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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종수(八十種樹)-나이 80에 나무를 심는다!

김덕권 시인 l 기사입력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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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팔십종수(八十種樹)>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 80에 나무를 심는다는 뜻이지요. 다 늙어 무슨 효도를 보려고 나무를 심을 까요? 제 나이 이미 80이 넘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필자=산님이 [덕화만발]이라는 카페를 열고 매일 매일 힘들게《덕화만발》이라는 글을 쓰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과 사회가 달라 질 수 있을까요? 너무 힘들게 살지 마시고 이젠 좀 건강도 돌보시고 인생을 즐기며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박목월 선생의 수필 <씨 뿌리기>에 호주머니 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옛말에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六十不種樹)’고 했습니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이지요. 정조(正祖) 시대 심재(沈鋅 : 1722~1784)의 <송천필담(宋泉筆談)>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서문에 보면, 심재는 “명성도 업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읽은 책의 내용, 성현의 가르침, 세상의 속된 말 등의 내용을 잡다하게 기록하였으며, 이를 후세의 선비들이 읽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송천(松泉)이란 ‘소나무 사이의 밝은 달과 돌 위의 맑은 샘물’을 뜻하며, 이는 처사(處士)가 거처하기 좋은 곳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송천필담>에 나오는 몇 가지 예화를 들어 봅니다.

 

「송유(宋兪)가 70세 때 고희연(古稀宴)을 했다. 귤(柑)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는 10년 뒤 귤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황흠(黃欽)이 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렸다.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 버렸군.”」

 

이 이야기들은 모두 <송천필담>에 나옵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팔십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 공부도 수행도 하지 않고, 일도 안 하며 그럭저럭 살다 죽을 날만 기다리기 쉽습니다. 100세 시대에 이런 조로(早老)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요?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랍니다. 설사 제 당대에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을 못 보면 어떻습니까? ‘팔십종수’를 하는 심정으로 필자는 오늘도 졸필이지만《덕화만발》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제게는 이《덕화만발》을 쓰는 동안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마치 깊은 선정(禪定)에 든 듯 무아지경의 희열(喜悅)을 맛봅니다. 물론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주제(主題)를 선정하고, 자료를 찾아야 하며, 문장을 쓰고 읽고 고치는 것은 저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작업입니다.

 

그러나 <팔십종수>의 정신으로 이 땅에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위한 씨 부리기’라고 생각하면, 이처럼 기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 까지 이 글을 쓰다가 떠난다면 제 인생은 성공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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