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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조영>...제1장 안시성 전투

리채윤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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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채윤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제1장 안시성 전투

 

위기의 안시성

 

645년, 안시성(安市城) 전투가 벌어질 때 대조영(大祚榮)은 7살의 어린 아이었다. 그때 그는 안시성에 있었고, 당(唐)나라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3개월 간 안시성을 공략하다가 패주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은 성주 양만춘(楊萬春)장군의 부관이었다.

 

어린 꼬마인 대조영은 성안의 주민들이 갑자기 술렁이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는 것과는 좀 더 다른 공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고요하고 평안하던 성안의 공기가 긴장감 속에서 팽팽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조영은 성주의 부관인 아버지 덕에 병장기를 다루는 것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아이들과 모여서 놀 때에는 벌써부터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도 군사들이 싸움터에서 진을 쳐서 싸우는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다.

 

“다 모였느냐?”

 

“네!”

 

10여 명의 아이들이 대조영 앞에 나란히 모여 서서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아이들 중에는 대조영보다 두, 세 살 더 많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조영은 대장으로서 너무도 당당하여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등에는 모두 활을 메고, 손에는 각자 막대기로 만든 창 또는 칼을 만들어 쥐고 있었다. 대조영은 아이들을 지휘하면서 당나라 군대를 무찌를 작전을 설명했다.

 

“백암성(白巖城)의 성주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당나라군에 항복하였다. 이것은 우리 고구려 백성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안시성의 백성들은 호랑이처럼 날쌔고 용감하게 당나라 군대를 쳐부수어야 한다.”

 

그것은 전날 저녁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하시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보. 백암성 성주 손대음(孫代音)이 변변히 싸우지도 않고 당나라 군대에 항복하였다는구려. 이제 놈들은 우리 안시성으로 쳐들어 올 것이오. 우리 안시성의 전 주민은 일치단결해서 고구려 백성의 기개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오.”

 

“당나라 군대 수십만이 쳐들어온다고 하는데 조정에서는 지원군을 보내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이지요?”

 

대조영의 어머니는 자못 걱정스러운 듯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지금 연개소문(淵蓋蘇文)장군이 10만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대조영이 아버지 대중상에게 물었다.

 

“아버지, 당나라 군대가 우리 고구려 군대보다 더 센가요?”

 

“그건 아니야. 우리 고구려 군대는 호랑이처럼 날쌔고 용감하지.”

 

“그런데 왜 다른 성들이 당나라 군대에게 지는 건가요?”

 

대조영은 연약해 보이는 어린이였으나, 눈에는 총기가 번뜩였고 호기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그건 당나라 군사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지. 너무 걱정 말거라. 우리 고구려는 아직 한 번도 당나라에게 져본 일이 없다. 이번에도 반드시 이겨서 적을 물리칠 것이다.”

 

대조영은 잠이 들면서 당나라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머리가 말대가리처럼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안시성 주민들은 시시각각 조여 오는 대륙의 제국 당나라의 가공할 힘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있었다. 비사성(卑奢城: 지금의 대련)도 당나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당 태종이 직접 20만의 군대를 이끌고 안시성을 향해서 출진을 했다는 소식도 들여왔다. 그 다음 날은 당나라 군대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고구려 조정에서 보낸 고구려 군사가 당나라 군사들과 싸워 패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연개소문은 북부욕살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에게 15만의 군사를 주어 안시성을 구원하러했으나 고구려군은 어이없이 당나라군의 유인작전에 말려들어 패퇴하고, 두 장수는 당나라 군대에 항복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고연수, 고혜진 두 장수가 15만의 병력을 이끌고 안시성 밖에 당도한 것은 당나라 군사의 이동이 있은 바로 직후였다.

 

당태종은 고연수와 고혜진의 지원군을 보자 막료들에게 말했다.

 

"저 군사들과 전투를 하지 말고 유인하라. 짐의 생각에는 저 자들이 취할 길이 셋 있다. 첫째는 안시성을 보루로 하고 뒷산을 의지해서 안시성의 양식을 먹으며 우리편 군사를 괴롭히는 것, 둘째는 안시성 사람과 같이 도망가는 것, 셋째는 덮어놓고 우리 군대와 싸우는 것이다. 아마 저자들은 셋째 방법을 쓸 것이다. 사실 그것은 병법에 있어서 가장 하책이다,"

 

과연 고연수의 지원군은 안시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 포진하고 당나라군에 대항하는 군진을 짰다. 당나라 장수들은 태종의 혜안에 감탄했다.

 

이때 대로(對盧) 고정의(高正義)가 고연수에게 말했다.

 

"이세민은 전쟁에는 계략이 밝은 사람이오. 장군은 지금 여기서 싸우지 말고 안시성의 뒷산인 주필산을 보루로 하여 장기전을 계획하시오. 시일이 오래 걸릴수록 우리 편이 유리한 것이오. 장기전을 하면서 조금씩 군사를 내어 적을 괴롭히시오. 그러면 저절로 승리할 수 있소"

 

그러나 고연수는 말을 듣지 않고 안시성 앞 40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당병과 대치했다.

 

당나라에서는 먼저 대장군 돌궐 출신 장수인 아사나두이(阿史那柱爾)를 시켜 기병 천여 기로 습격했으나 고연수는 단숨에 돌궐군을 물리쳤다. 자신을 얻은 고구려군은 안시성 근처까지 내려가 당나라군과 대치했다.

 

당나라군은 태종의 지시대로 계책을 세워 고연수의 군막으로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고연수에게 당 태종이 보낸 칙서를 건넸다.

 

“짐이 이곳에 온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귀국에서 강신이 임금을 죽였으므로 그 죄를 묻고자 한 것이다. 우리 군대가 귀국 군대와 싸우는 것은 본의가 아니다. 귀국 국경에 양식과 마초가 없으므로 두어 성 뺏어 거기서 충당했다. 미구에 귀국에서 국서가 와서 화평이 성립되면 성을 모두 내줄 것이니 모쪼록 양해하기 바란다.”

 

고연수는 이 모략의 글을 보고 반색을 하며 사신들을 후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부하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당 태종은 우리와 싸우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께서 지나친 기우를 하시는 것이다.”

 

그는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봄으로서 당나라 책략에 자신이 말려들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고연수는 진중에서 잠을 자다가 설인귀 부대의 급습을 받고 제대로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연수 부대를 뒤따르던 고구려의 맹장 흑벌무 장군의 부대가 지원군으로 와서 12만의 군사는 폐퇴직전에 활로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안시성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대조영도 더는 전쟁놀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성안은 전시체제로 돌입했고 양만춘 성주가 지시하는 대로 각자 맡겨진 소임을 준비하느라고 부산스러워졌다. 어린이와 아녀자, 노약자는 안전지대로 소개 되었고, 장졸들은 무기를 정비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한 물자를 나르기에 바빴다.

 

장정들은 적의 공성전에 대항하기 위해서 바윗돌과 모래자루를 성루로 실어 날랐고 뜨거운 물을 끌일 가마솥과 양동이, 장작을 제자리에 배치하고 정비했다.

 

성안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쟁의 무게에 눌려서 한껏 적막했다. 그러나 5만여 명에 달하는 안시성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전의를 불사르며 결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어린 대조영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안전지대로 갔지만 전쟁이 어떻게 치루어지는지 보고 싶어서 마구 안달이 났다. 대조영은 몰래 빠져나와서 성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성안의 움직임을 낱낱이 훑어보다가 어른들에게 붙잡혀서 안전지대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어머니에게 혼이 나곤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어서 자라서 적을 무찌르는 훌륭한 장수가 되고 싶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었다.

 

성주 양만춘 장군은 성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높은 단 위에 올라서서 결전의 의지를 심어주는 연설을 했다. 양만춘은 연개소문의 정변 때도 그에 반기를 들고 따르지 않고 성을 굳건히 지킨 탓에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용장이었다. 그는 갑옷과 투구를 갖춘 완전군장을 한 채 성루에 올라서서 백성들을 굽어보며 외쳤다.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은 결전을 앞두고 끓어오르는 투쟁심으로 빛났으며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성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요동의 마지막 방어진지로서 결전을 각오해야 할 것 같소이다. 방금 들어 온 소식에 의하면 우리 안시성을 구하러 오던 구원군이 당나라 군대에 패배해서 진로를 차단당했다는 것이오. 이제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기다릴 수 없이 이 성을 지켜야만 하게 되었소. 다행이 우리에게는 지구전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무기와 식량이 넉넉히 있소. 또 동명성제께서 우리를 굽이 살펴 주실 것이오. 각오를 단단히 굳히고 적을 물리칠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죽음을 각오하고 단결해서 적을 물리칩시다.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자는 곧 죽음을 당할 것이오. 죽음을 두려워 말고 고구려 백성답게 최후의 일전을 각오할 때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오.”

 

양만춘은 고구려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면서 연설을 마쳤다.

 

“고구려 만세! 고구려 만세!”

 

“우리의 성을 지킵시다.”

 

백성들은 비장감이 어린 얼굴로 숙연한 가운데 연설을 듣다가 함성을 지르며 양만춘의 말에 화답했다. 백성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윽고 결전의 의지를 다지는 환호성이 터졌다. 대중상은 성루에 올라서서 너르디너른 성 밖의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다음날부터 치루어질 전투를 생각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요동을 휩쓰는 당나라 군대

 

당 태종 이세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으로, 무술과 병법에 뛰어난 동시에 결단력과 포용력도 갖추고 있어서 사람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는 수(隋)나라 양제(煬帝)의 폭정으로 민심이 이반하자, 지방 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를 설득하여 거병했고, 장안을 점령하고 당나라를 수립한 당나라 창건의 실질적인 주도자였다. 그는 20세 안팎의 나이에 아버지를 도와 국내 통일을 실현시키고 그의 능력을 질투하던 형 건성(建成)과 동생 원길(元吉)을 제거하고 626년, 마침내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당나라 2대 황제로 즉위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태종은 돌궐(突厥)족을 만리장성 밖으로 몰아냈고, 당나라에 대항하여 싸웠던 많은 반란을 진압하고 그 지도자들을 처형했으며, 싸우지 않고 항복한 이민족들에게는 당나라의 작위를 부여하고 자치를 인정했다. 주변국을 평정하고 평화가 오자 중국의 일반 백성들은 그의 치적을 크게 칭송했다.

 

그러나 태종은 수나라 양제가 못 이룬 고구려 정복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태종은 동북족의 배후에 고구려와 같은 강성대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진정한 통일제국을 이루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당 태종은 벌써 수년 전부터 고구려의 동태를 주시하고 고구려를 정벌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신라의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를 방문해서 나당연합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당나라가 고구려를 칠 경우 남쪽에서 신라가 호응 할 것을 협약함으로서 당태종의 고구려 정벌의 욕심을 부채질 했다.

 

당태종은 보장태왕(寶藏太王) 3년에 사농승(司農丞) 상리현장(相里玄奬)을 사신으로 보내 신라에 대한 공격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상리현장은 연개소문과 마주앉자 당 태종의 친서를 꺼내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구려가 신라를 핍박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소. 당장 신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시오.”

 

그러나 연개소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나라는 신라와 벌써 오래 전부터 원수지간이 되었소. 전번에 수나라가 쳐들어오는 틈을 타서 신라는 우리의 땅을 500여 리나 침범했소. 남이 곤궁할 때를 타서 땅을 점령하는 그런 야비한 행동을 하는 자를 그대로 둘 수 없소. 그 땅을 돌려주지 않는 한 군사를 거둘 수 없소.”

 

과거에 신라는 고구려가 수나라와 전쟁하고 있는 틈을 타서 고구려의 땅 500리를 빼앗았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이 땅을 찾으려고 신라를 공격하여 2개의 성을 되찾자 이에 신라는 당나라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상리현장은 연개소문이 쉽게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위협적으로 말했다.

 

“만일 고구려에서 우리 황제 폐하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폐하께서는 내년에 대군을 일으켜서 고구려를 토벌하신다 하오.”

 

하지만 연개소문은 오히려 날카롭게 일침을 가했다.

 

“허, 그대의 황제도 수 양제의 꼴이 되고 싶은 모양이오.”

 

이 말을 들은 상리현장은 뜨끔했지만 계속했다.

 

“신라와 싸우지 마시오. 이미 지난 일은 재론할 것이 없소. 지금 고구려가 가지고 있는 요동의 여러 성도 본래는 중국 땅이 아니오? 중국에서 이것을 귀국에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으니 귀국도 신라에 땅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연개소문은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공박하듯 물었다.

 

“지금 당신은 어느 나라의 사신이오? 당나라의 사신이 아니라 신라의 사신이오?”

 

상리현장은 더 이상 말이 먹혀들지 않자 그대로 귀국해서 당 태종에게 연개소문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했다. 당 태종은 다시 사신 장엄(蔣儼)을 보냈다. 연개소문은 이번에는 사신을 토굴에 가두어 버렸다. 보고를 받은 당 태종은 분을 참지 못하고 즉각 고구려 정벌 명령을 내렸다.

 

당 태종은 644년부터 고구려 침략에 대한 계획을 착착 진행했다. 그는 500여 척의 병선을 건조하고 군량을 비축하게 하는 한편, 30만의 대군을 소집하고, 전군을 육군과 수군 둘로 나누어 편성했다. 그해 11월 전쟁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당 태종은 고구려 정벌의 명령을 내렸다. 그는 육군 20만을 요동으로 진격하게 하고 수군 10만을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비사성을 공략하고 이어서 고구려의 서울 평양성을 공격하도록 작전명령을 내렸다.

 

당나라의 육군은 이세적(李世勣)을 대총관으로 삼아 기병 6만과 보병 14만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유주(幽州, 지금의 북경)에서 요동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수군은 장량(張亮)을 대총관으로 500여 척의 전함과 1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산동반도의 내주(萊州)에서 출항했다.

 

이듬해인 645년 1월 당나라 육군의 주력부대는 유주에 집결을 마쳤고, 이어서 2월에는 당 태종도 당나라의 수도인 낙양(洛陽)을 출발하여 직접 원정길에 올랐다. 3월에 태종은 정주(定州)에 도착했고 이어서 요하(遼河)를 건너 요동으로 향했다.

 

이 소식은 지체 없이 고구려로 날아들었다.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요동성에서 온 사자에게서 그 소식을 듣고 있었다.

 

“적의 군대는 당 태종이 직접 인솔하고 오는 30만 정예부대라고 합니다.”

 

“알았다. 지난 번 수나라 양제의 200만 대군의 침공 때도 우리는 굳건하게 우리의 조국 고구려를 지켰다. 적의 30만 대군이 정예부대라고는 하지만 문제없다. 가서 고문의(高文義)장군에게 전하라. 내가 곧 구원군을 보낼 것이니 성의 방비에만 충실하기를 바란다.”

 

요양성의 사자를 돌려보낸 후, 부하 장수들을 불러 모아 작전회의를 열었다.

 

“당 태종은 수 양제와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용병과 전술에서 뛰어난 용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30만 군대는 수 양제의 오합지졸들과는 다르다. 숫자가 적다고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정보에 의하면 적들은 수륙 양면으로 공격해 들어올 것이라고 한다. 장군들은 이에 대비한 방비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요동에 진입한 당나라 대군은 요하를 중심으로 배치된 고구려의 저항선을 뚫기 위해 회원진(懷遠鎭)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위장하고, 군대를 북으로 돌려 통정진(通定鎭)에서 요하를 건너 현도성을 공격을 시도했다. 또 이와 별도로 부총관인 강화왕(江夏王) 도종(道宗)은 고구려 서북의 요충지인 신성(新城)을 공격하고, 영주도독 장검은 건안성(建安城)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전은 과연 과거 수양제 때 정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도면밀하게 짜여 진 것이었다.

 

그러나 당나라 군대의 기습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끝내 현도성과 신성, 그리고 건안성을 지켜냈다.

 

첫 공격에 실패한 당나라 군대는 우회하여 개모성(蓋牟城)을 공격, 이를 함락시키고 요동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신성과 건안성의 고구려군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당나라 군대의 요동작전은 큰 제약을 받게 되었다.

 

한편 장량이 이끄는 당나라의 수군은 평양을 공격하기 전에 바다를 건너 요동반도 남단에 자리 잡은 비사성을 공격해서 함락시키고 해상 제해권을 장악한 후, 당나라군의 요동성 공격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5월에 들어서자 당 태종이 친정군을 거느리고 요동성에 도착했다. 당나라 군대가 요동성으로 속속 밀려들자 고구려도 국내성과 신성의 군사 4만을 보내 요동성을 구원하게 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당나라 군대의 반격을 받아 패배해서 물러났고, 결국 요동성은 당나라 군대의 포위 속에 고립되고 말았다.

 

그러나 요동성은 요동지역 최대의 거점으로 과거 수양제의 대규모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견고한 성이었다. 이곳에는 6만여 명의 성민과 50만 석의 군량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 군대의 포위 공격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수백 겹으로 둘러싼 당나라 군대의 공격은 연일 계속되었다.

 

성 앞에는 포차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고 각종 공성무기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포차로 하여금 돌을 비 오듯 한꺼번에 날려서 주야로 멈추지 않고 성을 공격했다. 포차는 300근이나 되는 돌을 1리(250m)나 날릴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로 고구려군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 충차(衝車:거대한 통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철갑을 씌워서 성문을 부수게 고안된 마차.)와 운제(雲梯:성벽 위에까지 닿는 높은 사다리. 한 사다리에 10여 명씩 올라설 수 있으며 주위를 널빤지로 막아 적의 화살에 대비했고 아래쪽에는 수레바퀴가 달려있어서 나아가고 물러남이 자유롭다.)를 동원한 당나라 군대의 공격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요동성 공격의 중요성을 잘 아는 당 태종은 친히 공격에 참여하여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당나라군은 운제 1백 여 대를 세우게 하여 성벽 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이어서 당나라 진중에서 북소리가 울리자 군사들은 각기 작은 사다리와 밧줄과 고리를 들고 일제히 성벽으로 다가갔다. 운제를 성벽에 붙일 때 성 안으로 뛰어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요동성의 고구려 병사들은 당나라 군대가 성벽 위에서 운제를 세우고 쳐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천의 군사들이 불화살을 쏘아댔다. 비 오듯 쏟아지는 불화살 때문에 운제는 모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사다리 위의 군사들은 불에 타서 죽거나 떨어져서 크게 다쳤다. 이어서 성벽 위로부터 돌벼락이 쏟아져 내려서 당나라 군대는 견디지 못하고 천 여구의 시체를 남기고 뒤로 물러났다.

 

당나라 군대는 다음 날, 충차를 앞세워 성문을 깨는 공격을 감행했다. 사면에서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성으로 밀고 들었다. 그러나 요동성에서는 성벽 위에 모아 두었던 큰 돌덩이에 구멍을 뚫고, 칡으로 꼰 밧줄을 그 구멍에 꿰어 들고는 충차가 오는 대로 내리치게 했다. 충차는 위에서 내리 치는 돌덩이에 맞아 우지끈거리며 모두 부서지고 말았다.

 

이렇게 공방전이 계속된 지 10여 일이 지나도 아무런 효력이 나타나지 않자 당 태종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부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가?”

 

“지금 정면 공격은 무모한 일입니다. 야습을 감행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당 태종의 처남이자 대총관인 장손무기(長孫無忌)가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 야습을 하면 좋은가?”

 

“적의 불화살 공격에 운제공격이 실패했습니다. 오늘밤은 바람이 몹시 불고 그믐이라 칠흑같이 어두울 것이니 수십 대의 운제에 군사들을 태워 역으로 화공작전을 펴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좋다 그 계책이 옳을 것 같구나. 당장 시행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날 밤, 일단의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성의 성 밑으로 접근을 시작했다. 날이 워낙 어둡고 강풍이 세차게 불고 있어서 망루에 서 있는 고구려 병사들은 당나라 군사들의 접근을 낌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서서히 수십 대의 운제와 성을 내려치기 위한 누각인 비루당(飛樓幢)이 성벽에 다가서고 작동을 시작했다. 운제와 비루당에 올라 탄 병사들이 성벽 높이 오르자, 기름 묻은 솜뭉치를 성안으로 쏘아 날렸다.

 

“불이다! 화공이다!”

 

성안은 캄캄한 밤의 기습에 놀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쪽에서 화공이 성공을 거두자 당나라 군새는 사면에서 운제를 세우고 화공을 개시했다. 수백, 수천 개의 불덩이가 성안으로 날아들었고 그 불덩이는 강한 바람들 타고 가옥들을 태우고 큰 불길로 번지기 시작했다. 성안의 군사들이 불을 끄려고 허둥거리는 사이에 당나라 군사들은 운제를 타고 들어와 성문을 열었다.

 

성문이 열리는 것을 본 당 태종은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결국 요동성도 당나라 군대의 맹렬한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요동성의 함락은 고구려군의 방어선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 당나라 군대는 계속해서 백암성(白巖城)을 공격했는데, 당나라 군대의 위세에 놀란 성주 손대음(孫代音)은 변변히 싸우지도 않고 당나라 군대에 항복했다.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 등이 차례로 당나라 군대의 손으로 들어감으로써, 이제 요동방어선에 배치된 고구려군의 거점은 신성과 건안성, 그리고 안시성(安市城)만 남게 되었다.

 

곧이어 당나라 군대는 안시성으로 밀려들었다. 고구려는 수의 침입 때와 마찬가지로 요동 일대에서 당나라 군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주력하였기 때문에, 안시성이 무너지면 오골성(烏骨城)을 제외하고는 당나라 군대의 평양성 공격로를 막을 만한 방어선이 없었다.

 

고구려의 유일한 희망은 안시성이었다.

 

처음에 태종은 안시성이 연개소문의 정변 때도 안시성 성주가 복종하지 않아 공격을 받았으나 항복시키지 못한 점을 들어 우회할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안시성을 그대로 지나칠 경우 보급로가 차단될 것을 염려한 장손무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안시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나라 군대의 지휘부는 안시성을 우회하여 건안성이나 오골성을 먼저 공격한 뒤 평양으로 진격하는 작전도 논의했으나, 그 역시 요동 일대의 고구려군에게 보급로가 끊길 위험이 크다고 하여 안시성 공격이 결정되었다.

 

무너져 내리는 토산

 

다음날 멀리서 당나라 군대가 한 점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차츰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들어왔다.

 

양만춘 장군은 성루에 올라서서 당나라 군대가 진군해오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군사들에게 침착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윽고 부관인 대중상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번 전투는 최후의 결전이 될지 모른다. 요동성이 적들의 화공에 무너졌다고 하니 부관은 적들의 화공을 막을 목책을 철저히 점검하도록 하라.”

 

대중상은 지시를 따라 화공을 막을 목책이 제대로 준비되어가고 있는지 점검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20만의 당나라 군사들은 성 앞에 이르더니 군진을 짜기 시작했다. 당나라 군진에는 수많은 깃발이 펄럭거리고,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한 기치창검이 수십 리에 뻗치고 대오는 삼엄했다. 대오를 갖춘 병사들이 울리는 취악(吹奏)소리는 벌판을 진동하고 있었다.

 

당나라 대군은 안시성을 에워싸자 진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반면 안시성은 사람이 없는 성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당나라의 군진이 진채를 설치하느라고 분주한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당나라의 대군이 성을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는 것을 모르기라도 하는 듯이 깊은 정적 속에 파묻혀 있었다.

 

안시성 성루에서 당나라 진영의 군진을 바라보던 양만춘은 감탄을 자아냈다.

 

‘역시 당 태종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로다. 저토록 물샐틈없는 군진을 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구나.’

 

그때 갑옷이 번쩍거리는 기병의 일단이 삼엄한 대오를 갖춘 채 성 밑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당 태종의 어가(御駕)인 금빛 찬란한 온량거(溫涼車: 창문을 여닫음으로 해서 온냉을 조절할 수 있게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큰 수레)가 있었다.

 

당 태종은 성 아래로 다가오더니 온량거에서 내려서 소리쳤다.

 

“안시성의 성주는 들으라. 만약 항복을 한다면 성민 모두를 살려줄 것이고 그대와 그대의 부하들은 우리 당나라의 작위를 수여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청색 전포에 은빛 투구를 쓰고 성루에 서서 아래를 표표히 굽어보던 양만춘이 그 소리를 듣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대가 정히 살아서 돌아가고 싶다면 당장 물러가라. 우리 고구려는 한 치의 땅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어느 새 나타났는지 수천 명의 고구려 군사들이 성루에 서서 당 태종을 내려다보면서 우우, 하고 야유를 내질렸다. 이윽고 성 위에서는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자 당태종은 온량거에 올라타고 군진으로 되돌아갔다.

 

“저 안시성은 산성(山城)이라서 천연의 요새라고 볼 수 있소. 성은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없을 것 같소. 또 이곳 병사들은 고구려의 다른 성들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사기가 대단히 높은 것 같소. 안시성을 공략하는데 적절한 공격법을 제시해 보시오.”

 

군진으로 돌아 온 당 태종이 수하의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폐하, 우선 정공법으로 공략을 해나가면서 빈틈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총관 이세적이 말했다.

 

“신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장손무기도 이세적의 작전에 동의 했다.

 

“그럼 우선 공성부대를 총 동원해서 공격을 감행하시오.”

 

당 태종이 결론을 내리자 당나라 군대는 즉각 공격 자세를 취했다. 당나라 군대의 공격은 사면의 성문을 투석기(投石機)로 두드려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꽝...꽝...!”

 

안시성을 향해 머리통만한 돌덩이가 수없이 날아갔다. 돌덩이는 성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지만 정작 성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슈슉-."

 

다음에는 수많은 화포가 일시에 포문을 열었고 염초 불덩이가 성벽을 넘어 날아갔다. 그러자 성안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책(木柵)을 세우고 화공을 막아냈다. 그러자 염초 불덩이와 바윗돌은 성 밖으로 떨어져 내렸고 성채는 끄떡도 없었다.

 

“와아.”

 

대신 성채 위에서 함성 소리와 함께 수백 개의 화살이 한꺼번에 당나라 군대를 향해 날아왔다.

 

“피하라!”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공격을 피하려고 당나라군은 우왕좌왕했다. 안시성의 화살 공격이 잠시 뜸해진 틈을 타서 태종은 다시 포거(抛車:투석기의 일종)를 이용한 석포 공격을 명령했다.

 

“꽝-.”

 

돌덩어리 몇 개가 날아가 성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성벽은 여전히 튼튼하게 버텼다. 하지만 당 태종은 계속적인 공격을 명령했다. 석포 공격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운제와 충차를 이용한 공격이 이어졌다. 당나라 군대는 사방의 성문을 충차로 공격했고 운제 1백 여 대를 세우게 하여 성벽 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당나라군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 파상적인 공격을 퍼부어댔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 성벽 아래에는 당나라 병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

 

날이 아주 어두운 뒤에야 태종은 철수 명령을 내렸다. 첫날의 공성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렸다.

 

그날 밤, 태종은 이세적을 위시한 주요 무장들을 모아놓고 작전회의를 열었다. 첫날의 공성전으로 사망한 병사는 5천 명에 이르렀다.

 

“으음.”

 

전황을 보고받은 태종은 비탄에 잠겼다.

 

“이곳이야 말로 요동성의 수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다. 우리가 고구려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했소.”

 

태종의 침통한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이세적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비록 실패했지만 내일 공격에서는 반드시 성채에 우리 깃발을 꽂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당나라 군대의 공격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을 뿐 안시성은 굳건하게 버티어 서 있었다. 하루에도 6~7차에 걸쳐 당나라 군대의 공격이 계속되었지만 안시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고 또 열흘이 지나도록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도 전과가 없었다.

 

안시성은 산성인 탓에 당나라군의 포차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것은 평지에 지어진 성과는 달리 경사가 심해서 포차를 성 앞에 일렬로 집중배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장비인 포차는 산지에서는 이동이 불편하고 공격이 용이하지 않아서 거추장스러운 무기가 되기도 했다.

 

당나라 군 수뇌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당 태종은 정공법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안시성은 요동성보다 몇 배나 튼튼한 성이오. 군사들도 훨씬 날렵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소. 정면으로 안시성을 공략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무슨 비책이 없겠소?”

 

태종은 진중에서 작전회의를 열며 수하들에게 물었다.

 

“폐하,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강하왕 도종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그게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토산(土山)을 쌓아 저들의 성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성벽보다 더 높은 토산을 만들면 성안을 굽어보고 싸울 수 있고 판자로 부교 만 놓으면 성안으로 넘어가 싸울 수 있습니다.”

 

“그래. 과연 묘책이로군. 군사의 절반은 싸우게 하고 절반은 부대에 흙을 넣어 토산을 쌓도록 하라.”

 

태종은 당장 토산계(土山計)를 쓰기로 하고 토산을 쌓을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당나라군은 그날부터 최후의 수단으로 즉시 힘이 세고 날랜 군사 수만 명을 동원해서 괭이와 삽으로 흙을 파서 흙부대에 담아 거대한 토산을 쌓기 시작했다.

 

성루에 올라 적진을 살피던 대중상은 양만춘에게 급히 달려가서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양만춘 성루에 올라서서 당나라 진영을 살폈다. 마즌켠 기슭에서 수만 명의 당나라 군사들이 흙부대를 져서 나르고 있었다.

 

“저 놈들이 무엇을 하는 거지요?”

 

대중상은 걱정스레 양만춘에게 물었다.

 

“토산을 쌓으려는 것 같구나. 토산을 쌓아서 우리 성을 내려다보며 공격을 하려는 것이다.”

 

“그럼, 정말 큰일입니다. 어떻게든 토산을 쌓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좋은 방법이 있겠느냐?”

 

“제가 결사대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가서 놈들이 토산을 쌓지 못하도록 쳐부수고 오겠습니다.”

 

이제 스물다섯 살의 젊은 혈기가 넘치는 대중상이 결연하게 말했다.

 

“적의 대군이 성문 앞을 철통처럼 지키고 서 있는데 무슨 수로 성 밖으로 나간단 말이냐? 성문을 여는 순간 놈들이 달려들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토산은 눈에 띠게 우뚝 솟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만 명의 병사들이 밤낮없이 매달려서 토산을 쌓아올리는 탓에 토산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가는 것이었다. 토산이 완성되면 꼭대기에 올라가 성안을 굽어보며 싸울 수도 있고, 토산 꼭대기에서 성벽에 부교만 걸치면 군사들이 성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60일 동안이나 토산을 쌓는데 진력을 다했다.

 

양만춘은 성이 완성되는 날에는 큰일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파괴할 묘책이 떠오르지를 않아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토산이 완성되어가자, 당나라 진영에서는 안시성을 공격할 무기들을 토산 위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때 한 병사가 성주의 집무소로 찾아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양만춘이 물었다.

 

“저는 원래 성벽을 쌓는 토목 기술자인데 지금 당나라 군사들이 쌓는 토산의 허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토산을 허물어트릴 방법이 있단 말이냐?”

 

“지금 저들이 쌓는 토산은 기초가 부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병사들이 3만 명이상 오르게 되면 토산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양만춘과 대중상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말이 정말이냐?”

 

“예. 제 경험으로는 그러합니다. 토산의 동남쪽의 기초부근이 허술하게 보입니다. 그곳의 흙부대를 터트릴 수만 있다면 적군이 2만 명이상 올라가도 토산은 쉽게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장군, 그러면 제가 결사대를 이끌고 나가서 그쪽 방향의 흙부대를 모조리 터트려놓겠습니다.”

 

대중상이 결연하게 외치며 나섰다.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다. 그런데 토산의 흙부대를 적군 모르게 터트려놓아야 할 것 아니냐?”

 

“제가 오늘 밤 결사대 5백 명을 이끌고 나가서 동남쪽 방향의 흙부대를 모조리 터트려놓고 오겠습니다.”

 

“좋다. 결사대에 지원할 병사를 소집하라.”

 

새로운 희망을 안게 된 양만춘은 결사대를 모집할 것을 명령했다. 대중상은 날렵하고 잽싼 장졸을 중심으로 결사대 5백을 뽑았다.

 

며칠 후,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밤낮을 쉬지 않고 60여 일을 쌓은 결과 안시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토산이 완공되었다. 당 태종은 토산의 완공을 축하하며 장병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주연을 베풀었다., 다음날부터 토산을 이용한 안시성 공략을 명령할 참이었다.

 

“자. 지금이다.”

 

그날 밤, 자정이 지나고 어둠이 깊어지자 안시성에서는 미리 선발된 결사대원들이 성벽 위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성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에는 칼과 날카롭게 간 낫이 서너 자루씩 꽂혀 있었다. 수십 개의 줄사다리를 통해서 순식간에 성을 내려온 5백 명의 결사대원들은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고, 줄사다리는 위로 끌려 올라가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아침, 당나라 군사들은 과연 개미떼처럼 토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당나라 군대는 토산을 이용한 공격을 개시한 동시에 땅굴을 파서 안시성 밑으로 파고들었다. 이른바 양동작전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양만춘은 며칠 전부터 당나라 군사들이 성 밑을 파고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성안에서 도랑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랑은 성벽을 따라 허리 깊이로 파여져 띠를 두른 것처럼 되었다. 도랑 파는 일이 끝나자 양만춘은 집집마다에서 거두어 온 가마솥에 물을 끓이도록 했다. 새벽녘이 되자 양만춘은 도랑을 따라 군사들을 배치했다.

 

“내가 보기에 당나라군은 토산 공격을 하는 척하면서 땅 밑으로 쳐들어오기도 할 것 같다. 토산에서 공격이 시작되면 적들은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성안으로 들어올지 모른다. 그것을 대비하여 도랑을 파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성벽 밑으로 기어들어오면 몽둥이질을 해서 그들을 때려잡고 뜨거운 물을 쏟아 붙도록 하라.”

 

양만춘은 군사들에게 그렇게 명했다. 과연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자 당나라 군사들은 토산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 성벽 한 쪽에서 적병이 굴을 파고 나오기 시작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땅굴은 십여 곳이나 발견되었다. 그러나 적은 땅굴에서 기어 나오는 순간 도량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던 고구려 군사의 방망이에 나오는 족족 머리통이 박살나고 있었다. 뒤따라 나오는 당나라 군사들은 앞장 서 나간 동료가 매 맞아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떠밀며 밀려나왔다. 그때마다 기다리고 있던 몽둥이가 머리통을 갈겼다. 다른 쪽에서는 한꺼번에 서너 명씩 쏟아져 나을 만큼 큰 구멍이 뚫렸다.

 

“물을 부어라.”

 

고구려 병사들은 부녀자들이 날라 오는 펄펄 끓는 물을 땅굴을 빠져나오는 적병들에게 퍼부었다.

 

“으아악!”

 

그날 아침, 이 땅굴작전으로 물에 데고 머리가 깨져 죽은 당나라 병졸의 숫자는 일천여 명이 넘었다. 보고를 받은 당태종은 주도면밀한 양만춘의 작전에 혀를 차며 치를 떨었다.

 

한편 토산에 개미떼처럼 기어오른 당나라 병사의 수는 3만을 넘어서 4만에 이르고 있었다. 토산 꼭대기에는 투석기와 불화살을 날릴 수 있는 노포(弩砲:돌멩이와 화살을 쏘는 일종의 야포)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토산 꼭대기에 올라간 당나라 병사들은 사다리를 둘러매고 올라가 성으로 건너 갈 가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다리로 된 가교는 이쪽 성벽에 걸치기만 하면 그들은 그걸 타고 성안으로 넘어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일단의 고구려 병사들은 성벽에 붙어 앉아서 그들이 가교를 놓지 못하도록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반면 투석기와 노포의 설치를 끝낸 당나라 군사들은 안시성을 향해서 돌멩이와 불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당나라군의 총공격 앞에 안시성은 함락의 위기에 처하는 듯이 보였다.

 

“뭣들 하는 거냐. 빨리 사다리를 걸쳐야 성안으로 들어갈 게 아니냐?”

 

강하왕 도종의 부관인 부복애(傅伏愛)가 토산 아래에서 병사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일시에 넘어가려고 당병들은 기를 쓰고 토산 위로 마구 기어올랐다.

 

“이만 명만 올라가면 무너질 것이라더니 삼만여 명이 올라가도 끄떡없지 않느냐?”

 

양만춘은 적의 불화살과 돌멩이가 맹공을 퍼부어대기 시작하자 참담한 심정이되어서 외쳐 물었다. 결사대를 이끌고 나가서 토산의 동남쪽 흙부대를 모조리 터트려 놓고 온 대중상 또한 참담한 얼굴로 토목기술자인 병사를 바라보았다.

 

“토산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비명처럼 외치는 소리가 질렀다. 토산 위에 있던 당나라 병사들이 지진을 만난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으악.”

 

와르르 꽝! 와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토산은 과연 동남쪽으로부터 기울며 무너져내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흙더미를 적셔서 곤죽처럼 질펀하게 말들어서 병사들은 마구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흙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토산이 주저앉는다.”

 

사만여 명이 올라가 아우성을 치던 토산에는 비명 소리가 난무하며 당나라 병사들은 저희들끼리 얼싸안고 흙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토산은 흙부대와 바윗돌, 목책, 당나라 병사들이 범벅이 되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양만춘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당나라 군사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처단하라. 토산을 점령하라.”

 

함성 소리와 함께 고구려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쏟아져나갔다. 2만여 명의 고구려군이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서 흙더미에 깔리고 저희들끼리 짓밟히는 당나라 병사들을 도륙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너져 내린 거대한 토산은 당나라군의 진영을 덮쳐서 토산 밑에 있던 5천여 명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압사를 하고 말았다.

 

“아,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당 태종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믿을 수 없었다. 고구려군은 허물어져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토산 주위에 달려들어서 토산에서 허물어져 내려오는 군사들을 모조리 주살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물을 쳐놓고 물고기를 잡는 듯한 형국이었다. 토산에 묻혀서 죽은 병사가 1만 5천이 넘었고 고구려군에 도륙을 당한 병사가 거의 2만에 달했다. 토산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하자 당나라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것은 물론 넋이 나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당 태종 또한 토산이 무너져 내린 자리를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또 다시 태종을 경악하게 하는 기별이 날아들었다.

 

“폐하, 수군 총관 장양이 함대의 절반을 잃었다고 하옵니다.”

 

“무엇이라?”

 

“비사성을 배후에 두고 남진하던 저희 함대가 고구려 수군의 기습을 받아서 요동만 밖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당 태종은 수군이 제해권을 빼앗기면 해상 보급이 끊어져서 더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수 양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그토록 치밀한 계획과 비책을 가지고 전쟁에 임했건만 이토록 참담한 패배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분하고 창피하게만 여겨졌다.

 

“전군은 퇴각하라.”

 

당태종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가 거의 10만 대군을 잃고 철군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당나라군은 더 이상 버티려고 해도 군량도 떨어지고 군대의 사기도 크게 떨어져서 전투를 치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에 때는 가을을 지나 겨울로 다가서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쪽에서 원정 온 당나라 병사들은 원주민인 고구려군을 당해낼 재간이 더욱 없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태종은 크게 실망하면서 토산이 무너진 책임을 부복애에게 물어서 그를 참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패군지장인 태종은 최후로 안시성 아래서 전군을 사열하고 사기를 높여보려고 시도했지만 이미 당나라군은 맥이 빠져서 한층 쓸쓸할 뿐이었다.

 

당 태종은 철군을 하면서 안시성 아래로 다가가서 외쳤다.

 

“그대들은 비록 적이지만 국가를 위하여 잘 싸웠다. 이곳에 비단 100필 을 두고 가니 잘 받으시오.”

 

“하하하, 고맙소”

 

양만춘은 적장인 태종에 대해서 성 위에 올라 작별의 예(禮)를 갖추었다.

 

당 태종을 물리친 안시성 백성 모두는 기쁨의 환호를 올리며 승전고를 울리고 승리를 자축했다. 3개월 동안 벌였던 혈전이 끝난 것이었다.

 

다음날 어린 대조영은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고, 저녁에는 집에 들린 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갑옷으로 무장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가장 멋진 장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대조영은 3개월 동안의 전투 중에 짬짬이 대피소를 빠져나와서 어른들의 전투장면을 눈여겨 본 탓에 나이가 들어서도 당시의 전투를 늘 회상하면서 어려울 때마다 승리를 다짐하는 버릇을 지니게 되었다.

 

퇴로를 차단하라

 

한편 연개소문은 당 태종이 퇴각한다는 전갈을 받고 재빨리 군사를 움직였다. 흑벌무 장군에게 평양성 방위를 당당하던 2만의 정예병을 주어 당 태종을 추격하게하고 자신도 2만의 군대를 이끌고 어디론 가로 쏜살같이 행군을 시작했다.

 

연개소문은 청년 시절부터 중원 정복의 꿈을 키워왔었다. 중원의 침략을 끊임없이 당하는 것보다는 그 침략의 근원지를 정복하여 아예 대륙의 주인이 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연개소문의 집안은 대대로 막리지(莫離支)를 역임한 명문 가문이었다.

 

1923년에 발견된 연개소문의 큰아들 연연남생묘지(淵男生墓誌)에 의하면 연개소문의할아버지의 이름은 연자유(淵子遊), 아버지는 연태조(太祚)로 모두 막리지를 역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개소문은 호걸답게 장대한 체격에 성품이 호방하고 기개가 매우 높았다. 연개소문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 연개소문이 그 직책을 계승하려고 하자 유력한 귀족들이 그의 독단적인 기질을 두려워하여 반대에 나섰다. 그러자 연개소문은 귀족들에게 호소하여 간신히 승인을 받고, 천리장성을 쌓는 최고 감독자가 되었다. 고구려는 당나라가 침략해 올 것을 두려워하여, 고구려의 서북쪽 부여성(지금의 농안 부근)에서 시작하여 남쪽 발해만에 이르는 1천여 리에 걸쳐 긴 성을 쌓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모시게 된 영류태왕(榮留太王)은 이복형인 영양태왕(榮陽太王)과는 달리 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당나라에 사신을 자주 보내어 환심을 사려 했으며, 군사 기밀에 속하는 고구려의 지도까지 당나라에 바쳤다.

 

영류태왕은 당나라가 돌궐을 격파하자 이를 축하하는 사절을 보내고, 고구려의 경계를 그린 봉역도(封域圖)를 당나라에 바쳤다.

 

영류태왕이 유약한 정책으로 일관하자 보다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려는 연개소문과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는 서서히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연개소문이 영류태왕에게 이렇게 간청했다.

 

“당나라는 틈만 있으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적국이옵니다. 그런 적국에 군사 지도를 넘기는 것은 스스로 그들이 신하가 되고자 함입니다. 이제라도 군사력을 키워 적의 침략에 대비하셔야 하옵니다.”

 

그러자 영류태왕은 연개소문을 면 국경지대의 천리장성을 쌓는 현장으로 보내 버렸던 것이다. 조정에서 임금이 하는 일에 간섭 하지 말고 성 쌓는 일이나 감독하라는 것이었다.

 

연개소문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깨닫고 불평 없이 성 쌓는 일에만 매달렸다. 어차피 당나라가 쳐들어오게 되면 천리장성 같은 방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631년, 연개소문은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 해에 영류태왕이 당나라의 사신인 광주사마 장손사(長孫師)의 요청을 받아들여 '경관(京觀)'을 헐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관은 고구려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고구려 군사들의 유해를 모아 묻고, 그 위에 커다란 탑 언덕을 세운 것으로, 오늘날의 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 이런 성지를 당나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헐어 버린 것이다. 경관을 파괴한 당의 의도는 명백히 고구려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관을 헐다니,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영혼들에 대한 모독 아닌가!”

 

“선왕께서 피땀으로 이룬 업적을 아우가 스스로 무너뜨리다니, 하늘이 노하고 땅이 통곡할 일이로다!”

 

민심이 영류태왕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관을 허문 것은 고구려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뭉개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천리장성의 완성으로 연개소문에 대한 백성들의 신임이 올라갈 때에 그런 사건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점차 연개소문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두려워한 여러 대신들과 영류태왕이 그의 제거를 모의했다. 하지만 먼저 이를 눈치 챈 연개소문은 영류태왕 25년인 642년에 평양성 남쪽 성 밖에서 열병식을 거행하다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귀족 100여 명을 처단하고 정변을 일으켰다. 그는 곧바로 왕궁에 쳐들어가서 영류태왕을 시해하고 영류태왕의 조카인 장(臧)을 보장태왕으로 추대한 뒤, 반대파를 모조리 제거하고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었다.

 

“내 꿈은 오직 하나, 내 나라 고구려를 광개토태왕 시대의 그 웅대하고 강했던 나라로 키우는 것이오. 우리는 군사력을 키워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고, 나아가 광개토대왕 때의 광활한 땅을 되찾아야 하오. 이 영광스런 대역사를 우리 힘으로 반드시 이룩합시다!”

 

하고 말하며 연개소문은 군사력을 키우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5개의 칼을 차고 다니며, 외출할 때는 의장대를 앞세우고 대단한 위엄을 부렸다.

 

연개소문이 집권할 무렵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긴박한 정세에 처하고 있었다. 수나라와의 20여년에 걸친 전쟁이 수나라의 멸망으로 끝나자, 중국과의 평화로운 관계가 지속되었다. 새로 왕조를 개국한 당나라는 영류태왕 때에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발생한 양측의 포로와 유민 1만여 명씩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당나라가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고 세력이 강화되어감에 따라, 양국관계는 긴박해져 갔다.

 

당나라는 서쪽으로 고창국(高昌國)을 멸망시키고, 북으로 돌궐(突厥)을 격파 복속시킨 뒤, 명실공이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팽창정책을 펼쳤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고구려는 대책에 부심하여 부여성에서 발해만 입구에 이르는 그 서부국경에 천리장성을 쌓았다.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고 수비에 주력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연개소문은 중원세계를 통일하고 돌궐 등 주변국을 정복한 당나라에 비해 고구려가 영토, 전체적인 인구, 병력의 수, 경제력 등 국력의 총합에서 열세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단순히 국력만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다. 손자병법에는 용병을 잘 하는 자는 먼저 적이 아군을 이길 수 없도록 준비하고, 아군이 적을 이길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연개소문은 객관적인 국력에서 우세한 당나라를 이기기 위해서는 선 수비, 후 공격 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개소문은 당나라군이 쉽게 이길 수 없도록 성을 굳건히 방비하면서 당나라군이 지치기를 기다린 후, 당나라군이 회군할 때를 기회로 적을 늪지대인 요택으로 몰아넣어 승리를 거두는 전략을 준비했다. 연개소문은 적이 반드시 점령해야만할 중요성들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적의 작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지공작전을 계획했던 것이다.

 

몇몇 성이 함락당하고 고연수, 고혜원의 부대가 대패를 하기는 했지만 연개소문의 작전은 주효했다.

 

2만의 군대를 이끌고 요동벌판을 내달려온 연개소문은 이제 영주(營州, 지금의 조양)로 가는 길목에서 패주해 오는 당 태종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이제 당 태종을 잡아서 참하고 그동안 비원하던 중원 정복의 야망을 펼칠 시간이 목전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한편 당 태종은 쫓기듯이 지름길인 요택의 늪지대를 통해 철수하고 있었다. 당태종이 늪지대를 통한 철군을 감행하게 된 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동의 길목마다 고구려군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곳을 통해서는 퇴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9월 18일 퇴각 결정 이후 당나라군은 21일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늪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당나라군을 추격하던 흑벌무는 군사를 멈추었다.

 

“쫓지 않아도 이세민은 늪지대에서 절반 이상의 군사를 잃을 것이다. 대막리지께서 영주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놈들을 도륙할 것이니 우리는 도망쳐 나오는 자들만 잡아내도록 하자.”

 

과연 요택의 늪지대는 대단했다. 날이 추워서 살얼음이 잡힌 늪지에는 사람과 말이 빠져 진퇴양난에 빠졌다. 더구나 늪지대에는 수나라의 고구려 침입 때 죽은 병사의 해골이 즐비하게 널려 있어서 병사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렸다. 그런데 이 늪지대에서도 고구려의 매복병에게 공격을 받아, 태종은 부하의 시체를 산더미처럼 남기고 허겁지겁 도망쳐 버렸다.

 

수레가 늪지에 빠지는 바람에 당 태종도 수레를 버리고 말을 타고 퇴각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 태종은 그 어려운 퇴각 중에 또 한 가지 다급하고 불길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폐하 설연타(薛延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전령의 말을 전해들은 태종은 가슴이 철렁했다

 

“무엇이라 설연타가 어찌되었다고? 자세히 보고하라.”

 

“설연타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후원하기 위해서 기마부대들이 만리장성을 넘어서 남하하고 있다고 합니다.”

 

설연타는 철륵의 한 부족으로 강성하던 동돌궐을 무너뜨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강국으로 20만이 넘는 부적의 기마대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설연타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중원을 넘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 내가 연개소문의 귀신같은 전략에 또 말려들고 말았구나. 어서 빨리 장안으로 돌아가자.”

 

당 태종은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긴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하다는 정관지치(貞觀之治)를 남긴 명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개소문의 신출귀몰한 전법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처참하게 폐퇴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나라군은 10월 11일, 거센 눈보라 속에서 늪지대를 겨우 빠져 나오고 있었다. 늪지대를 빠져 나와 점검해보니 군사의 수는 4만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6만 명의 병사들이 늪지대에 빠져서 죽어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아사를 한 것이었다.

 

당 태종은 이 시점에서도 자신이 퇴각하는 길목인 영주 입구에서 연개소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당나라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대오를 갖추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건 웬 군사들이냐?”

 

“폐하, 큰일 났습니다. 저들은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의 군사들이옵니다.”

 

“무엇이라. 어떻게 연개소문이 귀신이 아니고서야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이냐? 자세히 알아보라.”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는 고구려 군사였고 선두에서 달려오는 장수는 연개소문이었다.

 

“이세민아 오랜만이구나. 네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너의 목을 내게 바쳐야 할 것이다.”

 

연개소문이 마상에서 크게 소리 높여 외쳤다. 태종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나라의 장수들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군사의 숫자로 보아서 당나라의 병사들이 2배는 되어보였지만 이제 막 늪지대를 빠져나와서 기긴맥진하고 사기기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의 병사들이 아닌가. 겨우 자리에 서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가진 군대로 연개소문의 기마병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승패를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 태종에게는 최악의 경우를 모면하는 운이 있었던 모양이다.

 

연개소문이 막 공격을 개시하려고 징을 울리고 제장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고 있을 때였다.

 

후미에서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보는 군사들이 있었다. 당나라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명장 저수량(楮遂良)이 이끄는 5만의 군사들이었다. 태자 이치(李治)가 아버지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퇴각하는 태종을 도우라고 저수량에게 군사를 주어 급하게 파견한 것이었다.

 

연개소문은 아직까지 당태종의 명운이 하늘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개탄을 해야 했다.

 

“이세민아, 네가 아직 명운이 따르는구나. 내 기어이 오늘은 너의 수급을 거두고자했건만.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다니 안타깝구나.”

 

연개소문은 앞뒤로 수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퇴각을 명령했다.

 

“오, 저수량 장군! 그대가 아니었던들 짐은 연개소문 저자에게 크게 당했을 것이오. 이렇게 나를 구원해주러 나타나다니. 고맙소.”

 

태종은 감격에 겨워서 저수량의 손을 마주잡고 고마움을 표했다

 

“폐하, 신이 이렇게 진군해 올 수 있도록 하신 것은 태자마마의 배려 때문입니다. 태자마마께서 폐하의 안위를 걱정하시어 신에게 빨리 가서 폐하를 보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 태자의 충정을 깊이 새기겠소이다.”

 

태종은 영주에 이르러서 이번 전쟁으로 죽은 병사들을 위해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저수량이 이끌고 온 기병을 거느리고 서둘러 산해관을 통과해서 10월 21일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가 태자 이치의 영접을 받았다.

 

“폐하,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렇게 수척해지신 폐하를 뵈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태자가 저수량 같은 장군을 구원군으로 보내 준 덕에 짐이 살았다. 짐의 고생보다도 이역 땅에 두고 온 병사들의 고혼(孤魂)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

 

태종은 처연한 기분이 되어서 비감에 어린 말투로 말했다. 태종은 자신이 이끌고 갔던 20만 군사 중에 거의 대부분인 16만을 잃고 4만의 군사만을 이끌고 패장(敗將)으로서 돌아간다는 것이 심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연개소문을 생각하면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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