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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는 한국의 오랜 수교국..조선 시대부터 관계 있었다

정길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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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국기. <사진=픽사베이>  © 브레이크뉴스

 

한국은 조선 시대 때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일본부터 시작해서 서양 열강들과 수교조약을 맺았지만 죄다 서구권이었지 동구권 국가는 찾기도 힘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헝가리라는 나라가 최초로 조선에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임하필기(林下筆記)』라는 책에서다. 이 책의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라는 제목에서 동남아시아와 서구 여러 나라의 지리적 위치나 민족, 토산물 등을 한시로 읊어 기록한 것인데, 그 중 헝가리에 대한 시 한 편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는 '옹가리아 翁加里亞'라고 표기하였으며 이는 헝가리의 영어 발음에 거의 근접한 음역어였다. 당시 이유원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전별 선물로 받은 황청직공도(皇淸織貢圖)에 나오는 한자 표기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청나라의 언론인이었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코슈트 라요시(Kossuth Lajos)의 일생을 다룬 전기를 펴냈었다. 이 전기를 1906년 조선에서 『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匈牙利 愛國者 噶蘇士傳)』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에 이른다. '흉아리'는 헝가리의 음역어로 나타나며 '갈소사(噶蘇士)'는 헝가리의 독립 영웅인 코슈트라요시를 지칭하고 있다. 헝가리가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제국 당시 1892년에 조선과 수교했다. 이는 동구권 국가로써 조선과 수교한 최초의 국가이자 유일한 국가였다. 1905년 이후 고종은 통상조약의 거중 조정 항목을 근거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비롯하여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열강에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식민지가 될 위기에서 해결할 수 있을만한 조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의 결과로 인해 열강들 사이에서도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는 것으로 대세가 결정되었고 일본도 이들 국가들이 한반도에서 종전까지 누리고 있던 이익을 보장할 것을 통고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조선에게 해줄만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일제 시대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안익태가 헝가리에서 작곡을 배웠다고 한다. 이 때 헝가리가 자랑하는 음악가인 코다이 졸탄(Kodály Zoltán, 1882~1967)의 문하에 있기도 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에도 헝가리와 관련된 서술이 하나 존재하는데, 북경까지 찾아와 의열단에 고성능 폭탄을 제공한 외국인 협력자가 헝가리인으로 추측된다고 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마자르"라고 불렸다는 것 이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말로 그 "마자르"라고 하는 인물이 헝가리 사람인지,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온갖 다양한 설이 난무했었다. 그 인물은 2010년대에 개봉한 독립운동 관련 영화인 "암살"에서도 언급되었고 영화 "밀정"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인 1948년에는 헝가리가 동구권 국가였기 때문에 북한과 먼저 수교했고, 이후 1954년에는 북한과 대사급 관계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사회주의 체제 하에 있었던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대한민국에 물자지원을 했었다고 한다. 

 

당시 유엔군 사령부는 공산권 국가를 포함한 유엔 회원 60개국에 물자지원을 요청했는데 공산권 국가들에도 지원 요청을 하게 된 것은 정말로 회답 받기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유엔군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이 때 헝가리가 진짜로 여기에 회답하여 유엔을 통해 물자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반소 감정이라든지, 명분 없는 전쟁인 한국전쟁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헤 자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헝가리는 남한 뿐 아니라 북한에도 대대적인 모금운동과 야전 의무대를 파견하는 등, 대북지원에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56년 소련의 간섭으로 인한 헝가리 시민들이 봉기가 발생했고 5,000명 가량의 시민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본 충청도의 한 초등학생이 유엔에 영문 편지를 보내 항의를 했는데, 그 학생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반기문 사무총장은 헝가리 봉기 50주년 당시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 받았다. 그리고 헝가리 봉기 당시에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 8명이 헝가리의 자유화를 돕기 위해 '헝가리 자유수호 학도의용군'이라는 단체까지 조직해 헝가리 행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이는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건너간 이근 전 대위를 비롯한 몇 명의 용병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출전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첫 번째 월드컵 경기 상대도 바로 헝가리였다. 당시 헝가리 축구대표팀은 세계 최강의 팀으로 알려져 있었던데다 한국 대표팀은 당시만 해도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해 가며 스위스까지 왔으며 경기 당일날 스위스에 도착, 제대로 된 훈련을 해보지도 못한 채, 9:0으로 대패했다. 게다가 1970년대에는 조류 연구를 통한 생물학적인 접촉이 존재했다. 

 

▲ 정길선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헝가리의 조류학자가 한반도의 참새를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대한민국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남한에선 이를 교류의 기회로 여기고 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를 통해 자료 제공 등의 협조를 하였다. 헝가리 측에서 이 때 참새 박제를 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에 보내기도 했다. 그와 같은 학술적 교류에 대해 북한 측이 헝가리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기도 했다. 1980년 이후 한국인이 헝가리에 5년 이상 머물면 평생 헌혈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냉각기에 접어들었으며 이후 냉전이 끝을 향해 가던 1989년 2월 1일, 동구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에 한국은 헝가리에 6억 5천만 달러 상당의 경협 자금을 제공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Korea accepted Western culture when it opened its doors to the Ganghwa Treaty in 1876. Starting with Japan, it signed diplomatic treaties with Western powers, but all of them were Western countries and it was difficult to find Eastern countries. In the midst of this, the country of Hungary first appeared in Joseon in a book called Im Ha-pilgi, compiled by a civil official named Lee 裕 (1814-1888)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title of "域竹枝詞 Yiyeokjukjisa", this book is a poem about Hungary, including the geographical locations, ethnicities, and indigenous products of Southeast and Western countries. Here, it is marked as "Ongarian 翁加 亞", which was a translation of the Hungarian English pronunciation. At that time, Lee Yoo-won accepted the Chinese character notation and explanation in the painting of Hwangcheongjikgido (皇 織貢), which he received as a gift for his farewell when he returned home from an envoy to the Qing Dynasty. 

 

Yang Gye-cho (1873-1929), a journalist in the Qing Dynasty at the time, published a biography dealing with the life of Kossuth Lajos. This biography was translated into the 匈牙利 愛 噶蘇 in 1906 in Joseon. "噶蘇" appears in the Hungarian translation, and "傳" refers to Kostrayoshi, a Hungarian independence hero. Hungary established diplomatic relations with Joseon in 1892 during the Austro-Hungarian Dual Empire. It was the first and only Eastern European country to establish diplomatic relations with Joseon. After 1905, Gojong declared the treaty invalid in Western powers, including Austria-Hungary, the United Kingdom, the United States, Germany, France, and Italy, based on the adjustment of the trade treaty, and expected measures that could be taken in the crisis of becoming a colony. However, as a result of the Russo-Japanese War, it was widely decided among the powers that tolerated Japan's domin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Japan was also informed that these countries would guarantee the interests that they had enjoyed before on the Korean Peninsula, so there was nothing that Western powers, including the Austro-Hungarian Empire, could do to Joseon.

 

It is said that Ahn Ik-tae, who studied in Europ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learned composition in Hungary. At this time, he was under the order of Kodály Zoltán (1882-1967), a musician proud of Hungary.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re is also a description related to Hungary, and it is assumed that the foreign partner who came to Beijing and provided a high-performance bomb to the meditation corps was Hungarian. Little is known about him except that he was called "Majar." Indeed, there were various theories about whether the character "Majar" was Hungarian and what he was. The character was also mentioned in the movie Assassal, a film related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released in the 2010s, and also appeared in a supporting role in the movie "Secret". In 1948, after liberation, Hungary was an Eastern European country, so it established diplomatic relations with North Korea first, and in 1954, it was upgraded to ambassador-level relations with North Korea. However, it is said that the People's Republic of Hungary, which was under the socialist system during the Korean War, provided material to the Republic of Korea. 

 

At that time, the UN Command asked 60 UN member states, including communist countries, to provide supplies, but it was intended to highlight the political legitimacy of the UN forces rather than to expect an answer. It is said that Hungary really responded to this and provided supplies through the UN.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is was committed out of anti-consumer sentiment or resistance to the Korean War, an unjustified war. Hungary seems to have been actively involved in supporting North Korea, including a large-scale fundraising campaign and sending a field medical team to North Korea as well as South Korea. An elementary school student in Chungcheong Province sent an English letter to the UN in 1956 when Hungarian citizens saw an uprising caused by Soviet interference and about 5,000 people died, and the student was former UN Secretary-General Ban Ki-moon. Due to this connection, Secretary-General Ban Ki-moon was awarded the Medal of Freedom, the highest medal given to foreigners, during the 50th anniversary of the Hungarian uprising. In addition, during the Hungarian uprising, eight students at Yonsei University even organized a group called the Hungarian Freedom Protection Student Volunteer Army to help liberalize Hungary and attempted to go to Hungary.

 

This is very similar to the appearance of several mercenaries, including former captain Lee Keun, who crossed to support Ukraine during the Russia-Ukraine war. Hungary was also the opponent in the first World Cup match of the 1954 World Cup in Switzerland, in which the Korean national soccer team participated. The Hungarian national soccer team was known to be the best team in the world at the time, and the Korean national team had no direct flight to Switzerland at the time, so they came to Switzerland struggling and lost 9:0 on the day of the game without having any proper training. In addition, biological contact through bird research existed in the 1970s.

 

A Hungarian ornithologist came into contact with the Republic of Korea while looking for data to study sparrows on the Korean Peninsula, and South Korea considered this an opportunity for exchange and cooperated by providing data through Kyung Hee University's Bird Research Institute. At this time, the Hungarian side sent a sparrow stuffed animal to Kyung Hee University's Bird Research Institute. North Korea officially protested against such academic exchanges to Hungar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entered a period of cooling after 1980, and on February 1, 1989, when the Cold War was nearing the end, the first Eastern European country to establish diplomatic relations with Korea. As a result, it is known that Korea provided $650 million worth of economic cooperation funds to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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