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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 되신 분에게 장관자리 하나 부탁해서, 직접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이헌영 소설가 l 기사입력 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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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14 경선

 

 

정치판 전체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국회의원선거의 계절이 온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앙당사는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다.

 

공천을 받으려고 학연과, 지연에, 재력을 앞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돈에 관한 얘기가 관심을 끌었다. 초전에는 5억이라던 액수가, 점점 불어나 10억이 기준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호텔과 고급 유흥업소가 흥청거렸다.

 

정치브로커가 제철을 맞이해서 실력을 과시하고 어정쩡한 정치 풋내기도 내공을 쌓아가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많은 사연을 만들며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각 당의 후보공천이 확정 발표되자, 만세를 부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처절한 낭패감에 젖어 한숨 쉬는 이도 있고, 야합에 의해 후보가 결정됐다며, 재공천하라고, 무리를 지어 농성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공천을 전제로 돈을 주었다가, 탈락을 하자, 돈을 돌려받았는데, 얼마를 덜 돌려받았으니, 마저 내놓으라고 농성을 하는 이도 있었다. 실제로, 후보공천 발표직후, 후보의 부적격 사연이 여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후보가 바뀌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에, 탈락자들은 그런 사연을 찾아내어, 사건으로 만들어 퍼트리기도 했다. 사연이야 어쨌든, 끼리끼리 뭉쳤다 헤어졌다하며, 자기들만의 의리를 외치기도 하고,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라 걱정도 했다.

 

공천의 광풍이 잦아들면서, 이번에는, 선거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장훈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를 넘기고, 비례대표 28번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았다. 비례대표 28번은 선거에서 정당지지율이 여당 못지않게 얻었을 때나, 당선될 수 있는, 사실상의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그만큼 장훈의 비중은 민주당내에서 절대적일 만큼, 국민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 인기를 반영하여, 선거대책본부 공동위원장 직이 맡겨졌다. 장훈의 임무는 전국방방 곳곳을 순회하며, 자당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활동 하는 것이다.

 

장훈은 숙고에 들어갔다.

 

지원연설을 할 경우, 그 후보를 능력 있고, 인간미가 있으며, 자질이 뛰어난 후보라고 한껏 추겨 세워야 하는데, 후보가 전혀 그렇지 못할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후보에 대해서 깊숙이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 자체가 거짓일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비공개로 열린 총선전략 기획회의에서, 장훈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참석인원 대부분 무리한 아이디어라고 했지만 장훈은 작은 목소리로 선거혁명을 주창했다.

 

설전은 끝없이 이어졌다. 정회를 거듭하며 회의는 이어졌다

 

회의 5일째 되던 날, 겨우 과반수이상 찬성을 얻었으나, 장훈은 그 정도로는 전쟁에 임할 수 없다며, 다시 회의를 연장해주기를 요구했다. 다시열린 회의에서 이 작전은 만장일치에 가까울수록, 성공확률이 높다고 밀어붙였다. 난항에 난항을 거듭하다, 칠 일째 회의에서 어렵사리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벽보가 붙고, 현수막이 어지럽게 널리고,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어깨띠를 두른 떼거리 운동원들의 의미 없는 외침과, 의미 없는 90도 절을 마냥마냥 해댔다.

 

그런데, 이번 선거운동양상은 예전 선거 때 하곤, 분위기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장훈의 야당 선거운동 양상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야당인 민주당후보의, 현수막이 보이지 않았다. 떼거리 운동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후보도 있었다. 이번 선거에 처음 도전하는, 신인후보들은 현수막도 걸고 운동원도 동원했다. 다만 현수막 수량과, 운동원 수를 반의반으로 줄였다.

 

이미, 각 지역에서 당선됐었거나, 출마를 한 경력이 있어서, 이름이 알려진 후보는, 현수막이나 운동원을 동원하지 말라는 것이, 장훈의 아이디어였다.

 

또,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하루 삼시세끼를 꼭 각자의집에서 먹어야 되고, 식당, 술집, 호텔 등엔 아예 가질 않으며, 저녁 10시 이전에 반드시 귀가하기로 한 것이다. 단, 점심을 집에서 먹기가 어려울 땐,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곳곳을 다니며 확성기를 사용하여 운동을 하되, 일행전체수가 기사를 포함하여 3인이 넘지 않도록 했다. 선거기간만, 급여를 주며 채용하는 운동원은 없어야 하며, 가급적 가족끼리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므로 선거기간에 식대 및 술값으로 지출하는 액수는 0원이여야 했다. 그렇게 해서, 선거비용을 법정한도의 10분의1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공약집도 딱, 한 장으로 만들되, 꼭 지킬 수 있는 공약으로 하고, 공약의 개수는 2개를 넘지 않게 하되, 꼭 하겠다고 장담하지 말고, 되도록 노력하겠다고만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후보를 비방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를 거론하려면, 칭찬만 해야 한다고 했다.

 

장훈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장훈은 다음대선을 위해서라도, 이번 전국투어는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숙박은 인터넷 예매로,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장훈은 아침 일찍 일어나, 6시엔 민박을 나서고, 저녁 8시엔 일정을 접었으며, 11시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보름이 채 못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최대한 구석구석 골고루 다니려 애썼다. 지원연설의 내용도 단순하고 선명했다.

 

“우리 민주당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많은 간여를 하려고합니다. 지금껏은, 너무 부족했음을 반성합니다. 지금 이미 잘 살고 있는 부유층엔, 우리민주당이 굳이 간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같은 땅에서 같이 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분들에게는, 간접적이 아닌, 직접적인 도움이 되도록 간여를 하려고합니다. 부유층에 비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이없을 정도로 비참합니다. 매일 40여 명씩 자살을 합니다. 대부분 가난 때문입니다. 가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리의 동족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 퍼주기다. 선심성 정책이다. 포퓰리즘이다. 라고 하며, 집요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 만큼, 큰 권력을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민주당이 하고자 하는, 빈부격차 해소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고, 결국엔, 나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민주당이 증명할 것입니다. 조용히 싸워서 이기고, 조용히 싸워서 자살을 막고, 조용히 싸워서, 나라를 발전시키겠습니다. 조용히 해내고 싶습니다. 대다수 국민의 힘으로, 조용히 해내고 싶습니다.”

 

장훈의 인기는 전국을 관통하고 있었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를 알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들에게도, 그들의 친지들은 입이 있었고 그 자신들에게는 들을 귀가 있었다.

 

모든 언론과 국민들은, 장훈의 조용하고, 참신한 선거 운동방법에, 열광했다.

 

여당인 공화당은 당황했다. 선거운동개시일 부터, 야심차게,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총동원하여, 기선제압에 나섰으나, 헛심만 쓰는 꼴이 되었다. 이미 동원된 인원과, 각종 물량을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영악한 어떤 기자는, 전국에 걸려있는 여당의 현수막 숫자에, 단가를 곱하여 현수막 제작비와 설치비, 그리고 철거비까지 산출해냈다. 여당과 야당의 선거비용을 비교하는 기사는, 모든 매체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워낙 많은 매체와 인터넷에서, 야당의 선거운동 방법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자, 노골적으로 여당 편을 들던 몇몇 매체들도 마지못해, 야당의 선거운동방식을 찬양하고 나섰다.

 

장훈의 민주당은 선거운동을 조용히 했지만, 모든 미디어매체가, 대신 선거운동을 대대적으로 해주는 현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여당은, 그래도 선거결과는 별 영향 없을 거라고 믿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국민이 훨씬 많고, 선거는 늘 이겨왔었으니까, 이번도 이변은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것도 초반의 생각이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고, 종반에 이르자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개표가 시작되면서는 비명이 시작됐다. 야당인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수도권 전체를 싹쓸이 하다시피해서, 지역구 136석을 차지했고, 여당은 102석을 차지했다. 무소속이 8석이었다

 

정당지지에 의한 비례대표는, 더 많이 격차가나서, 야당이 34석을 차지했고, 여당은 겨우 20석을 차지했다 그래서 야당의 총 의원 수는 170석 여당은122석 무소속은 8석이었다

 

여소야대의 국회가 된 것이다.

 

무소속 당선자 중에는, 수도권 전체에서 유일하게, 서울 서초구의 정관영의원이 3선을 달성했다. 허장훈의원의 바람이 잠잠했던 유일한 선거구였다.

 

관영은 지난 5월에 여당 입당 권유를 받았었다.

 

전 국회부의장 서주원의원이 직접 찾아와 입당을 종용했다.

 

지난번 대통령면담 때 대통령의 권고가 있었기에,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입당 권유를 받자 망설여졌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의미심장했던 말이 더욱 망설이게 했다.

 

‘영부인이 제안 한 것이며 대통령님은 그렇게 순수하신분이 아닙니다.’ 곱씹어 볼수록 개운치가 않다.

 

비서실장은 왜? 그런 귀 뜸을 했던 것일까? 좀 망설이기는 했었다.

 

관영은 여당 입당은 하되 시기에 대해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라고는 하지만 원점부터의 토론이 아닌, 국회의원 선거 전에 여당에 입당하여,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것과 무소속으로 당선 된 뒤, 입당하는 것 중, 양자택일하는 토론이었다. 결과는 두 의견이 팽팽했다. 둘 다 타당점도 있었고 우려할 부분도 있었다. 결국, 관영의 용단으로, 여당입당을 미루고 무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여당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 이철웅의원이 즉각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승리한 야당은 발 빠르게 대선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패배한 여당은 우왕좌왕 했다

 

그런 와중에 관영에게 서주원 전 부의장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정 의원님! 축하합니다. 이제 3선이십니다”

 

“아! 부의장님! 감사합니다. 제가 찾아뵈어야 하는 데…”

 

“아! 그렇지요? 이제 만나서 매듭을 지으시지요.”

 

“네! 부의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정 의원님! 그러면… 기왕 입당하시는 거, 이슈부각 차원으로…삼고초려 해서 모시는, 언론 플레이 좀 하십시다. 그래야 정 의원님 이미지에도…”

 

관영은 얼른 끼어들었다.

 

“아! 부의장님, 그냥 제가 내일아침에 직접 중앙당사로 가서, 정식으로 입당신청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의장님, 추천인란에 부의장님 명함을 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아! 직접 말입니까? 내일아침에 직접? 허어!… 뭐 그래요. 그래도 괜찮지요. 내명함?…그야 영광이지요.”

 

그렇게 해서 다음날 입당신청서를 들고 여당인 공화당 중앙당사에 도착했을 때, 관영은 또 한 번, 실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서주원 전부의장의 작품일 것이다.

 

방송중계차까지 동원된, 대규모 취재진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플래시가 터지고, 수많은 질문이 제각기 쏟아져 엉키는 현장을, 보좌관들이 길을 내어 한 발짝씩 걸어갔다. 겨우 계단을 다 오르자, 관영이 돌아섰다.

 

마이크 수십 개가 관영 쪽으로 뻗어와 정지했다.

 

“여러분 수고가 많으십니다. 정관영입니다. 일단먼저 입당신청서를 접수한 다음, 이곳에서 입당의 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정문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취재진 사이로 서주원 전부의장과 낮 익은 여당의원들이 보였다. 서주원 전부의장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관영의 목에 화환을 걸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정 의원님!”

 

그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난무했다.

 

관영은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환영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서주원 전의장과 맞으러 나온 모든 의원들과도 악수를 하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접수절차는 단순했다. 신청서 봉투를 접수대 여직원에게 전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관영은 지체 없이 밖으로 나와, 조금 전에 섰던 자리에 다시섰다.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방송팀의 조명까지 그에게 집중했다. 관영은 모두들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의 옆에는 서주원 전부의장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다.

 

차츰 소란이 잦아들자 관영이 입을 열었다.

 

“정관영 의원입니다. 저는 방금 공화당에 입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입당신청서를 접수시키고 나왔습니다. 당적 없는 무소속의원으로, 이번까지 3선을 했지만, 무소속으로서 지난 두 번의 임기간은, 특별히 불편함을 못 느꼈습니다. 모든 정치적인 사안에 깊이 간여하거나, 주도적인 역할은 할 순 없었지만, 그 대신, 한편에 비켜서서, 정치 현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눈여겨 볼 수 있었습니다. 적응을 많이 했다고도 할 수 있고,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3선까지 됐으므로, 좀 더 큰 목표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화당에 입당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여당, 야당을 구분하기 전에, 우리 모두의 뿌리는 대한민국입니다. 공화당에 입당이 허락 되더라도, 당원으로서의 본분보다는, 국민으로서의 본분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이 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관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질문이 터져 나왔다.

 

“큰 목표라는 말씀은 대선 출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느 소속 기자인지도 밝히지 않았으나 관영은 개의치 않고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출마자체는 목표가 아니고, 출마해서 승리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가 되겠지요. 그리고 1차적인 목표는 대선승리이지만, 그 대선승리는, 진정한 목표를 달성하기위한 교두보일 뿐입니다. 대선승리, 그다음을 염려하고 연구해서, 국민모두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 진정한 목표입니다.”

 

“대선승리 다음이라면, 어떤 공약의 실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공약이 이미 준비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공약을 생각해놓은 것은 있으나 온전히 준비됐다고 말씀드리기에는 부족합니다. 큰 방향만 정해놓은 상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 다음 기회에 차차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 모든 언론은 일제히, 관영의 여당 입당과 대선출마선언에 대한 특집기사로,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전의 개막을 요란하게 알렸다. 관영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알려졌던 것들을 포함한 특집기사로, 그중에는 앞으로 있을 대선 후보경선 예측 기사도 있었다.

 

 

한편, 장훈의 야당은 오랜 만에 맛보는 승리감에 젖어있었다.

 

특히, 수도권에서 완승을 거둔 것에 대하여, 짜릿한 전율을 만끽했다. 선거비용을 터무니없이 적게 쓰고도, 완승을 한 장훈의 선거 전략을 입이 닳도록 찬양했다.

 

내 노라 하는 선거의 귀재들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전략이라는 것은, 물량동원에 온갖 루머를 퍼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비방과 뻥튀긴 공약에, 현금봉투를 살포하고, 골목골목을 확성기로 누비고 다녀야, 승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패배했을 때는, 상대편이 더 많은 선거비용을 썼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었다.

 

장훈의 당내 위상은 공고해졌다. 당 내에서는 대선주자로서 비견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정관영 의원의 여당 입당과 사실상의 대선출마선언이 터지며. 언론은 연일 대선전망을 내놓았다.

 

여론 조사기관들은 수시로 대선후보지지율을 발표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장훈의 지지율이 관영의 턱밑까지 따라붙는 양상을 보였다.

 

관영의 지지율은 여당입당 후, 6%가 떨어져 33%를 나타냈고 장훈의 지지율은 11%나 올라서 29%로 나타났다. 장훈은, 자력으로 지지율이 오르긴 했으나, 관영을 넘어서지 못함을 자탄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율격차는 다시 벌어져 갔다. 관영의지지율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고, 장훈의지지율은 제자리를 했던 것이다.

 

장훈의 보좌관 김인용이 위로 비슷한 말을 했다.

 

“의원님! 좋은 징조입니다. 역대선거에서 초반지지율1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정관영의원도 언론이, 깡그리 까뒤집어 재낄 겁니다. 흠 없는 사람 없습니다. 기다려 보십시오. 제 말이 틀림없습니다.”

 

장훈은, 선거 때까지 일정을 두 가지로 나누어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한 생각]과[한 생각2]의 법률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한 생각]이 실제로 실행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미리 알아내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이끌어 나갈 이 나라의 실제의 모습, 즉, 국토와 국민의 실체와 실태를 직접 찾아, 파악하고 느끼기 위해 전국을 탐사하기로 한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법조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들 중, 22명을 엄선하여 매주 1명씩을 탐사 팀에 합류시켜, 최소 하루 동안 일정을 함께하며 내밀한 대화를 갖기로 했다.

 

장훈의 탐사 팀은 기사 1명, 촬영 2명, 기록1명, 총괄1명, 그리고 장훈까지 6명에다, 일주일에 하루는 법조인 1명을 추가해서 7명이 되었다.

 

일정을 완전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처음부터 기자들이 몰려오고 현지관료들이 들러붙었다 진지하게 이 나라 모양과 국민의 실상을 알아보려고, 시작한 탐사계획이 기자들이나 관료들로 인해서, 모양새가 묘해질 수가 있었다. 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수십 명의 취재진 앞에 장훈이 섰다.

 

“취재진 여러분 참으로 수고가 많습니다. 어렵게 여기까지 찾아 오셨는데, 야속한 말씀을 드리게 돼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팀, 그냥 유람이나 하는 거, 아닙니다. 공부하는 겁니다. 공부하는 행위를 이슈화하기위해, 방해를 하면 안 됩니다. 부탁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철수하시지 않는다면, 저희 팀은 그냥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계획을 취소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의 이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여러분께서 모두 철수하실 때까지, 이 자리에서 그냥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 일정이 끝날 때까지, 그 어떤 취재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며, 끝나는 날, 여러분 모두에게 똑같이, 취재의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출발했다는, 정도의 보도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떠한 질문도 응하지 않겠습니다.”

 

기자들이 돌아간 것은 그로부터 2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자기들 끼리 몇 번의 회합이 있고 나서였다.

 

군수를 비롯한 관료들도, 장훈의 핀잔에 가까운 질책을 받고 물러났으나, 핀잔을 받고도 느물거리는 인물들이 있었다.

 

공무에 힘쓰고 우리에게는 개의치 말아달라고 해도, 넉살좋게 붙어서, 이 지역은 자기들이 잘 알고 있으니, 안내를 해드리겠다거나, 식사와 숙소를 준비했다는 등해서,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겨우겨우 설득해서 떼어내고, 한 시름 놓을라치면 이번엔, 인편으로 특산품이나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 보내왔다. 장훈은 불쾌감을 담아서 돌려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약해놓은 민박집을 찾아내서는, 대청소에 잠자리 베게나 이불까지, 새것으로 바꿔 놓는 등의 닳고 닳은 인물도 있었다. 장훈은 예외 없이 반려했다.

 

한 번은 민박집 벽지를 급하게 새 것으로, 도배를 해놓은 적도 있었다. 장훈은 혀를 내두르며 경탄했으나, 잠은 아예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다. 힘 있는 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것을 다른 말로 하면, 힘없는 자에게는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게다.

 

경기도 파주를 시작해서, 경기도 전역을 탐사하는데, 1개월이 좀 더 걸렸고, 충청남북도를 1개월, 강원도를 1개월, 경상남북도는 1개월 조금 더 걸렸고, 전라남북도를 1개월 걸렸고, 제주도는 보름정도 걸렸다. 그러고 나서 서해의 연평도에서부터, 남해의 섬들과 동해의 울릉도까지 두루 돌아보았다. 탐사기간 동안 수시로, 서울을 다녀오기도 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아주 깊은 산골짜기에도, 어김없이 집이 있고 사람이 살았다. 사람이 전혀 살 것 같지 않은 외딴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미구에 무인도가 될 섬들이다.

 

동네라고 하기에 뭣한, 겨우 두세 가구가 있는 마을도 있었다.

 

마을이 제법 큰 듯해서, 들어가 보면 빈집이 태반이었다.

 

어디를 가나 도시가 아닌 곳에는, 노인들만 있다시피 했다.

 

면 소재지의 초등학교는, 태반이 폐교됐거나, 폐교직전이었다.

 

이 나라가 적지 않다는 것을, 섬 지방을 다니면서 더욱 확실하게 느꼈다. 섬 깊숙이 들어가 보면, 전혀, 섬 같지 않고 강원도 깊은 산골짝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라를 하나 만들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장훈은 자신의 그릇이, 적다는 것을 새삼 느껴졌다.

 

깊은 산골짜기까지도, 도로포장은 잘 돼있는 편이었다.

 

도로만큼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동안은 신규 도로공사는,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시골 동네, 정비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0여 가구 되는 동네에 3∼4개의 폐가가 있었는데, 마냥 방치해놔서, 귀신 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어찌된 일인지 깊은 산속에 타이어. 냉장고 소파 등이 버려져 있기도 하고. 대부분의 하천들과 해변 그리고 도시의 외곽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지였다.

 

장훈 팀은 사진과 함께, 주소와 장소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장훈이 가장 분통을 터트린 것은, 도시의 길바닥에 붙어있는 껌 딱지였다.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사람이 다니는 모든 길, 시멘트 블록이던, 대리석이던, 모든 보도블록은 온통 껌 딱지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일수록, 껌 딱지는 많았고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주변은 넌더리를 칠 만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함부로 버린 사람들의 잘못이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 껌을 생산해서 판매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전국의 길을 껌 딱지로 도배할 정도의 부작용은 생각지 않고, 껌을 만들어 돈만 벌면 된다는, 안이한 기업정신에 장훈은 정말 화가 났다.

 

매주 법조계에서 존경받거나, 영향력이 큰 인물들을 초대해서 1박을 겸해 24시간 동행하며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들을 만날 때마다 첫 멘트는 같았다

 

“000님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확률이 거의 100%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국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대통령 될 사람이, 국토와 국민들의 실상을 살펴보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000님께서도 지금부터 24시간 동안만이라도, 저와 함께하시며 많은 의견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실로 파격적인 첫 멘트를 상대방을 정면으로 바로 보며 머뭇거림도 없이 명쾌하게 날렸다.

 

평소의 장훈은 자신을 낮추면 낮췄지, 이런 식으로, 마음을 표출하지 않았었다. 당선확률 100%라니, 어안이 벙벙해지는 멘트였다. 초대되어 온 법조인은 물론이고, 함께 한 일행들도 처음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러나 장훈의 표정엔 장난 끼 하나 없이, 진중한 어투로 덧붙였다.

 

“믿기지 않으시지요? 제가 제 입으로 당선확률 100%라고 하니, 이상하시지요? 그만큼, 제겐 확실한 무언가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당선되는 건 확실합니다. 당선이 문제가 아니고, 당선된 다음이 문제입니다. 당선된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하다보면, 법률적으로 문제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하겠기에, 000님을 뫼시게 된 겁니다.서울에서 잠시잠깐 만나 뵙고, 의견을 나누기보다는, 하루 정도 함께 나라를 둘러보고, 나라걱정도 함께 하다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길도 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애국심도 생기고요, 고생도 될 겁니다. 식사도 마땅치 않을 수 있고. 잠자리도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뭐!…하루정도야!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그렇지요?”

 

이쯤 되면 수긍 안할 수가 없게 된다.

 

“아! 그럼요. 저야 영광이죠! 의원님께서는 9개월 동안 하신다는데, 하루정도야 기쁜 마음으로, 임해야겠지요. 그리고 법률적인 일은 의원님이, 더 잘 아실 텐데, 저를 불러주시니 영광으로 알고, 부족하지만…이런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유람을 겸해서 나라사랑 공부 좀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흔쾌히 수긍했는데,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머지않아 감투선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장훈은 이 기회에 그들의 인물 됨됨이도 살필 수 있었고, 실제로 후일, 그들 중 7명에겐, 요직을 맡기기도 했다

 

“000님 대통령은, 험난하게 살고 있는 국민들을, 우선적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이니까, 국민 개개인의 삶에 격차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심한 것은,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자살자가 40 여명으로 세계 1위인데, 그 대부분이 가난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도 안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아기를 키울 형편이 못 되니 못 낳는 거죠. 그래서 출산율도 세계 꼴찌라고 하잖습니까?”

 

“000님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거 때만 되면 온 나라가 패를 갈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정상입니까? 저, 영호남의 뿌리 깊은 지역 싸움을 비롯해서, 진보와 보수가 싸우게 하고,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싸우게 하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싸우게 하는, 이런 선거가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끈끈한 부탁의 말씀도 빠짐없이 다지듯이 했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건 확실 합니다만, 당선되고 난후에 할 일들 중에는, 파격적인 것들도 꽤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런 일들을 실행에 옮기다보면, 가장 염려되는 게, 법률적인 겁니다. 저도 법을 전공했으니, 법을 알지만, 어떤 측면을 우선해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위헌소지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잖습니까? 유권해석을 할 때도, 입법, 사법, 행정, 등 기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요. 학리해석을 할 때도, 원리나 문장 하나하나에 나타나는 의의가, 법의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잖습니까? 000님, 오늘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에 지나지 않지만, 제 진심을 보아주시고, 제가 곤경에 처하거나, 힘에 부칠 때, 천군만마의 힘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장훈의 국토 대장정은 9개월을 조금 지나서 서울로 돌아옴으로써 끝났다. 사진을 첨부한 기록철이 48권으로 만들어졌다. 동영상도 상당했다. 장훈이 떠날 때보다 조금 살이 빠지고, 검게 탄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약속을 잘 지켜주신 덕분에, 저도 9개월의 일정을 마치고, 약속대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9개월이라는 기간이, 이 나라 전체를 둘러보기에는,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번 일정도 겉핥기식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작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릇이 적은 탓인지, 우리나라가 엄청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낀 일정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토자체의 다양한 모습과, 거기에 적응해 사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많은 기록을 했고, 동영상도 얻었습니다. 많은 공부를 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북녘 땅을 못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장훈의 말이 끝나자 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 “이번 전국투어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행해진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장훈 “대선보다는 대선 후를 위해서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기자; “그 말씀은, 대선에 승리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를 위한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까?”

 

장훈 ; “그렇습니다.”

 

기자 : “그럼 대선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다는 건데요?”

 

장훈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지더라도 제가 갖고 있는 자료를, 승리한 그분에게 제공해 드리려고 합니다.

 

기자: “아! 아직 미정입니다만, 여당후보인 정관영의원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 그 자료들을 정관영의원에게 제공하겠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

 

장훈; “네 맞습니다. 제공하는 방법도 있고요. 대통령당선 되신 분에게, 장관자리 하나 부탁해서, 직접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기자; 예? 대선에 패배한 분이, 승리한분에게 장관자리를 부탁한다고요?”

 

장훈; 왜? 안 됩니까? 야당 정치인이 각료가 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기자들이 어리벙벙한 채로 어수선 해졌다.

 

마땅한 다음 질문거리를 찾으려는 짧은 침묵을 깨고 장훈이 말했다.

 

“여러분께서 좀 당황스러운 것 같은데, 저는 야당정치인이기 전에, 대한민국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의 책무는 국민이 좀 더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맨 날 싸움질하는 정치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시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승리를 위한 싸움은, 하지 않을 겁니다. 선의라는 이름으로 경쟁하는 것도, 가급적 삼가 할 것입니다. 경쟁은 늘 과열로 치닫는 것을, 우리 모두는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경쟁보다는, 실제적인 협력을 모색하겠습니다. 의견은 서로 틀릴 수 있습니다. 틀리다고 싸우면, 누가 이익을 봅니까? 싸우지 않고 토론과 협상을 계속하다가, 그래도 안 되면, 축구의 페널티 킥 승부같이 번갈아 차 넣는 방법이나, 축구경기의 진영을 정할 때 동전던지기, 같은 방법도 고려해 볼 생각입니다. 당리당략은 이제 숨을 못 쉬게 하고, 국리국략 만을 위한 정치가,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여러분의 몫을 다해 주기바랍니다.”

 

다음날 신문 기사는 볼만했다.

 

페널티 킥 승부차기와 동전 던지기가 제일 큰 이슈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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