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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모든 실천은 그렇지 않다

권기환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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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맞는 말이다. 어떤 설문 조사에 의하면 약 15%에서 25% 정도의 사람들은 회색을 가장 싫어하는 색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회색은 힘이 없거나, 고귀한 흰색이 더럽혀지거나, 강렬한 흑색이 약화가 된 색으로 간주가 될 뿐만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중간색이다. 회색은 사실 농도 혹은 채도에 있어서 회색 그 자체보다 주변의 색에 따라 좌우된다. 즉, 주변의 색에 따라서 때론 밝게 보이도 하고, 때론 어둡게 보이기도 한다. 

 

 색채 심리학에서는 회색이 권태·고독·공허와 같은 우울한 감정의 색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회색은 불친절하거나 모순된 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흉함 혹은 불안을 나타내기도 한다. 더 나아가 회색은 등골이 오싹하거나 잔혹하거나 무감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 회색이 다른 색과 배색이 되면,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색이기도 하다. 회색은 흉한 색인 갈색과 배색이 되면 속물적이고, 지루하고, 불친절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회색이 모순된 색을 나타내는 노란색과 결합이 되면 불안한 느낌을 준다. 더 나아가 회색이 부정의 색인 흑색과 결합이 되면 흉악, 무감각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색은 이런 느낌과 달리 심사숙고인 이론의 색이기도 한데, 특히 정신적 미덕을 나타내는 파란색과 배색이 되면 객관적 느낌을 주기도 하고, 이상적이고 고귀한 느낌을 주는 흰색과 배색이 되면 겸손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회색이 백색, 파란색과 결합이 되면 진리의 상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회색이 은색과 흰색 그리고 흑색과 배색이 되면 우아하게 보이기도 한다. 

 

 ‘밤에는 모든 고양이가 회색이다.’(La nuit, tous le chats sont gris)라는 속담이 있다. 일단 어두운 밤에는 모든 것에 구별의 경계가 사라지니 조심하라는 뜻이 될 것이다. 회색은 백색과 흑색의 혼합색이기 때문에, 은밀한 느낌도 들어가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범죄는 처벌될 수 없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이른바 회색지대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교묘하게 벗어나 있는 법망의 틈이다.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범죄자는 스스로 아무도 모르니까 범죄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 처벌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 마련이다. 화이트 칼라 범죄가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 정도가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든 이론은 마치 태양이 빛을 비추지 않은 비·안개·구름·그림자처럼 회색이다.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때론 어떤 이론이든 명확하기보다 오히려 더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이론(theory)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의 θεωρία(연구·고찰·광경·의제 등등)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θεώρημα(사변·직관·테제 등등)라는 말과 유사하고, θεωρέω(숙고하다 혹은 신탁을 문의하기 위해 보내게 되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이를 라틴어로 차용하면 doctrína가 되는데, 이때의 의미는 학설·가르침·학문·학과·방법론 등등이라는 뜻이 된다. 이론(理論)이라는 한자어는 사물의 이치를 밝혀서 헤아리고 구별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학문의 논리적 체계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지식을 학습하고 습득한다. 그런데 이론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시점에서 그 이론이 적용되기 어려운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현재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증과 해석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때론 불필요한 주장과 터무니없는 의견들이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다. 때론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고, 주변적인 문제로 왈가왈부(曰可曰否)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공허한 얘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는 한 두 번 정도만 서로 얘기하고 그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때 우리가 혹시 논증의 영역과 해석의 영역을 혼동하고 있지 않나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학자들이 이렇게 다투고 있을 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를 지켜 보고 있다면, 그는 답답해서 그들에게 한마디를 던진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렇게 떠들지만 말고 실제로 한 번 해보자! 그래서 검증이나 확인해 보자고 말이다. 

 

 한국에서 이론과 실천의 문제는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철학적으로 이 문제는 매우 어려운 주제인데, 그 간격이 서로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상은 이론과 실천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론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실천적으로 어떤 결과를 산출하지 않으면 그저 공허할 뿐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실천은 회색이 아니라, 선명한 색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때 굳이 흰색과 검정색 중에서 양자택일이 아니라, 선명한 색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천에만 적합한 것만이 이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때 특정한 이론만이 강요되거나, 실천에 도움이 되지 않은 이론은 사장되어 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천(實踐)이라는 한자어는 열매를 따다라는 뜻으로 실제로 행함을 의미하고, 고대 그리스어의 πρᾶξις(행위, 활동, 성취, 일 등등)라는 말로 πράσσω(행하다 혹은 만들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다른 말로 하면, 실천이란 어떤 이론이 현실적으로 실현 혹은 구현되는 것을 뜻하고, 그와 같은 바로 실현은 현실적이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 아무런 특성이 없는 회색이 아니라, 선명한 색이 필요하다. 이른바 선명성에 대한 논쟁이 그 때문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 필자는 이론과 실천이라는 문제를 갖고 어떤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철학이 실천이라고 주장하면서, 매우 독단적인 확신을 갖고 신념화가 되어 있는 듯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서로의 대화가 다소 겉돌았는데, 필자에게 기이한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필자가 다소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면 태도가 유연하게 바뀌고, 이와 반대로 필자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다소 반대하면 흥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는 필자로선 알 수 없었다. 필자는 그의 선택을 인정했지만, 더 이상의 만남을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필자는 이론과 실천에 대한 철학적 문제가 그렇게 쉽게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이론과 실천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각자의 몫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존중하지 못하는 풍토가 당시에 아쉬웠다.

 

 이론은 회색처럼 그 자체로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우리가 어떤 이론이든 겉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워 보여도 막상 전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어떤 색이든 우리가 계속 덧칠을 해나가다 보면, 처음보다 더 어두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이론을 배우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양명학이 주자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은 바로 주자학에서의 담론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론적이었기 때문이다. 잿빛에 가려진 것은 사실 아무것도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다. 실제로 태양 빛이 사물들에 비추어서 그 가려진 것이 드러내야만 비로소 우리가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 양명학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파고들어서 주자학에 맞섰다. 이른바 양명학이 실천철학이라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이론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론 그 자체가 물론 학자에게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이 과연 타당한지는 실천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통 실천이라고 하면 정치적 실천으로 제한해서 말하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일면적이고, 협의적이다.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것은 사실상 실천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게 이론적 실천과 실천적 이론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론과 실천이 반드시 양자택일적으로 두부 자르듯이 단칼에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이론이고 실천인지가 철학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단지 회의주의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각자의 선택을 인정하고 나서, 어찌 보면 10:0이나 0:10이 제외한 모든 경우의 수를 서로 인정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5:5는 너무 이상적이니까 6:4 혹은 4:6 정도에서 만남이 성사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론 없는 실천 없고, 실천 없는 이론 없지만, 각자의 선택권을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모든 이론도 회색이라는 외피를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jgfichte@naver.com

 

 *필자/권기환

철학박사. 동국대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지겐대 제 1학부(역사-철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Dr. phil.)를 취득했다. 경희대, 경기대, 명지대, 상명대, 강남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는 가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독일 관념론, 독일 초기 낭만주의, 프랑스 현상학, 해석학, 동서 비교 철학 등이다. 한국 헤겔학회, 한국칸트학회, 한국해석학회, 한국 현상학회(전 정보이사), 서양 근대철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All theories are grey. You're right. According to a survey, about 15% to 25% of people think gray is their least favorite color. In general, gray is not only considered weak, noble white is dirty, or intense black is weakened, but it is also a medium color. Gray actually depends on the color of its surroundings rather than gray itself in terms of concentration or saturation. In other words, depending on the colors around it, it sometimes looks bright or dark. 

 

 In color psychology, gray is sometimes evaluated as the color of depressing emotions such as boredom, solitude, and emptiness. Gray can also appear as an unkind or contradictory color, and it can also indicate ugliness or anxiety. Furthermore, gray can also give you a chilling, cruel, or insensitive feeling to the spine. Particularly, when gray is in combination with other colors, it is also a color that gives a different feeling. When gray is combined with brown, which is an ugly color, it feels snobbish, boring, and unkind. And when gray is combined with yellow, which represents a contradictory color, it gives an uneasy feeling. Furthermore, when gray is combined with black, which is the index of negativity, it can express wickedness and numbness. However, contrary to this feeling, gray is also the color of contemplative theory, especially when it is combined with blue, which represents mental virtue, it gives an objective feeling, and when it is combined with white, which gives an ideal and noble feeling, it also gives a humble feeling. When gray is combined with white and blue, it can represent a symbol of truth. And when gray is combined with silver and white, and black and white, it also looks elegant. 

 

 The saying goes, 'At night, all cats are gray' (La nuit, tooth le charts songris). Once it is dark at night, the boundary of distinction disappears in everything, so it will mean to be careful. Since gray is a mixture of white and black, it also has a secret feeling. If you take one more step, it will also mean that a crime that no one knows can be punished. The so-called gray area is a gap in the law that is cleverly separated between law and illegality. A criminal who skillfully tug-of-war between the two will be convinced that no one knows and will not be punished because no one knows it. This is why white-collar crimes are more damaging than other crimes. 

 

 All theories are gray like rain, fog, clouds, and shadows without the sun shining on them. There are numerous theories, but sometimes any theory is more ambiguous and opaque than clear. The word theory comes from the ancient Greek word θεω ρια (research, contemplation, photography, agenda, etc.). This word is similar to the word θέρη ρμα (speculation, intuition, thesis, etc.), and is a noun form of the verb θεώ( ρεω. If you borrow this from Latin, it becomes doctrina, which means theories, teaching, literature, science, methodology, etc. The Chinese character theory means to count and distinguish by clarifying the reason of things. What is necessary for this is the logical system of learning, and we learn and acquire knowledge through this. However, since theories have been accumulated from the past, some may be difficult to apply at the present point of view, but some may be usefully applied to the present. At this point, the problem of argumentation and interpretation inevitably appears. Therefore, it is true that sometimes unnecessary arguments and absurd opinions are scattered. Sometimes we overlook the core of the problem and argue (曰可曰否) about the surrounding problem. However, it can actually be nothing more than an empty story. In this case, we only need to talk to each other once or twice and stop. In fact, at this time, we need to suspect that we are confused between the realm of argument and the realm of interpretation. When scholars are arguing like this, if someone with another job is watching, he will say something to them in frustration. Let's not make such a fuss and try it! So let's just verify it. 

 

 The issue of theory and practice in Korea is often extreme. Philosophically, this issue is a very difficult subject because the gap between them is very large. Our ideal is required to encompass both theory and practice, but in reality, it is not very easy. One thing is clear, however. No matter how good the theory is, it will just be empty if it does not produce a certain result in practice. At least practice requires a vivid color, not gray. At this time, it is not necessarily an alternative between white and black, but a vivid color. However, the problem is, you shouldn't think that theory is only suitable for practice. At that time, there is a fear that only a specific theory may be forced, or theories that are not helpful in practice may be lost.

 

The Chinese character "practice" (實踐) means picking fruits, and comes from the verb ρ σ ́ρσ( (doing or making) in the ancient Greek word π ͂ξις α ͂ξις (action, activity, achievement, work, etc.). In other words, practice means that a theory is realized or implemented realistically, and it is clear that such a immediate realization must be realistic. At this time, a vivid color is required, not gray without any characteristics. This is why the so-called clarity debate exists.     

 

 In the past, I had talked with someone about the issues of theory and practice. At that time, he insisted that philosophy was practice and had an attitude that seemed to be convincing with very dogmatic conviction. The conversation with each other was somewhat out of the blue, but what was strange to me is that when I showed some support for the other's position, my attitude changed flexibly, and on the contrary, when I showed some opposition to the other's position, I seemed excited. I could not know why. I admitted his choice, but it was difficult to continue the meeting. I said that philosophical issues of theory and practice are very difficult to decide so easily, and it is important to respect each one's choice. It is up to each person to decide what choice to make at the crossroads between theory and practice, but it was regrettable at the time that the climate of not respecting it was not.

 

 Theory is itself vague and opaque, like gray. Any theory may seem easy to understand on the surface, but it often feels more difficult when we go deeper professionally. It's as if it gets darker than the beginning as we continue to overcoat any color. At this point, we should ask the question of what theory we want to learn. 

 

 Yangmingism was critical of Neo-Confucianism because the discourse in Neo-Confucianism was too abstract and theoretical. Actually, nothing can obscure what is hidden by gray. In fact, only when the sun shines on objects and reveals what is hidden can we understand things. Yangmingism penetrated this point and confronted Neo-Confucianism. Here is the meaning of the so-called Yangmingism as a practical philosophy. What this suggests to us is that the theory itself has no meaning. The theory itself can be of course important to a scholar. However, we have no choice but to verify whether the theory is valid through practice. When we usually say practice, we limit it to political practice, which is too one-sided and narrow-minded. Everything that humans engage in is actually practice. In this way, it is true that theoretical practice and practical theory are harmonized with each other. Theory and practice cannot necessarily be judged with a single knife like an alternative head cut. Therefore, it is difficult to philosophically define how far the theory is and practice. However, it is not very appropriate for us to see this only from a skeptical perspective.              

 

 So what should we do? I think it is important to respect each of our own areas in dealing with issues of theory and practice. After we acknowledge each choice, in a way, it would be nice if we recognized each other's number of cases except 10:0 or 0:10. In that case, 5:5 is so ideal that the meeting will take place around 6:4 or 4:6. 

 

 In conclusion, there are no theories without theories and no theories without them, but it is important to respect each other's options. Only then will all theories be able to remove the gray outer 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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