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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문제

정길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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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선 박사     ©브레이크뉴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부가적인 국가 부룬디는 르완다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인구 약 90%인 후투족을 인구의 10%의 투치족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다수의 후투족은 언어적으로는 룬디 족이라 불리는데, 이것이 부룬디라는 국명의 기원입니다. 종교는 카톨릭을 주로 하는 기독교도와 전통적인 룬디족의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반반 존재하고 있으며, 소수의 이슬람교도가 있다. 사하라 이남의 대 호수 지역 중 르완다와 부룬디, 인접한 콩고의 동부 지역은 12세기 후부터 북쪽에서 남하한 유목 생활을 하는 투치족이 농경 생활을 하는 후투족을 지배했다. 15~16세기경의 부룬디 왕국 역시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남하한 투치족의 왕조가 후투족을 지배하여 건설했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에는 1890년부터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르완다-우룬디로서 벨기에의 통치를 받았다. 식민지 역사를 거치면서 벨기에는 투치족을 우대하여 투치족이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와 같은 식민지 시대의 특정 종족에 대한 우대 정책이 뿌리 깊은 종족 갈등의 배경이 되었다. 

 

이후 1946년 말에는 유엔의 신탁통치령이 되었고, 1957년부터 일기 시작한 르완다-우룬디 독립 운동은 르완다와의 통합에 의한 독립을 요구했다. 유엔도 연방 국가의 형태로 르완다와 우룬디가 독립할 것을 권유했지만, 1961년 르완다에서는 후투족의 혁명으로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화국이 선포됨에 따라 투치족이 지배계층이며 군주제로 운영되던 우룬디는 1962년 7월 르완다와 분리하여 입헌군주국 부룬디로 독립하게 된다. 독립 이후 1965년 후투족 총리의 암살과 투치족의 후투족에 대한 학살을 계기로 분쟁이 시작되어 1966년 11월 미카엘 미콤베로(Michael Micombero) 총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제를 선포한 이후, 1972년 후투족의 반란으로 투치족 1만 명, 후투족 15만 명이 희생되는 내전이 발생했는데, 투치족은 권력 독점을 위하여 후투족 지도자 및 지배 계층을 선별하여 살해하기도 했다. 1976년 11월 장 바티스트  바가자(Jean Baptiste Bagaza) 중령의 쿠데타 이후 수차례의 쿠데타가 거듭되었으며, 1987년 9월 피에르 부요야(Pierre Buyoya)에 의한 군부 쿠데타로 바가자 정권도 붕괴되었다. 

 

1988년 종족 분쟁으로 인해 약 1만 명의 희생자를 내었으나 부요야 대통령은 다당제 개헌 등 민주적인 개혁을 실시하고, 후투족의 영입 등 권력 분점(Power Sharing) 정책을 통해 분쟁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그러한 결과로 1993년 최초로 복수 정당제에 의한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멜키오르 은다다예(Melchior Ndadaye)가 승리하여 최초의 후투족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기득권을 잃을 것을 우려한 투치족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4개월 만에 은다다예는 암살을 당했고, 이를 계기로 양 부족 간의 갈등은 대학살 극으로 변하여 약 1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게 된다. 유엔의 중재로 인해 1994년 2월 후투족의 인민통일당과 야당인 투치족의 민족 진보연합의 공동정부가 출범하고, 후투족 출신의 시프리엥 누타랴미라(Cyprien Ntaryamira)가 과도 정부의 수반에 취임하였습니다. 1994년 4월 르완다의 후투족 출신 대통령인 하뱌리마나(Habyarimana)와 함께 탄 비행기가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되어 모두 사망하자, 르완다와 부룬디에서는 다시 전대미문의 학살극이 벌어졌고, 후투족과 투치족 모두 생존을 위해 인접 국가들로 피신하는 난민 신세가 되었다. 

 

르완다와 부룬디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르완다와 부룬디 반군들과 양국 정부의 지원 하에 콩고 - 자이레 해방 민주세력연합(Alliance of Democratic Forces for the Liberation of Congo - Zaire : ADFL)이 결성되어 정부가 전복되는 등 대 호수 지역의 분쟁으로 확대되었다. 분쟁이 더욱 심화된 르완다의 사태가 부룬디로 전이되는 것을 상쇄하기 위한 유엔의 노력으로 인해 부룬디에서는 1994년 9월에 총선거를 실시하게 되었으며 10월에 실베스트르 은티반퉁가야(Syvestre Ntibantunganya)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보통선거에 따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후투족의 대통령이 나왔지만,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며 기득권을 가져왔던 투치족의 저항으로 인해 내전은 더욱 악화되었다. 1996년 유엔 사무총장은 다국적 대기군의 창설을 시도하였지만,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되었다. 유엔의 평화 구축 활동도 완전 사라진 된 상태에서 구호 활동을 위한 국제 적십자 요원이 희생됨에 따라 국제 원조 기관도 철수하여 부룬디의 분쟁은 국제적으로 완전히 포기한 분쟁이 되어버렸다. 

 

이 시기는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수단, 소말리아 등등 사하라 남쪽 중앙 지역과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분쟁에 휘말리던 시기였으며 소말리아에서 미국 주도의 유엔 평화군이 철수한 직후로 보여 진다. 1996년 7월 투치족 군부의 쿠데타로 피에르 부요야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유엔과 아프리카 단결기구(OAU) 등 국제사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경제제재를 실시함에 따라, 후투족 출신의 실베스트르 은티반퉁가야 전 대통령과 투치족 정부 간의 협상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평화협상 중에도 난민 귀환 문제를 두고 부룬디 정부군과 탄자니아 군이 국경지대에서 충돌하는 등 분쟁은 인접 국가와 얽혀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이후 넬슨 만델라의 중재에 의해 평화협상이 진행되었지만, 2000년 정부군과 반군을 합친 새로운 정부군의 구성을 놓고 의견이 대립되어 합의하지 못했다. 만델라의 협상안에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군대 구성 안인데, 후투족과 투치족이 절반씩 편성되도록 설정하고 있으나, 투치족들이 후투족 반군의 정부군 편입을 반대하고, 후투족은 국민 비율에 따라 후투족의 85%와 투치족의 15%로 해야 한다고 맞섰기 때문에 결렬되었다.

 

후투족 반군은 크게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민회의(CNDD : National Council for the Defense of Democracy)의 무장 세력인 민주수호군(FDD : The Forces for Defense of Democracy)과, 후투 인민해방당(PALIPEHUTU : The Hutu Peoples Liberation Party)의 군사 조직 민족해방군(FNL : The National Liberation Forces)을 들 수 있는데 2002년 12월 피에르 부요야 부룬디 과도정부대통령과 후투족이 이끄는 민주주의 수호군(FDD)지도자 피에르 은쿠룬지자(Pierre Nkurunziza, 1964~2020)가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민족해방군(FNL)은 휴전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투치족 내부의 강경파들도 현 정부의 화해노력에 반대하고 있어 평화 정착의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올해 2003년 1월 이후부터 탄자니아와의 국경 지대에서 반군과 정부군간의 유혈 충돌이 계속되어 지역 주민 440명이 희생당했고, 가옥들은 전소되었으며, 주민들은 황량한 땅으로 추방되는 등 휴전 협정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룬디,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이 가지고 있는 상대 종족에 대한 배타성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유럽에 의해 정착된 종족 차별 정책에 기원하고 있다. 

 

투치족에 대한 우대 정책은 경제, 교육, 도시와 농촌의 면에서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차이로 확대되었고, 후투족이 느끼는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소외와 소수민족으로서 투치족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상대 종족을 더욱 불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부룬디의 경우 벨기에가 식민 통치할 당시 신분증에 소속 부족을 명기하도록 하고, 소수민족인 투치족의 권력 독점을 용인하고 존속시켰다. 이에 따라 부족 간의 격차는 심화되었는데, 독립 이후에는 1인 1표의 보통 선거제에 따라 후투족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민주화 욕구와 과거 식민지 시절부터 축적해 온 투치족에 대해, 오랜 증오에 가까운 상대적 박탈감은 상대 종족에 대한 학살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투치족의 필사적인 저항 역시 무자비한 살육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후투족의 지배 계층에 대한 표적 살인으로 후투족의 지도층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협상과 통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1993년 투치족에 의한 대학살로 인하여 후투족 도지사 4명, 정부 고문 7명, 시장 8명, 기자 3명, 교장 7명이 희생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각종 대학과 고등학교에 교수와 교사는 물론 학생마저도 후투족 출신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기에 현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한 상태이다.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실의 2002년 보고서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난민이 발생한 국가인 부룬디에서는 탄자니아에 521,180명, 콩고민주공화국에 19,485명의 난민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랜 분쟁과 쿠데타에 의한 경제제재로 부룬디 국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가운데, 귀환 난민에 대한 인권 침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사법부의 종족 편파성으로 인해 불법구금과 즉결처형, 실종, 고문 등의 편파적인 재판으로부터 후투족의 난민들이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고, 정부군과 반군이 자행하는 민간인 학살도 여전하다. 또한 부룬디 동부 지역인 탄자니아 국경 접경지역에서 지속된 전투로 인해 대부분 영양실조가 걸린 유아들을 산모들이 버리고 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신생아들과 어린이들은 전쟁과 에이즈의 희생양이 되었다. 

 

현재 부룬디의 내전은 정권 교체기에 있어 평화 정착 여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피에르 부요야 과도 정부 대통령이 2003년 5월에 퇴임하였고 이후 후투족에게 정권이 이양되었다. 이와 더불어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 AU)의 평화유지군은 부룬디에 파견되었으며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등에서 3,500명의 평화유지군이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던 학살은 완전히 종식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 미지수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부룬디의 평화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라 보여 진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The ongoing problems of Tanzania, Rwanda, and Burundi in East Africa

Columnist Gil-seon Jeong

 

Burundi, an additional country of Tanzania in East Africa, is a society where the majority population of about 90% of the population, the Hutu, and the Tutsi, who make up 10% of the population, dominate, just like Rwanda. The majority of the Hutu are linguistically called the Lundi, which is the origin of the name Burundi. Religion is divided into two groups: Christians, who are mainly Catholics, and those who follow the traditional Lundi faith, and there is a small number of Muslims. Among the great lake regions south of the Sahara, Rwanda, Burundi, and the eastern part of the neighboring Congo were ruled by the nomadic Tutsi who migrated south from the north after the 12th century, and the Hutu who lived an agricultural life. The Burundi Kingdom, which existed around the 15th to 16th centuries, is also said to have been established by a Tutsi dynasty that migrated south from the Ethiopian region and ruled over the Hutu. During the colonial period, it was incorporated into German East Africa from 1890, and after World War I, it was ruled by Belgium as Rwanda-Urundi. During its colonial history, Belgium favored the Tutsi, making the Tutsi the ruling class. This policy of favoring certain ethnic groups during the colonial period became the background for deep-rooted ethnic conflict.

 

Afterwards, it became a UN trusteeship in late 1946, and the Rwandan-Urundi independence movement that began in 1957 demanded independence through unification with Rwanda. The UN also recommended that Rwanda and Urundi become independent as a federal state, but in 1961, the monarchy collapsed due to the Hutu revolution in Rwanda and a republic was declared, and Urundi, where the Tutsi were the ruling class and operated under a monarchy, separated from Rwanda in July 1962 and became independent as a constitutional monarchy, Burundi. After independence, the conflict began with the assassination of the Hutu Prime Minister in 1965 and the Tutsi massacre of the Hutu. In November 1966, Prime Minister Michael Micombero staged a coup and declared a republic. In 1972, a civil war broke out in which 10,000 Tutsis and 150,000 Hutus died due to a Hutu rebellion. The Tutsi also selectively killed Hutu leaders and the ruling class in order to monopolize power. Several coups followed the coup by Lieutenant Colonel Jean Baptiste Bagaza in November 1976, and the Bagaza regime collapsed in September 1987 with a military coup by Pierre Buyoya. In 1988, the ethnic conflict left about 10,000 victims, but President Buyoya attempted to end the conflict by implementing democratic reforms such as a multi-party constitutional amendment and a power-sharing policy such as the recruitment of Hutu. As a result, the first multi-party general election and presidential election were held in 1993, and Melchior Ndadaye won, establishing the first Hutu government. However, Ndadaye was assassinated four months later in a coup d'état by the Tutsi military, fearing the loss of vested rights. This led to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tribes turning into a massacre, resulting in more than 100,000 victims. Through the mediation of the United Nations, a joint government was launched in February 1994 between the Hutu People's Unity Party and the Tutsi National Progressive Union, and Cyprien Ntaryamira, a Hutu, took office as the head of the interim government. In April 1994, when the plane carrying Rwanda's Hutu president Habyarimana was shot down by a missile attack, killing all of them, unprecedented genocide broke out again in Rwanda and Burundi, and both Hutu and Tutsi fled to neighboring countries as refugees in order to survive.

 

As the conflict between Rwanda and Burundi intensified, the Alliance of Democratic Forces for the Liberation of Congo - Zaire (ADFL) was formed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with the support of Rwandan and Burundian rebels and the governments of both countries, and the conflict expanded into the Great Lakes region, with the government being overthrown. Due to the UN's efforts to offset the spread of the conflict in Rwanda, which had worsened, to Burundi, a general election was held in September 1994, and Syvestre Ntibantunganya was elected president in October. Although the president was a Hutu with a majority in a Western-style democratic election, the civil war worsened due to resistance from the Tutsi, who had political, economic, and military superiority and vested interests. In 1996, the UN Secretary-General attempted to establish a multinational standby force, but it was rejected by the Security Council. With the UN's peace-building activities completely gone, international aid agencies withdrew as the International Red Cross personnel who were working on relief efforts were sacrificed, and the Burundian conflict became a conflict that was completely abandoned by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is was a time when the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Rwanda, Burundi, Sudan, Somalia, and other central regions of the Sahara and West Africa were embroiled in conflict, and it seems to have been right after the withdrawal of the US-led UN peace force from Somalia. In July 1996, Pierre Buyoya became president through a coup by the Tutsi military, bu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cluding the UN and the 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OAU), did not recognize it and implemented economic sanctions, so negotiations were held between former President Silvestre Ntibantunggaya, who was of Hutu descent, and the Tutsi government. However, even during the peace negotiations, the Burundian government and Tanzanian forces clashed in the border area over the issue of refugee return, and the conflict became complicated as it became entangled with neighboring countries. Afterwards, peace negotiations were held through Nelson Mandela's mediation, but in 2000, there was a difference of opinion over the composition of a new government force combining the government and rebel forces, and an agreement could not be reached. A particularly problematic aspect of Mandela's negotiation proposal was the composition of the army, which was supposed to be split evenly between Hutu and Tutsi. However, the Tutsi opposed the incorporation of Hutu rebels into the government army, and the Hutu insisted that the army should be made up of 85% Hutu and 15% Tutsi, based on their national proportions, so the deal fell through. The Hutu rebels are largely divided into the Forces for Defense of Democracy (FDD), the armed wing of the National Council for the Defense of Democracy (CNDD), and the National Liberation Forces (FNL), the military wing of the Hutu Peoples Liberation Party (PALIPEHUTU). In December 2002, a ceasefire agreement was signed between Pierre Buyoya, the interim president of Burundi, and Pierre Nkurunziza (1964–2020), the leader of the Forces for Defense of Democracy (FDD), led by the Hutu. However, the FNL did not agree to the ceasefire, and hardliners within the Tutsi minority also oppose the current government's reconciliation efforts, making the possibility of a peace settlement very distant. However, since January 2003, bloody clashes between rebels and government forces have continued in the border area with Tanzania, resulting in the deaths of 440 local residents, the burning of houses, and the exile of residents to barren lands. Despite the ceasefire agreement, the conflict between the two sides continues. The exclusiveness of the Hutu and Tutsi in Burundi and Rwanda toward the other race originates from the racial discrimination policy established by Europe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preferential policy toward the Tutsi expanded into differences between the Tutsi and the Hutu in terms of economy, education, urban and rural areas, and the social, cultural, economic, and political alienation felt by the Hutu and the insecurity felt by the Tutsi as a minority made them even more distrustful and exclusive of the other race. In the case of Burundi, Belgium, during its colonial rule, required that the ethnic group be listed on the identity card, and tolerated and maintained the monopoly of power by the Tutsi, a minority. Accordingly, the gap between tribes deepened, and after independence, as the possibility of the Hutu taking power increased due to the universal suffrage system of one person, one vote, they began to demand democratization. This desire for democratization and the relative deprivation close to long-standing hatred for the Tutsi that had accumulated since the colonial era were expressed in the massacre of the opposing tribe, and the desperate resistance of the Tutsi to this also led to merciless slaughter. In particular, since there was no leadership among the Hutu due to the targeted killing of the Hutu ruling class, there were many difficulties in negotiation and control.

 

In the 1993 massacre by the Tutsi, four Hutu provincial governors, seven government advisors, eight mayors, three journalists, and seven principals were killed, and as a result, there are almost no professors, teachers, or even students of Hutu origin in various universities and high schools, so the outlook for the future is not very bright. According to a 2002 report by the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Burundi, the country with the second largest number of refugees after Afghanistan, has 521,180 refugees in Tanzania and 19,485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With the Burundian people’s survival threatened by long-standing conflict and economic sanctions due to the coup, human rights violations against returning refugees are serious. Due to the ethnic bias of the judiciary, Hutu refugees are hardly protected from biased trials such as illegal detention, summary executions, disappearances, and torture, and massacres of civilians by government forces and rebels are still ongoing. In addition, due to the continuous fighting in the eastern part of Burundi near the Tanzanian border, there have been cases where mothers abandon their infants, who are mostly malnourished. These newborns and children have become victims of war and AIDS.

 

Currently, Burundi’s civil war is in the midst of a regime change, and attention is focused on whether peace will be established. The interim president Pierre Buyoya stepped down in May 2003, and power was transferred to the Hutu. In addition, the African Union (AU) peacekeeping force was dispatched to Burundi, and 3,500 peacekeeping forces from Ethiopia, Mozambique, etc. entered the operation. However, it is still uncertain whether the genocide, which has been ignored by the international community, can be completely ended.

 

Therefore, it appears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ill need to pay more attention to peace in Burundi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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