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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전 서울특별시장, 이승을 버린 것은 비인간화의 덫 때문

강행원 시인 l 기사입력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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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슬프다/ 큰 별이 빛을 잃어버린 공간/ 총총히 맑은 날이 지속된 밤/ 무수히 빛나는 별들/ 그중 유난히도 뚜렷이 빛나던/ 그 별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어쩌자고 도덕의 제방을 걸어 넘지 않고/ 급작스런 전언이 내게도 해당되는/ 감사하다는 고별인사만 짧게 남긴채/ 다시는 올수 없는 곳으로 자진한 것인가/ 그대 큰 걸음이 여기 까질줄이야~~/ 별의 영가여 그대가 머무는 곳이 정토이기를/ 다시는 다시는 이 모진 예토에 오지도 말고 가지도 마소서. 나무지장인로왕보살마하살“ 

 

필자는 달포 전에 왼쪽안구 혈관이 터져 치료 중에 바른쪽 안구마저 심한눈병 바이러스감염에 시달리며 눈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하필 눈을 감고 살다시피 하던 기간에 우리의 큰 별이 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진심어린 추모 애도를 앞에 붙이는 이 시로 대신 하고자 한다.

▲ 박원순 영정. ©브레이크뉴스

 

한국사회가 짊어진 모순의 큰 교훈을 큰 별, 고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이 이승을 버린대서 찾고자 한다. 얼마나 큰 과오였기에 법 앞의 도덕적인 보루의 그물을 걷어내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아야 했는가? 종교의 신앙은 영성을 얻은 자는 생사가 따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생과 사를 놓고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가치관 이것은 범부들에게서는 쉽지 않는 일이다. 무릇 범부들의 자살은 한갓 죽음을 끝으로 그 흔적이 지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인이나 진인, 별들의 자진은 대중의 이목에 따라 호불호의 각기 다른 빛으로 남는 것이며, 역사적으로도 영원이 살아있다. 

 

역사적인 기록으로 살아있는 문서의 생명은 후대들의 재해석이 가해져서 교훈이 되기도 하며 조롱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박원순이란 꺼져버린 별빛은 후대들의 삶 속에서 교훈이 될지 조롱이 될지는 누구도 단언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지구를 뒤엎는 큰 죄인이라도 목숨을 이미 거둬버린 경우는 공소권 없음을 원칙으로 수사종결이 현행법이다. 우리 눈에 비춰진 일천만 서울시민을 보살피던 그 열정적인 관직 삶의 뒤끝이 베일로 마감하는 허망한 생을 그 치적의 팬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의아해하고 있다. 그가 미친 우리사회의 공과를 생각하면 필자도 같은 입장이다.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속에 던져진 무상(無常)함으로 점철 된 지옥과 천당이 공존한 연기(緣起)의 실상이 현재의 모습이란 말인가. 어찌 전생에 얽힌 업보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있으리. 양성평등을 위한 서울시정에 반영코자 젠더(gender=대등한 남여 평등을 실현)특보 비서관까지 둔 그 모범정책을 정말 부정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보수들 성역은 여느 한 쪽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진보와의 대척적인 이데올로기 소굴(巢窟)에서 영혼 없는 대변으로 민심이반을 흔들 일이 씁쓸하다. 

 

이런 큰 빌미를 노칠 수 없는 야당공세는 마치 한국사회가 혼란하리만큼 추도의 한 주간이 지났음에도 하이퍼미디어에 왈가왈부한 허설들이 마치 사자의 시신에 달라붙어 물어뜯는 하이에나를 보는 느낌이다. 진보의 별이 떨어져버린 큰 호재를 만났으니 후 폭풍의 심화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의 진정한 가치는 ‘개인의 기득권이 아닌, 민족이나 국가발전을 수호하는 것’이어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지켜야 할 유산이다. 하지만 보수정당이 지향하는 가치는 이와는 달리 정권욕에만 뜻이 가있다.

 

해서 상대 당의 실수나 빌미만을 일삼고 호재가 생기면 그것을 기회로 말목을 잡고 물어뜯는 공작이 있을 뿐, 협치는 오직 여당 탓이며 절대 반목만이 그들의 대의이다. 이 같은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건데 우리사회의 민주화는 적보다도 더 심하게 갈등한 현실정치의 좌우대립이 민심마저 갈라선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민주화가 연륜을 쌓아가면서 더 더욱 심화된 이러한 원천의 뿌리인 유전자의 본색은 다름 아니다. 남북분단의 큰 아픔을 딛고 남한 단독으로 세운 이승만 정부의 자유당정권에서 시작된다. 동족의 피를 빨아 자신들의 배를 채운 일제강점에 협조자들인 반민족행위자들의 처벌법을 무산시켜 단죄를 무마한 것이 그 원인의 불씨이다. 

 

친일파들을 등에 업고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독재를 획책한 3.15부정선거와 맞선 4.19의거, 학생들이 참혹하게 쓰러져 흘린, 그 피의 화요일을 뒤로 이승만은 초라한 목숨을 망명하였다. 그 뒤 민주당에 이양된 정권은 숨도 고르기 전에 일본 명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였던 투 스타 박정희 일당들은 군사쿠데타로 ‘장 면’ 새 정부를 강탈하였다. 그 쿠데타는 5.16혁명이란 이름표를 달고 반공이념을 세뇌한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그로부터 이승만 정권이 세운 이 분단국을 공고히 지키는 반공을 앞세워 국민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삼았다. 다시 말하면 반공은 패권정치를 연장하는 무기로 썼으며, 박정희 뜻대로 운영한 독재국가가 되어 사실상 민주주의를 짓밟아 버린 것이다.

 

더욱이 분단의 한을 안고 있는 이 땅을 또 동서로 민심을 갈라놓은 지역차별을 둔 발전은 서쪽을 홀대 한 비굴한 치적이었다. 이런 폐단을 인구가 많은 동쪽에서는 지금도 박정희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정희를 본받은 군부 후배들이자 출생지역까지 같은 전두환 군정 탄생은 여기에 더하여 서쪽지방의 선량한 광주시민의 무고한목숨을 잔인하게 무차별 도륙하였다. 일명 5.18 광주민주화운동(전두환의 무력에 맞선 항쟁)이 아직도 매듭은 맸지 못하고 있다. 그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는 많은 시련으로 인한 상처의 흉터를 남기며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사람을 잡는 비인간화란 이런 오늘이 있기 까지 사실상 보수정치집단의 계보가 당명은 수없이 바꿔왔지만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바통을 이은 후예들이다.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이 85년에 발표한 ‘오만과 몽상’의 그 횡간은 이승만이 친일파들을 등에 업고 국기를 협잡한 한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동학군은 독립투사를 낳고/ 독립투사는 수위를 낳고/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낳고/ 탐관오리는 악덕기업을 낳고~”라고 독립운동가 후예들의 영향과 친일세력 후손번성이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간결한 이 몇 문장 속에 장쾌하게 담고 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마는 친일후손 번성은 역사적 반성과는 무관한 사욕의 비인간화와 맞닿아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 땅을 지배해온 이들의 정치 이념은 독사보다도 냉혹한 권력욕이다. 인간적인 생각 밖에서 이루어진 비인간적인 행동이 정치와 맞물려 있다. 권력은 이 같은 비인간적인 속에서 법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지면상 예는 생략 하지만 무시무시한 온갖 몹쓸 짓을 다 해왔다. 그래서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논리는 도덕적인 위안으로 삼는 언어에 지나지 않다. 참 민주주의를 짓밟아 온 독재권력의 잠재이즘은 시세의 변화에도 깨어나지 않고 여전히 소용돌이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와류는 진보세력을 ‘좌빨’이라며 종북주의자로 몰아 남북평화협정의지를 가로막고 있다. 북미 비핵화협상 부진으로 남북이 다시 옹색해 진 틈을 타서 총 공격에 나선 반공포화는 작금도 ‘우꼴’을 지키는 절대무기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보수정권을 이어온 세뇌는 오직 반공만이 애국이며, 일제우상화와 아베 섬기기를 서슴지 않던 현 정부를 짓밟는 노골적인 성토는 비인간화에 매몰된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낸 도전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여성단체 운동의 힘도 컸지만 따라서 젠더의 참 가치조차 신장되어 왔었다. 이런 여성주의도 우경화의 세뇌공작에 물든 것인지 비인간화의 기득욕이 의심스럽다.

 

이처럼 곳곳에 기득권을 탐착하는 잔재들이 민주화의 수레를 함께 타고 반대 기치(旗幟)를 높이 들어 국기를 흔드는 질서파괴 공작은 문재인정부의 개혁과제 봉쇄획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척결해야 할 비인간화에 매몰된 검찰개혁이 절실함을 ‘조국’대전에서 시민들은 절감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 박원순 시장이 이승을 버린 이유도 비인간화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서울특별시장 당선의 최장수 모범 정치인이기 전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그 많은 재산을 내놓고 또는 빚진 것을 넘어 이 나라에 누구도 그의 큰 뜻을 범접할 위인을 찾기가 힘들다. 그의 행보는 오로지 사회민주화의 신장을 위해 의로운 한길을 달려온 소박한 선구자였다.

 

이런 그가 뇌(腦)가 고장 난 것도 바보도 아니며, 법리나 도덕을 모르는 것도 아닌 전문가를 놓고 만약 그의 실수가 있다면 죽음하고 바꿀 수 있을 만큼 값진 것이었을까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이 여성인권을 위해 최초 성 평등 재판에 승리의 문을 열어 놓고 세월이 흐른 작금에 자신에게 성추행 고소가 접수 되었다는 것에 대한 법리의 숙고를 추론해 보고자 한다. 이는 고발인측의 퍼즐을 맞추어 보면 심증이 가는 기득권 결탁을 노린 비인간화의 전형이라고 짐작이 간다. 

  

이 어이없는 적패와의 싸움보다도 자신의 몫을 감당해야 할 각오였을 것이다. 자신이 소속되어있는 정당에 쏟아질 언론의 포화를 조국 전 장관의 경우에서 절감했던 결단이었다. 그것은 보수언론의 진보에 대한 공격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횡포로 공적이 파괴된다면 한번 손상된 신뢰회복은 민주정부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개혁추진이 어그러질까를 저어한 결정일수도 있다고 유추된다. 어쩌면 법리를 아는 사려 깊은 대인적 발로가 도덕성을 수용한 것이며 진실을 위해 싸울 각오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피해자라는 고소인은 수사의 종결을 어떻게 할지 그 끝이 더 궁금하지만 2차가해 3차 가해를 엄포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해는 고발인 측에서 입을 여는 대로 뉴스타전과 동시에 유투브를 통해서 전달된 말이 반복되며, 또한 SNS로는 개개의 상상력까지 더해져 퍼져나가는 정보화 사회에 모순된 말이 아닐 수 없다. 더하여 침묵도 가해라는 말은 상대가 목숨을 버렸는데 그것도 침묵이며 가해라고 한다면 이 사회는 자신만의 존재를 위한 사회인가를 묻고 싶다. 상대적으로 가장을 이른 가족들은 빚더미에 앉아 관사를 나오면 응신 할 곳이 없는 처지이다. 하물며 확증이 미진한데 루머에 시달리는 것은 무엇일까? 

 

▲ 강행원 시인.©브레이크뉴스

4년간의 추행을 참아내는 알파가 없는 인내는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고소를 4년간 준비한 결과가 노출되어 상대자에 대한 엄벌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여성단체 전체가 아우성이라면 지구상에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던 깨 시민들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제부터 고소인 측에 요구하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이며, 일반적인 주장보다는 증언이 있어야 진실 깨임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2차 기자회견을 기다렸는데 많이 허탈했다. 고발인 측의 발표는 4년간 괴로움을 건의해도 묵살한 조직적인 행위였다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이는 시청 비서실 전 직원을 모두 성추행자로 보는 일방적인 주장인데, 앞으로 이 무서운 비인간적인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가의 법리다툼이 분명해 졌다고 본다. 우리가 아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것은 비인간화를 인간화로 되돌리는 운동이 진정한 시민사회운동이다. 좌우를 넘어 밝고 아름다운 사회건설에 동참하여 모두가 하나 되어 다툼이 없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yoonsan47@hanmail.net

 

*필자/ 강행원 시인. 2020년 7월 23일 윤산화선재 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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