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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님! 대통령님이 걱정이 많으시다지 않습니까?

이헌영 소설가 l 기사입력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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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자 바로, 창가 커튼사이로 밖을 살펴보았다. 저 많은 사람들, 저들은 밤새 저 자리를 지켰으리라.

 

TV를 켜자, 기다렸다는 듯이, 관영을 휘어잡는 뉴스가 튀어나왔다.

 

“재정그룹 김찬주회장이 오늘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어제 밤 독일에서 귀국했다고 합니다. 회견은 전경련회관에서 있을 예정이고, 회견내용은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련의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부유층의 대표 격인 김찬주회장의 입장표명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가 김찬주회장 요청으로 열린다고 합니다.”

 

관영은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온몸이 굳어져, 주먹이 꽉 쥐어졌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요?’하면서 던지던 경멸의 눈길이 새삼 크게 엄습했다.

 

앵커와 평론가의 대담이 더욱 그를 궁지로 몰았다.

 

앵커: “김찬주회장의 기자회견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 데요. 어제 저녁 갑자기 귀국한 걸로 알려졌잖습니까? 전에도 김찬주회장이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나요?”

 

평론가: “없었지요. 김찬주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한 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어떤 내용이라고 예상하십니까?”

 

평론가: “아무래도 반격이 시작됐다고 보아야겠지요. 여야의 두 후보가 그렇게 강력하게 몰아 붙였으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겠지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특히, 대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기 때문에, 모든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봐야지요. 그런 열악한 조건하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공은 언급 없이, 이 나라의 모든 병폐의 원인이, 부유층에 있다고 몰아붙이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겠지요.”

 

앵커: “그럼 오후에 전경련회의도 김찬주회장의 요청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연관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평론가: “그렇겠지요. 이번 여야 두 후보의 공격대상이 부유층이고, 부유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인그룹의 모임이니까요…물론 연관이 있고, 부유층 전체를 대변하는 의견이 나올 겁니다. 김찬주회장이 어제 저녁 급하게 귀국한 것도 두 후보의 부유층공격을 빨리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두 후보의 부유층 공격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잖아요. 특히 허장훈후보의 공약은 부유층의 재산을 어떻게 빼앗을 것인가까지, 구체적으로 밝혔잖아요. 그러니 우리나라 제1의 부호인 김찬주회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고, 전경련회의도 같은 맥락으로 열린다고 봐야 될 겁니다.󰡓

 

앵커: “그러면, 두 후보와 전경련의 대립이 예상 되는데요?”

 

평론가; “그렇지요. 사실 두 후보, 특히 허장훈후보의 공약이 너무 급진적인 거 아닙니까? 한쪽에서 급진적으로 나오면, 다른 한쪽은 보수적이나 중도적인 방향을 제시하곤 했었는데, 이번은 두 후보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부유층을 때리고 나오니, 부유층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지요. 이제 변수는, 정관영후보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변하겠지요. 지금 두문불출하고 깊은 생각에 들어간 거 같은데, 어떤 새로운 공약을 들고 나오느냐? 입니다. 좀 더 합리적이고, 실천가능한 공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합리적이고 실천 가능한 공약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 하시는 겁니까?”

 

평론가: “부유층의 동의 없이할 수 있는 방법, 저 북유럽의 복지국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하고 있는 방법이지요. 세금으로 복지정책을 하되, 좀 더 확대해서 실행하면 되잖습니까? 합법적으로 부유층에서 세금을 더 걷고, 합법적으로 복지를 늘리면 되잖습니까?”

 

앵커: “그게 지금까지 잘 안됐으니까 극약처방이 나온 게 아닐까요?”

 

평론가: “점차적으로 해야지요. 선진국들은 몇 백 년에 걸쳐서, 이룬 것을, 우리는 불과 몇 십 년에 이루어 냈습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급하면 돌아가라고, 말도 있잖아요. 부유층을 다그치면 기업이 위축되고, 기업이 위축되면 결국엔 동남아 꼴 납니다. 과잉복지로 망한 나라가 한둘입니까?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평론가의 수준을 논하고 싶지도 않았다. 김찬주회장의 기습적인 기자회견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비밀은 지켜질 겁니다.” 했던 말이 새삼 떠올라, 순간 몸서리가 처졌다.

 

‘폭로? 설마!…’

 

아침 식탁에서 보다 못한 아내의 한마디에 정신이돌아왔다.

 

“여보! 어제는 그렇게 신이 나서 좋아 하더니 오늘은 왜?… 뭐가 안 좋아요?”

 

“안 좋을 건 없고,… 생각 좀 하느라고…답답하지? 여보! 이제 오늘 낼만 참읍시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다. 초조함을 쫒느라 운동을 했다.

 

운동이래야 맨손체조를 하고 안방, 거실, 건너 방을 천천히 뛰어다니는 것이다. TV 소리를 키워 놓은 채 뛰었다.

 

수시로 커튼 사이로 밖을 관찰했다. 분명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무리가 에워싸고 있다.

 

10시 5분전, 곧 김찬주회장의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다.

 

관영은 갑자기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로 들어가 오줌을 누며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보았다.

 

‘쫄았냐? 쫄았구나!’

 

씩 웃어 보았다. 웃는 얼굴 그대로 돌아서 나왔다.

 

웃는 얼굴로 TV 앞에 앉았다 ‘놀라지 않겠다.’ 는 주문을 마음으로 다졌다.

 

드디어 김찬주회장이 정장차림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표정한 모습이다. 마이크 앞에 설 때까지도 무표정이다.

 

“국민 여러분…죄송합니다.”

 

무겁게 뱉은 첫말이다. 그리곤 단상 옆으로 두어 발짝 옮기더니 허리를 굽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뜻이지?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지, 조바심이 났다.

 

김찬주회장이 다시 단상 앞에 섰다.

 

“여당과 야당의, 두 후보님이 아니었더라면, 깨우치지 못했을 일들이었습니다. 대략 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이렇게까지 극심한 줄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기업의 앞길만 생각하며 살다보니, 우리나라 국민 중 15% 약 750만 명은 재산이 아예 하나도 없다. 라든가 하위50%의 국민, 즉 2500만 명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겨우, 우리나라 전체총재산의 1.7%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솔직히 몰랐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알 기회가 수없이 많았는데, 관심사가 아니었었기에, 몰랐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지금은 선거기간이라 더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두 후보님들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감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제넘은 이야기 같지만, 이 나라에 희망다운 희망이 솟아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절호의 기회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두 손을 들어 전적으로, 찬동하고 동참하겠습니다. 오후3시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있습니다. 이, 주제를 상정해놓고, 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에 다시 한 번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찬주회장은 다시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이고, 회견장을 나갔다. 관영은 김찬주회장이 회견장을 벗어나는 마지막까지, 꼼짝 않고 지켜보았다.

 

‘어떻게?…된 일이지?…야! 아!…이거…?󰡑

 

감당할 수없는 것이 밀려왔다.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잠시 후,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아! 회장니임!…회장니임! 감 사! 감사합니다.”

 

깊고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다. 눈물이 솟아나와 옆으로 흘러내렸다. 한 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아무생각이 안날 때까지, 한참동안 그랬다

 

마침내, 일어난 관영은, 해야 할일을 찾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전경련회의 후에 다시회견을 하신다고 했는데, 아!…회의 전에 …회의 전에 사퇴,… 그래! 회의 전이다. 그래야 회장님이 회의장을 장악할 수 있다. 단일후보, 맞아! 그러면…그러면…’

 

11시20분,

 

보좌관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작전 개시를 알리고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악수를 했다. 계단을 꾹꾹 누르다시피 천천히 오르며, 이제부터 할 일을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의 양 어깨를 바로잡고, 눈을 응시하며, 지극히 다정하게 말했다.

 

“여보! 내가 갔다 와서, 자초지종을 다 말할 거예요. 내일까지 집에 숨어 있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바뀌어서 지금 나갈 거예요. 내가 나가고 얼마 후엔, 아래층 사람들이 나갈 거예요. 그 후엔, 문 잘 잠그고 열어주지 말아요. 내가 좀 늦을 수도 있으니, 전화는 켜두되, 내 전화 외에는 받지 말아요.…갔다 올게요.”

 

관영이 현관을 나서자 일제히 카메라 셔터가 터지며 집 앞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관영이 대문을 나서자, 수많은 마이크가 다투어 다가왔다. 관영이 두 손을 들어 진정시킨 뒤,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여러분 수고가 많습니다.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에게, 어려움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할 이야기는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아니고요.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12시30분경에, 여의도 당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어지러운 질문들을 뒤로 한 채, 다시 문안으로 들어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엔 이미 수행비서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관영이 차에 오르자 주차장 셔터가 열렸다.

 

취재진이 떼거리로 막아섰으나, 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갔다.

 

이윽고, 무리들을 뒤로하고 골목을 나와 상문고등학교 앞을 지나, 방배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를 돌아보니, 취재진 무리가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고개마루턱 신호등에, 관영의 차가 멈추자, 취재진 차량들이 바짝 붙었다.

 

잠시 후, 직진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 관영의차가 느닷없이 유턴을 했다. 그리곤, 속력을 올렸다. 마침, 다음 교차로 신호등도 파란불이고 그 다음은 우회전이다. 예술의전당 밑을 지나는 우면산 터널에 들어서며 돌아보니, 취재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차는 거침없이 목적지인 과천의 중앙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 달려갔다.

 

멀리 중앙 선거관리위원회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검은 승용차 한대가 벼락같이 나타나 정문을 가로질러 급정거를 하고,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관영이 정문에 도착했을 때, 정장차림의 4명의 사내들이 다가왔다. 경적을 누를 새도 없이, 4명의 사내가 에워싸곤, 차문을 열라고 두드렸다. 수행비서가 무어라고 하려고할 때, 관영이 천천히, 차문을 열었다. 순간 한명의 사내는 뒷문으로 관영의 옆자리에, 거의 동시에 또, 한명은 앞자리에 올랐다.

 

이러고저러고 할 새도 없이, 앞자리에 앉은 사내가 수행비서에게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의도 당사로 가십시다. 빨리요! 후보님, 당사로 모시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수행비서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자, 관영이 말했다.

 

“가요!”

 

차는 방향을 틀어 그곳을 떠났다. 정문에서 당사로 출발하기까지, 불과 1분여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뒤이어, 취재진 차량들이 들어 닥치다가, 다시 뒤를 따랐다. 관영은 사내들의 얼굴을 눈여겨 본 후엔 몸을 바로하고,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잠시 후에, 앞자리의 사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으나, 아는 척도 안했다.

 

“네! 가고 있습니다. 네! …네!” 가 전부였다.

 

차가 당사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당사에 도착하자, 취재진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그가 과천 중앙 선거관리위원회까지 갔었던, 뉴스는 이미 전파를 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앙선거 관리위원회에는 무슨 일로 가셨습니까?”

 

“후보사퇴서를 제출하려고, 한다던데, 사실입니까?”

 

“그냥 돌아 오셨는데,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어지러운 질문을 받으며, 관영은 아무 말 없이 당사 안으로 들어가려다, 계단 상단에 다다르자 기자들을 향해 돌아섰다.

 

요란한 카메라셔터소리가 잦아지길 기다려 말문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방금 저는 대통령 후보사퇴서를 제출하려고, 과천 중앙 선거관리위원회까지 갔었으나, 당내의 당직자들이 미리알고 지키고 있어서, 사퇴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기 까지만 밝혀드리고, 곧바로 당사로 들어가서 당 대표님과 관계자분들에게,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여러분들과 회견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이것으로 용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어지러운 질문 공세가 있었으나, 관영은 곧바로 대표실로 향했다. 수많은 의원과 당직자들이 몰려들었으나, 관영은 말없이 연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했다. 김경희 대표도 현관까지 나와 있었다. 어린 당 대표에게, 더 크게 고개를 숙였다.

 

겨우 주위를 물리고, 김경희 대표와 마주앉았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놀라셨습니까?”

 

“어쩌시려고…여당후보께서 사퇴를 하시려고 하십니까? 말이 됩니까?”

 

김경희 대표는 어처구니없다는 말투이면서도, 뭔가 퍼즐을 맞춰보려는 눈치였다.

 

“제가 사퇴서를 내야만 하는 이유를, 지금은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짐작하고 계시죠? 이제 대표님이 지지성명을 내실 차례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허장훈후보의[한 생각]으로 양극화가 해결되고[한 생각2]로 대통령선거의 병폐가 사라집니다. 우리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나, 제 자신이 대통령 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나라가 잘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대표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퇴를 하려고한 것이고, 이제 대표님의 지지 성명이 중요해진 겁니다.…지지 성명입니다. 허장훈후보의[한 생각]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지성명을 해 주십시오“

 

관영은 김경희 대표를 똑바로 보며, 낮은 목소리로 빠르고 분명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아이고! 그래도 그렇지요. …이게 말이 됩니까?”

 

“대표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나라에 기회가 도래한 겁니다. 우리나라 전체 역사에서도, 이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성공목전에 와있습니다. 부유층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김찬주회장의 회견도 보셨잖습니까? 오후에 전경련 성명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부터, 여론도 확, 달라질 것입니다.…의원총회를 열어 주십시오.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해명할 건, 해명하고, 맞을 건, 맞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표님의 지지성명을 기대하겠습니다. 양극화문제는, 대표님께서도 꼭 해결하고 싶어 하시지 않았습니까?…허장훈후보는 훌륭 하신분이고, 양극화 해결의 적임자입니다“

 

“하! 아!… 이걸 어쩌나? 명색이 여당 대표인데…”

 

그때, 문이 급히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키가 크고 잘생긴 그 사람,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아! 후보님! 대표님! 실례 좀 하겠습니다. 정무수석 정진채입니다. 대통령께서…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다급한 표정이었으나, 말투는 부드럽고 정겹기까지 했다.

 

관영은 정무수석의 얼굴은 알고는 있었으나, 대면은 처음이었다. 관영은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중앙 선거관리위원회 정문에서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사내들을 부리는 인물이라는 것을, 직관으로 알 수 있었다. 김경희 대표가 엉거주춤 자리를 내주고 마주 인사를 했으나, 관영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세 사람은 찻잔도 없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대통령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후보님, 죄송합니다. 그동안 특별히 힘이 돼드리지 못했습니다. 워낙 후보님께서 잘 하시고 계시니까, 대통령님이나 제가 만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거듭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부터는, 열심히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완주만 하시면 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관영은 여전히 빙긋이 웃기만 했다.

 

김경희 대표는 관영이 무슨 대꾸를 할 줄 알고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는 모습을 보이자, 어색한 분위기에 난감해 하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어떤 식으로 도와줄 생각인데요?”

 

정무수석은 관영이 대꾸가 없자 머쓱하던 차에, 김경희의 질문을 받자 표정이 밝아졌다.

 

“방법이야 찾으면 많이 있겠죠.…저쪽 공약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선례도 없는 엉뚱한 것이라, 허점이 많이 있습니다. 제 눈에도 보이는데, 학자들의 눈엔 얼마나 많이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언론이 파고들면, 금방입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일반인들이 봐도 위헌 소지가 많아 보이는 데, 법조인들이 달려들면 얼마 던지, 뒤집을 수 있습니다. 후보님! 저, 허장훈후보의 공약은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좌파적인 공약입니다. 국민을 현혹하고 선동해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음모가 숨어있습니다. 정당한 세금으로 해결해야지, 어떻게 사유재산을 강제하겠다는, 발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좌우간 허점투성이 공약이라, 불과 며칠이면 끝장나게 할 수 있습니다.… 완주만 하십시오.”

 

관영은 여전히 빙긋이 웃는 것을 유지하며, 정무수석의 말을 깊이 듣기만 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와, 정무수석을 향해 고개 짓을 했다. 정무수석이 즉각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가 1분도 안돼서 들어왔다.

 

“후보님! 이젠 사퇴서는 포기하십시오. 최무영 보좌관이 사퇴서를 접수하려다, 저희에게 걸렸습니다. 후보님이 치밀한 계획을 세우셨겠지만, 저희도 만만치 않습니다.”

 

순간, 관영의 표정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관영은 자신이 후보사퇴를 단행할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게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래서 최무영 최경록 최광택 등 세 보좌관에게 사퇴서를 한 부씩 준비해주고, 관영이 직접사퇴서를 접수시키기에 실패를 하면, 대신 접수를 하라고 했는데, 최무영이 접수를 제지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경록이나 최광택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사퇴 자체야, 내일 또는, 모래라도 자신이 기자회견을 해서라도 발표할 수 있겠지만, 이 시간 전국 경제인 연합회의에 참석중인 김찬주회장에게 힘을 실어 주려면, 한시가 급한 것이다.

 

“후보님! 최경록 보좌관과 최광택 보좌관에게도 똑 같은 임무를 주셨겠지요? 기대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대통령님과 독대해 보시지요? 여기까지 잘 오셨잖습니까? 승리는 확실합니다. 저희를 믿어보십시오.”

 

관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통령님과 독대를 말입니까?…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아! 지금은 눈들이 너무 많고,… 이미, 후보님이 기자들 앞에서 사퇴를 언급하셔서, 나라가 난리입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전에, 수습부터하고 만나 보시지요.”

 

“기자들한테, 대표님과 의원님들께 설명하고,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표님께 설명 드리면서 의원총회를 열어달라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표님이나 의원들이 사퇴를 용납하시겠습니까?…우선 수습부터 하시지요! 대통령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후보님!…수습부터…하시지요.”

 

정무수석은 마치 최후통첩이라도 하듯이 세게 나왔다.

 

관영은 다시 빙긋이 웃는 모드로 돌아섰고, 김경희 대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경희 대표가 입을 열었다.

 

“후보님! 대통령님이 걱정이 많으시다지 않습니까? 정 사퇴를 하시려거든, 대통령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 아닙니까?…만나 뵙고 오시지요.”

 

그러자, 정무수석이 딱 자르고 나왔다.

 

“안됩니다. 사퇴발언 취소부터 하시고.…”

 

정무수석은 자신의 선에서 일의 성과를 내고 싶은 것이다.

 

관영은 수석의 마음을 읽은 이상, 정면 돌파를 택했다.

 

“번복은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고, 따라서 정무수석이 내게 명령하듯이, 막 대하는 건, 받아들이기 불편합니다. 기자들 앞에 서면, 바로 사퇴를 기정사실로 해야 합니다. 아까는 나를 막은 사람들이 당직자 분들이라고 둘러댔는데, 또 거짓말을 하진 않을 겁니다.…저의 사퇴는 제가 정합니다.”

 

관영의 단호한 대응에, 정무수석은 낮 빛이 흐려졌다. 한참 후, 겨우 한마디 했다.

 

“도대체 왜 사퇴를 하시려고 합니까? 고지가 눈앞인데…”

 

“그렇지요. 진즉, 그런 질문을 해야지요. 무조건 막을 생각만… 우리 공화당이 만들어낸 대선공약보다, 저쪽 민주당 대선공약이 훨씬 훌륭해서입니다. 나는 대통령자리는, 큰 욕심 없었고 경제양극화를 해결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살려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엔 그랬어요. 나중엔 좀 더 범위를 늘리긴 했지만, 그런데, 방법이 세금 많이 거두어서 복지정책을 펼치는 것 밖에 생각이 안 났었고, 그런데 민주당 허장훈후보의 공약을 살펴보니 정부의 돈, 즉, 국가의 세금을 사용하지 않고도, 양극화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골치 덩어리문제들을 한꺼번에, 거의 깨끗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었는데, 오늘 아침, 김찬주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결단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겁니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그러면, 우리 공화당의 미래는…”

 

“당이 국민보다 더 중합니까?”

 

벌써 시간은 오후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젠 관영은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정진채 정무수석은 꺼져가는 불꽃을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써보는 형국이 됐다

 

그때, 최무영, 최광택, 최경록이 함께 누군가에 밀리 듯, 들어왔다. 모두들, 멋쩍은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들의 역할에 실패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정무수석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세 사람을 들여보낸 것이다.

 

“수고 했어요 기죽을 거 없어요. 사퇴야, 오늘 못하면 내일해도 돼요…나가서 좀 쉬세요.”

 

관영이 태연하게 말은 했으나, 김찬주회장 생각에 미치자, 답답했다. 세 사람이 맥없이 나가는데, 최경록이 맨 뒤에 나가다가 돌아보며, 싱긋이 작은 미소를 보였다. 누가 봐도 실패에 대한 쑥스러운 미소로 보였다. 관영도 그렇게 보았다.

 

이제 정진채 정무수석은 조금은 회복한 듯이, 김경희 대표를 물고 늘어졌다.

 

“아! 대표님! 대표님께서 적극적으로, 말려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간, 우리 모두 공멸입니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대패를 했는데, 정권도 놓치게 생겼습니다.…원로 분들도 부르시고요.”

 

“일단 수석님께서는, 그만 돌아가시고요. 우리끼리 어떻게 해 볼게요. 총회를 열어서, 총회결의로 어떻게든…의원총회를 3시에 소집 해놓고 있으니까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퇴서를…TV좀 보세요! J, TV요…나와 보세요.”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방을 나와, TV 화면을 보았다.

 

실내에 있던, 수십 명이 일제히, TV 화면을 주시하며 웅성거렸다. 화면엔 여인 한명이, 흰 서류봉투를, 카메라 쪽으로 보이고 있었다. 관영은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잠깐 마비상태가 되었다가 깨어났다. 아내다. 저건 아내가 틀림없다. 감색 정장차림에, 흰 머플러를 한 아내가 화면을 채우고 있었고 ‘정 관영후보의 부인 조 명희여사’ 라는 자막도 보였다.

 

아내가 내보이는 서류봉투 겉엔 ‘후보사퇴서’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는데, 분명 아침에 관영이 세 명의 최씨 보좌관들에게 건넨 그 봉투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생각을 할 때 최경록 보좌관과 최광택 보좌관이 사람들 틈을 뚫고 다가와 최경록이 속삭이듯 외쳤다.

 

“우리가 사모님한테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걸릴게 번 하니까요.”

 

관영의 궁금증은 그, 한마디로 단 칼에 풀리며, 두 주먹을 쥐고 말없이 만세를 불렀다. 관영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환희를 느꼈다. 화면엔 아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고 불과 몇 분후, 아내가 밖으로 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기자는 한 명 뿐이다. J. TV 단독 생중계 방송이었다. 이른바 특종 이라는 것이다.

 

“사퇴서는 접수 하셨나요?”

 

“네”

 

“남편 분이신 정관영후보의 사퇴서를 어떻게 아내 분께서 접수하게 되셨나요?”

 

“아침에 남편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사퇴서를 접수시켜달라고 부탁해서, 그대로 했습니다. 자신의 사퇴를 막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 잘 좀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남편분이 대통령을 포기하는 사퇴서인데 아쉽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아내는 별 긴장하는 빛없이, 천연덕스럽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정진채 정무수석이 성난 얼굴로 다가와 관영의 의식을 현장으로 돌아오게 했다.

 

“와!… 이따위로 대통령을…욕보이고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관영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웃음이 나옵니까? 지금…아휴! 이거!”

 

정진채 정무수석은 혼자 씩씩대더니, 결국 쿵쿵거리며 돌아갔다. 관영은 빙긋이 웃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김경희 대표는 난감함을 감추지 못 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오후 3시엔 긴급 의원총회가 열릴 계획이다.

 

그제서야, 그동안, 꺼 놨던 전화기를 켰다

 

받지 않은 전화가 252개나 있었고, 문자도 283개나 있었다.

 

명단을 쭉 읽어내려 가다 차주혁 이름에서 멈췄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침 8시 26분이다. 그 시각이면 김 찬주회장 기자회견 전이다. 미리 내용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주혁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몸가짐이 아련하게 그려졌다. 연민 같은 그리움이 새삼스레 일어났다.

 

의원총회가 열렸다.

 

모두들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아, 분위기가 어수선하면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개회 선언 후, 사태를 해명하기 위해 관영이 먼저 단상에 섰다.

 

“죄송합니다.…먼저 의견을 드리고, 고견을 경청했었어야 하는데, 일부터 저질렀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래야만 했던, 저의 충정을 이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전부터, 줄곧 경제양극화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주장해 왔었습니다. 이점은 의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제가 대통령 되는 것,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그런데…우리당 공약보다 야당의 허장훈후보의 공약이 훌륭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정부의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양극화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정부를 거치지 않고, 부유층이 빈곤층을 직접 도와주는 방법으로, 국민들의 갈등관계를, 친근 관계로 만드는 공약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부유층의 동의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 김찬주회장님의 지지성명이, 저로 하여금, 결심을 서두르게 했습니다. 허장훈후보의 공약을 지켜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재일우의 국가적 기회에, 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겨우, 하루하고 반나절 칩거하며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 양극화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해결책을 찾고 있었기에,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먼저 저지르지 않으면, 사퇴를 못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여당후보인 제가 자진사퇴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대표님과 의원님들도 만류하실 거고, 청와대에서도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당이 정권을 잡는 것보다, 제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경제양극화해결이 열배, 백배, 중요합니다. 허장훈후보의 공약에서 보듯이, 경제양극화해결 하나가 이 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들 대부분을, 깔끔하게 해결합니다. 부유층이 이 나라의 재산 대부분을, 움켜쥐고 있으니, 돈이 돌지 않습니다. 돈이 돌지 않으면 나라는, 동맥경화에 걸립니다. 방법은 딱하나 부유층이 돈을 풀게 하는 겁니다. 허장훈후보의[한 생각]이 ‘딱’ 입니다. 사실 걱정도 했습니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의석을 많이 잃었는데, 대선에서는 아예 후보조차 없게 되면 우리당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원여러분! 진실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의운명보다 나라의 운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정치를 하다보면, 다시 일어설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죄송합니다.”

 

관영은 머리를 조아렸다.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이미 쏟아진 물이라, 아무리 용을 써 봐야 소용없음을, 그들은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불과 며칠사이에 정치의 색깔이 확 바뀌어 가고 있음을 그들은 느꼈다.

 

김경희 대표의 발언이 확인 해주었다.

 

“명색이 대표인 제가 할 말이 없게 만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상 초유의 여당후보의 사퇴라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이유가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야당후보의 공약을 지켜주기 위해서랍니다.…기가차고 어이가 없었는데…더 기가 찬 것은…제 마음…입니다…제 마음 속에서…흙…이…일에…흑…”

 

김경희 대표는 감정이 북 바쳐 울먹이느라, 한 참 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죄송합니다.…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게…정관영후보의 사퇴에 동참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마음속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겁니다. 어찌 해야 합니까?…경제양극화 너무 심하잖습니까?… 해결해야 되잖습니까?… 선거풍토 너무 썩었잖습니까? 바꿔야 되잖습니까? 우리공화당 공약으로는 안 되는 거, 의원여러분!…흙… 의원여러분! 다 아시고 계셨죠? 우리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쪽 민주당공약이 제대로만 되어준다면, 그리고… 우리 공화당이 협조만 해준다면 비록 우리당은 …쪼그라들겠지만,… 대한민국은 살아 날겁니다.…흙…우리당이 한 동안 힘을 잃겠지만, 우리의 조국이 다시 힘을 얻는다면…흙, 흑…기꺼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후보사퇴 동의합니다.…흙…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또, 하나, 둘, 다섯, 열, 점점 옮아가더니 이내 장내가 하나가 되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앞자리에 있던 한 의원이 일어서며 박수를 쳤다.

 

다시, 하나, 둘, 일어서더니 이내 모두일어나, 기립박수로 이어졌다. 모두들 상기된 얼굴들이다. 결국 그들 모두의 가슴속깊이 숨어있던 정의로움이 애국심으로 표출되는 순간이었다.

 

관영은 가슴이 벅차올라 자리에서 일어나가 단상 밑에서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또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족히 열 번은 했으리라.

 

 

 

의원총회가 끝나고 정론 관에서 관영과 김경희대표가 기자회견을 시작할 때의 시간이 4시10분이다. 먼저 김경희대표가 나섰다.

 

“기자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희공화당의원총회의 결정사항을 보고 드리려고 합니다.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당 대통령후보인 정관영후보께서, 오늘, 후보사퇴서를 선관위에 제출함으로써, 후보를…흙… 사퇴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의원총회를 열어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결과는 정관영후보의 사퇴를,…모두 용인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정관영후보의 사퇴의 이유가, 야당후보인 허장훈후보의 공약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해명도, 모두 받아들이기로 의결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제 정관영의원께서 사퇴의 변을, 직접설명하시겠습니다.”

 

장내가 탄성으로 소란스러워 졌다

 

관영이 꾹, 다물었던 입술을 다시며 결심이 선 듯 마이크 앞에 섰다.

 

“정관영입니다 오늘 느닷없이,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당원 동지여러분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림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죄송스러운 마음과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비록, 사퇴를 하지만, 야당의 허장훈후보와 허 후보의 공약인[한 생각]을 생각하면, 저의 사퇴는 당연한 것이다. 라는 확신이 섭니다. 분명히 저와 저희 당이 내 세운 공약보다, 열배 백배 나은 공약이고, 그것을 뻔히 알면서 그를 이기겠다고, 발버둥 쳐서 이겨야 하겠습니까?… 저의 정치적 목적자체가, 경제양극화 해결이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공화당이, 정권을 잡는 것도 좋고 제가 대통령 되는 것도 가슴 뛰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가슴 뛰는 일은, 경제양극화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허장훈후보의 말씀대로 이 나라를 혼 돈속으로 몰고 있는 문제들 중, 대부분이 양극화 때문입니다. 허장훈후보의[한 생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부유층의 동의를 우선적으로 얻어야 하는데, 아침에 김찬주회장님의 지지성명을 듣고, 저도, 사퇴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허장훈후보의[한 생각]의 완성을 위해, 힘을 보태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괴이한 일이라고 몰아치더라도, 저는, 이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 생각2]라는 대통령선거의 개혁안, 국민 직접선거로 2명을 선출하고 결선은 7주에 걸쳐 7번의 추첨으로, 축제가 되도록 하자는 개혁안도,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장훈후보와 김찬주회장님께, 마음으로부터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김경희대표님은…눈물로서… 저의 결정을 지지해주셨고, 의원총회에서는 의원님들 전원이, 기립박수로 지지해 주셨다는 것을, 밝혀드립니다. 두루두루 고맙고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전국경제인연합회관으로, 집중된 가운데 6시쯤으로 예정되었던, 기자회견이 늦어지고 있었다.

 

회의가 김찬주회장 뜻대로 원만하게 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여론들은, 경제인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예측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측은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7시가 지나자, 여론은 전경련의 회의결과가[한 생각]을 부정했을 경우, 사태 변화의 방향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7시30분이 지났다. 회의는 벌써 4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은, 이제[한 생각]의 단점들을 들춰내기에 바빴다.

 

애당초,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었으며,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생각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확실히 정치 평론가들은[한 생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분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8시가 되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송들은 온종일 긴급편성으로, 뉴스만 보도하고 있었다.

 

관영의 아내 조명희가, 사퇴서를 내고 나오는 장면은, 수십 번이나 되풀이 되었다.

 

8시45분 드디어 자막으로 9시에 전경련 회의결과 발표가 있음을 알리는 속보가 떴다.

 

관영은 화장실을 천천히 다녀왔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마음의 준비, 그것 밖에 할 일이 없다. 그마저도 할 게 없다.

 

겨우 9시가 되었다.

 

화면 가득히 낮 익은 30대그룹 총수들이 늘어선 가운데, 의장인 정승환회장이 발언대에 섰다.

 

“우선, 오래 기다리셨으니까, 회의 결정사항을 제가 말씀드리고, 김찬주회장님께서 부연설명이 있으시겠습니다. 회의 결정문입니다.

 

하나: 우리는 부의 극심한 편중현상에 대하여 확인하였다.

 

하나: 우리는 허장훈후보의 공약내용에 대하여, 전폭적으로 지 지하고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하나: 지원받는 빈곤층 30%를 40%로 상향조정하고, 지원하는 부유층은 15%에서 5%로 조정하는 것을, 제안하기로 결 의하였다.

 

하나: [한 생각]이라는 공약이, 기업의 위축을 크게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나: 부의 재분배가, 내수기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 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하나: 부의 재분배가, 국가의 난제들을, 상당부분 해결할 것이 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상입니다“

 

관영은 숨이 멎는 충격 속에서도, 빈곤층 40%와 부유층5%라는 뜻을 가늠하려 했으나,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방 정리 될듯한데, 김찬주회장이 앞으로 나서는 바람에 생각을 접어 두어야했다.

 

“김찬주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지요? 선거운동기간이라, 오전에 말씀을 드릴 때는 조심스러웠는데, 여당대통령후보이셨던 정관영후보가 사퇴를 하셨기에, 이제는, 그냥 말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회의는, 양극화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찬반 정도만, 의제로 삼았었다가, 정관영후보가 사퇴를 함으로써, 의제를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의결을 하였습니다. 여기 계시는 회장님들 모두가, 부의 편중이 너무 심하다는데 공감함을 바탕으로, 회의를 진전시켰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나, 언론의 인식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인색하다고, 확정지어 말하는데, 이는 상당부분 맞지 않는 고정 관념입니다. 마땅히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길이 없어서입니다. 무슨무슨 재단 같은 곳에 기부하는 것은, 큰 보람을 못 느낍니다. 여기에서 보람이라는 것은, 내가 기부한 돈이 어려운 사람에게 실제로 몇%나 전달되는 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납니다. 즉, 헛되지 않은 기부일 때, 진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한 생각]이라는 허장훈후보의 공약은, 우리 기부하는 사람의 기부액 100%가, 어려운 우리국민, 우리 동포에게, 직접 전달되는 아이디어이기에, 여기계시는 회장님들 모두가 기꺼이 동참하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시간을 연장하면서까지, 회의를 한 결과, 하위 30%까지 돕는 것을 40%까지 확대하기로 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위 30%에 해당하는 즉 100분위로 볼 때 70등위의 3인기준 1가구의 재산이 2천700만원으로, 너무 적다는데 인식을 같이했고, 적어도 60등위의 8천800만 원 정도는 돼야 된다고,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래야만 내수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내수경제가 지극히 불황인 것은, 하위 빈곤층이 구매력이 없는데 기인한다는, 정관영후보나 허장훈후보의 판단이 정확하다는 인식도 같이했습니다. 그리고 기부 층의 범위가 15%로 돼있는 것을, 5%이내로 정한 것도, 부유층끼리도, 격차가 크다고 판단되어 5%미만이라고 정했는데, 가급적 더 줄일 수 있으면 줄일수록, 좋다는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 같은 사람도[한 생각]에서는 단 2가정을 돕는 것으로 돼있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1000가구 이상을 돕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최상위 부유층이 더 많은 가구를 돕는 것으로 하면, 상위 5%미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봅니다 5%라고해도 약 82만5000가구이고, 인구수로는 250만 명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제도가 기업을 위축시키지 않나 하는 염려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유층이, 기업자체의 돈을 빼서 쓰는 게 아닙니다. 물론 현금이 부족할 때는, 주식을 처분해서 해야겠지만, 주식을 처분하면 누군가 그 주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회사지분은 줄어들겠지만, 회사자체의 주식은 그대로이므로, 기업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고 봐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내수활성화로 기업이 더, 잘 돌아가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허장훈후보와, 그 공약을 제대로 알아보고, 그 공약을 살리기 위해, 여당후보임에도 사퇴를 하신 정관영의원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외국의 부호들 일테면, 빌 게이츠, 워런버핏, 마크저그버그, 일론 머스크, 조지 루카스, 등은 기부를 많이 하잖습니까? 우리도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기부를 하고자 하오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말씀드릴 것은[한 생각2]의 선거에, 추첨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공약에도, 모두가 박수로 환영의 표시를 했다는 것도 전해드립니다, 각박한 정치계에, 새로운 화합의 바람을 불어넣는 절묘한 아이디어라고, 저희들 모두가 받아들였습니다. 기쁜 날입니다. 고맙습니다.󰡓

 

관영은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회장니임…고맙습니다. 회장니임…고맙습니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 한 동안 멍 때리기만을 했다. 그렇게 엄청난 하루가 지나갔다.

 

이튿날, 새벽 관영이 잠에서 깨어 눈을 감은 채, 어제 일을 처음부터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찬주회장의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걱정했던 일이, 오히려, 대박으로 나타났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차주혁 비서로 부터의 전화가 생각이 나서 시간을 보니 5시35분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생각을 접고,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려는데 노크소리도 없이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보! 이상한 전화가…당신 바꿔 달래요!”

 

많이 놀랐는지, 핸드폰을 내미는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관영 또한 당황한중에도 불길한 느낌이 확, 들어 벌떡, 일어났다. 얼떨결에 아내의 핸드폰을 받아 전화번호를 보았다. 전혀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정관영입니다.”

 

“접니다. 김정철입니다.…오늘 아침, 선거를 무산시키려는…비상 대책회의가 있습니다.”

 

“김정철?…비서실장님?…그게 무슨…?”

 

“선거를 무산시키려는, 비상 대책회의가 곧 있을 겁니다.…끊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관영은 김정철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이름과 목소리가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통령과의 은밀한 만남이 영부인의 아이디어며, 대통령은 순수하지 않다고 귀 뜸했던, 바로 그 사람, 김정철 비서실장이었다. 그, 사람이 관영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내의 전화로 긴급 상황을 알려 준 것이다

 

도청이나 감청의 상당한 부담을 안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리라. 이유는 하나,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를 안심시켜 돌려보내고, 관영은 대책을 생각해 보았다. 대책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입술이 얄팍한 그 여자 점술가 사진들이었다.

 

‘이사진들을 청와대로 보내?…그러면 협박이 되는데…?

 

오늘 아침 회의에 참석하는 인물들을 추론 해봤다

 

‘대통령과 비서실장, 그리고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국정원장, 정무수석, 그리고 언론담당 홍보수석?…어떻게 무산시키려는 거지? 무슨 이유를 붙여서 무산시키려 할까? 대통령은 무얼 생각하는 걸까? 뭐 켕기는 게 있나?…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선거를 무산시킬 수 있을까? …대통령이?’

 

대통령은 새벽 형 사람이라 7시에 회의가 있을 것이다. 그 이전 6시일 수도 있다. 관영은 필사적으로, 생각을 해보았지만 별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사진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이 꼬리를 이어갔다. 지금 김정철실장의 핸드폰으로 보내면, 김정철실장이 비상 대책회의가 있다는 것을, 관영에게 귀 뜸해 주었다는 뜻이 되니 김정철실장이 의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철실장이 의심을 받지 않게 보내야 한다.

 

시간은 벌써 여섯시가 되었지만 방법은 떠오를 기미가 없다.

 

TV뉴스는 온통 어제의 여당후보의 사퇴와, 김찬주회장의 지지발언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뉴스 자체보다도,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보도하고, 논평한 것들을 뉴스로 다루는 것이 더 많았다. 한국의 정치실험이 세계로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관영은 뉴스를 보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6시 40분쯤 속보라는 빨간 자막이 떴다. 이어서 앵커의 속보 소식이 관영을 바짝 긴장하게 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청와대는 오늘 오전 8시 대변인 브리핑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와대에 나가있는 기자에 의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서, 대통령은 많은 우려를 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입장을 내 놓을 거라는 예상이 된다고 합니다.”

 

순간 관영이 머리에서 이때다. 하는 생각이 번쩍했다.

 

앵커가 똑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까지 듣고 서재로 들어갔다. 문자로 보낼 문구를 볼펜으로 먼저 적어보았다. 몇 번을 수정해서 문구를 완성했다.

 

<정관영입니다. 실장님, 그간 평안 하셨는지요? 뵙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입장과 여건이 마뜩치 않아 이렇게 문자로 사연을 적습니다. 전에 그곳에서 식사를 할 때, 일 하시던 두 여자분 중에 한 분이 역술인 이라는 것을 실장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이름은 송희진 나이는 56세더라고요. 그날 좀, 이상한 눈길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보았는데, 그 여자도 저를 세심히 살피더군요. 그러나 그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종편 TV에서, 전국의 유명역술인들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신통한 역술인으로 뽑힌 여자 역술인이 마지막에 묻지도 않았는데, 다음 대통령은 저, 정관영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얼굴 위는 모자이크처리하고, 소리도 내지 않고, 입술 모양으로만 제 이름을 대는데, 그 입술이 얄팍하다기에 퍼뜩 집히는 데가 있어서, 집에 가서 직접 TV돌려보기로 확인한 다음, 아주 쉽게 사진을 구했습니다. 기가 차더군요. 그때의 만남이 김 실장님의 제안이었다고 대통령께서 직접 말씀하셨는데 사실입니까? 혹시 영부인께서 전에 역술인 집을 종종 찾았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제 관상을 보게 된 것도 영부인의 아이디어 아닙니까? 송희진 점괘에 제가 대통령이 된다고 나온 모양이지요?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역술인에 기대어 나라를,…그러니…안녕히 계십시오.>

 

핸드폰에 문자를 다 쳐놓고 망설여졌다. 정말 보내야 하나?

 

그러다가, 선거를 무산시키려한다는, 김정철실장의 긴급전화가 새삼 생각이 나서, 보내기를 눌렀다. 송희진의 사진7장도 보냈다. 보내 놓고 시간을 보니 7시 30분이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은 8시라고 했다. 이제부터 또, 남은시간은 더디, 갈 것이다. 관영은 침실로 가서 길게 누웠다.

 

이, 시간 장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김정철실장과 대통령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힘차게 했다. 8시 TV앞에 섰다.

 

청와대 대변인이, 주위를 둘러본 다음 발표문을 읽었다.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여당후보가 사퇴를 하여 야당 후보만 보고 투표를 해야 하는, 유례가 없는 현 사태들에 대해서 대통령께서는 국민의 선택권이 무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셨습니다. 두 번째는 거의 독자후보나 다름없는 후보의 공약이, 그동안 온 국민이 쌓아올린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경제의 틀을 송두리째 뒤엎을 소지가 다분하고, 도덕적 해이가 불을 보듯 번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장점만 너무 선동적으로 부풀려져서,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저해케 하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는 어제 있었던 전경련 회의에서도, 이, 공약에 대하여 반대의견이 다수 있었음에도, 마치 만장일치인 것처럼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을 혼돈케 한 것에 대하여도, 우려를 나타내셨습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러한 사태를, 대통령으로서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연관 있는 주요기관장 회의를 소집하여 1차 회의를 마쳤고, 2차 회의를 오후2시에 열기로 하였습니다. 2차 회의가 있은 후, 회의결과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대변인은 질문을 받지 않고 단상을 내려갔다

 

관영은 자신의 문자가, 전혀 효력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시간적으로 빠듯하긴 했었다. 선택권, 선동적, 만장일치. 라는 세단어가 강하게 와 닿았다.

 

‘선택권 무시?…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선동적? 선동적이라고?… 만장일치가 아니었다는 거네!…어느, 어느 그룹회장일까?…어떻게 알게 됐지?’

 

관영은 장훈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9시30분쯤 야당 대변인의 논평이 있었다.

 

“청와대와 대통령의 시각이, 국민의 시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준 발표라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여야가 모두 이구동성으로 환영하는 공약을, 자유민주주의를 송두리째 엎어버릴 공약으로 폄하하는 것은, 이 나라의 모든 불행의 근원인 경제양극화를 해결하려는 여야후보의 노력과 충정을, 이해 못하는 데서 오는 잘못된 시각입니다. 또, 어제 전경련에서 있었던 회의에서, 공약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회장님 두, 분이 반대를 한 것이 아니고, 질문을 했었던 일을 반대의견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도가 아닙니다. 청와대와 대통령께서는,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론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의 일로 코리아라는 브랜드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갈 거라는, 보도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달리해보기를 바랍니다.”

 

‘두 회장님의 반대가 아닌 질문?…이건 또 어떻게 알았지?’

 

관영은 장훈의 실력이 더욱 미더워져 감을 느꼈다.

 

관영이 당사로 출근하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청와대의 대변인 발표와 대책회의에 대해 견해를 밝혀달라는 질문에 담담히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아무리 좋은 쪽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해도, 크게 출렁이는데, 우려스럽겠지요. 저 부터도 잘 되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허장훈후보의[한 생각]이라는 공약이, 이, 나라를 크게 이롭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가, 사퇴를 한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워낙 파격적인 일이기에 조금은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통령께서도 그런 걱정을 하시는 걸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본 대통령님은, 안목과 식견이 훌륭하신 분이고, 특히, 경제양극화해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 합니다.”

 

기자들이 놓칠 리가 없다.

 

“대통령을 언제 만났습니까?”

 

관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좀 오래전 일입니다”

 

“오래전 이라면,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떤 말씀을 나누셨나요?”

 

“몇, 년 전이고요. 일반적인 얘기도 하고, 나라걱정도 하고, 뭐 자연스레 정치얘기도 했겠지요? 아!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요. 그랬죠. 뭐 다른 게 뭐 있겠어요?”

 

관영의 계산된 기자회견은 당연히 청와대를 겨냥한 것 이었다.

 

식사한 것까지 밝혔으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오후 1시쯤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열어보니 보니 J C K 이니셜이 떴다. 김정철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아!…실장님 참으로 오랜 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철입니다.”

 

둘은 오늘 새벽 통화는 전혀 기억에 없는 듯이, 주고받기를 잠시 더했다. 그리곤 김정철실장이 본론을 얘기했다

 

“제가 찾아뵈었으면 하는데, 혹시 오늘 저녁…바쁘시죠?”

 

“그러시죠. 뭐, 사퇴한 사람이 바쁠 게 있습니까? 어디서 뵐까요?”

 

“밖 갓은 눈들이 많으니…댁으로 찾아뵈면 결례가 되나요?”

 

“그러시죠. 괜찮습니다.”

 

오후5시에 청와대 대변인담화가 있었다. 오늘만 두 번째다.

 

“오후에 있었던 회의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에 말씀드렸던 선택권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 여당의원들도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국민적인 여론도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므로,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공약의 장단점 문제는 이공약이 선택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정밀하게 다듬어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전경련 회의석상의 반대기류는 분명히 있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만장일치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끝으로 대통령께서는, 이번 선거는 세계가 주목하는 선거이므로, 작은 불상사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영은 실소했다. 통쾌 하거나 기쁘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을 뿐이다.

 

저녁 9시 관영의 집 서재에서 김정철 실장과의 대화에서도 그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전혀 다른 회사 세 곳에다 도청장치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는 관영의 설명을 듣고서야, 실장의 표정과 어투는 부드러워졌다. 관영은 우선 듣기만 했다.

 

“정 의원님! 아주 제대로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심상치 않았었습니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참! 잠깐 보셨을 텐데…용하십니다. 아침, 대변인 발표직전에 사진이 도착했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사실, 그 사진을 보여드리기가 뭣 했습니다. 망설이다가 보여드리기 위해 대통령님께 갔는데, 몇, 분이 그때,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시고 하는 바람에 지연됐었습니다. 대변인 발표가 시작되고 나서야, 겨우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놓았으니 회의를 안 할 수는 없었고요. 의원님의 기자회견 얘기도 다 들었죠. 대통령을 만난 것을 밝히셨으니, ‘다른 것도 밝힐 수 있다’라고 느끼셨겠죠. 사실상 모인 분들의 생각도, 모처럼 훈훈한 나라분위기에 훼방 놓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대통령께서 보내신 거고, 그때, 만남의 주선도 제가 한 거로 했으니, 그 여자도 제가 데려온 것으로 해서, 직접 사과드리라는 분부를 주신 겁니다.…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말은 마치 보고하듯이 해서, 관영을 빙그레 웃게 했다.

 

“실장님! 한 가지만…제게 귀 뜸하셨던 말씀 ‘영부인이 제안한 것이고 순수하신 분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상황에서 왜? 그러셨습니까? 그리고 아침 전화까지… 여러 와중에도 궁금했습니다.“

 

“특별히 얘기할 게 있겠습니까? 그냥 의원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거가 맞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거요? 하하하!…그렇군요.”

 

김정철 실장은 흐뭇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마감뉴스엔 보수적인 법률학자인 김상율 법학연구소 소장이 허장훈후보의[한 생각1.2] 지지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역시 보수학자인 곽선복경제연구소 소장의 지지성명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터 유명인들의 지지성명이 줄을 이루었고, 점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정치인, 법조인. 교수 ,연예인, 작가, 체육인 학생, 등과 연이어 의사회, 변호사회 작가회, 부인회, 교수회, 교원회, 불교회, 기독교회, 사제회, 상인회, 건설인회, 약사회 등으로 퍼져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났다. 각 신문 하단엔 개인 지지성명 광고가 빈틈없이 채워졌고. 인터넷도 지지성명과 지지 댓글이 봇물을 이루었다.

 

관영은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하여 선거직전에 돌아오기로 하고, 보좌관 두 명과 함께 몽골로 떠났다. 언제 부터인가, 관영의 마음속에 몽골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직접 방문은 처음이다.

 

세계의 유수의 언론매체들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뉴스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의 시험대로서 취재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을 함으로써, 앞 다퉈 특별 취재팀을 파견했다

 

그들 매체들은[한 생각1.2]를 자세히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이, 기상천외한 대선공약이 실제적으로, 실행될 것 같은 상황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더구나, 그, 엄청난 사건의 선봉에 한국 최고의 부호인, 김찬주회장이 횃불을 높이 들고 등장함으로써, 성공가능성은 훨씬 높아졌음에 주목했다.

 

하루사이에 김찬주회장의 명성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또, 대통령선거에 결선제도를 도입하되 투표가 아닌 추첨제를 도입하겠다니, 더더욱 흥미롭고 신기함 마저 더해서, 그들을 바쁘게 했다.

 

이제 투표일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장훈은 일정 대부분을 방송과 기자회견을 통하여[한 생각1.2]를 설명하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뿌리까지 드러내어놓고, 해결방법을 제시하였다.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들의 시각은 매우 긍정적으로, 실현가능성에 희망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독 1개의 경제신문만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투표율과 득표율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나왔다.

 

그날, 아침 신문의 사설이다

 

<어이없게도 여당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야당의 허장훈후보의 당선은 확실해졌다. 문제는 사실상의 단독후보가 되어 투표율을 예상해보면, 지난번 대선의 투표율 78%에 비해서 이번 선거투표율은 50%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정이긴 하지만, 50%미만의 투표율이라면, 득표율이 90%가 되어도 사실상 전 유권자의 45%지지율 이하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허장훈후보의 당선은 물론이고 그의[한 생각]이라는 공약을 사실상 승인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고 검증되지도 않은[한 생각]이라는 공약을 50%, 또는40%, 심지어 30%의 지지율에도 국민투표 없이 공약을 바로 실시할 수 있도록 승인해주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짧은 기간에 세계가 인정하는, 오늘의 눈부신 성과를 무시한 채, 우리의 경제체제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위험한 공약을, 유권자의 과반도 안 되는 지지 율에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할지, 우리 모두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또, 허장훈후보는 투표율이나 득표율이 현저히 낮게 나와도 공약을 그대로 승인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기어이 밀어붙일 것인지, 묻고 싶다. 공약이 위법적인 요소가 다분함에도 법률가들의 침묵은, 누구를 위한 침묵인가 묻고 싶다. 권력의 힘 앞에 벌써부터 눈치 보기를 하는 것이라면, 이거야 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장훈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당선 되더라도 투표율과 득표율이 낮으면, 언론의 발목잡기가 지속적으로 있을 것을 대비해서라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느슨하게 연구할 시간이 없다 장훈은 이럴 경우 관영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고 해답을 찾았다.

 

다음날 아침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어제 아침 신문사설에, 참 고마운 조언이 있었습니다. 투표율이 낮을 것을 예상하여, 그로인하여 득표율이 높다하더라도 국민의지지율이 50%에 현저하게 못 미치는 경우가 될 수도 있는데, 그때에도[한 생각]이라는 공약을, 그대로 국민투표 없이 실행하려고 하느냐? 하는 사설이었습니다. 50%도 못되는 지지율로 밀어 붙이면 되겠느냐? 하는 겁니다. 심지어 30%지지율로도 밀어붙이겠다는 거냐? 하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결코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50%도 안 되는 지지율로[한 생각1,2]를 밀어붙이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속하겠습니다. 최소한, 전체유권자 50%의 지지율은 넘어야 국민의 승낙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그러려면, 투표율 65%에, 득표율 80%는 돼야합니다. 또는, 투표율 60%이상, 유효투표의 90%이상 득표했을 경우에도 가능하지만, 투표율과 득표율을 좀 더 높여서 확실한 기준선을 제시하겠습니다. 투표율 70%에 유효투표의 득표율이 85%이상 되었을 때만 저의 공약을 실행하겠습니다. 투표율과 득표율 중, 하나만이라도, 부족하면 실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으로도 취임하지 않겠습니다.…저는[한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것이지, 대통령되려고[한 생각]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한 생각]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날의 장훈의 비장한 폭탄선언은, 또 다시 전국을 강타했다

 

온종일 장훈의 도박에 가까운 선언이 나오게 된 사연과,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예측까지 하느라고, 앵커들과 평론가들을 바쁘게 했다. 그들의 평론 주 대상은 투표율이었다.

 

득표율 85%는 가능하겠지만, 투표율70%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당선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굳이 단독후보에게 투표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란다.

 

그런데 그날 오후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 그들을 더 바쁘게 했다. 진보적인 유명학자의 투표참가촉구 성명을 시발점으로, 유명인들의 성명이 잇따랐다. 다음 날부터는 투표촉구성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 천지에서 터져 나왔다.

 

천주교의 투표촉구성명에 이어,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계의 성명으로 이어지더니, 연예계와 체육계, 문학계, 노동계. 농민회. 상인회. 변호사. 등등으로 퍼져나갔다. 그다음 날은 대학생들의 성명이 전국적으로 경쟁하듯 일어나 외쳤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투표촉구성명은 봇물이 터진 듯, 끝없이 이어졌다. 전혀 이름도 모르는 산악회, 종친회, 동창회, 동문회, 각 회사노조, 미화원, 노인회까지 전국방방곡곡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투표 참여를 촉구했다.

 

드디어 운명의 투표일.

 

장훈은 정관영의원이 몽골에서, 어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왔다는 소식만 들었는데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한 표를 행사하기위해서 일정을 그렇게 맞춘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아침 7시뉴스에 관영의 투표장면이 나왔다.

 

장훈도 수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투표를 했다.

 

그리고 당사에서 조용히 지내며 투표현황 중계방송을 보았다.

 

투표율 70%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후 3시에 이미70%를 넘어서 75%를 육박했다. 언론들은 이미 허장훈후보가 제시했던 투표율 70%를 넘어섰기에 그 이상의 투표는 의미가 없을 것이므로 투표자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언론의 예측을 짓밟기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알뜰히도 투표를 했다. 투표를 하기위한 줄이 계속 이어졌고, 마감 막바지 시간까지도 여전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와 뜨거운 함성으로, 응원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최종투표율 88.6%, 유례가 없는 투표율 기록을 세워냈다,

 

개표 10분 만에 당선유력이라는 자막이 떴고 1시간 만에 당선확정이라는 자막이 떴다. 그리고 최종 득표율은 93.3% 이었다. 최종 투표율, 88.6%, 최종득표율93,3%, 국민의 열망이 만들어낸 수치다

 

장훈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지만, 국민들에게 소박하고 짧은 당선 인사를 전했다.

 

“국민 여러분! 저와[한 생각]이라는 공약을 믿어주셨습니다. 제게[한 생각]이라는 공약을 꼭 해야 한다고, 그리고 해내라고, 엄명을 주셨습니다.…책임지고 해내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해내겠습니다! 함께 해내십시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서초동 관영의 집을 찾았다. 관영은 문밖에서 기다리다 장훈을 맞이했다.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경쟁 속에서, 두 사람은 힘차게 포옹했다. 포옹한 채, 관영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날의, 이, 광경은 국내는 물론 세계의 언론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열망의 수치들을 기적으로 평하며,[한 생각]이라는 공약이 차질 없이 실행될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파격적인, 너무나도 파격적인[한 생각]이라는 아이디어가 과연 지구인들의 불평등한 삶을, 원천적으로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그 시험 무대인 한국의 모든 것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목했다.

 

코리아라는 브랜드 가치는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비상하기 시작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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