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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花坪里)

이승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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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브레이크뉴스

"도시시골 다른 점이 냄새이었다. 풀 벤 언덕을 거닐면 풀냄새 진했고, 지나는 골목 생선요리 구수한 냄새가 담장(울터리) 넘어(새어)나와 지나는 이의 구미를 돋우었다.  명절 무렵 창호지에 바른 풀냄새 싫지 않았고, 빨래터 나가는 순이와 좁은 길에서 살짝 비껴 설 때 풍겨나는 분향으로 더 예뻐 보이던 마을이 화평리이었다. 봄날 외가 마당에 들어서면 고사리 말리는 냄새 특이했으며, 문 열고 안방에 발 디디면 윗방에서 고이는 술 냄새 코끝을 건들었다.”

 

이런 향취가 그득했던 ‘꽃들[花坪:화평]’도 많이 변했다.

 

사라진 것 중 가장 아쉬움이란 비 내리는 날 경천저수지 물고기가 새물 따라 몰려들어 물 반, 고기 반 그물 던져 끌어당기기 어깨가 뻐근했다는데 지금은 송사리 한 마리 얼씬 거리지도 않는다.

 

환경과 경제생활 변화 때문이다. 잘 살려고 소 기르니 양축업자야 부자이나 짐승이 내놓은 똥오줌 흘려들며, 농사 힘드니 제초제를 쓰지 않을 수 없어 풀 내음 대신 농약 냄새 코를 막는다.

 

면소재지 ‘큰 동네 뭘 먹고 사나’ 묻는 이 많다. 가까운 저수지에 물만 출렁일 뿐 들이 없어 논밭이 귀하다. 마을 앞 내 건너는 화월리(花月里) 땅. ‘화평(花坪)’ 이름만 좋을 뿐 곡식 나올 전답 적은 마을인데도 잘 사는 사람이 있었다. 주조장 주인은 부자(?)였다.

 

한말에 들어온 고흥 유씨(유민)는 관청에서 일을 했고, 살아가는 요령이 남달라 자제들 신교육을 시키는데, 초등학교 졸업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전주사범, 전주농고, 전주고보(현 전주 고)에 보냈고, 마치면 관리가 되어 면사무소 서기➔부면장➔면장을 도맡아 했으며, 군청∙도청 간부도 많았다. 이러하니 인허가 손쉬워 사업이 잘되고 돈이 늘수록 출세까지 선순환(善循環) 해방 후 군수(유창석)가 나왔으며, 학교장, 공무원 계장∙과장은 보통이고, 기업인 외에 유해근은 별 세 개를 단 육군중장에 올랐다. 유씨는 50년 안팎 화산면 지배자가 된 반면에 토성 하층민은 이 집안 일꾼들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잘 살던 유 씨 서울대학교 나온 사람 많고 장가 잘 들어 처가 부자이며, 똑똑한 사위 들어오니 오지 화산에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눌러 사는 유 씨 하나 없다. 승치∙성북∙춘산∙운곡∙운산 사람들은 지형상 화평을 지나지 않으면 고산∙전주에 나갈 수 없어 이게 화산 면민들이 단결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요소임과 동시에, 일종의 장악력이었다. 매운탕갈비탕 끓이고, 쇠고기 굽는 영업집 음식맛과 값을 물으면 별로라는 뜻 ‘글쎄요’이다.

 

2020년부터 40억원을 들여 기초생활거점사업을 전개한다니, 이 기회에 도솔산 고성(古城)도 고쳐쌓아 가치를 드높이며, 화려강산 문루(門樓)를 꼭 세우기 바란다. 
    
*필자 : 이 승 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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