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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민(李世民), 정관의 치세를 이룩한 뛰어난 인물이요 군주

이정랑 중국 고전 평론가. l 기사입력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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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랑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인내(忍耐)로 천하를 얻고 자애(慈愛)로 다스리다.

 

자애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처럼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원칙이 없는 애정으로, 유가에서 말하는 보다 한 단계 더 높고 고귀한 가치이다. 따라서 개인적 수양에서의 자애는 일종의 정신과 지혜의 최고 경지인 동시에 치세를 위한 기지이기도 하다. 자애로써 사람들을 감복시킨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애를 충분히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는 중정과 평화의 미덕을 갖춘 사람들만의 독특한 인격적 매력이다.

 

당 태종 이세민(598~649, 재위 626~649)이 신하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보여준 것이 자애의 좋은 본보기이다. 장손무기는 장손황후의 친척으로, 일찍이 수() 나라에서 우훈위(右勛衛)의 관직을 역임했으나 나중에 태원으로 가서 이연(李淵)에게 귀순하여 그와 그의 아들 이세민으로부터 깊은 총애와 신임을 받았다. 후에 그는 이세민의 명을 받들어 유홍기(劉弘基) 등과 함께 역적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일으켰고, 이세민을 따라 성을 공격하면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도 했다.

 

고조가 즉위하자 그는 좌효위대장군(左驍衛大將軍)에 임명되는 동시에 설국공(薛國公)이라는 봉호를 얻었다. 무덕 9(626)에 장손무기는 진숙보(秦叔寶) 등과 함께 현무문 정변에 참가하여 이세민이 권력을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세민은 황위에 오르자마자 그에게 궁녀들을 하사하고 항상 궁궐 내에 거처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대했다. 후에 장손무기가 관직을 이용해 뇌물을 받아 고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의 법률대로라면 중벌에 처해야 했지만 태종은 그를 내칠 수 없었다.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장손무기는 외척의 신분으로 나라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개국공신이오. 관직도 높고 봉록도 후해 부유하고 존귀하기 그지없지만 한 가지 흠이라면 학문이 깊지 못한 것이오. 그가 고금의 사적을 읽고 자신을 살피는 거울로 삼을 줄 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을 것이오. 그가 지금 명예를 몰라 도를 무시하고, 지조를 지키지 못해 탐욕으로 뇌물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짐도 몹시 당혹스럽게 여기고 있소!”

 

이렇게 말하면서도 태종은 그를 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정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비단 열 필을 하사함으로써 장손무기스스로 부끄러움을 깨닫게 했다. 그러자 대리시소경(大理寺少卿) 호연(胡演)이 간언했다.

 

장손무기가 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은 죄는 처벌받아 마땅한 데 처벌은커녕 어째서 비단까지 하사 하십니까

 

태종이 대답했다.

 

사람에겐 기본 성품이 있는 만큼 처벌을 받는 것보다 이유 없는 상을 받는 것이 더 괴로운 법이오. 그래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금수에 불과할 것이고, 정말로 그가 금수에 지나지 않는다면 끌고 가서 목을 벤들 무슨 소용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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