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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종교계, 큰 스승님들의 발자취

김덕권 시인 l 기사입력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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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한국 종교계를 이끌었던 네 분의 발자취를 한 번 따라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자(聖者)의 심법과 함께 하면 우리도 성인(聖人)이 될 것 같은 생각에서입니다. 네 분은 각기 다른 종교를 떠받치는 기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한데 묶는 공통 단어는 청빈(淸貧)입니다.

 

첫째, 기독교의 한경직(1902~2000) 목사님이십니다. 한국 대형 교회의 원조인 영락교회를 일으킨 한경직 목사님이 남긴 유품은 달랑 세 가지였습니다. 휠체어, 지팡이 그리고 겨울 털모자입니다. 집도 통장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네요.

 

한경직 목사님이 작고한 이후 개신교는 또 한 차례의 중흥기(中興期)를 맞아, 신도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설교 중에 몇 번이고 신도들을 울리고 웃기는 능변(能辯)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설적인 목회자로 존경받는 것은 그의 삶이 설교의 빈 구석을 채우고도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신도가 한경직 목사님이 추운 겨울 기도를 하시다가 감기에 걸릴 걸 염려해서 오리털 잠바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였습니다. 영락교회에서 백병원 쪽으로 굽어지는 길목에서, 바로 그 잠바를 입은 시각장애인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천주교의 김수환(1922~2009) 추기경입니다. 김수한 추기경님이 세상을 다녀간 물질적인 흔적은 신부복과 묵주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추기경님의 또 다른 유품은 추기경님이 기증한 각막을 이식받고 시력을 되찾은 어느 시골 양반이 용달차를 모는 사진이었습니다. 김수한 추기경님이 천주교를 이끌던 시절, 신도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김수한 추기경님이 남긴 인생덕목(人生德目)에 ‘노점상’이란 항목이 있습니다. “노점상에게 물건 살 때 값을 깎지 마라. 그냥 주면 게으름을 키우지만 부르는 값을 주면 희망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추기경님은 명동의 노점상 앞에 가끔 걸음을 멈추고 묵주를 사셨습니다.

 

셋째, 불교의 성철(性徹 : 1912~1993) 종정입니다. 성철 스님은 기우고 기워 누더기가 된 두 벌 가사(袈娑)를 세상에 두고 떠났습니다. 성철 스님이 열반(涅槃)한 뒤에 스님의 삶이 알려지면서 불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길이 달라졌습니다.

 

성철 스님은 늘 신도들의 시주(施主)를 받는 걸 화살을 맞는 것(受施如箭) 만큼 아프고 두렵게 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쌀을 씻다 쌀이 한 톨이라도 수채 구멍으로 흘러간 흔적이 보이면, 다시 주워 밥솥에 넣으라고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불교계의 큰 어른인 종정(宗正)직을 오래 맡았지만 중 벼슬은 닭 벼슬만도 못하다며 항상 종정 자리를 벗어날 틈을 찾기도 하셨지요.

 

넷째, 원불교의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 1914~1998) 종사입니다. 김대거 종사님은 원불교의 왕궁묘원 한 귀퉁이 작은집에서 천막을 치시고 열반에 드실 때 까지 사람들을 접견하시며 검소한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원불교 역사에 가장 긴 33년 간 종법사로 재임하면서, 교서편찬, 해외교화, 훈련강화 등 많은 사업에 매진하였으며, 세계적인 ‘종교연합(UR)운동’을 제창하셨습니다.

 

오래 전 제가 원불교에서 발행하는 『원광(圓光)』지의 편집진과 함께 명동 성당으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인터뷰를 하려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새카만 중생이었던 제게 친 할아버지처럼 저를 스스럼없이 대해 주셨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불교 입교 후, 아직 전생의 습관이 남아 있어 스승님의 속을 많이 태워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대산 종법 사님은 저를 다독이면서 원불교와는 숙겁(宿劫)의 인연이 있으니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지요. 이렇게 알고 보면 이 네 분의 성자들은 모두 가난한 부자들이었습니다.

 

네 분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던 분이 아닙니다. 그 분들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고자 했던 분이셨습니다. 이 네 분의 큰 스승님들은 일편단심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 실천하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종교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천주교에서 천심(天心)을 길러 천국을 만드는 것이나, 불교에서 자비심을 길러 불국을 만드는 것이나, 유교에서 성심(聖心)을 길러 성세(聖世)를 만드는 것이나, 도교에서 도심(道心)을 길러 도국(道國)을 만드는 것이나, 원불교에서 원심(圓心)을 길러 원만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표현은 달라도 본래 이념은 다 같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 네 분의 큰 스승들의 발자취를 체(體)를 받아서 성인의 경지에 올라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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