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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란 게, 참으로 오묘한 것이어서...

이헌영 소설가 l 기사입력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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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영은, 경기도 포천의 평범한 가정에서 6남매의 세 째로 태어났다. 관영의 아버지는 한학공부깨나 한 선비쯤으로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가, 호기롭게 농지를 모두 팔아 서울로 올라갔을 때, 나이 38세였고, 관영이 8세였다. 서울에서 겨우 3년 만에 모든 재산을 잃고, 빈 털털이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고향에 돌아 온지 3년이 채 못돼서, 어느 날 갑자기 심장 마비로 죽었다. 

 

관영의 어머니는, 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는 무지한 사람이지만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다. 농사철에는 품삯일도하고 십리도 더되는 읍내에 가서 식당일이나 청소, 세차,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했다. 두 형들은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관영도,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용케도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묘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영이 서울에서의 단 3년간의 짧은 생활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귀중한 기간이었다. 서울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된 관영이, 학교와 집을 오가는 중간쯤에, 외가의 친척 중 아재뻘 되는 사람이 헌책방을 하고 있었다.

 

▲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전에 이미 아버지로부터 한글은 물론 천자문까지 배운 관영이, 그 책방을 드나들며 책 읽는 재미에 빠져 들게 된 것이다. 그 헌책방에는 만화책은 없었기에 만화책에 빠져들 나이에 관영은, 어린이 명작소설 같은 소설로 책읽기를 시작했다. 아재뻘 되는 주인은, 어린 관영에게 가게를 맡기고 볼일도 보러 다녔고, 당구도 치러 다녔다. 

 

관영은 거의 매일 그곳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책을 읽고, 집에 갈 때는 책 한 두 권을 가방에 챙겨가서, 집에서도 늦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변소에 갈 때도 책을 들고 갔다. 그런 관영을, 어머니는 눈 나빠진다고 나무랐지만, 아버지는 흐뭇해했다. 

 

어린이 명작소설을 읽던 관영이 얼마 후 부터는, 어른들 이야기 소설도 가리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리거나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TV가 없던 때이니만치, 책에 빠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시기였던 것이다. 어린 관영에겐 책이 신세계였던 것이다. 여하튼 읽을거리가 있었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여한 없이 읽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서울생활을 끝내고 포천으로 돌아왔을 때, 관영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읽을 책이 부족한 것이었다. 

 

학교공부는 하지 않아도 늘 1등 이었다. 

 

관영에게 학교공부는 시시하게 느껴졌고, 아이들은 너무 어려 보였다. 읽을거리가 늘 부족했던 관영에겐, 학교 도서관은 빈약했고 어른들 소설을 읽던 그에게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닥치는 대로 읽을거리를 찾아 읽었다. 

 

그가 5학년 되던 해, 초여름 쯤 일이었다. 

 

담임인 여선생님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 별 흥미를 못 느끼고, 무심히 창밖에 눈길을 두고 있던 관영이, 저학년 교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합창소리에 관심이 갔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거리다 노트에 노래가사를 적어보았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관영은 노래가사가 괴이하게 생각 되어졌다. 

 

온통 생각에 젖어, 선생님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수업이 끝났다. 

 

교실 문을 나서려는 선생님을 다급히 불러 세우고 관영이 다가갔다. 영문을 모르는 선생님은, 관영을 돌아보고 눈으로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다. 순간 관영이, 망설이는 빛이 역력하자 여선생님은 눈치를 챘다. 관영에게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생겼다고 직감했다. 

 

“교무실로 가서 얘기 할까?”

관영이 얼결에 대답이 나왔다. 

“네”

 

선생님은 관영의 팔을 잡고 교무실로 향했다. 

관영은, 난감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후회했으나, 이미 교무실까지 들어왔고, 선생님이 당겨온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민망함으로 가득차서 고개가 숙여졌다. 

선생님은 관영에게 큰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되어 안쓰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정관영! 무슨 일이 생긴 거니?…선생님한테 말해봐! 괜찮아.”

다정하기 그지없는 속삭임이다. 

관영이 더욱 난감해져 고개가 더 수그러들었다.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건 역시 선생님이다. 

“괜찮아, 정관영!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게.”

관영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이 흘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니?…어머니가 어디 편찮으시니?”

채 말이 끝나기 전에 관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런 거 아니고요.”

“아니야? 그럼 무슨 일루…이사 가니?”

“아니요! 그런 거 아니고요.”

“그럼 무슨 일이니? 아유 답답해! 너답지 않게 왜 그러니?”

선생님이, 역정 아닌 역정을 내자 관영의 마음도 다급해졌다. 

“아까…저쪽 2학년인가 3학년들이 부르던 노래가…이상해서요.”

“노래가?… 무슨 노래가?”

선생님이 어이없어 하면서도 더욱 궁금해져 다그쳤다. 

관영이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하는 노래가사가…”

“그 노래가사가 왜? 고추 먹고 맴맴, 그거 말이지?”

 

장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떠듬거렸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다음에,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이렇게 돼있는데…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뭐가 이상하지?” 

“아버지를 얘기했으면 맥락상…”

“맥락상? 야!…너 그런 말도 쓸 줄 아니? 맥락상이라니!” 

“네! 맥락상 아! 아! 문맥상…문맥상이 맞겠네요. 아버지 얘기가 나왔으면 다음엔 문맥상 어머니 얘기가 나와야 되는데…”

“응?… 그러니까 아버지 얘기를 했으면…그렇지! 어머니 얘기가 나와야지, 그렇지만 할머니 얘기가 나와도…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어머니 얘기가 나오게 되면…그게…아버지가 나귀타고 장에 가신 뒤에,…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한테 간 것이 되니까”

순간 선생님 표정이 확 달아올랐다. 

“아이!… 애! 애!…너 지금 무슨…?”

 

관영이, 다급하게 말을 자르고 빠르게 내뱉었다. 

“그리곤, 다음 구절이 고추 먹고 맴맴 이잖아요. 고추는 남자 거를 말하는 거잖아요?…이게, 동요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어머머머! 애!…어머머머!…너!…가! 빨리 가! 빨리!…그냥 빨리 가라니까!”

선생님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을 내려다보았고, 선생님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한 현실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이 영문을 모른 채, 일제히 돌아보았고, 관영은, 의문의 눈길들을 따갑게 느끼며,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관영은 엄청난 낭패감에 빠졌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 모양이란 말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다음날 관영은 권영식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관영이 교장실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마음이 철렁했다. 

막막했다. 그러한 관영을, 교장은 부드럽게 맞이하며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관영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자 교장이 말했다. 

“야단을 치려는 게 아니고, 칭찬을 하려고 불렀으니 고개를 들어요.”

관영이 귀를 의심했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항상 존대 말을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듣기는 처음이고, 그 내용이 칭찬을 하기 위해서라니, 믿어지지 않아서 고개를 살짝 들어 교장을 보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관영 학생!…정말 대단해요 그 노래 가사의 내용을 유추해서,… 유추한다는 뜻, 알지요?”

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해요. 나도 그 가사를 꼼꼼히 살펴봤더니, 정말 이상했고 2절 3절은 괜찮은데 1절 가사가 딱 오해받기 쉽게 돼 있었어요. 작사를 하신분이 윤석중이라는 분으로[낮에 나온 반달]하고 [퐁당 퐁당]하는 노래 말도 지으신, 아주 훌륭하신 선생님이에요. 그 노래 다 알지요?” 

 

관영이 또,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마, 그 선생님도 이런 생각은 못했을 거예요. 사실 담배 먹고 라는 가사도 동요에는 덜 어울리지요. 그렇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가 담배 피우시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한번쯤 어른들 몰래 종이를 이렇게 말아서 피워보잖아요.… 학생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던데, 언제부터 얼마나 읽었어요?”

그제야, 관영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이 서울에서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것과, 지금까지의 책 읽기 과정을 더듬거리며, 얘기했다. 교장은 앞으로도 책 많이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선생님들은 관영을 볼 때마다 싱글싱글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정관영! 허허! 참!…그놈 ”

 

학생들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그 사건으로 선생님들에게는 유명한 존재가 됐다. 

 

관영이 다시 교장실에 불려간 것은, 해를 넘겨 졸업을 얼마 안 남겨놓은 때였다. 관영이 주춤거리며 교장실로 들어서자, 교장 선생님이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정관영학생! 이번에 중학교원서를 안냈던데…왜? 안냈어요?” 

관영이, 순간 가슴속으로부터 욱하는 것이 올라왔지만, 꾹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가난이 할 말을 못하게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교장 선생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원서를 냈어요. 일단 시험만이라도 봐요 시험을 봐서 3등 안으로만 합격하면 입학금과 수업료가 모두 면제 되니까, 일단 시험만이라도 보도록 해요.”

관영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한 채, 꾸벅 절만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중학교 진학을, 교장선생님이 원서를 사서 지원해 주었기에 관영은, 시험을 볼 수 있었고 정확히 3등으로 합격함으로써 은혜에 보답했다. 

 

관영이 중학교를 갈수 있었던 것은 권영식교장 덕분이고 교장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관영이 동요[고추 먹고 맴맴]의 가사의 요상한 점을 담임선생님에게 말을 하게 되고, 다시 그 이야기는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에게 전해짐으로였으니, 실로 묘한 인연이요, 관영에겐 잊을 수없는 운명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때, 중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면 영어의 기초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후의 삶에 많은 지장을 초래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성공은 이루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먼 후일, 관영은, 인터넷상에 고추 먹고 맴맴 가사에 얽힌 이야기가 떠도는 것을 보고,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사연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사실에 마냥 신기해했다. 

권영식교장 선생님은 관영에게는 잊을 수 없는 평생의 은인이지만 관영이 중학교에 입학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근을 갔고 그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위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한참이나 지난 소식이라 문상도 하지 못했다. 

 

어렵게 진학한 중학교를, 졸업도 못하고 3학년을 시작할 무렵 중퇴를 하고 말았다. 어렵사리 가정을 꾸려가던 어머니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살길을 찾아 서울로 이사 가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에는 시골 사정이 더 안 좋았다. 봄, 여름, 가을까지는, 일거리가 있었지만 겨울에는 없었다. 동네는 물론 읍내에도 없었다. 봄, 여름, 가을동안 일을 하거나 광주리 행상으로 조금씩 여축해놓은 것으로는, 긴긴 겨울을 나기에는 늘 부족했다. 그해, 겨울도 깊어지면서 때 거리가 떨어져 갔다. 밥이 죽으로, 죽이 시래기죽으로, 내려갔다. 때 꺼리가 줄어들 때쯤이면, 입맛은 당겨지고 늘 배가 고프고 허했다. 어머니가 이집 저집으로 식량을 꾸러 다니는 모습이나, 눈이 쑥 들어간 동생들을 보노라면, 비참한 생각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더 이상 식량을 꿀 곳이 없어질 때쯤 용케도, 어디서인지 술지개미를 얻어 왔다.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술지개미는 끼니 대용으로 굶는 것 보다는 나앗지만, 술기운이 남아 있어서 제법 취하게 했다. 굶주린 어린 뱃속에 술지개미는 얼굴을 벌겋게 만들었고, 취기로 비틀거리며 학교 가는 논둑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굶주림은 어린것들을 일찍 철들게 했다. 

아직 국민 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막내조차도, 눈치가 빤해서 투정 한번 하지 않았다. 막내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별 도리가 없어 안아 주기만 했다.  

머릿속은, 온통 밥 생각으로 가득차서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귓속에서 매미 소리가 들렸다. 

눈은 쑥 들어가서 떼꾼해지고, 다리는 허공을 짚었다.

 

술지개미조차 떨어지고, 온종일 맹탕으로 굶은 날, 저녁 잠자리에 누었다. 주린 배는 잠을 빼앗아 모두들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참으로 길고 긴 밤이 될 것이고, 날이 밝는다고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막내를 당겨 팔베개를 했다. 앙상한 막내의 몸 떨림이 전해져왔다. 앙상한 막내를 안으며, 처절한 무력감에 이어 죽음을 예감했다. 잠이 들면 이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뿌옇게 흐려져 가는 중에도 막내를 꼭 부여안았다.

그때, 정적을 깨트리는 어머니의 비장한 한마디가 있었다.  

“다들 자! 자고 일어나면…아침 일찍 밥해줄게”

집안에 쌀 한 톨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관영과 동생들은 어머니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누구도 대꾸가 없었다. 지금,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리라는 것은, 가슴이 저리도록 느껴졌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밤은 길고도 길어, 무한대로 늘어졌다. 점점 그의 머릿속은, 뿌옇게 흐려져 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무언가 생각하려다 길을 잃은 채, 뿌연 잠에 빠졌었나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아! 일어나 밥 먹어,…애들아! 일어나 밥 먹어.” 

꿈속에서 들린다. 또 들린다. 

“애들아! 일어나! 얼른 일어나!” 

이번엔 어깨를 흔든다. 

“애! 관영아! 일어나 밥 먹어!”

눈을 떴다. 어둡다. 아직 날은 밝아지지 않았다. 

냄새가 난다. 바로 그 냄새, 밥 냄새다. 

이 어둠 속에, 밥 냄새가 비현실적으로 그의 코를 자극했다. 

‘이게 뭐지?’ 하며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어이! 밥 먹어! 다들 밥 먹어!”

 

냄새 나는 쪽으로 눈길이 갔다. 어슴푸레한 어둠속에 밥상이 보였다. 분명히 밥 상위에, 밥그릇이 보이고 밥도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쌀밥이다. 겨우 몸을 일으킨 동생들도, 이 묘한 현실에 어리둥절하며, 하나, 둘 밥상에 둘러앉았다. 숟가락질이 시작 됐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밥인가, 게다가 흰 쌀 밥을, 늘 머릿속에서 그리던 그 흰 쌀밥,

“천천히 국 먼저 먹고, 천천히…김치하구…”

어머니의 목소리가 젖어 있다. 

누구도 허겁지겁 먹지 않았다. 막내 까지도 천천히 먹었다.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처절하게 굶주린 배는 갑작스레 쏟아져 들어오는 음식을 감당 못 한다. 

아니 먹어지지가 않는 거다. 목 넘김이 결코 쉽지 않아 차 근 차근 먹어야한다

“엄마! 이 쌀 어디서 났어?” 

 

그렇게 물어야 했다. 누군가는 물어야 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냥 알았다. 

관영은, 밥상을 대하는 순간 직감적으로 일의 전말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영은, 어머니가 94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그때의 일을 묻지 않았다. 

어머니의 숭고한 비밀을 까발릴 수는 없는 것이다. 

훗날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도망 다니며 굶주렸다가, 음식을 보고 허겁지겁 두 손으로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입안에 음식이 잔뜩 들어있는데도 또, 마구 쑤셔 넣는 장면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엉터리 같은 놈들! 감독이나 배우라는 놈들은 밥도 안 굶어 봤나?’ 했다 

 

끔찍했던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에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관영의 학교생활도 끝이 났다. 

답십리 빈민촌에, 검정루핑 지붕의 판잣집 방 한 칸을 사글세로 얻어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의 예측대로, 확실히 서울생활은 시골생활보다 나았다. 

서울생활을 하고 부터는 끼니를 굶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식당에 일자리를 마련했고, 두 형도 직장엘 다녔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큰형은 군대를 갔고 관영은 택시 운수회사에 급사로 취직을 했다. 

급사의 일은 청소와 정리정돈 그리고 심부름이었다.  

회사라고 해봐야 주차장 한쪽에 지은 가건물로 15평정도 되는 사무실에, 직원이라곤 관영을 포함해서 5명이 전부였다. 사장, 전무, 상무, 과장, 그리고 관영이었다. 전무와 과장은 치안본부 출신으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뒤처리를 하는 것이, 주 업무이고 상무는 사장의 친척으로, 경리일을 맡아 보았다. 16세의 관영의 머릿속에서도, 회사의 돌아가는 모습이 금방 그려졌다. 

 

회사의 특성상 은밀한 심부름도 잦은 편이었는데, 관영은 그때마다의 상황 파악을 훤히 꿰고 있었기에,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척척해냈다. 윗사람들은 관영을, 애 늙은이 같다고 하면서도, 톡톡히 신임을 했다. 그곳에서 3년여를 근무하면서[서울 강의록]으로 공부를 해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한편으로는 시골에서 부족했던 독서를 많이 할 수 있었고, 또, 한 가지 관영의 영혼을 휘어잡은 것이 있었다. 영화였다.

일요일이면, 점심값과 차비를 아껴 온종일 싸구려 영화관을 찾아다녔다.

 

관영이 19세가 되던 여름, 지원해서 육군에 입대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군 생활을 시작했다. 

군 동료들은 늘 배고파했지만, 관영은, 배고픔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관영을, 허기지게 한 것은 밥도 술도 담배도 아닌 읽을 거리였다. 도대체 읽을거리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읽을 거라곤 어쩌다 나오는 전우신문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관영에게 도달했을 때는 너덜너덜하고 새까매져 있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참으로 오묘한 것이어서 관영의 읽음의 갈증을 풀어 준 것은 정 반대의 경우였으니, 이런 경우를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 게다, 읽음을 먹음이라고 표현한다면, 먹음을 뱉음으로, 먹음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읽음에 목말라하던 그가, 그동안 읽었던 것들을 풀어 놓음으로 서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된 하루의 일과가 끝 난후, 내무반의 저녁자유시간은 피 끓는 청춘들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놀 거리가 빈곤했다. 할 거라곤, 음담패설이나 장기자랑 뿐이었다. 가끔씩 기발한 놀 거리를 만들어 내긴했지만, 지속적으로 흥미를 끌만한 것이 없었다. 그때, 신병 정관영의 이야기보따리는, 단비중의 단비요. 보약중의 보약이었다. 

 

선임 병의 강압으로 얼떨결에 시작한 이야기는, 있지도 않은 총각딱지 떼던 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매일매일 새로운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관영의 이야기보따리는, 충성스러운 청중으로 인해 더욱 빛날 수 있었고, 날이 갈수록 이야기는 쫄깃쫄깃해졌다. 고단한 훈련 중에도, 이야기 거리를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틈 있을 때마다, 메모를 해두었다. 메모를 많이 할수록 이야기는 흐트러짐 없이 흘러갔다. 

나중엔 아예, 요일별 장르를 정해서, 예고편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월요일은 애정, 화요일은 액션, 수요일은 괴기와 치정, 목요일은 동서역사물, 금요일은 에로틱,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면서 충전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관영의 이야기 내용은, 읽었던 책들이나 영화 이야기이긴 했지만, 대부분 편집되고 각색되고 이 책 저책이 엉키고, 거기에 임기응변의 창작이 들어가 있어서, 엉뚱하기도 하고,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청중들은 개의치 않고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흡수해 주었다. 30여명의 내무반의 선임병과 동기생, 그리고 후임 병들의 훌륭한 청중들 덕분에 관영의 3년 동안의 군 생활은 말솜씨를 훈련하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훗날, 관영이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든, 말을 조리 있게 잘할 수 있었던 것은, 군생활의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영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용하게도 만두가게 주인이 돼 있었다. 허름한 가건물의 가게이지만 내부는 깨끗하게 수리를 해서 제법 괜찮았다. 

“장사가 딱! 우리식구 먹구 살 만큼만 되는 것 같다.” 

어머니의 변명 섞인 자랑에 관영의 가슴이 저릿했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양장점엘 다닌다고 해서, 관영을 또 저릿하게 했다. 집안 형편은 많이 좋아져서, 방 두 칸짜리 독채를 전세로 살고 있었다. 

관영은, 제대하기 훨씬 전부터 제대 후를 생각했으나, 마땅한 계획하나 못 세우고 제대를 맞이했다. 막막했지만,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낌새가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오전에는 어머니의 만두가게 일을 돕다가, 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유시간이 됐다. 무작정 여기저기를 마냥 걸어 다니다가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탔다.

 

어머니 만두가게 일을 열흘쯤 돕다보니, 가게의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달쯤 되자 더욱 확실해졌고, 혼자서라도 전 과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죽은 어떻게 하며 김치만두 속은 어떻게 만들며, 고기만두 속은 어떻게 만드는지, 만두피는 어떻게 만들고 만두는 어떻게 빚는지 알게 되었다. 두 달쯤 되자 제법 능숙해져서 어머니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어 졌다. 자신이 달인이라도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는 어머니에게 잔소리까지 하게 됐다. 익숙한 솜씨로 만두를 빚으며, 이것저것을 지적하는 관영을 어머니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웃음으로 받아 들였다. 

 

오후 나들이가 계속 되던 어느 날, 청계천을 돌아보던 중 만두기계라는 걸 보게 되었다.

[신우 정공]이라는 간판이 붙은 점포였다. 

‘만두기계라! 허! 이런 게 있었네, 이런 기계가 있었구나!’

기계는 점포 밖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는지, 먼지가 제법 쌓여 있었다. 관영이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기계의 구조가 어렴풋이 읽혀지면서도, 이 기계에서 만두가 제대로 만들어져 나올까 싶다. 

 

어머니 만두가게에 이 기계를 들여다 놓는 상상을 해봤다. 

가게에 비해서 너무 크고 칙칙해서, 아무래도 매치가 잘되지 않았다.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온갖 기계 부속품등이 정돈된 것 같기도 하고, 널 부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저 밖에 있는 만두기계 작동되는 겁니까?”

낡은 책상위의 무언가를 들여다보던 노인이 안경너머로 돌아보았다.  

“만두기계?…작동이야 되지, 그런데 그게, 안 돼!”

“왜요? 뭔 문제가 있어요?”

“그게…팔았는데, 쓰다가 도로 가져온 거야. 반품 받은 거야,”

“아! 어디가 문제가 있었나요?

“뭐, 문제라기보다 잘 안 맞는 게지 뭐,”

 

사연인즉슨, 누군가가 만두기계를 사갔는데, 만두가게에 기계를 설치하고 장사를 해보니, 장사가 안 되더란다. 장사가 안 되는 이유는 만두는 손으로 만들어야 제 맛이고, 특히 엄마 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만두가게마다 상호가 [손 만두] 또는 [엄마손 만두] 그리고 [엄마손 왕 만두]라고 붙이니 기계만두로서는, 장사가 안 되더라 라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만두가게 상호도 [엄마손 만두]다 

기계를 세 개 팔았는데, 한 대가 반품 들어왔고 두 대는 반품은 안했지만, 확인해보니 사용을 않고 쳐 박아 놨더라고 했다. 

“그럼 저 기계는 누가, 어디서 만든 겁니까?”

“아! 이 사람아! 내가 만들었지, 누가 만들어?”

노인은 역정같이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속에는 슬쩍 자부심도 섞인 말투였다. 

“아!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직접 만들었지 그럼,… 저 기계 뭐 하려고? 만두가게 낼라구?”

“아뇨! 그냥 …좀”

 

장훈은, 족히 한 시간정도 노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이 시장 좌우 골목골목이 온갖 생활용품을 만들어 파는 곳으로, 특히 주방용품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가장 큰 시장이며 별의별 독특하고 새로운 것이 많이 나오는데, 제대로 된 히트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떼돈을 벌게 된다는 얘기였다. 

이곳에는 박사님이 몇 명 있는데, 학위를 소지한 박사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머리 좋고, 솜씨 좋은 몇몇 사람은 박사급이 됐는데, 실제로 이곳의 사람들은 그들을 박사라고 부르고, 그 박사들은 자부심이 대단해서 돈만 주면 탱크 아니라, 비행기도 만들 수 있고, 로켓도 만들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고 했다.  book365@daum.net

 

*필자/이헌영

소설가. 아이디어 소설 한생각(2017)을 발표. 2018년 한국예총 <예술세계신인상에 장편소설 은미야 괜찮아 노래해!가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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