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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인문학

이서영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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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영작가/만다라 철학노트/인문학     ©블루노트

 
니체는 1844년에 지구별에 도착한 여행자다. 그리고 그는 1900년에 지구별을 떠났다.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이야기들은 너무나 다채롭고 풍성하다. 그는 1인 연극의 달인이다. 혼자서 무대를 장악하면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열광하며 행복해하고 환호한다.

 

그는 몸의 철학자다. 몸의 행복을 논하지 않고 정신을 논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정신을 우위에 두고 있을 때 그는 몸을 전면에 내세운다. 정신이 중요하다면 몸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인간 중심 철학을 하는 철학자. 인간답게 그리고 나답게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며 지치지 말고 함께 끝까지 씩씩하고 용감하게 걸어가자고 외치며 늘 곁에서 손을 내미는 철학자, 니체.


따지고 보면 철학의 역사는 기원 전으로 넘어가야 하니 과거를 공부하지 않고 현재를 똑바로 보기란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사실 우리가 철학이라고 할 때 그 원류는 기원 전으로 넘어간다. 플라톤은 세계를 두 개로 나누었다. 그가 보았을 때 이 세상은 완전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데아라는 세상을 창조한다. 그래서 인간이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보다 이데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E H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


플라톤은 근원적인 존재자 혹은 실재를 추구했다. 그는 인간의 정신 세계에 존재하는 원형을 설정하고 이를 이데아라 명명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과 원리 개념, 분류 등 서양철학의 개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원리가 기준틀이 되었다. 플라톤의 이러한 실재 개념을 기본으로 자체성, 단순성, 일의성, 확실성, 불변성, 존재독립성, 현상과 실재, 진리와 허위, 인식과 믿음,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 개인과 국가, 세계정신과 개인 정신, 보편자, 우연과 필연, 연역과 귀납 등 수많은 철학적 개념들이 파생되어 나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형이상학이란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을 통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우리는 철학을 도구 삼아 자신과 세계를 해석한다. 철학은 나와 세계를 객관적으로 텍스트 삼아 스스로를 사유하게 한다.
한 인간의 삶이 진정한 삶이 되려면 사유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나는 나를 진정으로 파악할 수 없다.


철학은 인간을 사유하게 한다. 이러한 사유는 철학적 상상력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 낸다. 철학적 상상력은 나 자신과 세계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해석하는 힘을 갖게 한다. 굳이 말하자면 철학은 지식의 영역을 넘어서서 지혜의 영역에 거주한다. 지식인이 지혜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무척 멀지만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지혜의 영역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지혜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천리길을 걷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뛰어가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고 요구한다.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차분히 앉아 있기를 요구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형이상학적 사고의 발현이다. 형이상학은 사태나 사물의 제1원리를 밝히고자 한다.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넘어선 곳에 진정으로 '있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이것을 이데아라 부르고 원형이라 부르고 사물의 본질이라 보았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철학이 단순히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관점이나 세계관의 차이가 아니라 다른 존재자와 상이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실존방식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묻는 인간 실존, 이것이 철학이다.


형이상학 또한 존재의 진리를 묻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존재 그 자체를 묻는 것이 형이상학의 본질이어야 한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플라톤이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를 보았다면 하이데거는 눈에 보이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본다.
그에게 존재란 우리의 삶과 함께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그는 존재가 가장 탁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자는 바로 인간의 실존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현존재Dasein'라고 표현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은 하이데거에 이르면 존재와 실존이 결합된다.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존재의 '드러남'과 함께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이 존재 너머의 존재에 대하여 초점을 맞췄다면 하이데거는 실존으로서의 존재에 대하여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전통적인 플라톤적 형이상학과의 결별일까.
철학적 상상력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플라톤적 형이상학이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며 현재의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저너머의 어떤 것을 보았다면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사유에 해당한다'고 정의내린다.


철학Philosophy은 '지혜에 대한 사랑', 형이상학은 metaphysics, 그 중 meta는 '넘어서는' '초월적인', physics는 '자연학' 또는 '물리학'을 의미한다. 자연학 위에 있는 것, 그 너머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눈에 보이는 사태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것, 이것이 형이상학이다.
플라톤적 형이상학은 시간이 흐르면서 재해석된다. 하이데거적 형이상학은 존재와 실존을 결합한다.
이렇게 존재와 실존을 삶 한가운데 결합시킨 멋진 철학자가 또 있었으니 그가 하이데거가 존재하기 이전의 니체다. 니체는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체는 삶을 노래한다.
이전의 서양철학이 존재에 대한 사유, 즉 인식론에 머물러 있었다면 니체는 인간 존재를 사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존재론적 철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게 한다.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는 묘한 방법을 제시하는 철학자, 니체.


니체는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직면하라고 말한다.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과 내게 주어지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과감하게 극복해 나감으로써 삶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그는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우리를 몰아간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워지라고 요구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책은 당대에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부지런히 책을 썼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고 이렇게 말했다.
"이 책으로 나는 인류가 지금까지 받은 그 어떤 선물보다 큰 선물을 주었다. 수천 년간 펴져 나갈 목소리를 지닌 이 책은 존재하는 최고의 책이며 진정으로 높은 공기의 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다. 조로아스터는 고대 페르시아의 인물로서 선과 악의 대립과 투쟁이 역사를 만든다고 보았다.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이다. 니체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강하게 부정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책에 차라투스트라를 등장시킨 것은 바로 그가 선과 악을 대립시킨 최초의 인물이므로 또한 이 같은 생각이 오류임을 인식할 수 있는 최초의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인식한 사람만이 그만큼 많은 고민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은 '자기 극복'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라는 표현을 이 책에서 자주 사용한다.
그가 이 책을 구상한 것은 1881년 여름이었다. 그는 요양 중인 실스마리아의 실바플라나 호숫가를 거닐다가 거대한 바위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그의 이 깨달음은 바로 '영원회귀' 사상이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어제와 같은 경험을 오늘도 하는 것처럼 오늘의 이 경험을 내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오늘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파울 레와 루 살로메와의 삼각 관계에서 여동생 엘리자베스까지 가세한 이간질로 루와 헤어진 니체는 1882년 겨울을 매우 고독하게 지냈다. 그는 평생 몸이 좋지 않아서 공기가 좋은 곳을 찾아다녔는데 1883년 1월과 2월 사이, 실스마리아에서처럼 황홀한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뒤 그는 [차라투스트라를 이렇게 말했다] 1부를 10일 만에 완성한다. 같은 해 여름 2부를 마무리, 1884년 초에 3부를 완성, 1885년에 마지막 4부까지 완성하기에 이른다.


건강도 최악이었고 실연의 아픔 속에 있었음에도 그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삶의 괴로움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 태어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 허무주의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것. 이러한 '절대 긍정'에 관한 책이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다.


니체는 늘 아팠다. 그래서 긴 글을 한 번에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책이 시적인 잠언 형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이유이다. 또한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일종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차라투스트라는 4부에 걸치는 시간 동안 내면에서 정신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의 이야기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이 개입된다.


1부는 22개로 나뉜 설교로 이루어져 있고 신의 죽음과 '위버멘쉬'에 관해 이야기한다. 위버멘쉬는 '초인'으로 번역되었지만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인간'이라는 뜻의 위버멘쉬는 슈퍼맨으로서 타자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영웅적 존재라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허약하고 병적인 요소, 부정적인 허무주의, 현재에 만족하려는 자기기만적 내면 등을 끊임없이 극복하라는 의미다. 말하자면 삶을 대하는 '태도attitude'를 고민해 보자고 그는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2부는 '힘에의 의지'에 대하여 말한다. 힘에의 의지란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3부는 영원회귀 사상, 신의 죽음과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인간형인 위버멘쉬,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4부는 차라투스트라가 왕, 학자, 교황, 거지 등과 토론한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삶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고통, 시련, 슬픔, 좌절 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끊임없이 재조정할 것을 그는 우리에게 요구한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간단없이 변화하고 있으니 변화 속에 숨어 있는 긍정적인 기회 요인을 포착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질 것을 그는 우리에게 요구한다. 기존의 익숙한 가치와 습관, 시선 등을 과감히 버리고 늘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지구별 여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현재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전달되는 선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익숙한 사고방식과 편견, 내게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전진할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익숙한 상태를 좋아한다. 비록 그것이 고통이라 하더라도 익숙한 상태를 떨쳐버리고 새로움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이 '쉽지 않음',이 삶이다. 전인적인 존재로서의 한 인간이 참 인간, 비로소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찌 쉽기만을 바라겠는가. 쉽고 편안하고 안전한 길은 우리의 정신을 깨우지 못한다. 거칠고 광막한 광야를 걸으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고통은 그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반드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 새로운 소식을 담고 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으려면 늘 깨어서 사유하고 통찰해야 한다.

 

삶은 고도의 상징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하여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우리의 정신을 깨우는 것처럼 삶은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인간이 한 존재자로서 굳건히 존재하기 위하여 깨달아야 할 지혜의 영역은 바로 눈 앞에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풀어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삶은 그저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을 뿐이다.


새로운 세기를 열어 주었던 니체의 사상 속으로 산책을 떠나 보자. 쉽지 않음을 어떻게 쉽게 선택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


[만다라 철학노트]는 가을에 도착했다. 이 가을에 세상 어디를 가든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 한 권이 바로 이 [만다라 철학노트]이기를 바란다. 인문학은 삶을 해석하는 대단한 도구다. 과거를 재해석하는 힘을 주는 열쇠다. 현재와 미래를 지금, 이 순간으로 결집하는 타임머신이다. 니체 철학은 삶을 해석하는 멋진 인문학적 도구다. 부지런히 읽고 읽고 또 읽고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에 저장한다. 무의식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학생이며 지구별여행자다. 이 멋진 인문학적 도구를 손에 쥐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면 당신의 생은 복될 것이다.*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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