근처를 가리킨다. 동상면과 화산 경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지기에 두 물머리’ ‘삼태극 지역이라하며, 이런 곳은 사람들이 너그럽고 온후 인심이 좋다.

 

종리 신암(愼菴) 김정만(金正萬) 선생 서당에서 효경소학(孝經 小學)을 배울 때나 성경을 보면서 책 속에 이런 사람 닮은 이가 누구일까?’ 이런 잣대로 살피는 동안 차차 흥미가 더해졌다.

 

195078월 본인은 고산면장이요, 아들이 현역 국회의원인데 세상이 뒤집히자 분주소에 끌려갔다. 누가 봐도 피할 수 없는 인물 박건호 씨이다. 이에 앞서 신종갑 씨는 면장도, 아들이 국회의원도 아니나 피살됐다. 이 판국에 박건호 씨의 구금은 무엇을 의미하나 짐작이 가는 시대이었다. 대책회의가 열려 찬반 비율 49:51 죽느냐 사느냐 반반 목숨이 걸린 자리이다. 침묵과 치열한 토론이 진행됐고 결국 풀려났다.

 

625 전쟁 중 고산읍내가 빨치산 습격을 일곱 차례나 받아 집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치안대는 전북북부지도부소탕 작전에 나섰고, 이 전투에서 이준을 붙잡았는데 이 자는 팔팔한 북한 정규군으로 피해자 측에서 보면 처단 1호 대상자이며, 본인도 살 생각을 못하던 전시이었다. 읍내에서 처리문제를 두고 회의가 열렸을 때 여러분! 이 자 밉기야 하지만 고향에 부모형제가 있습니다.” 회원들은 별 말 없이 살려서 장가까지 들였다.

 

와룡리 김재월은 국방경비대에 입대 지리산 작전까지 하였고, 6·25 한국전쟁 중 패잔병이 돼 집에 왔다. 불안한 나날인민공화국 의용군으로 끌려가는 도중 미군기 공습을 받아 대열이 흩어졌고, 얼마 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다 국군에 발각되었다. ‘넌 죽어 마땅하다며 총을 사슴에 겨누자 난 국군 장병입니다.” “그를 어찌 믿노?” 허리띠 안쪽에 감춰둔 태극기 배지를 보였다. “그럼 어느 부대였나?” “○○부대였습니다.” “그래? 조재미(趙在美) 장군을 아는가?” “압니다.” 얼마 후 조재미 장군 앞에 섰다. “! 너 안 죽고 살았구나!” 껴안았으며, 바로 군복으로 갈아입혀 함께 전선을 따라 내려갔다. 이분들은 내가 보았던 논어·성서 속 사람들과 같다. 삼태극 두물머리는 1935년 이전까지 삼기면 땅이었다.

 

완주문화원장을 지낸 구영철은 1950년대 초 서울에 올라가 동북고등학교에 다니는데, 고향에서 안다며 줄줄이 찾아온다. 뿌리치지를 못해 밥 나눠 먹었으며, 곧 지낼 방책을 마련해 주었다. 오메 출신 대단한 인물이다.

 

계성학교 유춘경 선생 부인은 임신한 몸으로 전주에서 어우리까지 걸어왔다. 차비를 아끼려고. 아이 낳아 편안히 살 곳이 바로 삼태극 두 물머리이다. 남을 돌보면 100배로 받는데 이는 하늘의 이치로 확실하다.

 

*필자 : 이 승 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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