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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당나라를 공격하다

리채윤 작가 l 기사입력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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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채윤  작가   ©브레이크뉴스

제2장 중원정벌 -상

 

연개소문, 당나라를 공격하다

 

당나라 대군을 물리 친 고구려는 어지러워진 나라 안을 수습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거듭된 전쟁으로 나라 안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연개소문은 백성들에 대한 세금을 탕감시키고, 노역을 줄이는 한편, 많은 병사들을 귀가 시켜서 피폐해진 가정 경제를 일으키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것은 당분간 당나라가 쳐들어 올 여력이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3년 정도 세월이 흐르자 고구려의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귀가해서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고 하늘도 도운 탓에 농사는 해마다 풍년을 맞이했다. 또 상공업을 특별히 장려해서 돌궐, 철륵, 거란 등과 교역이 활발해짐으로서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소모된 국력을 보완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나라 안이 수습되어 갈 때, 당나라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당 태종이 죽은 것이다. 당 태종은 연개소문에게 당한 치욕을 씻고자 그 이듬해에도 이세적과 설만철 등을 시켜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또다시 실패하고 울화병을 앓다가 마침내 649년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아들 고종(高宗)에게 유언했다.

 

“고구려를 공격해서 얻어지는 것은 치욕뿐일 것이다. 고구려인은 강하고 연개소문은 귀신같은 전략을 부리는 명장이니, 섣불리 고구려를 공격하지 마라.”

 

그 소식을 들은 연개소문은 오랫동안 장고해오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651년, 연개소문은 중원 정벌전쟁에 나설 것을 천명한 것이다. 연개소문은 보장태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폐하, 우리 고구려는 장장 60여 년 동안이나 대륙과의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제 저들의 괴수 이세민이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 고종이 왕업을 이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중원은 당분간 혼돈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중원을 정벌코자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는 저들이 우리 땅을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저들의 나라는 우리보다 인구도 몇 배나 많고 물자가 풍부한 상태인데 우리가 먼저 저들을 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소만... ”

 

보장태왕은 자못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저들만이 천하제일이라는 못된 습성을 고쳐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나라는 지금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반란과 새롭게 일어난 실위(室韋)와 토번(吐蕃) 세력을 막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당나라는 아직 큰 전쟁을 치를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이참에 우리가 요서와 열하를 손에 넣어야만 저들이 앞으로도 우리 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좋소. 짐은 경의 판단을 믿겠소.”

 

그리하여 연개소문은 20만의 정예부대를 편성해서 중원 정벌군을 일으켰다. 연개소문은 흑벌무 장군을 전군대원수(全軍大元帥)로 임명하고, 양만춘 장군을 요동군대원수로, 안고(安高)장군을 수군대원수(水軍大元帥)로 임명했다.

 

전군대원수 흑벌무는 연개소문과 결의형제한 아우로서 그의 무용은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연수, 고혜원의 안시성 구원군이 당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1만의 군사로 적군의 허를 찌르며 쳐들어가서 12만의 고구려 병사들을 사지에서 구출해 낸 맹장이었다.

 

연개소문은 전군대원수 흑벌무에게 7만의 병사를 주어 요서 지방을 가로질러 당나라 군의 전진기기인 영주를 들이치게 하고 수군(水軍) 3만으로 하여금 황하 하구의 이진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요동군대원수 양만춘에게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당나라군의 반격에 대비해서 요동방어선을 지키면서 흑벌무를 후방에서 지원하도록 5만의 병사를 주었다.

 

두 장수에게 작전명령을 하달한 연개소문은 스스로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가 곧바로 진군을 해나간 곳은 만리장성의 동족 관문인 산해관(山海關)이었다. 산해관을 단숨에 돌파한 연개소문은 산동반도로 치고 내려갔는데, 그 사이에 수군대원수 안고가 이끄는 고구려 수군이 산동반도에 상륙해서 합류했다. 육군과 수군이 물샐틈없이 작전을 펼친 고구려군은 이진성, 유주, 내주(萊州), 영평(永平)을 차례로 점령했다.

 

10만 군사의 군사를 가지고 하북지역을 지키고 있던 당나라의 좌효위장군 방효태(龐孝泰)는 한 달 간의 전투에서 8만의 군사를 잃고 여러 성을 빼앗긴 채 후퇴했다. 방효태는 당 고종에게 구원병을 요청했지만 기다리는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고구려군이 요서와 하북 지방을 평정하는 동안 당나라군은 계속 패퇴를 거듭했고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 고종은 고구려의 뜻하지 않은 침공에 무척 놀랐지만 실지를 회복할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새롭게 왕권을 이어받은 당 고종이 태종과는 달리 유약한 군주이기도 한 탓도 있었지만 당나라로서는 다시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와 전쟁을 치를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은 설연타를 쳐부수고 북방을 평정했지만 북쪽에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토번과 실위의 세력들을 견제해야 하는 사정으로 고구려와의 대외전쟁을 치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당나라는 하북(河北) 지역의 땅을 빼앗기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고구려와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당분간 고구려와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연개소문이 국제정세와 당나라의 내부사정까지 훤하게 내다보면서 감행한 중원정벌이 적중한 것이었다.

 

연개소문이 이렇게 하북일대를 점령하는 동안 흑벌무와 양만춘이 이끄는 고구려 주력군은 요하를 건너 요서로 진격해서 영주를 점령하고 요서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대릉하 전투, 영주 점령 작전에는 흑벌무의 부대와 양만춘의 부대가 합동작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대중상은 양만춘의 부관으로서 뛰어난 전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무예도 출중할 뿐 아니라 용병(用兵)에 능해서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계략과 군략을 창출하여 흑벌무와 양만춘을 놀라게 했다. 대중상은 몇 번의 작전을 통해서 커다란 전공을 세움으로서 두 장군의 깊은 신뢰를 얻어냈다.

 

대중상은 양만춘군의 선발대로서 대릉하 전투와 영주전투에 참여했는데 두 번의 전투에서 선봉을 맞았고, 뛰어난 계책을 세워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승리를 거머쥠으로서 흑벌무 장군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양 장군, 장군의 부관이 보여준 용병술은 귀신도 곡할 정도였소. 상대편의 전법까지 환히 내다보고 있더군. 앞으로 대성할 장재(將材)요.”

 

연개소문의 중원 정벌전쟁이 성공을 거두자 고구려는 중원 진출의 발판을 굳히게 되었다. 승리를 거머쥔 연개소문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북쪽에서 당나라를 위협하고 있는 유목민족인 철륵, 실위와 동맹을 맺고 중원을 압박하면서 하북의 점령지를 굳건하게 지켰다.

 

연개소문은 새롭게 정복한 하북 일대의 성들을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는 한편 북경 60십리 북쪽에 터를 닦고 새로운 성을 축조하도록 명했다.

 

“이곳에 성을 쌓도록 하라! 만리장성 안에 고려성(高麗城)을 쌓는 것이다.”

 

연개소문은 이 성에 고구려 백성을 이주시켜, 앞으로 계속 고구려의 영토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고려성 축성의 책임은 양만춘 장군에게 주어졌다. 양만춘은 1년 여의 공사 끝에 성을 완성했다.

 

연개소문은 고려성이 완성되자 요동성과 숙군성의 고구려 병사 3만과 백성 3만여 명을 이주시켰다. 양만춘은 그때 요동성으로 돌아가면서 황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대중상에게 고려성의 수비 임무를 맡겼다.

 

“자네의 임무가 중차대하다는 것을 늘 명심하게. 대막리지께서는 이 고려성을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셨네. 이곳에 와서 살겠다는 자들은 누구라도 좋으니 민족이나 출신성분을 따지지 말고 받아들이게.”

 

요동성으로 떠나면서 양만춘이 대중상에게 말했다.

 

“그러면 거란족이나 한족(漢族)도 다 받아들이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한족의 숫자가 많을 경우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떻게 하지요?”

 

“허허, 그것은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닌가. 이번 기회가 자네의 능력을 시험해 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일세. 이번 인사는 흑벌무 장군이 자네를 특별히 대막리지께 추천해서 이루어진 일이니 성주로서의 임무를 다해서 흑벌무 장군과 대막리지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게나.”

 

양만춘은 자신의 아끼는 부하에게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고 떠나는 것이 무척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중상은 고려성으로 많은 이주민을 받아들였다. 이주민 중에는 고구려인뿐만 아니라 거란족, 말갈족, 심지어는 한족, 돌궐족들도 차별 없이 받아들였다. 고려성에 다민족 사회가 형성되자 국제교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고려성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고려성은 이진성과 함께 황하 하구에 위치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 바다가 가까운 탓에 많은 배들이 드나들고 물산이 풍부해져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게 되어 있었다.

 

고려성은 중국 청나라 때까지 남아 있었는데, 당나라 시인 번한(蕃漢)은 이 고려성을 두고 ‘고려회첩시(高麗懷l貼詩)’이란 시를 지어 읊었다.

 

황량한 들판에 새 성이 생기니

눈 덮인 들에 꿩이 날게 되고

맑은 냇물에는 저녁놀이 잠기도다.

군사의 북소리는 구름 끝까지 일고

마을엔 별보다 많은 촛불이 타고,

온갖 꽃들이 땅을 수놓아 덮고

보화가 번쩍이는 번화한 저자에는

옥퉁소 음악 소리 그칠 새가 없도다.

 

 

번한은 그의 시 가운데 연개소문이 고려성을 건설하여 한때는 수만 명의 백성들이 이주해와 살았고 성은 번성하여 음악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번성했던 고려성은 당시 고구려 대륙 진출의 관문이기도 했다.

 

참고로 밝히자면 고려성은 청조말(淸朝末)까지도 존재했고, 고려성이 있던 부근에는 오늘날에도 고려문(門) 혹은 고려진(鎭), 고려촌(村)들의 지명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연개소문은 오늘날에도 청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와 상연되고 있는 경극(京劇)에서 고구려를 대표하는 무서운 용장으로 등장하는 데 청룡을 타고 다니는 수호신으로 중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고려성에서의 어린 시절

 

고려성은 사철의 경치가 모두 아름다웠다. 봄이 되면 개나리가 집들의 울타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여름에는 짙푸른 수풀이 우거졌고, 가을에는 오곡백화가 무르익었으며 겨울에는 눈 내린 들판이 가없이 펼쳐졌다.

 

대중상은 고려성으로 가족을 불러들였다. 고려성으로 온 대조영은 12살의 소년이 되어 있었다. 대조영은 고려성에서 신나는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었으며 무예도 출중했다. 그는 활쏘는 법·말 달리는 법·칼 쓰는 법·창 쓰는 법 등 여러 가지 무예를 스스로 익혔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졌던 영민함과 대장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아버지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많은 기대를 모으며 이미 ‘왕좌지재(王座至才)’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그는 아버지가 번성하는 고려성의 성주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좀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버지는 영민한 아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로 작정했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또 스승을 모셔오기도 하여 열심히 글공부를 시켰다. 대조영은 그 무렵 논어 · 대학 · 중용 등을 거의 뗄 정도로 총명했다. 하지만 그는 글을 배우면서도 말타기, 활쏘기와 같은 무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조영은 고려성에서 그렇게 2년 동안 평화로운 가운데 성주의 아들로서 문무를 겸비한 미래의 동량으로서 자라났다.

 

14살이 된 대조영은 제법 의젓해졌으며, 성품도 너그럽고 다정했으므로, 따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대조영은 아이들과 함께 산이나 들로 말을 달려 활쏘기며 창검쓰기를 익히기도 하고, 사냥도 했다. 그는 항상 수 십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며 활터에서 활쏘기를 익히는가 하면 고려성 일대를 샅샅이 누비며 재주를 익혔다.

 

어느 날 대중상은 자신의 집무소로 아들을 불렀다. 대중상의 곁에는 50살 쯤 되어 보이는 스님이 한 분 앉아 있었다.

 

“스님께 인사드려라. 해공(海空) 스님이시다.”

 

대조영은 스님에게 넙죽이 절을 올렸다. 인사가 끝나자 아버지는 말씀을 계속했다.

 

“조영아, 너도 이제 14살이 되었다. 사내가 15살이 넘으면 대장부의 길을 가야 한다. 너는 오늘부터 해공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에 진력해서 앞으로 나라의 큰 동량이 되어야 한다. 우선 큰 동량이 되려면 무예도 좋다마는 학문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장수가 병법을 모르면 대군을 거느릴 수 없고, 병법을 알려면 학문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예”

 

그날부터 대조영은 해공 스님에게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해공 스님은 젊은 시절 당나라에 들어가서 수도를 한, 학문은 물론 병법과 무예에도 도통한 분이었다. 해공 스님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조영에게 말했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에는 깊은 지혜와 덕이 담겨져 있었다.

 

해공 스님은 대조영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총명한 대조영은 압지(押紙)처럼 가르침을 빨아들여서 몇 달이 지나자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해서 주위에서 학문과 무예를 따를 자가 없었다. 대조영의 실력이 날로 눈부시게 발전하자 스님은 이렇게 가르쳤다.

 

“조금 힘 있고 재주가 있다 하여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힘이 있을수록 겸손하고 포용력이 있는 태도야말로 주위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조금 안다고, 힘이 있다고 뽐낼 것이 아니라, 더욱 겸손한 마음을 노력해야 큰 도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알겠느냐?”

 

“예.”

 

대조영은 해공스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앞으로 우리 고구려는 당나라와 또 다시 전쟁을 치를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서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해공스님은 당나라의 사정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기에 대조영에게 당나라에 대한 것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당나라는 우리 고구려와 원수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가장 문물이 발달된 강성한 국가이다. 너도 언젠가는 당나라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병법에서 나오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조영은 당나라를 이기기 위해서는 당나라를 알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에 공감했다. 스님은 또 이런 말도 했다.

 

“너는 글을 익혀서 덕이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무예만 뛰어나서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대조영은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공부보다는 무예를 더 좋아하였다. 대조영은 매와 말을 좋아하였고, 사냥을 하면서 무예를 닦았다.

 

대조영은 나이에 비해 무예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한 번은 사냥을 멀리 나갔다가 도적의 무리를 만났다. 그때 대조영은 그를 따르는 고려성 관리들의 자제들과 사냥을 나왔던 것인데 도적들은 그들이 타고 온 말이 탐이 나서 덤벼들었던 것이다. 도적들은 호위 무사 둘을 거꾸러뜨리고 기고만장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어서 말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 순간 대조영이 나서며 말했다.

 

“만약 네가 나와 겨루어서 이긴다면 말을 모두 주겠다. 하지만 네가 진다면 깨끗이 물러가거라.”

 

어린 소년의 너무도 당당한 제의에 도적 두목은 코웃음을 쳤다.

 

“꼬마야, 너는 목숨이 아까운 것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좋다. 근질근질하던 참인데 한 번 겨루어보자.”

 

칼을 높이 치켜든 두목은 빙글빙글 돌면서 대조영을 향해서 다가갔다. 대조영도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었다. 어린 소년이 의외로 공격적인 자세로 나오자 두목은 짐짓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틈이 없어 보였다. 누런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7, 8합을 겨루던 대조영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두목은 칼을 맞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참으로 무서운 녀석이로구나! 그래 내가 졌다. 가거라.”

 

도둑 두목은 팔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패배를 인정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대조영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약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제 대조영은 15살이 되었다. 한층 어른스러워진 대조영은 주위에서 그와 경합할만한 장재가 이미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해공 스님이 조용히 대조영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너는 나와 같이 태봉산(泰封山)으로 올라가서 무공의 진법을 배우도록 하자.”

 

그날부터 스님은 대조영을 데리고 태봉산으로 올라가서 자신만이 터득하고 있는 고수들의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높은 바위에 올라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폭포 속에 들어가서 물을 가르며 칼을 번개처럼 빨리 휘두르기도 하면서 대조영은 무공의 진법을 전수 받았다.

 

“비법을 터득했다고 함부로 남에게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만일 불의한 일에 쓴다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석 달간의 훈련이 끝나가 해공스님이 엄숙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맹세코 잊지 않겠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가자 대중상은 아들이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면 말했다.

 

“조영아, 산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무예의 비법을 배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무예의 비법을 배웠으면 그것을 좋은 곳에 쓸 줄 알아야 한다. 너도 이제 14살의 나이가 되었다. 이번 동맹(東盟)축제에 네 기량을 한 번 뽐내어 보거라. 스님과 함께 견문도 넓힐 겸 평양성을 다녀 오거라.”

 

대조영은 뛸 듯이 기뻤다. 말로만 듣고 꿈에서만 그리던 평양성, 대고구려의 태왕이 살고 있는 도성이 아닌가! 그런 도성 구경을 하고 동맹축제에 참석하게 되다니!

 

그는 산 속에서 배운 무공의 진법을 발휘하고 싶었다. 그 옛날 동명성제처럼 뛰어난 활솜씨를 발휘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사흘 동안 밤잠을 설친 대조영은 드디어 행장을 차려서 해공스님과 길을 떠났다.

 

“왕성에 가는 것이 그렇게 좋으냐?”

 

뛸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는 대조영을 보고 스님이 물었다.

 

“예. 이를 말인가요. 며칠 째 왕성에 가 있는 꿈만 꾸었답니다.”

 

평양성에 도착한 대조영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을 보고 놀랐다. 평양성의 저잣거리는 대조영이 지금까지 보아 온 어떤 장터보다도 화려하고 규모가 몇 배가 컸으며 없는 물건이 없었다.

 

중국의 비단, 죽세공품, 유리, 약제, 향료, 금불상, 쇠붙이 등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물건이 상점마다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놀라웠다.

 

“스님, 당나라의 서울 장안에 가면 여기보다 더 새로운 것이 많은 가요?”

 

“그렇지. 그곳에는 물건도 물건이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러 인종의 사람들을 보는 것도 정말 새롭고 신기하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요?”

 

“서역에서 온 노랑머리 사람부터 아라비아에서 온 검은 사람, 토번에서 온 달마승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장안에 와서 살고 있지. 네가 나중에 장안에 가게 되면 그 이국인들과 친하게 지내서 그들의 문물을 배워두어야 한다.”

 

스님의 설명을 들은 대조영은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서 당나라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마다 10월에 열리게 되는 동맹(東盟) 대축제는 고구려의 지배이념인 천신사상(天神思想)을 백성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제천행사이다. 동맹은 조상신에 대한 제사와 풍성한 가을 추수를 베푼 신들에 대한 감사의 잔치행사이기도 했다. 동맹 때면 고구려에는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하루를 즐겁게 즐긴다.

 

동맹 행사에는 갖가지 무술대회가 있었다. 씨름, 활쏘기, 말달리기, 사냥 대회를 벌여서 젊은이들의 무예를 겨루는 것이었다. 대조영은 활쏘기와 말타기 대회에서 빼어난 기량을 보임으로서 관중들의 주목을 끌었다. 관중들은 뒤에서 대조영의 솜씨를 보고 수군거렸다.

 

“아직 어린 아이 같은데 여간 내기가 아니구먼.”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소년 궁수와 과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표적을 놓고 쏘는 대회에서 대조영은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하고 이어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대회에 참석했다. 그가 들고 나온 활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다. 쇠뿔로 만든 전투용 활이었던 것이다. 그 활은 어린 소년의 힘으로서는 시윗줄을 당기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대조영은 힘차게 시위를 당겨 화살은 과녁 중심을 꿰뚫었다. 그는 세 개의 화살을 연달아 번개처럼 빨리 쏘았고, 그것들은 모두 과녁에 명중되었다.

 

“앗, 신궁이다!”

 

“음. 주몽이신 동명성제를 보는 것 같아.”

 

“연개소문 장군의 뒤를 이을 명장감이 나타났구나!”

 

사람들은 마구 탄성을 질렀다. 대조영은 활쏘기와 말타기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보장태왕은 대조영에게 우승자에게 주는 상을 내렸다. 대조영이 시상식장에 오르자 3만의 군중은 열렬한 환호로 답했다. 대조영은 상을 받으러 보장태왕에게로 가다가 갔다. 주변의 문무 대신들을 지나서 대조영은 태왕이 내리는 용이 새겨진 활을 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손수 술을 따라주었다.

 

“오늘 자네의 솜씨를 보니 내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네. 앞으로 더욱 정진해서 이 나라의 간성이 되어 주시게.”

 

“예.”

 

대조영은 호랑이 같다고 소문난 연개소문이 인자한 할아버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그는 태왕비의 곁에 앉아 있는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이상하게도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그 소녀의 눈은 호수처럼 깊게 느껴졌고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마치 자신에게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에 느껴진 것이었지만 대조영으로서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그는 그것이 수많은 관중의 환호나 태왕로부터 상을 받았다는 것보다 더 뇌리에 남는 것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대조영은 그날 모든 행사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모를 정도로 그 소녀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비단옷으로 몸을 장식한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소녀에게는 그런 아름다움이 아닌 다른 기품과 품위가 느껴졌다.

 

이윽고 궁궐 안에서는 주연이 베풀어졌다. 대조영은 해공스님과 함께 궁궐에서 벌어지는 그 주연에 초대를 받았다.

 

어아, 어아

 

우리 조상님의 크신 은혜와 높은 공덕

 

배달나라 백성들 누구라도 잊지 마세.

 

어아, 어아

 

착한 마음 큰 활이고 나쁜 마음 과녁이라.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니,

 

활줄처럼 하나이며

 

착한 마음 곧은 화살 한맘으로 똑같아라...

 

여인들이 춤추며 '어아가'를 노래하여 우승자를 축하했다. 그런데 잔칫상에 모인 사람 중에 태왕비의 곁에 앉아 있던 소녀가 눈에 띄었다. 대조영은 그녀와 한 번이라도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 소녀의 이름만이라고 알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그날 밤, 대조영은 해공스님과 함께 객관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는데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 소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대조영은 해공스님과 함께 평양성 안에 있는 절로 갔다. 공양을 드리고 처음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 것을 부처님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했다.

 

그런데 절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일주문을 나서며 오솔길로 접어들 때, 대조영은 다시 한 번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전율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양쪽으로 푸른 소나무가 싱그러운 가지를 뻗어 올라 있는 오솔길 사이로 두 여인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뒤에는 시종들이 따르고 있었다. 대조영은 두 여인 중에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어제 본 그 소녀였다.

 

소녀가 옆의 여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 소나무 냄새가 좋지 않으세요?”

 

소녀는 예의 그 별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참 좋구나. 추운 겨울인데도 이런 향을 뿜어내는구나.”

 

그때였다. 대조영이 스쳐지나가려는데 소녀의 눈길이 대조영에게 와서 멎었다.

 

“잠깐만요. 저, 어제 동맹대축제에서 우승한 소년 장수 아닌가요?”

 

소녀는 무척 기쁜 듯이 웃으면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어제 시상식에서 당신을 보았어요. 어머니, 이 사람이 어제 동맹대축제에서 우승한 소년 장수랍니다.”

 

소녀는 대조영과의 만남이 무척 기쁜 듯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기개가 넘치는 무골이구나. 스님, 이 청년을 가르치고 계시오?”

 

소녀의 어머니는 위엄을 차리고 대조영을 지나쳐서 스님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스님, 이 청년의 이름이 무엇이오?”

 

“이 소자(素子)의 이름은 대조영이라 합니다. 고려성 성주님의 자제분이시죠.”

 

“우리 고구려가 차지한 중원의 고려성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어머니의 눈빛 빛났다. 하지만 일순간 냉정을 되찾으며 그녀는 말했다.

 

“고생이 많겠구먼.”

 

그 말을 하고나서 소녀의 어머니 딸에게 발길을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당신의 활솜씨는 너무 멋있었어요. 나는 숙영(淑英)이라고 해요 나중에 더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세요.”

 

소녀는 그 말을 남기고 어머니에게 이끌려서 산사(山寺)로 올라갔다. 소녀가 지나쳐 가면서 남긴 숙영이란 이름이 대조영의 뇌리에 들어와 박혔다.

 

“허, 숙영이란 저 공주는 참 명랑한 성격이구나.”

 

스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 처자가 공주님이신가요?”

 

대조영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네. 태왕 폐하의 조카 따님이시지.”

 

스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대조영에게는 어떤 설레임보다 더 크고 짜릿한 환희가 밀려들었다.

 

‘왕족이라서 저처럼 청조하고 맑은 눈과 얼굴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대조영은 그녀의 모습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신녀(神女)를 본 것만 같았다. 대조영은 그 후로 오랜 세월동안 그녀의 모습을 두고두고 가슴 속에 간직했다.

 

그런데 훗날 대조영은 꿈에도 그리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뿐만 아니라 그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나아가서 하나의 제국을 창업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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