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의 카페트가 왜 빨강색인가. 수많은 머신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카지노에는 빛도, 시계도, 거울도 없다. 시간은 멈춰있고 공간은 오직 카지노 안이다. 빨간색의 카페트에 온갖 머신 소리, 이런 것에도 철저한 카지노의 승률 공식이 존재한다. 카지노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판단력은 흐려지기 시작한다. 카지노는 수백년 동안 어떤 공식에도 이길 대비가 다 돼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카지노의 그늘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카지노앵벌이들이다.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탕진해 오갈 데가 없어진 이들이 카지노를 직장 삼아 매일 출근하면서 대리 게임, 게임보조, 좌석판매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강원랜드에서 전 재산을 탕진하고 카지노에서 일명 ‘앵벌이’ 생활을 했던 한 30대 남자가 자전 소설 『카지노앵벌이의 하루』를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오방이’는 작가 김완이다. 지난 13일, <사건의 내막>이 직접 만난 ‘오방이’는 “카지노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말로 운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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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앵벌이 카지노 ‘쪽박걸’의 하룻밤
자리 맡아주면 50-1백만원 ‘직장생활 안 부럽다’
“나는 강원랜드 앵벌이다. 알뜰살뜰 모은 돈에다 빚까지 내어 생돈 11억을 날리고, 아직도 대박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카지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인생의 패배자로, 도박중독증 환자로 여긴다”
2005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다음날이 크리스마스 연휴라 강원랜드 안은 여느 때보다 북적거렸다. 앵벌이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동생(같은 앵벌이)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동생의 한 마디가 아직도 오방이의 가슴엔 충격으로 남아있다.
“밖에 영주이모가 죽었어!”
경북 영주에서 올라온 아줌마.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선 ‘영주이모’라 불리던 그녀가 강원랜드 안에서 1층으로 몸을 던졌다. 오방이가 허겁지겁 뛰어가 현장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시신은 수습이 돼 있었지만 1층 대리석 바닥엔 그녀의 선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연말, 한층 분위기가 상기된 강원랜드 카지노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것도 모른 채 베팅에 여념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방이가 직접 목격한 카지노의 쓸쓸하고도 냉혹한 현실이었다.
카지노에 무너진 사람들
오방이는 현재 카지노 딜러들의 이야기를 한창 수집 중이다. 그중 목회자(牧會)의 길을 꿈꾸던 딜러 a씨가 있었다.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딜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런 가운데 늘 몇천만원씩 들고 와 게임을 하던 중년여성이 있었는데 a씨는 이 중년여성을 ‘이모’라고 불렀다.
마카오 연수를 갖다 몇 달 만에 돌아와 보니, 초췌한 모습의 이모가 1만 원짜리 베팅에도 벌벌 떠는 것이었다. 셔플시간(shuffle time, 카드를 섞는 시간) 그 중년여성은 화장실에서 제초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원랜드 인근 모텔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이 꽤 많다. 뉴스에 나오는 자살 소동이 다가 아니다. 그러나 강원랜드에서 무너져 가는 부류는 비단 극단적인 생각으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카지노에서 인생의 불을 꺼트리는 사람들이 많다.
오방이가 강원랜드에 있는 동안 피폐해져가는 사장님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오방이가 그 중 한사람이기도 했다. 도박판에서 쓰러져서 실려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돈을 주고 자리를 잡았는데 돈 잃은 사람은 그 자리를 뜰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한 번 자리를 잡으면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떠나지를 못한다. 돈은 다 잃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까 쓰러지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앵벌이들 중에는 회계사, 산부인과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즉 카지노앵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특수한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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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이는 카지노앵벌이에 대한 글을 쓰면서 라스베가스에 있는 프로겜블러(gambler)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30년 동안 카지노에 몸담았던 사람이었다. 도박으로 벌어들인 수입도 상당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자신은 카지노라는 감옥에서 살았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날, 그는 대형 할인점에 들러 부인이 적어준 물건 목록표를 보며 3백원 싸게 물건을 샀을 때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 이게 사는 거구나’ 도박판에서 그렇게 30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어린 여자 중에 업소아가씨 출신많아…
손님 따라 왔다가 도박에 맛들려 상주
일반적으로 도박에 빠진 사람은 한심해 보이고, 뭔가 다른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오방이도 20대 초반에는 bmw 스포츠카를 끌고 압구정동에 상주했었고, 10년 가까이 음반 제작 사업을 하면서 잘 나가는 젊은 사장으로 통했다. 그런 회사가 부도를 맞았지만 동대문에서 크게 의류사업을 하고 있던 여자친구와의 동업으로 세상에 무릎은 꿇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분양사기도 당해보고, 주식으로 돈을 크게 잃기도 했지만 그렇게 무너질 오방이가 아니었다. 이건 오방이의 영웅담도 성공담도 아니다. 그저 오방이도 남들처럼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부연설명에 불과하다. 여기서 오방이가 한마디 했다.
“카지노 도박에 빠진다는 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나도 배울 만큼 배웠고 약삭빠르다는 말도 들으며 살아왔다. 장사할 땐 10원도 손해 안 보려고 했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길은 걷지도 않았다. 도박하는 사람들은 인간으로도 안 봤다. 그런 내가 무모하게 빠지기 시작한 것이 카지노 아닌가”
그는 동대문에서 일할 때는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졌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사는 게 정말 재밌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사기 맞은 돈을 다시 메우고 다시 재정적인 여유가 찾아왔다.
오방이가 강원랜드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05년 3월이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나왔던 강원랜드 이야기. 오방이도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놈이었지만 강원랜드는 한 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고, 마침 집사람과도 주식문제로 사이가 안 좋고 해서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마음으로 동행을 하게 됐다.
가자마자 2백만원 정도를 땄다. 두시간만에 2백만원을 벌었던 것이다. 돌아오면서 ‘그래, 주식으로 깨진 돈 이것으로 만회하자. 이렇게 쉽게 돈 버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기서 오방이의 조언 하나. 카지노가 무서운 이유 한 가지, 그것은 바로 게임 방법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좋은 당신’이었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렇게 3일 뒤부터 혼자 강원랜드를 다니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면 집에 가서 자야했지만 청량리에서 막차를 타고 거의 매일 강원랜드로 직행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나니 수중에 있던 6천만원을 탕진했다. 그러면 멈춰야 했던 것 아닐까.
“도박이 무서운 게, 조금만 더하면 딸 것 같기도 했다. 카지노에서는 1백만원으로 1천만원 따는 사람도 흔히 보이고, 홀짝 게임은 하우스 어드밴티지(이점)를 빼고라도 나에게 45%라는 승률이 존재했으니 잘만 하면 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본전 만회라는 생각으로 집사람 몰래 가게를 담보로 시장 사채를 끌어다 게임 자금을 마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신이 씌웠던 것 같다”
그렇게 1억, 2억, 3억, 4억… 밑도 끝도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돈이 떨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마련했다. 사회에 나오면 돈 2천만원이 큰돈이지만 카지노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현금을 들고 게임을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칩(chip)으로 베팅을 하니 돈에 대한 감각은 더 무뎌졌다. 이게 바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카지노의 본모습이었다.
“결국 가게에 사채업자가 찾아와 집사람도 알게 됐다. 집사람은 헤어지자고 했다. 정말 헤어지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다시는 도박에 손을 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온 말들이었다. 그러나 난 순순히 이혼에 응했다. 집사람을 편히 보내주겠다는 자기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도박이란 병 때문에 집사람을 그렇게 순순히 떠나보냈던 것 같다. 카지노에 못 가게하는 집사람이 귀찮았던 것이다”
김완 “순순히 이혼에 응했다. 카지노에 못 가게하는 집사람이 귀찮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박이란 병 때문에 집사람을 그렇게 순순히 떠나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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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있던 가게를 정리하고 갚을 돈 다 갚고 나니 오방이의 수중에 4백만원이라는 돈이 남았다. 기차도 끊기고, 버스도 다 끊긴 상황에서 다음날에 가도 됐던 강원랜드를 택시를 타고 한밤중에 찾았다. 오방이, 김완 작가는 그때가 도박 중독의 극치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미친 듯이 4백만원을 들고 찾은 강원랜드였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갈 차비도 없었다. 그렇게 앵벌이 생활이 시작됐다”
인생역전 꿈꾸는 앵벌이
2006년 1월 13일, 40시간동안 카지노에 있어도 수입이 한 푼도 없는 날이었다. 그날 다른 앵벌이에게 2만원을 빌려 햄버거와 컵라면으로 허겁지겁 고픈 배를 채우니 뱃속에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위경련이었다. ‘꽁지(카지노에 존재하는 사채업자)’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해서 돈을 빌린 후 아픈 배를 쥐어 잡고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간 화장실에서 아픈 배를 움켜잡고 있으려니 눈물이 흘렀다. 화장실 거울에 비춰진 얼굴을 보고 깨달은 게 있었다. 어느 순간 초췌해진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죽고 싶은 마음에 국도 한복판에서 눈을 감고 운전한 적도 있었다. 미친 듯이 자동차 핸들을 주먹으로 치며 다시는 안온다고 다짐해도 그게 안됐다. 그래도 돈이 생기면 다시 찾게 됐다. 뭔가에 홀린 듯 강원랜드를 찾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내 자신이 정말 싫었다”
“프로급 앵벌이들은 bmw 외제차 끌면서
자식들 유학 보내고 집에 생활비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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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녀온 지 이틀 만에 강원랜드 인근의 pc방에서 카지노앵벌이에 대한 글을 처음으로 올렸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심정을 인터넷 카지노 동호회 사이트에 하루하루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방이 자존심에 친구들에게 심정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그나마 진정이 되는 것도 같았다.
“그때는 책을 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익명성을 담보로 적나라하게 글을 ‘갈겼던’ 것 같다. 누가 읽어주든 말든 원망 섞인 마음이 많이 담았다. 두 달 정도 글을 올렸더니 출판사, 영화사, 기획사 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알량한 자존심에 내가 드러나는 게 싫었기 때문에 그래도 책을 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다 보니 출판사, 영화사, 방송국 등에서 연락이 쇄도했다. 카지노앵벌이라는 특수성이 세상의 구미를 당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락이 닿아 오방이와 함께 동행 취재한 방송국 pd도 카지노 자릿값 하나에 50만원이라고 하니 ‘(앵벌이 수입이) 나보다 낫네’라며 놀라기도 했다. 현재 강원랜드에서 이들 앵벌이의 규모는 5백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카지노에 빌붙어 살고 있는 ‘앵벌이’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돈이 많고 잘 나가는 ‘알짜고객’이었다. 이 책의 저자 오방이도 물론 서울 동대문 의류도매업으로 잘나가던 젊은 사장이었다.
“내국인 카지노가 강원랜드 하나밖에 없는데도 바카라나 블랙잭 등 마니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좌석수는 5백여석에 불과하다. 주말 같은 경우는 1만2천여명이 입장한다. 입장은 무한으로 가능하다. 당연히 좌석 매점매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계 어느 카지노에도 그런 일(카지노앵벌이)이 없는데 강원랜드만 그렇다. 프로급 앵벌이들은 bmw 외제차 끌고 다니고, 자식들 유학 보내고, 집에 생활비도 보내준다. 이런데 직장생활 하겠나”
그렇게 벌면 돈을 모아서 사회로 나와 다시 재기하면 되지 않을까. 오방이는 단호하게 도박판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가진 돈을 탕진하고 앵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애초부터 도박으로 다시 한탕을 노리기 위해 잔존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방이와 함께 앵벌이 하던 사람들을 보면 회계사, 산부인과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았다. 즉 중요한 점은 카지노앵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특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 다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의지가 약할 경우 더 심하게 빠져들기는 하겠지만 누구나 그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
“강원랜드의 특수성은 상주만 해도 수입이 생기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 앵벌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좌석수를 늘리는 것 딱 하나다. 수요에 대한 공급을 맞춰주면 된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더 큰 피해가 양산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 영업시간도 24시간 돌려서 자리매매를 없애야 한다. 배팅 상한액도 현실적으로 맞추면 투핸드, 쓰리핸드의 비정상적인 배팅 방법도 사라질 것이다”
오방이가 직접 겪은 바로는 여자들도 앵벌이가 많다. 남녀 6대 4 정도의 비율이라고 한다. 어린 여자들도 있는데 대부분 업소 아가씨 출신이 많다. 손님 따라서 멋모르고 강원랜드에 왔다가 나중엔 맛 들려서 손님은 안중에도 없고 혼자 찾아오는 것이다. 남자들은 ‘앵벌이’라고 하지만 여자는 ‘쪽박걸’이라고 부른다. 그녀들은 남자와의 하룻밤으로 팁을 챙기고, 다른 앵벌이들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대박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쪽박걸’로 강원랜드에 상주하고 있다.
내국인 카지노의 딜레마
국내 내국인 카지노에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탄광촌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로 설립된 강원랜드. 그러나 탄광촌 마을의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뒤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도태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카지노의 늪에 빠진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 개장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카지노 앞에 줄 서 있던 광경을 기억하는가. 20시간 영업을 하고 4시간 폐점시간을 가졌는데 그 4시간 동안 사람들이 잠 안자고 줄을 섰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석수는 부족하니 ‘자리 맡아주면 50만원 준다, 1백만원 준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최소한의 규모로 지역경제에 이바지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규제가 앵벌이를 양산하게 됐다”
오방이가 겪어본 바로, 강원랜드는 도박인구를 양산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진짜 도박꾼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다. 어느 정도 카지노에 눈을 뜬 사람들은 강원랜드에 안 간다. 똑같이 3시간 거리의 마카오나 필리핀으로 가는 것이다.
“카지노의 도시, 마카오는 널린 게 카지노고 그래서 서비스의 질도 다르다. 강원랜드야 사람들이 못 들어가서 난린데 서비스라는 개념이 있을까. 말 그대로 도떼기시장이다. 사람에 치여 게임을 못할 정도다. 처음은 강원랜드에서 도박에 눈을 뜨게 되겠지만, 게임을 하다보면 서로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곳(해외 카지노)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필리핀 같은 경우만 해도 10명이 앉는 테이블에 3명이상이 한국 사람이다. 마카오 행 비행기가 하루 한번이던 것이 2번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홍콩 경유해서 들어가던 것이 이젠 바로 간다. 마카오에 한국 사람들이 엄청나다”
그러나 국내든 해외든 카지노는 정답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억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고 해도 카지노라는 거대 자금을 이길 수는 없다. 도박은 머니 게임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유리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하물며 1천만원, 2천만원은 말 할 것도 없다.
카지노앵벌이 출신 ‘오방이’ 김완 작가는 말한다. “카지노에서 1~2천만원이야 오늘은 따가라고 내줄 수도 있는 돈이다. 또 오기 때문에. 카지노는 계속 미끼를 던져주고 있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주고 싶다. 카지노에 대한 신랄한 묘사가 어찌 보면 독자들에게 더 큰 메시지를 던져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원랜드의 불합리함, 열악한 환경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kimmi7771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