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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밥과 실행에 대하여

이서영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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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영작가/만다라 철학노트/인문학     ©블루노트

 

전적으로 고립된 것은 인식될 수 없다. 인식이란 깨어남이다. 인식이란 나의 상황과 관계를 이해 가능한 연관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정보화 사회, 첨단 기술 문명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손 안에 쥐어지는 컴퓨터인 휴대폰을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대여섯 살 아이들도 가지고 있다. 편리와 실용과 돈을 우선시하는 위험한 발상이지만 이것이 작금의 문화와 문명의 대세다. 대세라면, 그것이 대중화되어 있는 다수의 문화라면, 그것은 적절하고 알맞으며 맞춤하고 유용한 것일까? 진정으로 유용하고 유익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작금의 사회에 지식인들은 많지만, 그 많은 지식인들이 몸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인식하고 다음 단계인 실행의 단계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쓰레기 음식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나쁘다는 것이 질병으로 유도된다 하더라도 그 영향이 나 자신에게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서 감히 건강하기를 바라고 온갖 보약을 찾아 다니고 종합비타민제를 먹고 비싼 붉은 고기를 매 식탁마다 올리며 부와 권세를 과시한다. 많이 가지고 있어서 부자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부자는 많이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가지고 있는 물질들을 과시하고 권세를 휘두른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해 동물적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감히 만물의 영장이라 오해한다.(모든 것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동물적'이라는 표현은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혹은 '욕망만을 따르는' 등의 의미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욕망의 주인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욕망의 노예로 살면서도 욕망을 제어하고 사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하여 고찰하던 철학자다. 하이데거는 존재란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존재자는 사물이든 생명 있는 것이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의식을 지닌 존재이므로 인간은 '현 존재'라고 칭한다. 의식이 있어 생각할 줄 알고 사유할 줄 알고 통찰할 줄 안다고 전제하는 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자들과는 달리 '인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깨어나지 못한 채로 죽을 수도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 즉 '있음'이란 한정되고 규정된 것이 아니라 무한하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하고 절대적인 것으로서의 존재는 그의 고유한 존재와 진리를 향하고 이러한 고유한 존재와 진리를 통해 '있는 것'인 존재자는 한낱 기능으로서의 의의를 넘어서 자체적인 의의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존재는 인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존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신'이라는 존재자도 새롭게 경험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인간만이 '존재'로서 존재하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면, 그래서 따로 '현ㅡ존재'라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존재라면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 또한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최종적인 존재의 궁극인 '신'에 대해서도 말하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실행되지 않는 이론은 공허하다. 알고만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알면 행해야 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되었을 때 즉 언행일치가 가능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한 단계 일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43킬로그램의 몸무게였을 때 필자는 늘 저혈압이었다. 헌혈도 할 수 없었다. 에너지가 넘치다가도 어느 순간을 넘으면 에너지가 갑자기 방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먹거리를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들을 내 몸뚱이 안에 들이지 않게 되면서부터 피로도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지구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밤12시가 되어도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았고 새벽에 눈을 떠도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도 하루에 1,000킬로미터를 운전하고 나서도 별로 피곤하지 않고 거뜬하다. 하루 13시간쯤 책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머리는 피곤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점점 맑아지는 것 같다. 커피를 끊고 나자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의 집중력은 매우 깊어졌다. 아무리 시끄러운 시장통이나 백화점 한가운데 있더라도 책을 펼치기 시작하면 주변이 고요해지고 평화롭다. 소음이 집중을 방해하지 못한다. 집중의 순간들이 일상이 되자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주의력 또한 깊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먹거리를 바꿔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것이 쓰레기음식일까 아닐까를 본능적으로 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해야 하므로 군소리 없이 내 앞에 놓인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다. 뇌와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와 뇌, 나와 생각을 분리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모든 것이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보약을 먹어서가 아니라 독약을 끊은 결과물이다.

 

문제는 '맛'에 있다. 먹거리의 기준을 '맛'에 두기 시작하면서부터 건강의 마지노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맛'이 아니다. 영양가에 있거나 얼마나 건강한 음식이냐에 있다. 기준점을 과감히 바꾸지 않는 한 나는 언제나 질병의 가능성을 보다 더 많이 안고 살아가게 된다. 질병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맛'에 탐닉하는데 어찌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랄 것인가?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있다. 김형석 교수의 지적처럼 건강이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꾸준히 공을 들여야하는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몸은 그저 몸뚱아리가 아니다. 몸은 성전holy place이다.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는 성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는 성전. 내가 누군가와 행복하게 관계맺도록 매개하는 성전,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눠 가지는 성전인 것이다. 이 성전을 깨끗하고 성스럽게 가꾸는 작업은 결국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복에 도달하게 한다. 건강해야 뭐든지 할 수 있다. 건강해야 어디든 갈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56세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간절하게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가 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높은 고지, 정상에까지 도달한 사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운전을 대신해 줄 수있고 돈도 대신 벌어줄 수 있지만 결코 대신 해 줄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목숨, 삶, 생명이라는 것이라고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 우리를 향해 절박하게 말했다. 그처럼 돈이 많으면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를 대신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사랑하면서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몸뚱이의 건강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자. 건강이라는 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 오해하지 말자. 나는 내가 먹은 '바로 그것'이다. 스트레스도 운동 부족도 나를 아프게 하는데 일조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나를 바꾸는 것은 먹거리에 있다.

 

알아야 한다. 과감히 알려고 해야 한다. 사페레 아우데! 알았으면 다음 단계로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 아는 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일. 온몸으로 실천할 의지와 의도가 있어야만 우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의 시작점에 우리는 와 있다. '맛'이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하라. '혀'가 아니라 온몸의 세포에 끼칠 영향을 먼저 생각하라. 습관이 곧 그 사람이라. 습관은 이미 나의 피와 살이 되어 버렸고 나의 손과 발이 되었으므로 이것을 떼어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 것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살이 썩어가는데 그것을 그대로 놓아둘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아플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 몇 시간 전에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를 생각해본다. 배가 아프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해본다. 염증이 생긴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한다. 기침을 한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해본다. 설사를 한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점검한다. 일단 점검 후에는 하나씩 쓰레기음식을 끊기 시작해야 한다. 내 삶에서 사탕, 아이스크림, 커피, 붉은고기, 쿠키, 케잌, 정제설탕으로 만든 음식들, 흰밀가루로 만든 음식들, 음료수, 인스턴트 음식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무얼 먹고 사느냐'고 질문하는 이들이 있다. 찬찬히 주위를 돌아보면 답을 금세 찾을 수 있다. 사과, 감, 배, 포도, 딸기, 당근, 무, 배추, 김치, 된장, 청국장, 고추장, 장아찌, 온갖 종류의 나물들, 시금치, 고구마, 감자, 땅콩, 콩, 오징어, 온갖 종류의 생선, 미역, 다시마, 김, 정제소금이 아닌 진짜 소금, 정제설탕 아닌 것, 흰밀가루 아닌 것, 흰쌀밥 아닌 것들을 발품을 팔아서라고 찾아 먹어야 한다. 과일은 껍질째 먹고 야채는 가능한 조리하지 않고 먹으며 자연에서 온 자연스러운 것들을 찾아서 먹어야 한다.

 

필자는 오랜 시간 동안 먹거리를 가려왔지만 최근에는 흰쌀밥 대신 현미를, 과일 대신 생야채를 먹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오래 전부터 알아왔지만 그들의 말에 이제서야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 것 같다. 당근도 씻어서 생으로, 무도 씻어서 그대로 먹는다. 돌나물도 씻어서 된장에 찍어 그냥 먹는다. 김이나 미역귀도 잘게 썰어서 이동하면서 시간날 때마다 먹는다. 적게 먹어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먹어서 병에 걸리는 시대다. 많이 먹는데 그것도 내 몸에 건강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이 아니라 '혀'가 좋아하는 인공의 '맛'에 길들여져 기계 도시의 석유냄새 가득한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 한다. 우리가 먹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들이다. 우리는 석유추출물을 그처럼 맛있게 먹는 것이다.

 

미국 식약청이 허가했던 화학물질로 만든 음식첨가제들의 무서운 결과가 수십 년이 지나 온갖 암이라는 결과물로 나오고 있지만 이제는 더이상 금지시키거나 규제할 수 없다.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회사들이 거대기업이 되어 전세계적으로 음식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일어나 걸을 시간이다. 나의 형제에게, 자매에게, 아들딸에게, 엄마아버지에게 쓰레기음식을 주지 말라. 그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독극물에 다름아니다. 끊어라. 줄여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액션!*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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