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24일은 공동경비구역(jsa) 내 벙커에서 의문사한 故 김훈 중위의 8주기이다.
지난 98년 김훈 중위는 jsa내 초소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됐고 군 당국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유족은 수많은 의문을 제기하며 타살의혹을 주장해왔다. 특히 조사과정에서 북한과의 위험한 관계 등이 밝혀지면서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뿐. 현재로서는 군 당국과 법원 모두 진실규명을 외면한 상태이다.
“나도 알고 싶다 내가 왜 죽었는지…”
지난 1998년 2월24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공동경비구역(jsa)내 초소(gp)에서 한 젊은 장교가 사망했다. 육사 52기 출신의 판문점 경비대대 소속 김훈 중위(당시 25세).
곧 국방부는 “개인적 성격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조사결과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타살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전방 근무 군인들이 그간 수시로 북한군과 접촉하며 군수품을 빼돌리기까지 하는 등 군기문란 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진실규명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국방부는 특별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재조사를 실시했지만 ‘자살’이란 결론은 변하지 않았고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5년여가 지난 2004년 2심에서 초동수사 미흡에 대한 부분만 인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해에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진실의 문’이 국회에서 상영됐는가 하면 아직도 왜 죽었는지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인 가운데 진실규명은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납득되지 않는 정황 의혹 키워
군 당국은 고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접수한지 2시간여 만에 김중위의 사인(死因)을 ‘두부(머리) 총상에 의한 자살’이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군 당국이 처음부터 자살로 결론짓고 꿰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며 석연치 않은 사고처리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군 당국은 4월29일 한미합동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 측 수사팀이 부대원들을 조사한 결과 “중대장의 훌륭한 지휘 아래 모범적으로 근무하고 있음이 확인돼 타살 동기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이란 결론을 내렸다.
당시 미군 측은 ▲현장의 권총이 김중위의 개인 화기였다 ▲현장에 싸운 흔적이 없으며 김중위 몸에 전혀 상처가 없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꽉 밀착시켜 발사해 총소리가 나지 않았다 ▲왼손으로 총신을 잡은 채 총을 쏴 왼손에만 화약이 검출된 점 등 여러 정황을 들어 자살로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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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2월 jsa내 초소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된 김훈 중위. © |
그러나 이러한 조사결과는 의혹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납득되지 않는 여러 정황들을 키우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게다가 미국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로 권총사건 사망자 부검 경험을 수 백 회 가진 노여수 박사의 타살가능성에 대한 증언도 한 몫을 했다.
노여수 박사는 “타살 정황과 관련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두정부 혈종을 왜 소홀히 했느냐”며 “베테랑급 민간 수사관들은 유서와 목격자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살로 단정하지 않는 게 수사 원칙인데 초기부터 자살로 단정한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사건 같다”는 견해를 조심스레 내놓았다.
유족 측의 계속되는 의문제기로 국회진상규명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한 결과 김중위가 근무했던 부대의 부소대장 김아무개 중사가 북한군과 접촉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자 군 당국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특별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을 구성해 6회에 걸친 현장방문 및 조사, 17개 부대원들에 대한 참고인조사, 계좌추적 및 거짓말탐지기 검사, 총기발사시험, 총성청취실험, 권총지문현출실험 등 각종 실험 및 시험 실시, 법의학토론회 개최 등 전면적인 재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합조단 역시 99년 4월 국회 국방위에서의 수사발표를 통해 “자살했다”는 기존 입장과 같은 결론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다만 ‘원인을 알 수 없음’이란 처음 자살동기가 ‘업무부담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타살의혹이 명백히 의심되는 정황들을 직접 수집해 국내 베테랑급 경찰 수사관을 찾아다니며 수사자료를 넘겨주고 확신을 명확한 증거로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아버지 김척 장군(21기 출신·육군 중장 예편)은 “합동조사반이 수사결과라고 발표했지만 어느 것 하나 납득할 수 있는게 없었다”면서 “국회에서조차 명백히 타살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수사는 종결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초동수사 미흡” 일부 인정
이에 유족 측은 지난 99년 12월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이 공정성을 잃은 형식적인 수사만으로 서둘러 자살 결론을 내렸다”며 국가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바 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사건을 맡아온 서울지법 민사합의41부는 1심(2002년)에서 “수사과정에서의 국가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이에 유족 측이 항소하자 2심(2004년)에서는 “군 초동수사 미흡으로 수많은 의혹이 남겨진 만큼 국가는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군대의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장병에 대한 보호의무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시 외부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더 높은 수준의 진상조사 의무가 부여된다”며 “군 수사기관은 당시 사건을 조사하면서 현장보존이 미흡했고 알리바이를 형식적으로 조사했으며 사건에 대해 예단을 갖고 접근하는 등 초동수사 과정에서 직무를 다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사고 지역은 유엔군 사령군 관할지역이어서 현장보존 및 변사자 검시를 미군 측에 의존했고 미군의 제지로 5시간 후에야 현장에 진입하는 등 초동수사의 한계가 있었다”며 “초반 예단을 갖는 바람에 자살 타살 여부가 불분명해지고 이후 재조사에도 불구, 불신이 가중되는 등 수사기관의 직무유기가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2심 판결 역시 “자살이라는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며 초동수사 미흡에 대한 배상일 뿐 타살의혹을 제기한 유족들의 주장을 인정한 판결이 아니란 점에서 유족들은 또다시 대법원에 상고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3주일 정도만 지나면 고 김훈 중위가 세상을 떠난 지 만 8년이 된다.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훈 중위. 그러나 사람들이 안타까운 건 삶을 다 하지 못했다는 점보다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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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버지 김척 장군
“아직 아들을 가슴에도 묻지 못했다”
대법원 상고 후 ‘진실’기다리는 중
2월 8주기 추모미사, 재조사 대책강구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그러나 김척 장군에게 아들 김훈 중위는 가슴에도 묻지 못할 정도로 아픔으로 남겨 있다.
아들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한지 8년. 그 동안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며 군 당국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났지만 아들이 왜 죽었는지 명백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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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소위로 임관한 직후 당시 군단장으로 있던 아버지 김척(왼쪽부터), 어머니와 군단장 공관에서 함께 찍은 김훈 중위. |
기일 8주기를 앞두고 현재 진전사항은 좀 있는지, 현재 근황은 어떤지 김척 장군에게 연락을 취했다.
김 장군은 “대법원 상고 후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사항이 없어 답답하다”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건이 터진 후 유족들은 무엇 하나 가르쳐 주지 않는 군대를 상대로 진실을 알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렵게 한미연합사 상황일지를 구했고 전국 곳곳을 헤매며 jsa 전역병을 찾아가 진술을 듣고 하나하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느라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곤 했다. 어떤 때는 집을 찾지 못해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걸었는가 하면 외출한 전역병을 기다리느라 밤늦게까지 밖에서 비를 쫄딱 맞았고 혹시 아들에게 불이익이라도 생길까 면담을 거부하는 전역병 부모를 설득하는 일도 만만찮았다. 어렵게 전역병을 만나도 이미 부대에서 조치가 있었는지 입을 잘 열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유족들은 죽음에 대한 진실추적을 멈출 수는 없었다고 강조한다.
“내가 평생을 바쳐 헌신하고 아끼던 군에서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을 참혹하게 잃었다”며 자신과 아들의 명예를 걸고 명백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김척 장군.
매년 진행해오던 대로 올해 역시 기일에 추모미사를 준비중이라며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김훈 중위 사건도 당연히 재조사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천주교 인권위 김덕진 사무국장도 “과거사진상규명법의 제정으로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김훈 중위 사건도 재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국민의 알권리 확인과 인간존엄성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