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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으로, 정쟁으로 싸우지 않는 날이 없는 요즘

김덕권 시인 l 기사입력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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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도의지교(道義之交)라는 말은 들어 본지 참 오래 된 것 같습니다. 도의지교라는 말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 1737~1805)의 <연암집(燕巖集)> ‘예덕 선생 전’에 나오는 말이지요. 

 

「夫市交 以利 面交 以諂/ 故 雖有至 三求 則無不疎/ 雖有宿怨 三與 則無不親/ 故 以利 則難繼 以諂 則不久/ 夫大交 不面 盛友 不親/ 但交之以心 而友以德/ 是爲道義之交 上友千古/ 而不爲遙 相居萬里 而不爲疎」

 

이를 해석하면, 「시중 일반사람들의 친구 사귐은 이익으로 하는 수가 많고, 얼굴로 사람을 사귈 경우는 아첨을 떠는 수가 많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세 번만 도움을 청하면, 곧 사이가 벌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오래된 원한이 있더라도 세 번만 재물로 도움을 주면, 곧 친하게 되지 않는 이가 없다.

 

이익이나 아첨으로 사귀면 계속 이어지기가 어려운 즉, 진정한 사귐은 얼굴 용모에 있지 않고. 특별한사람 골라 가까이 하는데 있지 않다.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맺어야 한다. 이것이 ‘도의지교(道義之交)’다. 위로 천 년 전 사람을 벗하여도 비록 멀지 않고, 만리 떨어진 곳에 살더라도 사이가 벌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친구 사귀기의 귀함과 어려움을 토로(吐露)한 글이 아닌가요? 신의(信義)라는 단어는 인간의 윤리에서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두보(杜甫) 같은 시성(詩聖)도 그의 시에서 신의를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저버린다는 탄식을 읊은 바 있습니다. 동양사상에서 친구끼리 믿음과 의리를 지키는 일은 오륜(五倫)의 하나로 그 값과 가치가 매우 높게 여겼던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그런데 진영논리로, 당파싸움으로, 정쟁으로 싸우지 않는 날이 없는 요즘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의(道義)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얼마나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만들어주는 일인가를 바로 짐작하게 해줍니다. 서양에서 도의로 친구를 사귀었던 대표 인물로는 흔히 ‘괴테’와 ‘쉴러’를 들고, 동양에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해서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사귐을 언급합니다.

 

조선에서는 많은 도의의 사귐이 있었지만, 많이 알려진 일에는 율곡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 1535~1598)의 사귐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류 역사상 그 긴 세월에, 그 많은 인간들의 사귐이 있었지만, 세상에 크게 알려진 사귐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 도의로 친구 사귀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산은 아들에게 가훈으로 내려준 글에서 친구 사귀는 어려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늙은 아비가 험난한 일을 고루 겪어보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데, 무릇 천륜(天倫)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서 깊은 은혜와 두터운 의리는 부모·형제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부모·형제를 그처럼 가볍게 버리는 사람이 벗들에게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이치다.” “그들은 끝내 친구의 은혜를 배반하고 의(義)를 잊어먹고 아침에는 따뜻이 대해주다가도 저녁에는 차갑게 변하고 만다.”고 했습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 : 1563~1628)도 일찍이 그의 『지봉유설』에서 도의로 친구 사귀는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장기와 바둑으로 사귄 친구는 하루를 가지 않고, 음식으로 사귄 친구는 한 달을 못가며, 또 권세와 이익으로 사귄 친구는 1년을 가지 못하는데, 오직 도의로 사귄 친구만은 죽을 때까지 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착한 일을 권하는 것은 친구 사이의 도리이고, 허물이 있는 경우 경계해주는 것도 당연한 도리인데, 자기가 살던 시대에는 친구 사이에 경계해주고 충고해주는 풍조가 없는 야박한 시대라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하는 일이야 인간의 기본 윤리입니다.

 

친구끼리 착함을 권장하고 잘못을 경계해주는 일은 붕우유신(朋友有信)의 기본 도리입니다. 대산(大山) 종사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네 가지 보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는 사람인 자 인보(人寶)요, 둘은 어질 인자 인보(仁寶)요, 셋은 참을 인자 인보(忍寶)요, 넷은 인증할 인자 인보(認寶)입니다.

 

이 네 가지 인보 중에 가장 기본이 되고 바탕이 되는 보물은 바로 세상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인보(人寶)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짊’과 ‘참음’과 ‘인증’의 보배를 얻어야 합니다. 어짊의 보배를 갖추라 함은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인(仁)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면 천지 만물 일체 생령을 책임지고 구제할 수 없는 까닭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인보를 갖춘 사람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도의지교를 지킬 수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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