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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 소설집 <달뜨기 마을> (목선재) 5월초순 출간

김수종 작가 l 기사입력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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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성 소설집 달뜨기 마을 표지.  ©브레이크뉴스

전태일 50주기 기념 안재성 소설집 <달뜨기 마을>(도서출판 목선재)은, 한국 현대사 100년의 광풍과 노도처럼 굴곡졌던 역사와 노동을, 그리고 이를 온몸 맨몸으로 살아내고 지켜내며 불꽃처럼 살았던 인물들을 9개의 단편 하나하나에 장중하고 감동적인 증언구술문학 형식으로 담고 있다.

 

이 이야기들 속으로, 주인공들 속으로 달려 들어가 이들을 만나노라면, 이들이 타관의 타인이 결코 아니요, 고향 땅 마치 내 아버지와 어머니요, 내 형제와 누이이며, 그렇게 나의 현신과도 같은 혈육임을 울컥하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피와 땀과 눈물 가득했던 이들의 삶과 고난, 아픔과 슬픔, 사랑과 투쟁과 성취를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의 그것인 듯 뜨겁도록 안아 숨쉬게 된다.

 

1988년 전태일문학상이 제정되었고. 이어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온, 그리고 지금은 역사인물 평전의 가히 대가로서 우뚝 선 안재성 작가. 그가 최근 2년간 시사월간지 [시대]에 연재해온 단편 중 9개를 추려 1부, 2부, 3부로 새롭게 엮은 소설집이 <달뜨기 마을>이다.

 

작가는 “대부분 본인이나 유족의 직접증언을 토대로 썼다. 따라서 소설의 등장인물과 사건의 줄거리는 모두 실제사실에 바탕을 두었으며 가독성과 익명성을 위해 약간의 각색만을 거쳤다.”라고 한다. 일련의 단편에서 작가는 실제사실들을 소설적 서사로 깊숙이 끌어들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작가는, 실화와 창작 양자가 소설로서의 균형과 갈등을 유지하도록 작가적 기량과 공력을 능란하게 녹여냈음 또한 분명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것은 작품의 흡인력을 최대화시키는 효과로 귀결되었음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에서 말하기, 이 시차는 언제나 증언을 예술로 만든다.

 

시차 속에서 켜켜이 쌓인 사유 속에서 우리는 객관적인 사료가 말해주지 않는 어떤 목소리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육성의 재현은 증언구술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형식이다. 육성은 ‘있었음’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말한다는 것’의 의미를 실감 나게 드러내 준다.

 

<달뜨기 마을>의 3부 구성은 시간의 순서를 따른다. 1부는 일제강점기에도 소신대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며 소신보다는 생존을 찾아 민초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기 힘들던 시절 남장을 하고 서당을 다니던 이야기와 조선견직의 여공으로 노동운동을 한던 이야기. 그리고 남편은 군인에 의해서 살해되고 오빠는 인민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마지막 여맹위원장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이야기까지 총 3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2부는 5.18 광주항쟁으로 대표되는 군사독재 시절을, 3부는 20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끝나지 않는 노동 운동의 현장을 다룬다. 이 9편의 육성이 들려주는 개인의 역사는 거시 역사를 거꾸로 증언한다.

 

‘마술에 걸린 것 같은 시절’인 한국 근현대사의 말도 못할 좌우익의 싸움과 그에 휘말린 민초들의 삶을 소상하게 되짚는 소설 「이천의 모스크바」를 보라. 화자는 경기도의 작은 마을에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좌익이 되었다가, 우익이 되었다가, 천주교도가 되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게 바로 민초들인 거라’라고 덤덤하게 평한다.

 

거시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무력함과 삶의 아이러니를 적확하게 짚어내는 부분이다. 그것은 반세기의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죽은 이의 숫자이기도 하며(‘보도연맹으로 죽은 3명, 이천경찰서에서 죽은 10명,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끌고 간 천주교인 2명, 인민군이나 국군으로 갔다가 죽은 10명…60가구에서 25명이나 죽다니 끔찍한 일이지’,

 

<달뜨기 마을>은 지금까지 증언구술문학에서 비교적 조명이 덜 되었던 여성인물들의 육성에 집중한다. 노동자로서의 소외가 여성주체의 소외와 융합되리란 건 예상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그 고된 시간을 ‘즐거움’으로 기억하는 방식이다. 1930년대 가혹한 섬유공장의 노동을 그래도 일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두발 자전거」의 목소리는 분명 노동시장에서 애초에 소외되었던 여성의 것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서울 숭인동 조선견직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여성이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취했다. 191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그는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지만 어머니에게 떼를 쓴 끝에 남장 차림으로 서당에 다닌 데 이어 잠업견습소를 수료하고 자전거로 농가를 찾아 다니며 잠업 기술을 가르치게 된다.

 

“나의 두발자전거는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1930년부터는 상경해서 조선견직 노동자로 일하며 나중에 빨치산 총수가 되는 이현상의 지도 아래 파업투쟁을 벌였고, 신간회의 주역이었던 김연진과 결혼도 한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이 부부가 전쟁 중 인민군의 서울 점령 기간 중에는 몸을 숨긴 채 인민군에 협조하지 않고, 1·4 후퇴 뒤에는 아산에 월남민들을 위한 토막집을 짓고 그들을 돌보는 일에 매진했다.

 

전쟁기를 다룬 ‘이천의 모스크바’와 표제작 ‘달뜨기 마을’의 주인공들은 체포와 고문, 투옥 같은 고난을 피하지 못한다. 특히 표제작의 주인공 한연희가 흥미로운데, 그는 다름 아니라 소설가 김성동의 모친으로 인민군 치하 충남 보령군 청라면 여맹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김성동의 소설집 <민들레꽃반지>에 실린 표제작과 ‘멧새 한 마리’에도 작가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안재성의 소설에서는 한결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투사로 등장한다. 어머니가 사회주의 활동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맹위원장을 맡았던 것이라 짐작했던 김성동은 뒤늦게, '공산당 선언'까지 줄줄외는 어머니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넙적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코로나 펜데믹을 목도하는 순간 광주항쟁을 기억하는 「펜데믹의 날」 역시 그렇다. ‘광주가 천지사방 펜데믹의 바다였던 오월의 그 열흘’ 간 항쟁에 나선 여성 공장 노동자들은 도청 광장에 모여든 2만 여명을 먹이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먹밥을 만들고 국을 퍼 날랐’다. 즐기는 것, 그리고 먹이는 것. 그것이 그 시대 여성들이 쟁의에 참여하는 방법인 동시에 ‘노동운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라 말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첫사랑 순희를 찾아서」의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의 이름이기도 하다(‘순희를 잊은 건 아니었어요…언젠가 세상이 좋아지면, 민주주의가 이뤄지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뿐이었지요’. 살아남아 기억하고, 기억하여 말하는 것. 그것은 영웅도 지사가 아닌 민중들이 역사를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금 더 시간을 끌어당겨, 2000년대 여성 노동을 비추는 「캐디라 불러주세요」를 보자. 수십 년을 캐디로 일한 화자는, ‘내 생에 가장 빛난 순간’을 부당하고 비열한 골프클럽에 노동쟁의로 대항한 끝에 얻은 수인번호 111번을 달게 된 순간이었다고 재차 말한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부여한 번호 앞에서 그녀는 당당하다.

 

변호사가 아니라 동지라고 불러달라는 변호사의 말에 ‘어찌나 귀여운지 감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웃었’다는 그녀의 웃음은 공장의 웃음인 동시에 광주의 웃음이기도 하다.

 

소설의 힘은 서사에 있다. 굽이치는 산의 능선, 굽이치는 강의 물결처럼 사건과 인물을 휘돌아 감으며 내달리는 서사야말로 소설의 맛이요 멋이다. 정수다. 특히나 소위 역사소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특히 <달뜨기 마을>은 서사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인류를 마의 질곡에 빠뜨렸던 20세기 초반 식민지시대부터 시작해 현재 시점인 21세기 초반까지 100년간, 한국인들은 모진 고난 속에서도 경이로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냈다. 비판의 정신, 저항의 정신 그리고 공동체의 정신이 깔려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책은 지난 100년 한국의 놀라운 변화를 주도했던, 그러나 주목받지도 존중받지도 못한 민초들의 삶과 투쟁을 그린 단편소설들로 이뤄졌다."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달뜨기 마을>의 저자인 안재성 작가는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성트로이카』, 『황금이삭』, 『연안행』, 『사랑의 조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명시』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또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실종 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윤한봉』 등의 평전, 『한국노동운동사』, 『청계 내 청춘』, 『타오르는 광산』 등의 노동운동 관련 책,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등의 역사책을 펴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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