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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을 국회의원으로 추천한 이유

김창록 경북대 교수 l 기사입력 202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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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64차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에서 윤미향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윤미향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대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비례 국회의원 후보로 추천한 한 사람으로서, A 매체 B기자의 “윤미향은 도대체 왜 국회의원이 됐을까”라는 질문에 답한다.

 

이래서 ‘윤미향’을 추천했다.

 

나는 1997년 무렵부터 20여년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대협과 정의연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윤미향’의 헌신적인 노력과 감동적인 성과를 확인했다.

 

정대협 초기, 일 해내는 양을 보고서 버젓한 건물에 수십명의 상근자가 있을 것이라고 오해받던 시절, 허름한 사무실에서 두세명의 상근자가 열일을 하는 모습을 봤다. 공부모임에 발표자로 초대받아 대접받은 것은 라면 한 그릇과 식은 밥이었다. (참 맛있었다.) ‘윤미향’이 낡은 승합차에 전국에 계신 할머니들께 드릴 각종 물건들을(수요가 각각 다르니 물건이 많다) 가득 싣고 밤길을 떠나는 모습도 봤다. 일본 우익의 공격은 물론이고 국내 우익의 더욱 저열한 공격이 이어지는데도 당찬 목소리로 수요시위 마이크를 잡는 모습을 봤고, 아픈 몸으로 살인적인 일정의 국내외 출장을 거듭 이어가는 모습도 봤다. (‘윤미향’이 강연료를 모두 기부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내가 받은 강연료 중 일부를 기부하지 않은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많이 부끄러웠다.)

 

그 노력들이 쌓여,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1440회의 수요시위가 이어졌고, 전국에 전 세계에 평화비(소녀상)가 세워졌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건립되었다.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도 나왔다. 국내외 청년들의 ‘나비모임’이 조직되었고, 남북교류와 아시아연대회의가 이어졌고, 세계 무력분쟁지역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이 설립되었다. 유엔의 인권기구들에 의해 각종 보고서가 채택되었고,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의 의회와 지방의회에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인권운동가’가 되었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여성인권을 유린한 반인도적 범죄의 문제로, 보편적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물론 정대협과 정의연만의 노력으로, 하물며 ‘윤미향’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떨쳐 일어선 할머니들이 계셨고, 전 세계 시민들의 공감과 열의가 모아졌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성과이다. 하지만 ‘윤미향’은, 1992년부터 있음직한 자리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할머니들이 찾는 ‘윤양’에서 시작해서, 30년 가까이 그 현장을 지키면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인권운동가・평화운동가로 성장했다.

 

나는 ‘윤미향’이 그 경험과 능력을 살려 국회에서 관련 정책의 입법화를 성실히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이것이 ‘윤미향’을 추천한 이유이며, 지금도 추천하는 이유이다.

 

B 기자에게 되묻는다.

 

B 기자는 “환경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경제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대체 단일 목적의 피해자 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돼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정의연은 “일본 정부”라는 “단일 집단”을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데 “그런 단체의 ‘위안부 문제’ 전문가가” 왜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따진다.

 

정대협의 활동이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피해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출범 초기부터 정대협이 주장한 것은 ‘피해사실 인정, 공식 사죄, 진상 규명, 추모, 배상, 역사교육, 범죄자 처벌’이었다. 특히 1993년에 지원법이 제정되어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 생활 지원을 하게 된 이후에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 “역사교육 및 추모사업”, “나아가 전시 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각종 국내외 활동을 전개해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단지 피해자에 대한 생활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를 통해 확인된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알리고 확산시키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대협과 정의연은, 수요시위를 통해 전 세계의 남녀노소 시민들과 공감하고, 국내의 기지촌 ‘위안부’와 연대하고, 베트남전쟁 성폭력 피해자를 비롯한 전 세계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되묻는다. B 기자는 ‘윤미향’이 ‘윤양’이어야 하고, ‘윤양’이어서 국회의원이 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B 기자는 “국회의원 배지가 어떤 노력에 대해 보상하는 훈장과 같은 것인가”라고 묻는다. ‘윤미향’을 국회의원으로 추천한 사람으로서는 커다란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질문이다.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훈장”이라는 “보상”이나 즐기는 한가한 자리인가?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이 너무 천박한 것 아닌가?

 

B 기자는 지난 20일의 이용수 할머니와의 만남에서 ‘윤미향’이 용서를 구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목표 자체가 없던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다. 자신들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30년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10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가진 만남이었다. 되묻는다.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를 “설명”하지 못한 것이 목표가 없다는 증거라는 말인가?

 

B 기자는 “‘위안부 전문가 출신 의원’이 없어서 그동안 정의연이 정부나 국회의 지원을 못 받아왔던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윤미향’이 정의연에 대한 정부나 국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되묻는다. 혹시 잘못 쓴 것 아닌가?

 

무엇이 중한가?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일본군‘위안부’ 운동 30년의 역사를 난도질하는 온갖 칼춤이 난무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 그 해결이 무엇인지, 지난 30년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증언과 통곡, 웃음과 울음, 공감과 확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인간의 30년 활동 속에 어찌 공만 있고 과는 없겠는가? 잘못이 밝혀지면 그 크기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30년의 역사를 2주만에 함부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실황중계하며 싸움 붙이는 것인가? 어설픈 소설 쓰기 위해 멘트 따는 것인가? ‘이해가 안 되요’라며 투정부리는 것인가? ‘언론’이라면 핵심적인 팩트를 체크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역사 속에서 그 의미를 자리매김하고, ‘칼춤’의 실상과 의미를 짚는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관점이 있는 A매체”에도 그 역할을 부탁한다.<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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