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사람을 홀리고, 죽이는 물귀신은 존재하는가?

이법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0-03-26

본문듣기

가 -가 +

지구의 인간사를 관찰하면 부지기수의 인간들이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사람을 유혹하고 죽게 하는 물귀신에 대한 실화를 하고자 한다. 물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면서 주장의 근거로 1980년대에 내가 만난 선승(禪僧)인 휴암(休庵)스님에 대한 사건을 예화로 들기로 한다. 

 

매사를 과학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하면 진위여부(眞僞與否)를 확인하기에 앞서 우선 비웃는 코웃음을 칠 수 있다. 물귀신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총명한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근거로 인간은 냄새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바람도 보지 못하고, 전기도 눈으로 보지 못한다. 또, 죽은 귀신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일부 귀신을 투시한다고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보통 인간들은 원기 왕성할 때에는 귀신을 보지 못하도록 컴퓨터같이 애초에 설정 되어 있는가, 귀신을 보았다는 주장은 보기 힘들다. 멀쩡한 남녀가 귀신을 보았다는 주장을 해대면, 그는 오래지 않아 죽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 이법철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1978년 10월1일부로 나는 한국 불교계의 유일한 불교신문사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유일한 기관지인 대한불교 신문사에 편집국장으로 임명받았다.

 

80년 초에 신문사에 나를 찾아온 승려가 있어 만나보니. 휴암 스님이었다. 그는 입은 승복부터 낡은 무명옷이었고, 얼굴은 영양기가 전혀 없는 얼굴이었으나 넒은 이마와 빛나는 두 눈은 신성(神性)이 보이기보다는 총명하게 보이고 서책을 많이 읽은 눈이었다. 먼 시골에서 나를 찾아왔고, 긴요하게 단 둘이서 대화를 요청하기에 조계사 근처의 다방에서 만나주었다.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고향은 마산 쪽이고, 대학시절 불교학생화 활동을 했고, 서울대 법학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선원으로 직행하여 화두공부를 하는 선승이었다.

 

나는 그에게 차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불교계에는 용사혼잡(龍巳混雜)같이 부처님의 법을 전해줄 인재도 많지만, 도적 같고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부처님의 법을 망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휴암 스님을 이해할 승려들이 희소할 텐데….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사회에서 검, 판사가 되던 변호사가 되던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인생을 살면 되었지, 왜 고달픈 승려생화를 하시오?”

 

휴암은 웃으며 “부처님 같은 진리를 깨닫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부처님은 32상과 80종호를 갖춘 분이기에 부처가 될 수 있었지만, 스님은 그러하지 못한 상인데….”

 

커피를 마시며 나와 휴암은 크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같이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싶지 속세에서 처자(妻子)에 얽매여 사는 그런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요. 산속에서 수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걸망 속에서 자신이 쓴 논설문 몇 편을 꺼내놓고 ”불교신문에 게재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80년대 초에는 대한불교 조계종에는 서울법대, 서울대영문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고대, 연대 등을 나온 인재들이 다수 출가하여 선방에서 화두 들어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고 참선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화두공부는 중국 승려들이 창안한 공부 방법이었다. 부처님이 하신 공부는 지구와 우주를 통찰하는 공부를 하였지만, 중국 승려들은 화두공부를 강조하고, 한국의 수많은 승려들이 화두공부를 통해 부처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황금 같은 시간을 내거 보기에는 낭비하고 있었다. 중국은 성리학, 주자학, 등으로 한반도와 일본을 유혹하여 시간낭비를 하게 하더니, 중국 승려들은 “부처되는 첩경”으로 화두공부로 한국 불교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휴암이 써왔다는 논설문을 살펴보니 맹렬히 조계종과 사회 권력에 대한 비판하는 글이었다. 나는 첫째, 불교신문사 발행인이 총무원장이고, 둘째, 당시 총무원에는 매일이다시피 관선기자(官線記者)라는 명분으로 정보요원들이 오전부터 총무원에 포진하여 총무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그의 비판문에는 총무원장이 대노(大怒)와 당시 청와대 등 권부(權府)의 대노할 비판문은 사전에 조심해야 한다면서 우선 내가 읽어보고 수정할 것은 수정해서 불교신분에 게재해주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종로구 견지동 45번지에는 매일이사시피 종앙정보부 불교담당 요원이 출근하여 정보 수집을 노골적으로 하고, 치안본부 정보관, 시경 정보관, 보안사 정보관, 종로서 정보관, 무슨 대공요원 등 6∼7명이 총무원을 놀이터로 삼았다. 그 가운데 보안사와 정보부에서 일부 승려들을 납치하듯 하여 보안사와 중정에 끌고가 인정사정없이 손을 보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2차례나 보안사 등에 끌려가 말도 안 되는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 휴암 스님은 간간히 내게 글을 보내왔고, 때마다 그의 글을 보면서 그가 면벽화두공부 보다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에 취직을 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그런데 청천벽력의 소식이 나에게 전해졌다.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한 진철(眞徹)스님이 내게 알려준 휴암 스님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었다.

 

휴암 스님이 1997년 8월 27일경에 화천 댐 상류의 큰 시냇물 속에 실종되어 죽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휴암 스님과 동행한 진철 스님의 증언에 따르면 선원 수좌들 4∼5명이 큰 시냇가 둑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하다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일부 승려들이 시냇가에 들어가 목욕을 하다가 모두 둑에 나와 쉬던 중 휴암 스님 혼자서 다시 시냇물 속에 들어가 환호하며 자맥질을 하던 증 갑자기 물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돌연 휴암 스님이 물속에서 솟구치며 허덕이다가 다시 물속에 잠겨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방서 대원들과 경찰서 전경들이 출동하여 수색을 아무리 해도 휴암 스님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시 시골의 9순이 다 되는 촌노가 나타나 탄식하는 말은, “물귀신이 죽은 이의 시신을 10km 가까운 화천 댐으로 끌고 갔다”는 의혹의 주장을 했다.

 

휴암 스님이 사라진 큰 시냇가의 수심은 1m가 조금 넘을 뿐인데, 어떻게 해서 물에 빠져 죽고, 시신은 사라져버렸냐는 것이 미스터리이다. 만약 물귀신이 시신을 끌고 10km를 거쳐 1천만 평이 넘는 화천댐까지 갔다면 시신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고 화천댐 속에 사는 물고기들의 어복장(魚腹葬)을 하고 만 것이다. 진철 스님의 증언에 의하면, 휴암 스님의 시신이 없는 허관(虛棺)에 위패를 적어놓고 천도제를 지냈다는 증언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위한 정보수집에는 수액(水厄)을 당하여 죽는 사람은 남녀의 차이가 없었다. 어느 육군 중령은 어느 겨울날 서울 시내에서 술에 만취하여 실종되었는데, 헌병대에서 수색해보니 어느 시골의 보(洑)에서 빠져 얼어 죽어 있더라는 것, 그 술에 취한 중령을 누가 유혹하여 보(洑)에 죽게 했을까. 어느 미모의 여대생은 술을 마신 후 어느 여자 친구를 만난 후 한강 기슭의 물속에 누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 어느 씨름 장사는 역시 술에 취한 후 강 속에 들어가 죽었다는 것, 어느 바다 낚시꾼은 바위에 앉아 밤 새워 낚시를 하는 데, 돌연 바닷물이 해일(海溢)같이 일어나 낚시꾼을 바다 속으로 데려가 버렸다는 것은 흔해 빠진 미스터리이다.

 

어느 명리학자는 목일간(木日干)으로 태어난 남녀가 사주에 수(水)가 태과한데 다시 대운(大運과 연운(年運)이 수왕(水旺)하면 목부(木浮)하여 물속에 비명활사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속에서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살아난 어떤 남자가 나에게 해준 증언에 의하면, 술에 취해 걷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나 유혹하여 따라갔는데, 연못으로 데려가 와락 등 뒤에서 밀쳐 물에 빠졌으나 간신히 살아났다고 나에게 증언했다. 그는 술에 취해서 단둘이 만나는 여자가 인간이 물속의 죽음으로 유혹하는 물귀신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나는 서울 법대를 나온 청정한 비구인 선수행자인 휴암스님이 조계종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세상에 유익한 글을 많이 써주면 한국 불교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기대를 크게 하였는데, 애석한 마음 한이 없었다. 후임스님도 숙명(宿命)은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유일하게 증언하고 선전했던 예수님의 부인이라는 막달라 마리아 같은 여성은 휴암 스님에게는 없는 것 같다. 어떤 여자가 휴암 스님이 화천 댐에서 부활하여 극락으로 승천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아직 없는 것이다.

 

끝으로, 당시 불교계 언론과 사회 언론에서는 휴암 스님의 입적을 알리는 기사를 다퉈 발표하였다. 조계종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인 휴암 (休庵.56) 스님이 법랍 29년으로 지난 23일 낮12시10분쯤 강원도 화천군 해원사에서 입적했다고 보도했다. 휴암 스님은 67년 계룡산 갑사로 출가위승하여 동화사, 은해사, 등 제방 선원에서 선수행을 하였고 “한국불교의 새 얼굴” “장군죽비”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불교 개혁에 앞장서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휴암 스님의 미스터리한 죽음소식을 알려준 진철 스님도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어느 날 밤, 통영 앞 바다의 바위가 있는 절벽에서 걸망에 돌을 가득 담고서 밤바다에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 그는 공주사대를 나온 키가 크고 호남형으로 일부 여성들로부터 고통을 받은 것이 사인이라는 설과, 통영 바다의 물귀신에 유혹이 있었다는 미스터리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여, 물귀신은 정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필자/이법철. 스님, 시인. 이법철의 논단 대표. 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