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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정신세계

이서영 작가 l 기사입력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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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영작가/만다라 철학노트/인문학     ©블루노트

 
우리는 식물들에게 둘러싸여 산다. 그들은 자연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호흡하면서 내놓은 산소가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다. 우리는 식물들에게 엄청난 은혜를 입고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식물과 인간은 공생관계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식물과 인간이 공생관계임을 간혹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예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중심의 사고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식물이 없다면, 광합성을 하는 녹색 식물이 없다면 인간은 숨도 쉬지 못하고 먹지도 못할 것이다. 식물의 잎사귀에는 약 100만 개의 공기구멍이 있어서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면 산소가 뿜어져 나온다. 광합성의 산물인 당류에서 녹말, 기름, 왁스, 섬유소 같은 것들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식물과 함께, 즉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참된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식물의 정신세계]를 읽다보면 20세기 라울 프랑세라는 생물학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충격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식물도 자신의 몸을 고도로 진화된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유롭고 쉽게 그리고 우아하게 움직이는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 움직임이 인간보다 너무도 느리기 때문이라는 것.
식물의 뿌리는 대지 속을 탐색하듯 파들어 가며 새싹이나 잔가지들은 일정한 동그라미 형태로 움직이고 잎사귀나 꽃들은 다양한 변화를 보이면서 구부리거나 떨고 덩굴손들은 주변 환경을 살피려고 더듬듯 팔을 뻗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프랑세는 움직임이 없는 식물이란 없다고 말한다. 식물의 성장 자체가 일련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식물은 쉬지 않고 굽히고, 방향을 바꾸고 흔들리는 등의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여름날이면, 나무 그늘로부터 뻗어 나온 수천 개의 가지들이 자기들을 받혀 줄 든든한 줄기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열망으로 몸을 떤다고 한다. 약 27분 만에 한 바퀴의 원을 그리는 포도나무 덩굴손은 버팀대를 발견하면 20초 안에 그것을 감싸 1시간 쯤 지나면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선형으로 감기 시작하는데 감김을 따라 나무의 본체도 그 위쪽까지 따라오게 된다. 버팀대를 필요로 하는 식물들은 근처의 버팀목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 한사코 기어오른다.

 

식물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지하고 이에 반응을 보인다. 끈끈이주걱은 백발백중 파리를 붙잡을 수 있다. 식물들은 어떤 개미가 근처에 오면 접근하지 못하도록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가 개미들이 기어오르지 못할 만큼 이슬이 충분히 맺혀 있을 때 꽃잎을 벌리기도 한다. 늪지대에 사는 어떤 식물들은 질소 성분이 부족해, 살아 있는 벌레를 잡아 먹음으로써 이를 보충하기도 한다. 육식 식물의 촉수는 입과 위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는데 촉수를 뻗어 먹이를 잡아 통째로 먹고는 뼈다귀만 남겨 놓는다. 곤충을 잡아먹는 끈끈이주걱은 잎사귀에 돌이나 쇳조각 등을 올려놓으면 전혀 반응이 없다. 다윈은 이 끈끈이 주걱이 자신의 먹이가 되는 것은 0.00000083그램의 무게까지도 감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덩굴손은 0.00025그램에 불과한 비단실 한 오라기만 있어도 든든히 매달릴 수 있다고 한다.


식물들은 정교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찢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새끼줄처럼 나선형으로 꼬인 섬유 구조로 서로 맞물려 얽혀 있어서 좀처럼 찢어지지 않는다.


식물은 또한 방향이나 미래에 대한 지각 능력도 있다고 한다. 미시시피 대초원 지대의 개척자들과 사냥꾼들은 한 종류의 해바라기를 발견했는데 잎사귀들이 정확하게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디언 감초라는 풀은 모든 형태의 전기나 자기에 매우 민감하여 날씨를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런던의 큐 식물원의 식물학자들은 인디언 감초를 이용하여 태풍이나 지진, 화산 등을 예측할 수 있다.
고산 지대의 꽃들은 계절을 정확하게 알아 봄이 오면 아직 남아 있는 눈더미들을 열을 내어 녹이면서 뚫고 나와 싹을 틔운다고 한다.


프랑세는 식물들이 바깥 세계와 교신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음을 믿었다. 식물이란 감각이 없는 단순한 자동 기계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대부분인 인간 중심의 사고 방식은 식물이 적극적인 의지와 의도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기존의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녀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색깔의 파장까지도 구별할 수 있고 특히 엑스레이나 텔레비전 같은 고주파에 민감하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1966년 '벡스터 효과'라는 유명한 관찰은 식물이 지각능력이 있음을 밝히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벡스터는 학교에서 밤새워 연구 중이었다. 그 학교는 경찰관이나 보안 담당자들에게 거짓말 탐지기의 사용법을 교육시키는 곳이었다. 벡스터는 문득 거짓말 탐지기의 전극 하나를 자신의 사무실에 놓인 야자나무처럼 생긴 드러시너에게 갖다 대면 어떤 반응이 생길까 궁금해졌다. 벡스터가 물을 주자 나무는 순식간에 물을 빨아들였다.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거짓말 탐지기로 쓰이는 검류계는 약한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사람에게 갖다 대면 그 사람의 심리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 바늘이 움직이거나 종이 위에 그래프로 도표가 그려지는 거짓말 탐지기의 일종이다. 이 측정기는 감정과 생각의 자극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 신체의 전압의 차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인간의 반응이 검류계상에 확실하게 나타나게 하려면 그 사람을 위협하면 된다. 그러면 가장 효과적으로 감정 반응이 그래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벡스터는 드러시너에게도 그렇게 해 보기로 결정하고 잎사귀 하나를 뜨거운 커피잔에 담갔다. 하지만 검류계는 별 반응이 없었다. 벡스터는 잠시 생각하다가 좀더 가혹한 방법을 떠올렸다. 전극을 연결시킨 잎사귀를 '불에 태워 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바로 그때 그가 불을 떠올리며 성냥을 가져오려고 움직이기도 전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검류계의 바늘이 급작스럽게 움직이면서 그래프의 도표가 위로 쭈욱 올라가는 것이다. 벡스터의 생각을 식물이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벡스터가 잠시 그 방을 나와 성냥을 찾아 돌아갔을 때 또다른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기록이 도표에 남아 있었다. 벡스터가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잎사귀를 태우려 하자 그래프는 조금 낮은 봉우리를 그렸다. 잠시 후, 그가 단지 잎사귀를 '태우려는 시늉'만 할 때는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전혀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벡스터는 결론지을 수 있었다.

 

'식물도 생각할 줄 안다.'


그는 자신의 검류계가 고장난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검류계는 정상이었다. 벡스터와 그의 동료들은 다른 식물들과 다른 기구들을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실험해 보았다. 상추, 양파, 오렌지, 바나나 등을 비롯 25가지가 넘는 식물과 과일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았다. 관찰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사건이었다.


벡스터는 이후 식물들이 무엇을 지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과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갖가지 식물들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작성되었다. 식물들의 잎사귀는 본체로부터 떨어져 있거나 잘게 잘려져 있거나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식물들은 또 인간의 위협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개가 나타난다거나 호의적이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는 등의 돌연한 위협 상황에도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관찰을 통해 식물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면 잠시 기절하거나 완전히 실신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 방어를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한 번은 캐나다의 한 생리학자가 와서 실험을 하는데 몇 번을 실험해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벡스터가 짚히는 게 있어서 그 생리학자에게 물었다.


"혹시 작업하는 중에 식물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기도 하십니까?"
생리학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직업은 식물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수분을 증발시키고 오븐에 집어넣고 굽기도 한답니다."


생리학자가 공항으로 떠난 지 45분쯤 지나서야 벡스터의 식물들은 다시 유연하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벡스터는 식물이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기절시키거나 최면 상태로 빠뜨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간과 교감하는 식물이라니, 신기하면서도 놀랍지않은가?


우리는 식물을 단지, 바라보는 미학적 대상으로 여기거나 먹거리의 일부로 수용할 뿐이다. 식물이 내게 주는 영양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뿐 생명 대 생명으로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어떤 음식을 취하든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는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중대한 사건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보존하기위해 그 에너지를 우리는 식물이나 동물에게서 얻는다. 그것은 생명과 생명이 맞닿은 작업이다. 신성한 작업인 것이다. 단지 혀에 길들여지고 맛에 길들여져 식물이나 동물들이 인간들의 먹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은 바뀌어야만 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자 우리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질병 상태에 노출되게 되었다. 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생태계가 파괴된다. 먹이 사슬의 최고 위치에 있는 인간은 무엇이든 인간 자신의 몸을 위하여 다른 생명을 아무런 생각 없이 도살하고 온갖 양념을 해서 눈이 행복하고 혀가 행복한 음식을 먹는다. 미식가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도살된다. 식물을 먹는 것 또한 살아 있는 생명을 취하는 일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존재 대 존재가 만나는 겸허한 순간을 늘 맞이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인간 우위인 모든 것들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바뀔 수도 있다. 다른 차원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야채라고 불리는 것들, 과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인간의 입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그 생명들을 취하고 그 에너지들을 취함으로써 유기체로서의 생명을 이어간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교감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맛과 영양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벡스터는 식물이나 그 세포가 외부로부터의 신호를 알아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볼티모어의 한 기자와 실험을 하였다. 벡스터는 필로덴드론이라는 덩굴 식물을 검류계와 연결하고는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출생년도는 언제입니까?"


벡스터는 미리 1925년부터 1931년까지 7년간의 연도를 차례차례 물으면서 전부 "아니오"라고 말하라고 미리 부탁했다. 그리고 검류계에 연결된 식물의 그래프를 확인했다. 모두 '아니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이 올라간 연도가 있었다. 기자가 입밖으로 낸 적이 없음에도 식물은 정확하게 기자의 출생년도를 알아맞혔다.


같은 실험이 정신병리학자인 에서 박사와 화학자인 딘 박사에 의해 행해졌다. 이들은 묘목 때부터 정성껏 길러온 필로덴드론을 가져온 한 남자와 실험을 했는데, 검류계를 식물에게 연결시키고는 주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 중 몇 가지는 거짓말로 질문하라고 지시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필로덴드론은 너무도 쉽게 거짓말을 가려냈다. 처음에는 벡스터의 주장을 비웃었던 에서 박사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벡스터를 비웃었던 말들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물도 기억을 할 수 있을까, 를 알아보기 위해 벡스터는 '범인 찾기'라는 실험을 실시했다. 두 그루의 식물이 있는 방에 누군가 들어가 한 그루를 무참히 죽인 후, 남은 한 식물이 그 범인을 찾아낼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다. 이 실험에 벡스터의 학생 여섯 명이 참가하겠다고 자청했다. 그 중 몇 명은 숙련된 경찰관이었다. 제비뽑기를 해서 한 사람이 지정되었다. 어느 누구도 누가 범인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한 것이다. 물론 무작위 제비뽑기였으므로 본인을 제외하고는 벡스터조차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 참극을 경험한 식물에게 검류계를 연결시킨 뒤 한 사람씩 지나가게 했다. 다른 다섯 명이 지나갈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식물은 범인이 접근하자 격렬하게 바늘을 움직이게 했다.


또 다른 실험도 행해졌다. 벡스터는 일련의 관찰을 통해 식물과 그 보호자간에, 거리와는 상관 없이 서로 특별한 교감이나 친근감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벡스터가 강의차 여행을 떠나 드러시너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그 첫 관찰에 관해 강의할 때 그의 사무실에 있던 식물은 그래프에 특별한 반응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벡스터는 이 과정을 통해 식물들은 어떤 특정인과 특별한 유대 관계를 설정하면 그가 어디에 있든지, 아무리 많은 인파 속에 있더라도 그와의 유대를 계속 가져가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 번은 늘 함께하는 식물을 가진 여자 친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녀로 하여금 비행기를 타고 미대륙을 가로질러 1,1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 스톱 워치를 통해 확인한 결과 그녀의 식물들은 비행기가 착륙하려는 순간의 그녀의 감정적 스트레스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지각 능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벡스터로서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식물에게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식물이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에너지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식물들을 납으로 된 상자에도 외부 정전기장의 영향을 차단시킨 패러데이 상자에도 넣어 보았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식물과 인간의 교신로를 막을 수 없었다.


벡스터는 식물이 자기 주변의 세포 하나하나의 죽음이라는 극히 미세한 것에도 반응을 나타내는가가 궁금했다. 그가 요구르트에 잼을 섞을 때 잼 속의 화학 방부제가 요구르트의 생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벡스터는 식물의 반응을 보고 알게 되었으며 뜨거운 물을 수챗구멍에 넣을 때 그 물이 수챗구멍의 박테리아를 '죽이기' 때문에 식물이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포학자 하워드 밀러 박사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모든 생물은 공통적으로 어떤 종류의 '세포 의식'을 지닌 것이 틀림없다."


이 가설을 증명하고 싶었던 벡스터는 온갖 종류의 단세포들, 즉 아메바, 짚신벌레, 효모, 곰팡이 배양균 그리고 사람의 입전장에서 떼어낸 점막, 혈액, 심지어 정자에 전극을 갖다 대어보았다. 식물의 반응과 같은 흥미로운 결과를 예상하면서. 그 중 정자 세포의 반응은 놀랄만한 것이었는데 그 정자 세포는 오직 자기의 본체인 남성에게만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기 위해서 인간의 개입이 배제된 실험 장치를 준비했다. 이 준비는 2년 6개월이라는 시간과 수천 달러의 비용이 필요했고 '초심리학 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자동장치를 통해 세 종류의 식물을 각기 다른 방에 놓고 살아 있는 싱싱한 새우를 끓는 물에 넣을 때의 반응을 실험했다. 각기 다른 방에 있던 식물들은 예외없이 새우가 끓는 물에 들어갈 때마다 특정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실험의 전과정과 그 결과는 1968년 겨울 [국제 초심리학 잡지] 제10권에 '식물의 삶에 있어서의 근원적 지각 능력에 대한 증명'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로써 그의 실험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검류계보다 훨씬 더 예민한 심전도계라든가 심전도계보다 10배나 더 민감한 뇌파 탐지기 같은 값비싼 장비들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자신의 애견에게 먹이려고 날달걀을 깨뜨렸다. 그 순간 탐지기에 연결된 식물들 중 하나가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다음날 저녁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달걀을 겸류계에 연결시켜 보았다. 9시간 동안 달걀은 움직임의 흔적을 그래프에 남겨놓았다. 그것은 부화가 3~4일 쯤에나 나타나는 병아리 태아의 160~170의 심장 박동수였다. 달걀은 가게에서 사온 흔한 것이었으며 무정란이었을 뿐이다. 현대 과학의 지식으로 풀 수 없는 '힘의 장'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벡스터가 미국 동부 지역에서 연구하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주 IBM의 화학연구원인 마르셀 보겔은 창조성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미나 참가 수강생 중 한 사람이 벡스터의 연구가 실린 기사를 보여주었다.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는가?'


그는 기사를 접하고 벡스터를 사기꾼에 협잡꾼이라고 생각했고 잡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며칠 동안 그 기사의 제목은 보겔의 마음을 자꾸 끌어당겼고 결국 그는 그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수강생들에게 그 기사를 읽어주었다. 반응은 양분되었고 결국 직접 실험을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는 수강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벡스터의 성과를 재현해 보았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다만 그 자신만이 몇 가지 똑같은 성과를 얻어내었다. 그는 왜 자신만이 실험에 성공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이 칼 융이 말한 '심적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 영적인 능력이 있는 비비안이라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범의귀 잎사귀 두 장을 뜯어다 하나는 침대 옆 탁자에다, 다른 하나는 거실에다 놓아두고 보겔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저는 아침마다 침대 옆 잎사귀를 바라보겠어요. 계속 살아있으라고 말하면서요. 나머지 잎사귀는 그냥 내버려두겠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한 달이 지났을 때 보겔은 그녀의 집으로 가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다. 관심을 두지 않은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해 썩어가고 있었고 머리맡의 잎사귀는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겔은 자신도 같은 시험을 해보려고 느릅나무 잎사귀 세 장을 땄다. 매일 아침 세 잎사귀들 중 양쪽 두 잎사귀에게는 자상하게 계속 살아있기를 권하면서 약 1분간 그윽하게 들여다보았다. 가운데 잎사귀는 무시했다. 아예 없는 것처럼. 1주일이 채 못되어 가운데 잎사귀는 갈색으로 시들었고 가장자리 두 잎사귀는 여전히 푸른 빛으로 싱싱함을 유지했다. 놀라운 것은 두 장의 잎사귀들이 나무에서 뜯겨질 때 입은 상처 또한 나은 것처럼 보였다는 것.
보겔의 결론은?


그는 식물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으로 보아 인간의 의도가 모종의 에너지장을 형성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의 순수한 의도는 식물들에게 전달되었다. 적의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식물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보겔은 자신이 의식을 집중하면 식물도 자신에게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보겔은 모든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력 또는 우주 에너지는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식물도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식물을 관상용으로 키울 때도 야채나 과일이라는 이름으로 식용으로 사용할 때도 사실 우리는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생명체에 대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될 때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온 식물들은 건강한 힘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식물과 감응하는 것은 곧 자연과 감응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에너지를 우리 몸 안으로 들여 또다른 생명력을 얻으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게로 스며든다는 공감의 느낌인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보겔은 말한다. 우리가 야채나 과일, 견과류, 그밖의 무기질과 단백질이 풍부한 식물들을 풍부하게 섭취하고 적절하게 식이요법을 한다면 마음을 열고 서로와 교감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즉 높은 수준의 에너지를 발휘하려면 풍부한 영양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에너지는 순수한 의식에서 출발하며 풍부한 영양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은 식물들의 의식과 동화되는 것이라고.*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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