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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MBN '한일가왕전' 최초의 역사가 펼쳐진다

이일영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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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N 한일가왕전 한국대표 톱7과 일본 대표 톱7 / 자료 출처: MBN   © 이일영 칼럼니스트


오늘 밤 10시 MBN "한일가왕전" 첫 방송이 방영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많은 이야기를 품은 오랜 역사에서 각 나라 7명의 가수인 14명의 대중가수가 자국의 노래이거나 상대 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최초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교류와 화합을 품은 선의의 대결도 첫 역사이며 지상파 TV에 두 나라 가요 경연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는 사실 또한. 최초로 모든 것이 최초인 역사적인 날이다.

 

한일가왕전은 한국의 트롯 여자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MBN 현역가왕에서 선발된 톱7과 일본의 트롯걸즈재팬 오디션에서 선발된 톱7 가수들이 경연하는 한일 대중가요사에서 최초로 열리는 경연과 축제가 어우러진 프로그램이다. 

 

한국 가수들은 MBN 현역가왕에서 우승한 1대 현역가왕 전유진과 톱7에 오른 마이진, 김다현, 린, 박혜신, 마리아, 별사랑이며 일본은 트롯걸즈재팬을 통해 선발된 우승자 후쿠다 미라이와 톱7에 선발된 우타고코로 리에, 아즈마 아키, 마코토, 스미다 아이코, 나츠코, 카노우 미유이다. 

 

한일 양국의 오디션에서 선발된 톱7 가수들이 출전하는 한일가왕전은 오랜 갈등 관계가 지속 되어 온 시대 상황에서 경연에 앞서 한일 문화교류의 소중한 불씨와 같은 의미가 있다. 특히 광복 이후 한일 대중가요사에서 대규모 일본 가수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로 노래하는 최초의 역사가 펼쳐지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는 조국 광복 이후 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 제1차 개방까지 일본 대중가수의 국내 공연 규제가 엄격하였으며 특히 일본어로 부르는 공연은 모두 불허하였다. 이후 1999년 9월 2차 개방에서 일본 대중가수 공연이 2.000석 이하 실내 공연 허용으로 처음 개방되었다. 

 

이어 2000년 6월 27일 3차 개방이 있었으나 유일하게 일본어로 노래하는 공연만은 제외되었다. 나아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시정을 거부한 대응 조치로 2001년 7월 12일 일본 대중문화 추가 개방의 중단을 발표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6월 7일 개방이 재개되어 2003년 9월 17일 4차 개방이 이루어져 2004년 1월 1일부터 완전 개방이 되었지만,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활발한 활동과 달리 일본 대중가요의 국내 관심은 미미하였다.  

 

이후 여러 문제로 한일 양국 관계에 갈등이 증폭되면서 혐한과 반일 감정이 고조되어 문화교류에 빨간불이 켜졌다. 설상가상으로 세계를 봉쇄한 코로나19 팬더믹까지 겹쳐 가깝고도 먼 이웃은 현실이었다. 이처럼 막중한 시대 상황에 두 나라 국민의 삶이 녹아있는 대중가요의 교류와 소통의 장이 마련된 것은 역사와 시대의 소명이다.        

      

이러한 사실은 1945년 광복 이후 80여 년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더 절감하게 된다. 

 

그릇된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최초로 일본 가수가 한국에서 공식으로 노래를 부른 것은 1978년 제1회 서울 국제가요제에 일본 대표로 참가한 붕어빵 가수 시몬 마사토(子門真人)였다. 그가 부른 사랑의 얼굴(Face of Love)은 당시 최우수 외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 가수는 1975년 동요 헤엄쳐라! 붕어빵 군(およげ! たいやきくん)을 발표하여 일본 역대 싱글 판매량 부동의 1위를 기록하였다.

 

뱃속의 앙꼬가 무겁지만(おなかの アンコが おもいけど) / 바다는 넓어, 마음이 들떠(うみは ひろいぜ こころがはずむ) 라는 가사처럼 매일 빵틀 철판에 구워지는 붕어빵이 가게 주인과 싸우고 바다로 도망가 떠도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오늘날에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시 서울 국제가요제는 일본 가수의 유일한 한국 공연무대였다. 참고로 당시 가요제는 영어권이 아닌 아시아 국가 가수는 영어 가사 노래를 규정으로 삼았다. 이는 일본어 노래 공연을 규제하기 위한 조처였던 만큼 일본 대중가요와 일본어 노래에 대한 사회 정서를 추정하게 된다. 이에 일본 가수는 모두 영어로 노래하였다. 

 

다음 해 1979년 서울 국제가요제에 일본 대표로 참가한 여성 가수 에이코 슈리는 나는 너에게 느낀다(I GET OFF ON YOU)를 불러 최우수 가창 상을 받았다. 이후 1982년 본 가요제에 참가한 일본 여성 가수 이토 사키코가 천둥과 번개의 갈림길(Between the thunder and the sun)을 불렀으며 다음 해 1983년 가요제에는 일본 가수 가하시 가쓰미(加橋かつみ)가 참가하였다. 이어 1986 가요제에 일본 3인조 인기 걸 그룹 소녀대(少女隊)가 별빛의 추억(Starlight Memories)을 불러 은상을 받았다. 

 

이후 1988년 9월 10일과 11일 열린 서울 국제가요제는 88서울올림픽 공식 문화행사로 경연이 아닌 축제로 열리게 되면서 각국 인기 가수 초청으로   일본 가수 스가와라 요이치가 무대에 섰다. 이처럼 당시 일본 가수가 한국에서 영어로 노래한 유일한 무대가 서울 국제가요제였다.

 

이와 함께 당시 최대의 제전 88서울올림픽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면서 1988년 9월 13일 한강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서 일본 모던재즈의 대명사 웨스트 라이너즈의 공연이 있었다. 

 

이어 9월 16일 KBS가 주최한 한강공원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한 올림픽 경축 전야 대축전 3부에서 한국의 조용필 가수, 중국 가수 후인인(胡寅寅), 홍콩 가수 진백강(陈百强), 일본 가수 사이조 히데키(西城 秀樹)에 이르는 아시안 4개국 가수 공연이 있었다. 당시 사이조 히데키는 인기곡 상처투성이의 로라(傷だらけのローラ) 등을 불렀으며 모든 외국 가수는 영어 가사로 노래하였다.      

 

이러한 역사에서 세간의 여론을 뒤흔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1990년 12월 9일 일본 인기 여가수 가토 도키코가 서울 롯데호텔에서 장애인을 위한 자선공연을 열었다. 엄격한 일본어 노래 금지 조항에 따라 문화부는 영어와 한국어 노래만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공연을 허가하였다. 

 

당시 가토 도키코 가수 또한, 공연 신청서에 멕시코 민요에서 탄생한 “라밤바(La Bamba)”와 레이 찰스의 “그대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어요(I Can`t Stop Loving You)”, 프레디 아길라의 “아들아” 뜻인 “아낙(Anak)” 등의 팝송과 남진의 “가슴 아프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고 가곡 “봉선화”와 같은 12곡 노래를 영어와 한국어로 부른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정작 공연에서 가수는 자신의 1970년 발표곡 “지상여정(知床旅情)”에서부터 “사랑의 삶(愛のくらし)”, “회색 눈동자(灰色の瞳)”, “난파선(難破船)” 등의 자신의 노래 10여 곡을 일본어로 부르고 가곡 봉선화와 한국가요는 한국어로 불렀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는 충격적인 공연이었다.     

 

짚고 갈 내용이 있다. 당시 가토 도키코 가수는 공연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가곡 봉선화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기자들이 “일본인 당신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허락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며 팽배한 반일 정서를 전하였다. 이때 가수가 기타를 꺼내 들면서 “제가 부르는 노래를 기자 여러분이 솔직한 느낌으로 말씀해 달라면서 여러분이 싫어하면 부르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가수가 1983년에 일본어로 발표한 우리의 가곡 봉선화를 한국어로 불렀다.

 

가수가 노래를 마쳤을 때 일본인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봉선화를 노래하는 감성에 감동하여 한국어 발음을 더욱더 정확하게 불러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에 가수는 정확한 발음을 가르쳐 달라는 정중한 요청에 10여 명의 기자가 남아 현장에서 한국어 발음을 가르치고 교정하여 주는 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금기되어 온 일본 대중가요의 일본어 공연이라는 최초의 문을 의도적으로 열어젖힌 행동은 모든 언론의 질타가 쏟아졌으며 더욱더 엄격한 공연 규정의 준수를 요구한 국민 정서에 이후 몇 년 동안 일본 음악공연이 일체 불허되었다.  

         

이렇게 얼어붙은 시대 상황을 밀치고 이후 유일하게 일본가요가 공연된 것은 3년 후인 1993년 9월 대전 엑스포 대 공연장에서였다. 당시 일본의 강력한 요구로 대전엑스포 일본의 날 스페셜 공연행사가 마련되면서 일본 대중가요 최초 공연이 이루어진 것이다. 

 

의미심장한 사실은 당시 공연 가수가 일본 트롯걸즈재팬 오디션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이번 한일가왕전 심사위원을 맡게 되는 마츠자키 시게루이다.  

 

다음 해 1994년 8월 일본 퓨전 재즈그룹 티 스퀘어 세종문화화관 대강당 공연이 있었으며 정부는 1996년 일본 가수의 영어 가사 일반 공연 허용을 공식으로 발표하였다. 그해 9월 10일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사와 도모에(沢知恵)의 한국어와 영어 공연이 대학로에서 라이브극장에서 열렸다. 가수는 시대를 관통한 수필가 김소운(金素雲)의 외손녀로 외할머니는 한국 민주화의 대모였던 민청학련 구속자 가족협의회 초대 총무 김한림 여사다. 

 

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 제1차 개방이 발표되면서 일본 국적 가수로는 최초로 한국에서 공식으로 일본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사와 도모에였다. 1998년 10월 24일과 25일 광주 문예회관에서 열린 한일 교류 콘서트에서 마음(こころ)을 일본어로 불렀다. 이 노래는 외할아버지 김소운이 한국의 시를 일본에 알리기 위하여 김동명 시인이 1937년 발표한 시 '내 마음은'을 일본어로 번역한 시에 곡을 붙인 노래였다. 엄밀하게 일본 대중가요가 아니었다.

 

이러한 맥락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명확하게 살펴진다. 1998년 같은 해 10월 25일 서울시와 일본 수도 도쿄도의 우호 도시 결연 10주년 기념 지구촌 축제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렸다. 당시 재일 한국인 오페라 가수 전월선의 일본 대중가요 공연을 문화부에 신청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 대중가요 공연을 불허하였다.  

 

이에 가수는 일본 동요 “바닷가의 물떼새(浜千鳥)”와 “고추잠자리(赤とんぼ)”를 일본어로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과 “고려 산천 내 사랑”을 우리말로 불렀다. 고려 산천 내 사랑은 1990년 한겨레신문사 주최 겨레의 노래 공모 당선 음악으로 재미 음악가이며 치과의사 노광욱이 작사 작곡한 음악이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일본 가수의 일본어 국내 공연이 광복 이후 최초로 허용된 것은 1999년 8월 1일과 2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야외무대에서였다. 

 

당시 동아일보와 부산시가 주최한 아시안 록 페스티벌에서 일본의 록밴드 그룹 소울 플라워 유니온 밴드가 영어가사 노래와 함께 일본어로 보름달의 저녁(満月の夕)과 순풍(追い風)을 공연하였다. 당시 일본어로 부른 “보름달의 저녁”은 1995년 1월 17일 한신 대지진이 발생한 전전일 보름달이 떴던 사실을 제목으로 지진의 참상을 담은 노래였다. 

 

당시 최초로 일본 대중가요 야외 공연이 허용된 것은 일본 대중가요 3차 개방 발표를 한 달 앞둔 시점에 아시안 록 페스티벌 공연심의가 주최자인 부산시에서 이루어진 점이 컸다.

 

이처럼 험난한 여정을 밀쳐내고 오늘 밤 10시 역사적인 “한일가왕전” 첫 회가 방영된다. 광복 후 80여 년의 역사 동안 한일 양국의 대중가요사에 최초의 문을 여는 MBN “한일가왕전”을 주목하게 된다.   

 

트로트 서바이벌 열풍을 일으킨 서혜진 크레아스튜디오 대표가 제작한 MBN “불타는 트롯맨”의 포맷이 일본에 수출되어 “한일가왕전”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 톱7을 선발한 일본 오디션 “트롯걸즈재팬”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오디션 판권이 일본에 수출된 첫 사례로 이를 바탕으로 광복 후 80년 역사에 한일 대중 문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펼쳐낸 것은 그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쾌거이다.        

 

막중한 역사적 소명을 열어가는 MBN “한일가왕전”이 품고 있는 무게가 무겁다. 문화적 바탕과 감성이 다른 두 나라 대중가요가 최초로 함께 공연되면서 경연 방식 프로그램으로 지상파 방송에 방영되는 사실은 두 나라 대중문화 교류의 소중한 마중물의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 

 

이에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교류와 소통의 축제로 이끌어 한일 양국의 대중적 공감이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The first episode of MBN's "Korea-Japan King's Exhibition" will air at 10 p.m. tonight.  

 

In the long and storied history of both countries, Korea and Japan marks the first time that 14 popular singers, seven from each country, sing their own or other countries' songs. This marks the first time for a good-faith confrontation with exchange and harmony, as well as the fact that it is aired on terrestrial TV as a K-pop contest program. It is all a historic day for the first time.

 

The Korea-Japan Singer Exhibition is a combination of competitions and festivals held for the first time at the Korea-Japan K-pop history, where top seven singers selected from the MBN active singer audition program and Japan's Trot Girls Japan audition compete. 

 

The Korean singers are Jeon Yoo-jin, the first active king of MBN, who won the active king, Ma Jin, Kim Da-hyun, Lin, Park Hye-shin, Maria, and Byeol Sarang, while Japan is the winner Mirai Fukuda, who was selected through Trot Girls Japan, and Uttagokoro Rie, Aki Azuma, Makoto, Aiko Sumida, Natsuko, and Miyu Kanou, who were selected in the top seven. 

 

The Korea-Japan Song and King's Exhibition, in which top seven singers selected from auditions in both Korea and Japan participate, has the same meaning as a precious spark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before the competition in an era where long-standing conflict has continued. In particular, after liberation, you will see the first history of large-scale Japanese singers singing in Japanese in Korea in the history of Korean and Japanese pop songs. 

 

In Korea, from the liberation of the country to the first opening of Japanese pop culture in October 1998, regulations on domestic performances of Japanese pop singers were strict, and in particular, all performances sung in Japanese were not allowed. Since then, in September 1999, the performance of Japanese pop singers has been opened for the first time with the permission of indoor performances with less than 2,000 seats at the second opening. 

 

Then, on June 27, 2000, there was the third opening, but only performances singing in Japanese were excluded. Furthermore, on July 12, 2001, it announced the suspension of further opening of Japanese pop culture as a countermeasure against Japan's distortion of history textbooks. After twists and turns, the opening resumed on June 7, 2003, and the fourth opening was held on September 17, 2003, and the opening was completely opened on January 1, 2004, but unlike the Korean Wave and the active activities of K-pop, the domestic interest of Japanese popular songs was insignificant.  

 

Since then, as conflict intensifi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due to various problems, anti-Korean and anti-Japanese feelings heightened, and cultural exchanges turned on a red light. To make matters worse, the COVID-19 pandemic that blocked the world overlapped, and the near and distant neighborhood was a reality. It is the calling of the history and times that a place for exchange and communication of popular songs in which the lives of the people of the two countries are melted in such a grave situation.        

      

This fact is further reduced when looking at the following in the 80-year history after liberation in 1945. 

 

The first time a Japanese singer officially sang in Korea after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in 1965 was when Shimon Masato, a bungeoppang singer, representing Japan at the first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in 1978. His song "Face of Love" was awarded the Best Foreign Song Composition Award at the time. In 1975, the singer released a children's song "Swim! Bungeoppang" (およげ! たいやきくん), ranking first in Japanese single sales.

 

Although Angkko in his stomach is heavy (おなかの アンコが おもいけど) / The sea is wide, so the heart is excited (うみは ひろいぜ こころがはずむ), it is still popular today with a story about a fish-shaped bun baked on a bread-frame iron plate every day fighting with a shop owner and running away to the sea.    

 

At that time, the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was the only Korean performance stage for Japanese singers. For reference, the music festival at that time set English lyrics and songs as a regulation for non-English speaking singers from Asian countries. As this was a measure to regulate Japanese singing performances, social sentiment toward Japanese popular songs and Japanese songs is estimated. Accordingly, all Japanese singers sang in English. 

 

The following year, female singer Eiko Shri, who represented Japan at the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in 1979, won the Best Song Award for singing I GET OFF ON YOU. Later, Japanese female singer Sakiko Ito, who participated in the main song festival in 1982, sang "Between the Thunder and the Sun," and Japanese singer Katsumi 加 participated in the song festival in 1983. Then, a popular Japanese girl group, 少女隊, received a silver award for singing Starlight Memories at the 1986 Song Festival. 

 

Since then, the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which was held on September 10 and 11, 1988, has been held as an official cultural event for the 88 Seoul Olympics, and Japanese singer Yoichi Sugawara was invited by popular singers from all over the world. As such, the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was the only stage where a Japanese singer sang in English in Korea at the time.

 

At the same time, various cultural events were held at the 88 Seoul Olympics at the time, and there was a performance by West Liners, the epitome of Japan's modern jazz, at the Han River International Jazz Festival on September 13, 1988. 

 

Then, in the third part of the Olympic Grand Festival held live at the Han River Park hosted by KBS on September 16, there was a performance of four Asian singers, including Korean singer Cho Yong-pil, Chinese singer Huinin (胡寅寅), Hong Kong singer Jin Baek-gang (陈百强), and Japanese singer 秀 Saizo Hideki. At that time, Saizo Hideki sang popular songs such as Laura (傷だらけのローラ), and all foreign singers sang in English lyrics.      

 

In this history, an event that shook the public opinion took place. On December 9, 1990, popular Japanese female singer Tokiko Kato held a charity performance for the disabled at Lotte Hotel in Seoul. In accordance with the strict Japanese song ban, the Ministry of Culture allowed the performance with a regulation that only allowed English and Korean songs.

 

At the time, Tokiko Kato also stated in his application for the performance that he would sing in English and Korean pop songs such as "La Bamba," a Mexican folk song, "I Can't Stop Loving You," Freddie Aguilar's "Anak," meaning "son," and Namjin's "Heartbreaking," Cho Yong-pil's "Come Back to Busan Port," the song "Bong Seon-hwa."

 

In the concert, however, the singer sang about 10 songs of her own, ranging from her 1970 song "床旅情 of Knowledge" to "Life of Love (愛のくらし)," "Grey Eyes (灰色の瞳)" and "Wreckage (難破船)" in Japanese, while the songs "Bongseonhwa" and "Korean Song" were in Korean. It was a shocking performance given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There is something I need to point out. At that time, Tokiko Kato announced at a press conference ahead of the performance that he would sing our song Bongseonhwa in Korean and Japanese. In response, reporters expressed their prevailing anti-Japanese sentiment, saying, "I don't think anyone will allow you to sing this song." At this time, the singer took out the guitar and said, "I asked you to tell me the song I'm singing honestly, and if you don't like me, I won't sing it," and sang our song Bongseonhwa, which the singer released in Japanese in 1983.

 

When the singer finished singing, there was a request to sing Korean pronunciation more accurately, moved by the sensibility of singing Bongseonhwa in Korean that the Japanese were not familiar with. In response, about 10 reporters remained at the polite request to teach accurate pronunciation, and there was a situation where the singer taught and corrected Korean pronunciation on the spot.

 

However, the act of intentionally opening the first door to Japanese performance of Japanese popular songs, which has been taboo since liberation, was criticized by all media, and Japanese music performances were not allowed for the next few years due to public sentiment that demanded more stringent performance regulations.  

         

The only time that Japanese songs were performed after pushing back such a frozen situation was three years later, in September 1993, at the Daejeon Expo Grand Theater. At that time, the first performance of Japanese popular songs was held as a special performance event for Daejeon Expo Japan Day was organized at the strong demand of Japan. 

 

A significant fact is Shigeru Matsuzaki, the singer of the performance at the time served as the head of the audition committee for Japan's Trot Girls Japan and will be the judge of the Korea-Japan royal family.  

 

In August 1994, there was a performance in the auditorium of the Japanese Fusion Jazz Group's T-Square Sejong Art Museum, and the government officially announced that it would allow Japanese singers to perform general English lyrics in 1996. On September 10 of that year, a Korean and English performance by Japanese singer-songwriter Tomoe Sawa (沢 恵), born between a Japanese father and a Korean mother, was held at the live theater in Daehangno. The singer is the only granddaughter of essayist Kim So-un, who passed through the times, and her grandmother is Kim Han-rim, the first general secretary of the National Association of Families of Arrested Persons of the Democratic Cheonghakryon, who was the godmother of Korean democratization. 

 

As the first opening of Japanese pop culture was announced in October 1998, the first Japanese singer to sing an official Japanese song in Korea was Sawa Tomoe. At the Korea-Japan exchange concert held at the Gwangju Arts Center on October 24 and 25, 1998, he sang "Heart (こころ)" in Japanese. The song was added to a Japanese translation of Kim Dong-myung's poem "My Heart," which was released in 1937, by his maternal grandfather Kim So-woon to promote Korean poetry to Japan. It was not strictly a Japanese popular song.

 

This context is clearly examined in the following content. On October 25 of the same year in 1998, a global village festival was held at Seoul Children's Grand Park to commemorate the 10th anniversary of the friendly city relationship between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and the Japanese capital, Tokyo. At that time, the Ministry of Culture applied for a performance of Japanese pop songs by Korean opera singer Jeon Moon-sun in Japan. However, the government did not allow the performance of Japanese pop songs.  

 

In response, the singer sang Japanese children's songs "Flood by the Sea (浜千鳥)" and "Gochujamari (赤とんぼ)" in Japanese and Korean songs "Missing Geumgangsan Mountain" and "My Love in Sancheoneo" in Korean. "My Love in Sancheoneo" was a song written and composed by Korean musician and dentist Noh Kwang-wook in 1990 as a song that won the competition hosted by Hankyoreh newspaper.

 

In this history, the first time that a Japanese singer's Japanese performance in Korea was allowed after liberation was on the outdoor stage of Gwangalli Beach in Busan on August 1 and 2, 1999. 

 

At the Asian Rock Festival hosted by the Dong-A Ilbo and the Busan Metropolitan Government, the Japanese rock band Soul Flower Union Band performed the evening of the full moon (満 Moon の夕) and the tail wind (追い風) in Japanese along with the English lyrics song. "The Evening of the Full Moon," which was sung in Japanese at the time, was a song about the disaster of the earthquake under the title of the full moon the day before the Great Hanshin Earthquake occurred on January 17, 1995. 

 

At that time, the first outdoor performance of Japanese pop songs was allowed in Busan, where the Asian Rock Festival performance review was held, a month before the third opening of Japanese pop songs.

 

After pushing back such a difficult journey, the first episode of the historical "Hanilga Wangjeon" will be aired at 10 p.m. tonight. MBN's "Hanilga Wangjeon," which opens the first door to popular song history in both Korea and Japan for more than 80 years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is drawing attention.   

 

The format of MBN's "Burning Trot Man" produced by Seo Hye-jin, CEO of Crea Studio, which caused the trot survival craze, was exported to Japan, and the Japanese audition "Trot Girls Japan" was produced, which selected the top seven Japanese representatives participating in the "Korea-Japan King's Exhibition." This is the first case in which the Korean audition rights were exported to Japan, and based on this, it is a feat that nothing can match the new history of Korean and Japanese pop culture history in the 80 years after liberation.        

 

MBN's "Korea-Japan King's Exhibition," which opens up a great historical calling, carries a heavy weight. The fact that popular songs from two countries with different cultural backgrounds and emotions are performed together for the first time and are broadcasted on terrestrial broadcasting as a competition program carries the role of precious priming water for the exchange of popular culture between the two countries.

 

As a result, we hope that Korea and Japan will share common views by leading to a festival of exchange and communication that respects and understands each other's cultures. artwww@naver.com

 

Author: Lee Il-young 

Director, Korea Art Center. Columnist.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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