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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홍 작가 역주 ‘금강경 강해’ 출간

박정대 기자 l 기사입력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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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홍 작가.     ©브레이크뉴스

서재홍 작가가 역주한 “금강경 강해-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를 중심으로”가 출간(출판사=담앤북스) 됐다. 

 

이 책, 『금강경 강해(金剛經五家解를 중심으로)』는 역자가 수십 년에 걸쳐 공부하고 연구해 온 대승불교의 정수 「금강경」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 불교와 유학을 두루 학문한 역자의 방대한 식견과 「금강경오가해」로 집대성된 다섯 조사의 통찰이 만나, 손에 잡히지 않던 경문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출판사 서평 측은 서평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하는 지혜의 나침반 「금강경」 읽기”라고 평했다. 출판사측은 “「금강경」은 붓다가 29세에 출가해 6년간 수행한 뒤, 20여 년이 지난 50세 초반부터 21년간 설한 ‘육백반야(六百般若)’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경전이다.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이 본래 이름으로 ‘금강같이 단단한 지혜로써 깨달음을 이루어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붓다의 말씀’이다. 기원전 150~200년경 결집되었으며, 범어로 된 원문을 전문 5149자로 한역漢譯하여 팔만대장경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논리적인 경문으로서 『반야심경』과 함께 널리 알려져 있다”면서 “한동안 ‘한국불교는 금강경불교’라고 회자될 만큼 대중적인 불교경전이자 인문학으로 일컬어지는 「금강경」이지만 막상 경전의 전체를 꿰뚫는 ‘공사상’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용해야 하는지, 그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역자는 「금강경」 총 32분을 읽어 나가는 과정이 본래면목, 즉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공(空)’을 아는 것은 완전한 무(無)를 아는 것이 아니라 가아(假我)를 버리고 진아(眞我)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최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근본은 참나를 깨닫는 것이고, 그 길이 금강경 안에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길을 안내하기 위해 역자는 경문의 원문과 본래 뜻풀이[字解], 역자의 해설[講解]를 차례로 실어 경문을 반복해서 읽으며 자연스럽게 경문의 내용을 익히도록 했다. 여기에 「금강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한 길잡이로 꼽히는 「금강경오가해」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 「금강경오가해」는 규봉 종밀, 육조 혜능, 부대사, 야부 도천, 예장 종경 등 다섯 조사가 설한 「금강경」의 주석을 조선 초기 함허 득통 스님이 집대성한 것으로, 경문과 역자의 해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적절한 구절을 가려 뽑아 오가해를 따로 읽지 않아도 충분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금강경오가해」를 편찬한 함허 득통 선사의 설의를 비롯해 불교와 유학의 경계를 오가는 대가들의 금구를 덧붙이고 관련 설화를 수록하여 강독의 깊이를 더하고 안목을 넓혔다.

 

역자의 강해와 조사 스님들의 주석을 따라 가다 보면 “설한 바 설한 것이 없으며, 중생을 제도한 바, 한 중생도 제도한 바 없다.”는 붓다의 의중과 「금강경」이 인도하는 깨달음의 자리에 닿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이 책, 본 문 속의 주요한 내용이다.

 

○…『금강경』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석가모니부처와 그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수보리존자(須菩提尊者)의 문답 내용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붓다와 수보리의 대화’이다. 이 경 앞부분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한 것은 붓다의 입멸 이후, 붓다의 측근 시봉(侍奉)이었던 아난(阿難)이 500여 아라한(阿羅漢) 앞에서 자신이 들은 내용들을 구술(口述)할 때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유래된 것이다. 이에 따라 팔만대장경의 첫 장 첫 구절은 대개 이와 같이 ‘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여시(如是)’는 『금강경』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붓다가 생전에 설한 것을 화자話者인 아난존자 개인의 독단이나 편견이 아님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따라서 『금강경』뿐 아니라 경전 대부분의 서두는 모두 ‘여시아문’으로 시작되고 있다. 단 이 경을 한역한 구마라집은 『금강경』을 비롯한 모든 경전에서 ‘여시아문’ 이라고 하였으나, 구마라집보다 약 150년 앞선 강승개(康僧鎧)는 조위(曹魏) 가평4년(嘉平, AD.252)에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을 한역하면서 ‘나는 들었다. 이와 같이[我聞如是]’ 라고 하여 ‘아문’과 ‘여시’를 도치(倒置)하였다.// 35~36p < 제1 법회인유분 >  가운데

 

○…붓다는 이러한 구류중생(九類衆生)을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모든 중생을 적적요요(寂寂寥寥)한 안락세계로 이끌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붓다는 다시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이 많은 중생을 구하려 해도 실제로 멸도를 얻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며 부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붓다는 제2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의 질문을 받고 ‘어떻게 이런 훌륭한 질문을 하였는가![善哉善哉]’ 라고 칭찬하면서 ‘ 선남자선여인이 무상정등각의 마음을 일으켰을 때, 마땅히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다스릴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제3 「대승정종분」에서는 청천벽력같이 냉철한 어조로 돌아서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 그런 다음 ‘왜 그런가?’라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이것을 육조 혜능은 “ 일체의 미혹한 사람이라도 자성을 깨닫게 되면, 부처는 스스로의 상(相)도 보이지 않고, 스스로의 지혜도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되니, 어찌 중생을 제도했다 하겠는가! 다만 범부가 자기 본심을 보지 못하고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해, 모든 상에 집착하여 무위의 이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인(我人)을 없애지 못하므로, 중생이라 이름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병을 여의게 되면 실제로 중생이 멸도를 얻었다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망심이 없는 곳이 바로 보리(菩提)이고, 생사열반이 본디 평등하여 없는 것인데 어찌 멸도가 있다고 말하는가!”라며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63~64p < 제3 대승정종분 > 가운데

 

○…요컨대 붓다의 교설을 이해하려고 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공空과 무無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이해이다. 흔히 공은 비었음을 말하지만, 불가의 본디 뜻은 ‘텅 빈 충만의 세계’로서 진실로 비웠을 때 드러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이다. 이러한 공의 세계는 무(無)를 품고 유有를 드러내어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를 되풀이하는 무한생명(無限生命)으로서 무한의식 세계(無限意識 世界)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유有와 무無에 대한 이해이다. 즉 ‘있음’은 ‘없음’에 의거하여 나타나고, ‘없음’은 ‘있음’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일 수 없고, 긍정은 긍정을 위한 긍정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아(無我)와 무심(無心)이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자아(自我)는 두고 불필요하게 망상을 부리는 가아(假我)를 구분하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86p < 제5 여리실견분 > 가운데

 

○…예컨대 칠보로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 보시한다는 것은 세간에선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보시도 ‘베푼다는 상相’을 지닌 보시는 언젠가는 무너져 사라지기[有相有限] 마련이다. 하지만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으로 맑고 깨끗하게 이끄는 법보시는 상이 없고 담박하여 없어지지 않는다[無相無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장의 제목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무위의 복덕’이 ‘대가를 바라는 유상유위의 복덕’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재보시와 법보시를 규봉 선사는 “보시는 생사(生死)에 감응(感應)함이요, 경(經)은 보리(菩提)로 나아감이니, 큰 뜻은 위의 경과 같도다”라고 하였다. 또 야부 선사는 “바다에 들어가 모래알 수를 헤아림은 한갓 힘만 허비함이니 / 곳곳마다 홍진(紅塵)에서 벗어나지 못함이라 / 어찌하여 내 집의 진귀한 보배를 꺼냄이 / 고목에 꽃 피우는 특별한 봄만 같다 하리오!”라며 항하사를 헤아리듯 하는 재보시(財布施)와 내 안의 자기를 밝히는 법보시(法布施)를 비유하여 읊었다.// 151~152p < 제11 무위복승분 > 가운데

 

○…요컨대 붓다가 지금까지 설한 것은 ‘불성(佛性)이란 의식(意識)을 넘은 무의식(無意識)에 바탕 한 무위법으로, 이러한 무위법을 깨달았을 때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위법은 누가 알아서 안겨 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에게 본디 갖추어져 있으므로 오로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메시지이다. 요컨대 붓다가 연등불이 지닌 법을 이어받은 바가 있다면, 결코 연등불의 수기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가 말하는 불성에 이르고자 하는 법은 문자 그대로 특정한 모양[相]이나 집착이 없는 무위(無爲)이다. 만약 모양과 집착이 있다면 무상정등각의 지혜도 아닐뿐더러, 깨달음은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가에서 말하는 존재의 본질이란, 취(取)하거나 버림[捨]이 없는 본디의 자리를 깨달아 나도 없고 대상도 없으며, 갖춤도 없는 아공(我空)・법공(法空)・구공(俱空)이다. 그래서 연등불이 석가모니붓다에게 수기한 것은 이와 같이 상과 집착이 없는 보살행을 보고 수기를 내렸을 뿐, 당시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에서처럼 별도의 법을 전하거나 받은 것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한 것이다.// 228p < 제17 구경무아분 > 가운데

 

○…요컨대 여래의 법신은 상도 아니고[非相], 상 아님도 아니다[非非相]. 그러므로 옴[來]도 없고 감[去]도 없어 동(動)과 정(靜)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여래의 상相은 하늘의 달과 물속의 달로써 여래의 법신과 색신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즉 물속의 달은 비바람과 물결, 구름 등의 변화와 조건에 따라 여러 형상으로 변할 수 있지만, 하늘의 달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따라서 물속의 달이 사라지는 것은 구름이달을 가렸기 때문이며, 물속의 달이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으로 일어난 물결 때문인 것으로 달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고요하면 변함없는 부처의 법신을 볼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흐리고 산란하면 법신은 보이지 않고, 색신인 몸의 움직임만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법신의 여래는 오는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으므로 이름 하여 여래라고 한 것이다. // 309p < 제29 위의적정분> 가운데

 

지은이 서재홍(徐在鴻) 작가 소개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석사과정으로 인도철학을 이수하고, 박사과정으로 부산대학교에서 중국철학을 이수했다.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부산지부 사무국장, 법무부산하 청소년교정위원, 부산차인연합회 초대 사무국장, 아산학회 학술위원 및 <亞山會報> 편집주간 등을 역임하였다. 2006년 ‘東西茶文化硏究所’를 개설, 현재 차 문화와 관련한 古文을 강독하고 있다. 「格物致知의 보편적 이해와 사회적 변화」(아산학회, 2001), 「宋朝六賢의 易學思想과 해석학적 新儒學」(아산학회, 2008), 「哲學과 道學」(茶와 인생, 2009), 「禮와 樂의 상관관계와 긴장관계」(禮茶文化연구소, 2010), 「無量壽經宗要를 통한 元曉의 淨土思想」(동아대학교, 2012), 「仁禮義智는 한국인의 정체성」(禮茶文化연구소, 2014), 「한국 性理學에 나타난 한국인의 정체성」(부산대학교, 2015), 「왜 人文學인가」(부산중앙포럼, 2019) 등 10여 편의 논문과 『古今茶話』(시민시대), 『般若心經 禪解』(담앤북스,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 서재홍 작가의 금강경 강해.  ©브레이크뉴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Published “The Geumgangkyung Strong Sea” in translation by Jaehong Seo

The insights of the five investigations meet and the meaning of the scriptures that could not be held is clearly revealed

-Reporter Park Jeong-dae

 

“The Geumganggyeongganghae-Geumganggyeongohgahae” was published (publisher=Dam&Books), played by author Seo Jaehong.

 

This book, 『Kumganggyeongganghae(centered on the 金剛經五家解)』 is an easy-to-understand interpretation of the essence of Mahayana Buddhism, which the translator has studied and studied for decades. The vast insights of the translators who have studied Buddhism and Confucian studies and the insights of the five surveys compiled in the "Geumgang Gyeonggyeong Mihae" meet, and the meaning of the scriptures that could not be held is clearly revealed.

 

The book review of the publishing company said in the book review, "Reading "The Geumgangkyung, the compass of wisdom that guides you to the world of enlightenment" The publishing company said, “Geumganggyeong” is one of the best scriptures among the “Six Baekbanya” that was written for 21 years from the early 50s after 20 years after the Buddha went to the temple at the age of 29 and practiced for 6 years. The names of the sutras are "Geumgang Banyabaramil Gyeong" and "Nungdan Gumgang Banyabaramil Gyeong" as their original names, "The word of the Buddha who reached the hill of Nirvana by achieving enlightenment with strong wisdom like Geumgang." It was gathered around 150~200 BC, and it is widely known along with 『Banya Heart Suspension』 as the most concise and logical scripture among the Tripitaka Koreana by using Korean translation of the original text in Beom-language with 5,149 specialized characters. It is a popular Buddhist scripture and is said to be a humanities, but it is not easy to understand what is the'Gongsangsang' that penetrates the entire scripture, how to understand and use it, and its contents. The translator reads “Kumgangkyung” for a total of 32 minutes, which is the process of finding the original face, that is, the essence of existence, and knowing'empty' is not knowing complete nothingness, but abandoning falsehood. I thought it was going to find Jin-ah. He emphasized that the foundation for living the best life is to realize the true me and that the path is within the Sutra.”

 

“In order to guide the path, the translator put the original text of the scriptures, the original meaning interpretation [字解], and the translator's commentary [講解] in order, so that he could learn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naturally by reading the scriptures repeatedly. Here, I actively borrowed the contents of the “Geumgang Gyeonggi Haehae”, which is regarded as the best guide for understanding “Kumgang Gyeonggi”. ``Geumgang Gyeongohhae'' is a compilation of the commentaries of ``Geumganggyeong,'' written by five investigators including Gyubong Jongmil, Yukjo Hye-neung, vice-sa, Yabu Docheon, and Yejang Jong-gyeong. I chose the appropriate verses so that I do not need to read misunderstandings separately. In addition, he added the theories of Master Hamhe Deuk-thong, who compiled the Geumgang Gyeong-Ogahae, as well as the gold tools of masters who cross the border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and included related stories to increase the depth of reading and broaden the perspective.

 

Commentary on the Translator and Investigation Following the commentary of the monks, we reach the place of enlightenment led by the Buddha's intention, "There is nothing that has been said about it, that regeneration has been instituted, and no regeneration has been instituted." It will be,” he added.

 

Below are the main contents of this book and main text.

 

○… As mentioned above, Geumganggyeong is the content of the question and answer between the Buddha of Shakyamuni and Subori Vendetta, one of its teenage students.(須菩提尊者) To put it in words these days, it is'the conversation between the Buddha and Subori'. In the beginning of this scripture, “I heard this way” was said after the Buddha's death, when Anan, who was an aide of the Buddha, dictated what he heard in front of more than 500 Arahan, “ I have heard it like this.” Accordingly, the first verse of the first chapter of the Tripitaka Koreana usually begins with “Yeo Xiamun” like this. Here,'Yeosi' refers to the contents of 『Geumganggyeong』, and is intended to prove that what the Buddha wrote in his lifetime is not the dogma or prejudice of the narrator, the narrator. (Omitted) Therefore, not only the Geumganggyeong, but most of the scriptures all begin with'Yeo Xiamun'. However, the Gumarajip, which translated this scripture, is called'Yeosiamun' in all scriptures including 『Geumganggyeong』. "I heard it." In this way, “Amun” and “Yeosi” were inverted by saying [我聞如是]”. // 35~36p <1st Beophoein Yubun>

 

○… The Buddha says that he will bring all of these detained regeneration into a no-yielding nirvana, leading all regeneration into a world of comfort that is red, red, and dynamism (寂寂寥寥). However, the Buddha, who said this way, denies again, saying, "Even if you try to save such a limitless and endless number of sentient beings, no one has actually been destroyed." In other words, the Buddha received a question from Subori in the 2nd 「Seonhyeongi Cheongbun」 and praised'How did you ask such a wonderful question![善哉善哉]' and praised'When the Sunman Seon Woman aroused the heart of free spirits, he deserved that. I will teach you how to stay in your heart and how to control it.' However, in the next 3rd 「Daesungjeongjongbun」, it turns into a cool tone like a blue sky and shocks readers. Then,'Why Go?’ and explain why. Hye-neung Yuk-jo said, “If even any deceitful person realizes her self, the Buddha can't see her own image and know that she doesn't have her own wisdom. However, it is called regeneration because the bum does not see his true intentions and does not know the will of the Buddha, obsessed with all the statues, cannot reach the reason of ignorance, and cannot get rid of Ain (我人). There is no real thing that regeneration has been destroyed if this disease is removed. That is why the place where there is no remorse is barley, and there is no life and death nirvana because there is no inherent equality, so how do you say that there is destruction!”// 63~64p <3rd Daeseungjeongjongbun>

 

○… In short, if we try to understand the Buddha's doctrine, it is an understanding of the affirmation and negativity of emptiness and nothingness, as mentioned earlier. It is often said that the void is empty, but the original meaning of the impossibility is the world of vacuum myoyu (眞空妙有) that is revealed when it is truly empty. Such a world of emptiness is to approach the world of infinite consciousness as an infinite life that embraces nothingness, reveals existence, and repeats its creation and destruction. The next is the understanding of existence and nothingness. In other words,'with' is revealed by'no', and'without' is revealed by'with'. Therefore, negative cannot be negative for negative, and positive cannot be positive for positive. Therefore, selflessness and innocence do not mean to get rid of the existence of'I', but that the self, which is necessary for survival, should be divided and ruled by unnecessarily delusional self. // 86p <The 5th Yeo-ri Dismissal> Middle

 

○… For example, it is very difficult in the world to fill the world of three thousand and three thousand with a cloisonne. However, even with such a difficult bosi, the bosi with “giving,” will someday collapse and disappear [有相有限]. However, seeing how to lead clear and clean with the realization of impermanence is that there is no image and it does not disappear because it is simple. In other words, as in the title of this chapter, it emphasized that'the blessings of a free dance who do not wish for a price' are more excellent than'the blessings of a paid party who wish for a price'. Master Kyubong said of these poetry and beopbo poetry, "It is responsive to the life and death to be seen, and the gyeong (經) is moving toward barley, so the big meaning is the same as above." Also, Zen Master Yabu said, “Because entering the sea and counting the number of grains of sand is only wasting energy / because I can't escape from the hongjin (紅塵) everywhere / Why take out the precious treasure of my house / It seems like a special spring that blooms on an old tree! Hario! "" and said that it was compared to a jaebo poetry (財布施) that counts the sergeant's words and a beopbo poetry (法布施) that reveals the self in me. // 151~152p

 

○… In short, what the Buddha has said so far is a lawless law based on the unconsciousness beyond the consciousness of ‘Buddhism (佛性), and when he realized such a lawlessness, he said that he was unlawful of gongseong (見性成佛). Therefore, the lawlessness is not something that anyone gives. The message is that all beings are intrinsically equipped, so you only have to realize them yourself.' In short, if the Buddha inherited the law of lanterns, he could never receive the notes of lanterns. Because the Buddha's method of reaching Buddhahood is literally nothingness without a specific shape or attachment. If there are shapes and obsessions, it is not only the wisdom of impermanence, but enlightenment is not even more. In other words, the essence of existence in Buddhism is the realization of the original position without being drunk or abandoned, and there is no me, no object, and no match, agong, beopgong, and gonggong.空). Therefore, the reason that the lotus lanterns were written to the Buddha's Buddha was to clearly distinguish that only when he saw the bodhisattva deeds without image and obsession, and that he did not convey or received a separate law as in the Brahmanism or Jainism at the time.// 228p < The 17th Gyeongmuabun> Middle

 

○… In short, the god of law of Nyeorae is neither an image nor an image. Therefore, there is no ohm [來] and no sense [去], so that motion and affection become one. This image of Nyorai is the moon in the sky and the moon in the water, which explain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d of law and saeksin. In other words, the moon in the water can change into various shapes depending on changes and conditions such as rain, wind, waves, and clouds, but there is no change in the moon itself in the sky. Therefore, the moon in the water disappears because the clouds cover the moon, and the moon in the water moves and shakes because of the waves caused by the wind, and the moon itself does not change. In this way, if our mind is clear and quiet, we can see the unchanging Buddha's deity, but if our mind is clouded and scattered, we can't see the deity, but only the movements of the body, which is the color deity. That is why Yeorae of Beopshin was named Yeorae because there is no one to come and no one to go. // 309p <the right amount above the 29th> middle

 

Introduction of Author Ji Eun-yi Seo Jae-hong (徐在鴻)

 

I was born in Busan. He completed Indian Philosophy as a master's program at Dong-A University and Chinese Philosophy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as a doctoral course. He served as the secretary general of the Busan Branch of the Korean Buddhism Youth Rehabilitation Association, a youth correctional committee under the Ministry of Justice, the first secretary of the Busan Tea People Association, an academic member of the Asan Association, and the editor-in-chief of <亞山會報>. Opened the “東西茶文化硏究所” in 2006, he is currently reading old texts related to tea culture. 「Universal Understanding and Social Changes of Gradual Intelligence」(Asan Society, 2001), 「Illustration and Hermeneutic New Studies of the Asan Society」(Asan Society, 2008), 「Secology and Pathology」(Tea and Life, 2009) , 「The relationship and tension between 禮 and pleasure」(禮茶 Culture Research Institute, 2010), 「The 淨土思想 of 元曉 through 無量壽經宗要」(Dong-A University, 2012), 「Non-禮義智 is the identity of Koreans. 」(禮茶 Culture Research Institute, 2014), 「Korean Identity in Korean Sexology」(Pusan ​​National University, 2015), 「Why Human Literature」(Busan Central Forum, 2019), etc. He has books such as (Civic Era) and 『般若心經禪解』(Dam&Book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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