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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회원 고 문덕수 시인…아라의 목걸이 들고 본적지로 가다!

민윤기 시인 l 기사입력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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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문덕수 시인. 1928년 경남 함안군 법수면 출생. 홍익대를 거쳐 고려대대학원 문학박사. 1956년 유치환 추천 등단. 홍익대 국문학과 교수(1961~1994). 한국현대시인협회장(1981~1984),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1992),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1995),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1993~현재). 서울시문화상, 예술원상, 이설주 문학상 등 다수 수상.  ©브레이크뉴스

▲영결식은 2020년 3월 15일 오후 5시 ‘한국문인장’으로 치러졌다. 조사는 이근배 예술원 회장, 조시는 심상운 시인,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7묘역.   ©브레이크뉴스

▲ 6.25 한국전쟁에 육군 소위로 참전, 부상 전역. <625참전 육군소위> 철모를 쓴 육군 소위 시절의 문덕수 시인.    ©브레이크뉴스

 

“지난 3월 13일 타계한 고 문덕수 선생(영결식은 2020년 3월 15일 오후 5시 ‘한국문인장’으로 치러졌다)은 시인으로, 평론가로, 문학교수로, 시 잡지 편집자로, 또 문예 조직의 최고 관리자로 살아왔다. 이 모든 영역에서 이룬 성취가 우뚝우뚝 솟아 빛남은 새삼스럽게 말할 바가 아니다.”

 

이 말은 김윤식 교수가 2004년에『문덕수 문학연구』를 펴내며 머리말에 썼던 글이다.

 

그러나 외람된 의견이지만 나는 문덕수 시인이 평생을 기울인 여러 공적 중에서 50여 년 간 <시문학>을 발행해 온 공적을 맨 앞에 놓고 싶다.

 

왜냐하면 시인으로, 평론가로, 문학교수로 살아 온 시인은 적지 않지만 평생을 오로지, 무상無償 행위나 다름 없는 시잡지를 발행해 온 분은 문덕수 시인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덕수 시인이 50년 이상 발행해 온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숱한 시인들이 현재 한국 현대시를 이끌고 있다. 한 사람의 헌신이 이렇게 큰 탑을 쌓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 시문학 창간호.     ©브레이크뉴스

1965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대학신문’에 실린 5단통 <시문학> 창간 광고를 만났다. 다른 문학지와 다른 점은 잡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연구작품’이라는 시인 발굴 제도를 통해 ‘역량 있는’ 시인지망생을 널리 공모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신춘문예를 제외하면 시인이 되는 길은 높고 높은 <현대문학> 추천을 받아 등단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럴 때 나온 <시문학>의 ‘연구작품’ 시스템은 모든 문학청년들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학청년들은 앞다투어 <시문학> ‘연구작품’ 공모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홍신선, 양채영, 오순택, 민윤기, 이상개, 고창수 등이 등단했다.

 

이양우, 김만옥, 금동식, 김용길, 김창완, 송수권, 이기철, 김성춘, 도한호, 윤재걸, 정성수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안타깝게도 60년대 <시문학>은 20호를 발행한 후 발행처를 옮기게 된다.   

 

“저 소리 없는
청산이며 바위의 아우성은
네가 다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겹겹 메아리로 울려 돌아가는 정적 속
어쩌면 제 안으로만 스며 흐르는
음향의 강물

쳔 년 녹슬은
종소리와 그 간곡한 응답을 지니고,
 
황홀한 계시를 안은 채
일체를 이미 비밀로 해 버렸다
-문덕수『침묵』전문“

 

▲ 문덕수     ©브레이크뉴스

 

▲ 3인시집 본적지.    ©브레이크뉴스

 

문덕수 시인은 모더니즘의 계보를 분명히 한 3인시집『본적지』에 이어 1966년 두 번째 시집『선·공간』을 펴내면서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세계문학 사조의 흐름을 조형적 이미지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문명비판적인 시를 발표하면서 사물 존재의 진실을 추구하는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문덕수 시인은 2006년『문덕수 시선집』으로 반세기를 지속해 온 시 작업을 정리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2009년 81세 때 470행짜리 장시長詩「우체부」를 발표해 문단은 큰 충격에 빠졌다.

 

나는 감히 이 「우체부」는 한국 현대시를 대표할 만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 후 문덕수 시인은 당신의 신작 발표보다는 ‘하이퍼 시 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치며 후배시인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그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문덕수 시인의 문학 열정은 그야말로 영원한 문청文靑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조사를 하고 있는 이광복 문인협회 회장.   ©브레이크뉴스

 

문덕수 시인은 2012년에 출간한『아라의 목걸이』로써 평생의 작시(作詩)작업을 마무리했다. 등단 이듬해 1956년에 발표한 첫 시집『황홀』에서부터 제12시집『꽃잎세기』까지 12권의 시집과 6권의 시선집, 미발표 근작 시까지 합해 700여 편의 시를 수록한『문덕수 시전집』등, 1955년 등단했으니 65년 이상을 문학에 바친 생애였다.

 

모더니즘의 새로운 변혁을 위하여, 시의 역사주의와 형식주의 사이에서, 그리고 문학 창작과 연구의 경계에서 항상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살아온 삶이었다. 기리고 2012년에 출간한『아라의 목걸이』로써 작시(作詩)작업을 마무리했다. 93세의 삶을 마치고. piero6437@naver.com

 

*필자/민윤기 시인. 서울 시인협회장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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