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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통해 남한이 배워야 할 것들…친일청산과 국가정통성 확립

김광수 박사 l 기사입력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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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수 박사. ©브레이크뉴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문 대통령께서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체제경쟁은 끝났다’(이 워딩은 언뜻 후쿠야마가 한 말, ‘자본주의는 승리했다’와 오버랩 된다. 하지만 과연 자본주의는 승리했는가?)라고 했으니, 그 기초위에서 우리가 북으로 부터 배워야할 것이 있다면 배워도 절대 나쁠 것이 없다는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키워드로 정리해본 것이다.   

 

그 두 번째 주제, '친일청산과 국가정통성 확립'부분이 이번 글의 내용이다. 

 

연장하여 솔직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체제경쟁이 끝난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알다시피 해방 후 남과 북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된다.

 

북은 남과는 다른게 확실하게 자신들의 건국 방향을 식민지 잔재청산과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명확히 했다. 

 

이는 당시 요청되어졌던 반제반봉건의 사회혁명에 아주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즉, 해방이 가져다 준 식민지 봉건의식의 타파 분위기와 이를 명확한 국정좌표로 설정한 김일성 정권의 목적의식적인 친일 지주와 매판 자본가에 대한 계급투쟁이 인민들로부터 광범위한 호응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결과, 북은 친일반민족자 청산과 토지개혁, 남녀평등법시행 등 민주개혁 조치가 철저히 뒤따랐다.

 

비례해 인민들도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인간형으로 개조되어 들어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남쪽의 상황은 좀 달랐다.

 

해방이 가져다 준 기쁨도 잠시, 당시 절대다수 인민들의 의사와는 전혀 반하는,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은 심각한 두 가지 문제점을 낳게 되었다. 

 

①하나는, 이승만 자신의 권력욕으로 인해 일제 식민지 잔재청산(친일세력 척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되려 친일세력이 중용되었다.)  

 

이를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당시 고등문관 이상 관료 1166명, 경찰 521명, 위관급 이상 장교 216명, 판·검사 201명이 친일세력이었다. 

 

줄잡아 2000여명이 해방 후 친일세력으로 존재했고, 이 중 이승만 정권하에서 총리 2명, 장관 21명, 시장·도지사 9명, 합참의장 4명, 육군참모총장 7명, 공군참모총장 4명, 검찰총장 4명, 대법원장 3명, 대법관 10명이 공직으로 임명되었다.  

 

②또 다른 하나는, 당시 식민지조선 해방은 철저하게 반제반봉건 사회혁명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는데, 이승만은 이 성격을 거세시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집권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미군정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다가 또 국내지지기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친일세력과도 손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인민들에게 광범위하게 수용되어있던 반제반봉건의 사회혁명은 금지되거나 되려 탄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과, 대한민국은 반제 성격과 반봉건 의식을 타파하지도 못한 채, 또 비례적으로 인민들도 급속하게 자유민주주의체제에 편입되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식민지 잔재청산과 당시 반제반봉건 사회혁명의 요구를 충실히 수렴했던 김일성의 북은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와 신뢰하에서 국가 정통성을 확립해나갈 수 있었다. 

 

거기에다 북은 정권핵심부에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인물들이 대거 포진했기 때문에 더더욱 인민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김일성(항일무장투쟁세력), 박헌영(남로당파, 혹은 경성파), 허가이(소련파), 깁두봉(연안파) 등을 비롯한 건국 지도자들 대부분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당시 이승만의 남쪽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즉, 국가출범도 단연코 김일성의 북은 이승만의 남보다 훨씬 더 강한 국가정통성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그렇게 분명 위 두 가지 사실은 우릴 엄청나게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변할 수 없다. 

 

또 많이 늦은 지금이지만, 못다 한 친일잔재청산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북에게 큰  소리칠 충분한 근거와 이유가 발생하고, 체제경쟁에서 '우리가 이겼다'와 같은 쓸데없는 몽니가 발생하지 않는다.

 

불편하더라도 역사를 항상 진실하게 접근해야되는 이유이다. no-ultari@daum.net

 

*필자/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수령국가>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 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사)한반도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자문위원.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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