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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더불어’ 분노한다고...

이헌영 소설가 l 기사입력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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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훈은 괴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로 올라가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명문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2년간 ROTC 군복무를 마치고, 다음 다음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바로 [법무법인으뜸]에 스카우트 되어 2년 반 정도 변호사로서 활동하다가 곧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4년 정도 법률을 공부하여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한국 [법무법인으뜸]을 설득하여 미국지사를 설립하여 맹활약하게 됐는데, 그중 가장 유명했던 사건은 한국의 중견기업이 글로벌투자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키코 라는 파생상품에 대한 소송사건을 맡아 천여 명의 변호사를 거느린 공룡로펌과의 전쟁에서 끈질긴 싸움 끝에 승소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크게 보도했고 특히 경제지들은 1면 톱으로 특집 보도했다. 

 

장훈은 그곳에서 우연히 한국의 고향 괴산에서 온 전정애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장훈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장훈의 2년 후배로서 장훈을, 고향에서 부터 잘 알고 있었다. 장훈은, 어렸을 때부터 출중한 외모에, 공부도 잘 했을 뿐만 아니라, 사교성도 남달라서 거의 모든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게다가 운동신경도 남달라서 각종구기 종목은 물론, 단거리나 장거리 같은 달리기도 잘했다. 그러한 장훈의 이름이 2년 후배였던 전정애의 마음속에 어렴풋이, 자리 잡게 됐던 것이다. 게다가 장훈은 이미 고국에까지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 돼 있었다. 

몇 번의 만남과 몇 번의 저울질 끝에 둘은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딸을 얻고 그 딸아이 유경이가 6살이 되던 해, 가을 그들은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법무법인으뜸]에서 마련해주겠다는 강남의 아파트를 사양하고, 고향 괴산읍내에서 가까운 정용리라는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제법 넓은 시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높진 않지만 몇 개의 산들이 어우러져 마을을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정작 그가 태어나고, 지금도 그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허 씨들의 집성촌인 몽촌리는, 그곳에서 6km를 더 들어 가야하는 산골에 있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 모든 것이 좀 더 편리한 읍내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했다.

 

▲ 이헌영     ©브레이크뉴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그의 행보와 더불어 그가 다음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장훈은, 나들이를 시작 한 첫날, 이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을 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라고 해도 될 만큼, 노인뿐이라는 것과, 그 노인들 모두가 겉보기와 달리,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가 아무리 수재라고 이름이 나고, 명문대학을 나온 변호사이고, 유학을 다녀오고,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노인 한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들이 첫날, 제대로 알아 차렸다. 어설픈 쇼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챈 장훈은, 바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가 쌓아온 지식이나 경력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 된 마음뿐이라고, 확신했다. 진실, 이보다 더 좋은 처신은 없다.                 

장훈은 약 2년간을 꼬박 괴산, 진천, 음성, 지역의 마을들을 찾아 다녔다. 당일치기를 주로 했으나, 분위기가 익으면 일박도 하되, 한 지역을 쭉 훑는 방법을 피하고, 어제는 진천의 어느 마을을 가면, 오늘은 음성, 내일은 괴산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마을 한곳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방법을 턕 했다. 

그는 미국에서 타던 오래된  BMW를 직접 운전해서 다녔는데, 처음에는 국산 소형차를 구입하려 했으나, 그 것 또한 진실 게임에서 어긋난다는 것을 생각해내곤 BMW를 당당하게 몰고 다녔다. 

촌 노, 그들의 입을 통해들은 지금까지의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을 꿈꾸는 자들의 행보는, 장훈과는 많이 달랐다

허름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논이나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차를 세우고, 논두렁까지 뛰어가, 마치 십 년 지기라도 되는 양 흙투성이의 손일지라도 덥석 두 손으로 잡아 흔들며, 반가운척하고 막걸리라도 권할라치면, 거리낌 없이 받아 마심으로써 농부들의 처지와 사정을 잘 이해하는 자상한 사람, 그리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영악하게도, 그것이 진실이 아닌 겉치레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아! 글쎄, 우리를 바보로 안다니깐!”

장훈은, 약 2년간 700여 곳의 마을을 다니며, 한 마을에서 최소 5시간 이상 머물며, 그들과 함께했는데 술은 운전을 핑계로 한잔도 마시지 않았고, 손발을 걷어 부치고 논밭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을 돕는 등의 어설픈 쇼 짓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놀았다. 아이들과 물고기를 잡든가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어릴 적 기억들과 놀았다. 

남의 밭의 오이, 토마토, 가지, 그리고 대추, 밤, 감,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따먹으며 넉넉히 따와서는 마치주인이 하인에게 나누어주듯 일하고 있는 농부들에게 돌리며, 생색을 내기도 하고, 한낮에는 나무그늘에서 오수를 즐기기도 했다. 

장훈은, 새참이나 끼니때는 어김없이 나타나서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잘 듣기도 했지만 자기의견도 스스럼없이 말을 했는데, 그러다보면 의견충돌도 있었고, 때로는 자신의 옛일 즉, 변호사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나 미국생활 얘기 등 자랑이 될 만한 얘기도, 눈치 없는 사람마냥 거침없이 풀어 놓았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소형 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했다. 이야기를 많이 하고 많이 듣고 유쾌하게 놀면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 때가되면 인사를 변변히 나누지도 않고 BMW를 몰고 마을을 떠났다. 

노인 농부들은 그러한 그를 어이없어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장훈이 정용리에 정착한지 2년 9개월 만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곳의 선거 판세는, 선거 때마다 엎치락뒤치락이었다. 

지금 현역의원은 여당인 공화당의 고영운이고 먼저 번 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의 김성훈이 이겼었고 그 먼저 번 선거에서는 여당의 고영운이 이겼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현의원인 공화당의 고영운의원과 민주당 전의원인 김성훈이 맞붙었는데 거기에 장훈이 무소속으로 끼어들었다. 그 외도 무소속후보가 1명 더 있었다. 

장훈은 후보등록을 하고 사무실을 따로 차리지 않고, 정용리 집의 거실을 사무실로 사용했는데 탁자에 별도의 전화 1대와 팩스 1대 메모지등이 전부였다. 

도움을 자청한 사람이 여럿 있었으나, 완곡히 사양하고 아내와 서울의 로펌에서 있을 때, 일을 도와주던 사무실 직원 1명으로 진용을 꾸렸다. 

그는, 각 면소재지에서 열리는 합동 연설회에만 참여할 뿐, 어떤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 현수막 하나 걸지 않았다. 

하지만 첫 번째, 여론조사에서 그는 노련한 정치가인 두 여야 의원을 크게 뛰어넘는 52%의 지지율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그도 놀랐다. 두 번째 여론조사에서는 55%의 지지율을 얻었고, 그 이후의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지지율은 올라갔고 마지막 조사에서는 59%를 얻었다. 그리고 선거개표가 끝났을 때 그의 득표율은 62%였다 전국에서 7번째로 높은 득표율이며 무소속후보로서는 1위였다. 

선거가 끝난 후, 장훈의 돈 안들인 선거운동방법과 합동연설장면이 화제가 되어 신문과 방송에서도 보도가 되었다. 그의 합동 연설 장면은 내용보다 방법에  특색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허장훈입니다.  

제가, 이번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는 했지만, 정치를 잘 모릅니다. 이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로 가서 공부를 하고 미국 생활을 십여 년하고, 다시 이곳으로 와서 정착한지 2년 반이 조금 지났습니다.  변호사 생활은 한국에서도 하고 미국에서도 했지만, 국회의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법률지식으로는, 국회의원은 지역의 대표로  중앙정치를 하는 사람입니다. 국회의원은 자기지역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각 지역의 일은 도지사, 군수, 면장, 등의 지자체장님들이 책임지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지역을 위한 특별한 공약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도지사, 군수, 면장, 등 지자체장님들과 자주만나서 지역발전에 대하여 협의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그리고 중앙무대인 국회에 들어가서 나라전체와 국민전체를 위해서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사심 없이 냉정하게 하겠습니다. 세 가지 약속을 하겠습니다. 

첫 째  어떠한 경우에도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겠습니다. 

두 째  요정이나 룸, 같은 술집과 고급호텔행사는 가급적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세 째  지역구민들의 경조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며 화환도 보내지 않겠습니다.

4년 동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렇다고 온종일 일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매일 산책을 즐기며 가정의 행복을 지키며 취미생활도 잘 챙기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꼭 고백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 음성, 진천, 괴산에서의 국회의원은 이번 한번만 하려고합니다. 다음번, 국회의원선거 때는 서울에서 도전을 하려고합니다. 중앙 무대에서의 활약을 지켜봐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마는 주변이 어수선하여 잘 못들은 분들을 위해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곤 천연덕스럽게 “안녕 하십니까? 허장훈입니다.”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연설을 반복했는데 시간도 제한시간인 20분의 반밖에 안 되는 10분 만에 끝내고 뚜벅 뚜벅 걸어내려 왔다.  

그리고 자신의 연설문이 인쇄된 종잇장 한 장씩을 나누어주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은, 너나없이 알뜰하게 챙겨갔다. 연설문을 받아간 사람들, 그들은 그것을 혼자만 읽진 않았을 것이다 

 

▲ 이헌영     ©브레이크뉴스

 

장훈의 이곳 국회의원 활동 중 가장 큰 것은, 도로연결이라는 오래된 숙원사업을 예산확보에서 착공까지 해냈다는 것일 것이다 

사실 장훈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이 지역은, 나라의 중심지임에도 접근성에서 전국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었다. 접근성이나 연결성이 떨어지는 불편한 곳이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전 국회의원들도 이점을 들어 중앙 정부에다 건의를 하고 예산을 따보려 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었다. 

여야의 양당으로부터 강력한 입당 권유를 받는 무소속의 장훈은 자신의 입지를 충분히 활용했지만, 첫해에는 실패했고 두 번째 해에는 기어이 예산배정에 성공했다. 

그의 임기 마지막 해 3월에는 착공식을 할 수 있었다. 

착공식이 끝나고 얼마 후 그는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했다. 

민주당을 선택함으로써 여당에게서는 질시를 받았지만, 야당에게는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다. 허장훈이 본격적인 중앙정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장훈을 그의 전공대로 [법제사법 위원회]에 배정해 주었다. [법제사법 위원회]에서의 그는 서서히 존재감을 부각시켜 나갔다. 

그의 특징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되 미루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법안이던 심의를 할 때는 여야를 따지지도 않고, 발제자나 발제 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심의했는데, 그것은 당의 입장과 달라도 많이 다른 것 이었다. 

그래서 같은 민주당의 다른 법사위원과 의견충돌이 있어 당대표실에 불려가 질책을 받은 일도 있었는데,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설명하여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설득했고, 대표는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또는, 장훈의 교과서적인 열정에 질렸는지,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아주므로 일단락 된 경우도 있었다. 

 

다음해, 치러진 선거에서 그는 또, 한 번의 바람을 일으키며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됐다  

종로구는 여당인 공화당의 텃밭으로 연거푸 두 번을 큰 표차이로 당선한 박상원의원이 버티고, 있어 야당은 아예 포기하다시피 한 곳으로, 누구도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훈이 공천을 신청했다. 장훈은 그곳에 어부지리로 공천을 받았는데, 멋지게 당선 됐을 뿐만 아니라 득표율 58.2%를 얻어 주변을 어리벙벙하게 했고, 그것은 그의 선거운동을 지켜 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그의 선거운동이라는 게, 현수막 한 장 걸지 않고 운동원도 한명 없이 오로지 혼자 어깨띠도 두르지 않은 채, 온 종일 선거구역을 거니는 것으로, 걷다가 장훈을 알아보고 악수를 청하는 사람과 악수를 나눌 뿐,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급할 것 없는 걸음걸이로 이 골목, 저 골목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는 것   뿐이었다. 

사실 종로선거구는 지역이 작아서 전체를 돌아다녀도2∼3일 이면 충분했으므로 선거운동기간동안 족히 7∼8 번 이상 둘러보았으리라. 

개인선거 홍보책자도 없었고, 선거관리위원에서 공식적으로 배포하는 선거 홍보물의 공약 란에도[특별히 없음]이라고, 씌어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여론 조사였다 

여당의 현 정책위원장이며, 총4선 의원으로서 이곳 종로에서 내리 두 번을 큰 표차이로 당선된 박상원의원을 상대로, 야당의 풋내기가 선거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여론 조사에서 37%를 얻는 이변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독특한 선거운동이 매스컴에 소개되면서부터, 지지율은 뛰었고 점 점 매스컴의 취재와 보도가 늘어나면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되어, 길을 걷노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이 벌어졌는데, 점점 많아져 길을 걷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지지율도 점점 올라 마지막 여론 조사에서 63%의 지지율을 얻었는데 개표결과는 그보다 조금 못한 58.2%를 얻어 당선됐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후, 장훈은, SBS방송국의 인기 토크쇼에 출연하여 선거운동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의 대답이 명쾌했다. 개그맨 출신인  사회자가 첫 질문을 했다.  

“허 의원님! 이번 선거에, 공약도 없이 출마를 하셨다고요? 정말이십니까?”

장훈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공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사회자가 크게 입을 벌리며 공감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때 장훈이 다시 말했다. 

“지난번, 고향에서의 선거 때도, 지역구를 위한 공약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본분은, 출신지역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지역 대표로 중앙정치를 하는 겁니다. 더구나 지방도 아닌 종로구에서 제가 특별히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종로구는 국회의원차원에서 특별히 할 순 없고요. 정부나 서울시 차원에서 하는 곳이니, 제 공약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당선시켜 주잖아요. 하하하!” 

방청객들이 공감하며 소리 내어 웃었고 사회자도 웃었다. 

사회자는 다시 질문했다.

“허 의원님! 운동원도 없고, 현수막도 걸지 않고, 혼자 걸어 다니시기만 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선거비용은 총 얼마나 드셨습니까?”  

장훈이, 멋쩍은 듯이 잠간 망설이다 대답했다. 

“평소의 하루보다 선거기간 하루가 돈을 덜 썼습니다. 실제로 사무실도 따로 얻지 않았으니,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심 값을 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하하하!…평소보다 덜 쓰게 되더라고요.” 

방청객들의 와아! 하는 함성과 박수가 합창으로 쏟아졌다. 

사회자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그래도 최소한 이름자가 쓰인 어깨띠는, 둘러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 이름, 다 알고 있던데요. 사회자님은 그때, 제 이름 몰랐습니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붙이는 벽보에 이름이 나와 있고 그 벽보가 수없이 많이 붙어있는데 굳이 이름 띠를 두를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름?… 몰랐는데요. 하하하!…언제쯤 승리를 확신했습니까?”  

사회자는 한방 먹었다는 듯 눙치며 말을 이어갔다. 

장훈은 왼손을 입술에 얻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걷기 시작한 첫날 확신했습니다. 운동선수가 게임에 임할 때, 오늘은 이길 것 같다. 아니면 오늘은 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을 느낀다고 들었는데, 걷기 시작한 첫날,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있더라고요.” 

 

장훈은, 인기연예인 보다 더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되었고, 당에서도 그의 인기를 인정하여, 당 대변인으로 임명해 주었다. 

대변인 시절이야 말로, 장훈을 정치인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했고, 훗날 대선후보로 지목되어 오늘에 이르게 한 절대적인 시절이었다.   

지금까지의 대변인 논평은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당의 모든 것들을 무조건 싸잡아 반대하고 비하하고 파렴치한 것으로 몰아세우고 ‘국민과 더불어’ 분노한다고 하는 것이 논평이라면 상대당의 대변인은 그 논평에 이자까지 붙여서 잘못된 모든 원인은 저쪽 당에 있고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일이라고 몰아세우며 ‘국민과 더불어’ 분노한다고 해야 유능한 대변인 것처럼 돼 있었다. ‘국민과 더불어’는 절대 빠지지 않는 명 대사였다.  국민들은 의아했다.

<도대체! 왜? 저 따위로 논평 하는 거지?>

장훈의 논평은 사뭇 달랐다 

정부가 공무원 연금제도개혁 안을 내 놨을 때, 여당의 대변인이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극구 지지하는 논평을 내 놓은 뒤 

야당의 논평이 나와야 되는데, 감감 무소식이자 기자들이 대변인실을 찾아 논평을 요구하고 나섰다.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한참동안 묵묵히 듣고만 있던, 장훈은, 천천히 걸어 나와 기자 브리핑 장 단상에 섰다. 

 “정부가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발표하고, 이제 겨우 몇 시간 지났습니다. 재빠른 논평이 중요 합니까? 올 바른 논평이 중요 합니까?… 정부가 그 많은 공무원 퇴직자들과, 재직자들의 어마어마한 저항이 예상 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혁안을 내놓을 때는, 얼마나 오랜 연구와 고심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야당도 그 개혁안을 꼼꼼히 살펴보고, 또, 연구해보고 그 후에 논평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조만간, 우리 야당에서도 그 개혁안에 대한 심의 또는, 연구를 위한 위원회 같은 것이 꾸려 지겠지요. 꾸려지고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 후에 여러분에게 그 결과를 발표 해드리겠습니다.󰡓

이 브리핑 장면은 TV 뉴스를 통해 고스란히 전파를 탔고, 장훈은, 또 한 번 뉴스의 각광을 받으며 중심에 서게 했다 

그날 일에 대하여 당 중진들은 불편해 했고, 그의 행동을 인기 얻기에 혈안이 된 행동으로 몰아세우는 의원도 있었지만, 각 언론사의 반응과, 네티즌들의 열열 한 지지 댓글에 또, 한번,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주일 후에 대변인 브리핑 사건에서 더 커졌다. 기자들이 공무원 연금개혁안에 대하여 야당의 심의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가를 질문했는데, 허장훈 대변인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우리당에서는 아직 어떤 심의를 위한 기구도 구성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한 사전모임도  없었습니다.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브리핑 모습도 TV뉴스를 통해 전 국민이 알게 됐고, 야당은 일을 할 생각도 없고, 아무 생각이 없는 정당으로 비춰지게 되자, 국민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네티즌들의 댓글로 나타나게 됐는데, 당 안에서는 대변인을 경질하자는 의견이 분출하는 한편, 그날 오후, 늦게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어떻게 심의할 것인가에 대한 1차 모임을 갖게 되고, 그 이후 어렵사리 위원회가 꾸려지게 되었다. 결국 대변인에게 등 떠밀려서 일을 시작한 셈이 됐다. 

다음날 아침 최고의 부수를 발행하는 신문은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당을 이끄는 대변인] 이라고 뽑았다.

 

 4년 후, 장훈이 종로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3선의원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그때부터 당 안팎에서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야당의원 몫이 된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며 관록을 쌓아갔다. 그러나  당은 대선에서 연거푸 두 번씩이나 패배하고도 주도권 싸움에 몰두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다. 

121석이었던 의원 수는 96석으로 줄어들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모두가 사퇴를 하면서도 계파 싸움은 그치질 않았다. 

장훈은, 국회의원 공천과정에서부터 유심히 정치판을 지켜보았다. 모두가 세력다툼이었고, 세력 다툼에서 이기려고 끼리끼리 뭉쳤다가, 상황에 따라서 갈라 서기도하고, 다시뭉치기도 하는 등, 민망한 짓을 천연덕스럽게 해댔다.    

일반 국민에게는 인기는커녕 원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원내에서는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계파를 이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그들 모두가 어이없게도 한 결 같이 대통령을 꿈꾸고 있었다.

장훈은, 어느 계파에도 참여치 않고 중립을 지켰다. 

요정이나 룸살롱 등의 술자리는 아예 가지도 않았고, 호텔 모임도 불참했을 뿐만 아니라, 저녁 8시전에 귀가해서 운동도 집에서 했다. 술은 집에서 아내와 조금씩 하고 외부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장훈의 친화력은, 누구하고도 벽을 쌓진 않았다. 

다만 당내에 확실하게 정해진 우군이나 측근이 없을 뿐이었다.  

당 내에서는 기반이 모호했지만, 당 밖의 국민들에겐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 지지는 점점 상승곡선을 긋고 있었다. 

▲ 이헌영     ©브레이크뉴스

 

 

또, 다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몇몇 젊은 의원과 여러 시민단체 그리고 네티즌들이, 대선후보경선에 나설 것을 주창했지만, 당내 사정은 장훈에게 절대불리 했고, 장훈 자신도 아직 때가아니라고 판단했다. 솔직히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자신의 얄팍한 인기를 믿고 경선에 임했다가는, 당 대표인 주류파 김기호 의원과 비주류 정해찬의원의 싸움에 끼어서 들러리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확실히 알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제대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선결과, 정해찬의원이 당 대표인 김기호의원을 꺾고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결정됐다. 분명히 불리하다고 했었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경선과정에서 계파 간의 치졸한 다툼으로, 정해찬후보는 우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대선에 임했다.

장훈은, 정치판이 요동치는 광경을 객관적으로, 면밀히 관찰했다. 여당의 프리미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정상적이라고 인정하고 관찰했다. 다음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하려면, 월등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처음 여론조사에서 장훈이 속해있는 야당의 정해찬후보는 20%를 겨우 넘기는 지경이었으나 여당 민준식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와, 아내의 땅 투기문제가 불거지면서, 반사이익을 얻어서 두 번째, 여론조사에서는 29%를 넘겨 당 안팎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그이후로도, 여당의 민준식후보는 실수를 연발했다. 

특히 아내의 실언과, 아들의 오버는 민준식후보의 지지율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이젠, 누구도 장담할 수없는 안개 속 판세가 되는 지경이 됐다. 

각 여론조사 기관마다 내놓는 지지율 결과가 제각각이어서, 각 당의 선거 캠프는 서로 유리한대로 해석을 내놨다. 

장훈은, 언론 플레이에서도 여당의 노련함과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월등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당을 비호하는 언론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단단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역전 승리를 장담하던, 정해찬후보는 결국 지고 말았다. 

49%대 45%로 4%차로 졌는데 당으로서는 내리 3연패였다.   

당은 침울했지만, 한편에서는 그래도 선전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당 안팎의 사정과 정해찬후보의 개인적인 인기를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진단이  옳은 진단일 것이다. 

장훈은, 여당의 프리미엄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정해찬 후보의 45%득표에서 보듯이 잠재적인 야당세도 상당하다는 판단을 했다. ‘잘만 하면 가능하다!’ 

 

장훈이 다시 4선의원이 됐을 때, 그의 나이 52세가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부터, 기자들이 다음 대선에 대한 장훈의 의중을 물을 때마다 “에이!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하며 말을 피하긴 했지만, 거기에는 대선에 대한의지가 담겨있음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 

장훈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야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마다 무소속의원인 정관영 의원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을 쓸어 내려야했다.    

정관영 의원은 기업인일 때부터 대선후보로 거론됐었던 인물로,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무소속임에도 장훈보다 항상 멀찌감치 앞서있었다. 무소속으로 서초구에서만 두 번을 연거푸 당선된 인물로, 장훈보다 3살이 더 많은55세였다. 

여당 텃밭인, 서초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었는데, 첫 번째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되더니 두 번째도 쉽게 당선된 인물이었다. 

 

▲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그는 여당성향의 발언도 했다가, 야당 성향의발언도 했다가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인기는 묘하게 상승했다. 

여당성향의 발언을 할 때는, 보수층의 인기를 얻다가 야당성향의 발언으로는, 진보 층의 지지를 받는 묘한 인물이었다. 

바로, 그 정관영 의원이 어제 오후에 예고도 없이, 그의 종로사무실을 찾아와, 여직원이 찻잔을 놓고나가는 순간, 안주머니에서 문제의 그 편지봉투를 꺼내 탁자 밑에 넣으며, 재빨리 속삭이듯,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비밀 편지입니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한쪽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어! 이 그림은 [신선미]씨 그림 같은데요?” 하였다. 

“예! 맞습니다[신선미]작가 그림 맞는데…어떻게 잘 아시네요.” 

하고 답변하면서도 탁자 밑의 봉투에 신경이 쓰였다 

“이 화가 그림들은 재미있어서 기억합니다. 제목이[그녀가 잠든 사이]인데 그녀가 잠든 사이에 그녀를 꼭 닮은 요정들이 등장해서, 장난치고 노는 그림이었는데, 재미있어서 도록만 하나 산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쯤엔, 이미 양측의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처음부터 열려있었던 문으로 들어와, 도열한 채로, 정관영의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장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예고도 없이…” 하고 말을 흐리자 

“허허허…미안 합니다. 그냥 의원님 사무실을 한번보고 싶었습니다.”

하고는 이어서 의미 있는 미소를 띠우며 지나가듯이 말했다. 

“의원님은 제방 한번 보고 싶지 않습니까? 제방도 한번 보러 오십시오.”

장훈의, 대답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 예…가야죠! 가겠습니다.”

그리고 장훈이 보좌관들과 비서관들을 소개했고, 관영은, 수행비서관을 소개했는데, 자기들끼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 후, 잠시 앉아있었으나 별 특별한 것 없이 가족얘기를 조금하다가 관영은 돌아가겠노라고 했고, 장훈은 문밖까지 배웅하는 것으로 관영의 방문은 막을 내렸다. 

장훈이, 방으로 들어오자 보좌관들과 비서관들이 따라 들어와 그중 수석보좌관 김진용이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쩐 일로 오셨답니까?”

“글쎄!…그냥 오셨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해야지 뭐”  

장훈이, 시큰둥하게 대답했고 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맥없이 모두 나가자, 탁자 밑의 봉투를 집어 속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계속> book365@daum.net

 

*필자/이헌영

소설가.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2017)을 발표. 2018년 한국예총 <예술세계신인상에 장편소설 은미야 괜찮아 노래해!가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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