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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의 특별한 자녀교육] 운명을 사랑하신 부모님

목남희 박사 l 기사입력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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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남희 박사    ©브레이크뉴스

미국 오하이오에 살 때 아버지께서 방문하셨다. 이웃은 거의 미국인이었는데 아버지는 그들과도 이야기를 즐기셨다. 6·25 전쟁 때 미군이랑 함께 전투부대로 몇 개월 종군했는데 그때 조금 배운 영어로 신기하게도 소통이 되었다. 잘 안 되는 말은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연습까지 하셨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서도 그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아는 단어가 모자라면 아마 손짓 발짓으로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셨을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옆집 친구들과 노는 것을 보고 때론 끼어들기도 하셨다. 한국 과자를 가지고 가서 아는 영어 단어 한두 마디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나중에는 서로 웃으며 좋아하는 단계까지 간다. 아이들한테 그랜파더(grandfather)가 한국말로 ‘할아버지’라는 것을 가르쳐준 뒤로 옆집 아이들이 아버지를 만나면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고 좋아했다.

 

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스스럼없이 사귀는 걸 즐기셨다. 한번은 여행지에서 지나가는 여군을 보고는 “비우티풀(beautiful)!”이라고 말을 걸자 여군들이 걸음을 멈추고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친해졌다. 아버지는 모든 일을 늘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불평하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집안에서도 평소에 음식 탓을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집안일을 돕는 분들도 좋아했다. 아버지 때문에 우리집에서 나갈 수가 없다며 오래 함께 지냈다.

 

클리블랜드도 한국 못지않게 눈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더니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왔다. 마당에서 차고문 앞까지 눈이 쌓여 남편이 차를 빼지 못해 출근을 못할 지경이었다. 눈이 좀 녹을 때까지 출근을 몇 시간 늦출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말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솔선해서 작업을 하는 바람에 남편이랑 나도 함께 거들었다. 순식간에 차가 미끄러져 나올만큼 길이 열렸다. 남편에게 시동을 걸게 하고, 아버지가 뒤에서 온 힘을 다해 차를 밀어서 마침내 길까지 나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서둘지 않았으면 목 서방 지각할 뻔했다. 사람은 작은 일이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해서 자기 몫을 지켜야 한다. 더구나 회사는 협동해서 일하는 곳인데 한 사람이라도 빠져서는 안 되지.” 아버지의 성실한 인생철학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당시 운수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자동차의 기능도 잘 알고 운전도 수준급 이상이었다. 1985년 아버지가 환갑을 맞은 해였다. 그해 아버지는 처음으로 미국 켄터키 집으로 어머니랑 여행을 오셨다. 미국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여 켄터키로 오는 국내 비행기로 갈아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우리 가족은 마중을 가기로 했다. 아침 6시 출발하여 12시간 이상을 운전해서 맨해튼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뵌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한두 시간을 더 기다린 후 우리는 부모님을 만나 부둥켜안고 반가워했다. 두 분을 모시고 다시 켄터키 주에 있는 렉싱턴 집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한국에서 출발 후 거의 14시간 비행을 하셨고, 우리도 집을 떠난 지 18시간 이상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주고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하는 남편 옆자리에 앉아 직장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시고, 나와 어머니는 뒷좌석에서 그동안에 밀렸던 집안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두 아들은 자동차 뒤 공간에서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렉싱턴(Lexington)은 켄터키 주에서 제일 큰 도시로 경마가 유명하다. 특히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 매년 5월에 켄터키 주 루이빌의 처칠다운 경마장에서 우승을 겨루는 미국의 경마 레이스)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참석하는 특별한 행사 중 하나다. 켄터키 더비는 티켓을 구하기 힘들어 우리는 매달 행해지는 정규 경마 시합 날 들어가서 아버지와 함께 소액 베팅도 하면서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부모님은 며칠 계시면서 노독을 푸신 후 동부 구경에 나섰다. 플로리다, 디즈니랜드,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링컨 센터,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캐나다 국경의 나이가라폭포 등 우리가 다닌 거리는 2주일 동안 약 2,600마일(4,200km)이나 되었다. 3대에 걸친 우리 대가족은 초여름 미국 동부의 아름다운 자연과 관광명소를 맘껏 즐겼다.

호텔에 들면 아버지는 우리가 돈 내는 것이 맘에 걸려 당신이 계산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식사를 마친 후 웨이터가 팁을 붙인 계산서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잘 몰라 지불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야. 내가 꼭 돈을 내고 말거야.”라고 하시며 미리 준비한 현금과 카드를 들고 계산서를 잽싸게 가로채 카운터로 달려가셨다. 자식에게도 대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고 하셨는데, 언어 장벽 때문에 지불에 또 실패하자, “난생 처음 자식 덕에 호강한다.”고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나를 혼자 보내놓고 걱정만 하다가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직접 본 후로는 안심했다고 하셨다. 가정을 잘 꾸려가는 남편을 장하게 여기고 칭찬도 해주셨다.

 

몇 년 후에 뉴욕에 있는 여동생의 해산을 도와주기 위해 부모님이 같이 오셨다. 그때 우리가 살고 있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들르셨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 하버드대학 졸업식 때도 오고, 샌디에이고에도 오셔서 함께 다녔지만, 아버지는 두 번 밖에 더 오시지 못했다.

 

 부모님이 오실 때마다 가슴 뭉클한 적이 많았다. 핏줄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든 천륜을 끊지 못한다는 선현들의 말을 다시 새겼다. 같이 생활한 것도 아닌데 조손간에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국말이 서툰 우리 아이들이 영어와 사투리로 잘 소통하는 것이 신기했다. 더구나 외손주 친구까지 함께 어울려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있으면 영어 사용에 쑥스러워 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실 때는 편하게 연습하셨던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하시는 열정에 늘 감동받는다. 공부하라고 말만 앞세웠다면 우리 7남매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으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따르게 된 것이다.

 

*필자/목남희

 

필자 목남희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 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미국 켄터키주립대학에서 회계과정을 이수한 후 클리블랜드주립대학에서 회계정보시스템 석사, 단국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British Petroleum America(영국 석유회사 미국 본사)에서 일반 회계를 담당했다. ScheringPlough Korea(제약회사) 대표이사로 근무한 후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10년간 재직했다. 미국 공인회계사(OHIO), 미국공인중개사(KY. IL) 자격증이 있으며, 국제로터리 3650지구 옥수로타리클럽 회장과 고려대학교 AMP 여성교우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초포럼 여성회장, 도산아카데미 재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경영학원론(Management)》(11판, by Stephen P. Robbins and Mary Coutler)을 공동 번역했다. 논문으로 《국제회계정보연구》, 《국제경상교육연구》 외 다수가 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Education for special children in ordinary families] Parents who love fate

Amor Fati

-Dr. Namhee Mok

 

When she lived in Ohio, USA, her father visited. Her neighbors were almost American, and her father enjoyed talking with them too. During the Korean War, I joined the US soldiers for several months as a combat unit, and at that time, I learned a little bit of English and communicated strangely. He even practiced by asking our children what they didn't do well. Even when he traveled to another country, he tried to communicate with the people of that country. If you don't have enough words you know, you've probably talked with each other laughing with hand gestures.

 

When I saw our children in kindergarten playing with their friends next door, they sometimes interrupted. Take Korean sweets and start talking with a word or two of English you know, and later laugh at each other.

 

Oh, it goes to the stage. After the grandfather taught the children that he was “grandfather” in Korean, when the children next door meet their father, they say, “Grandfather, grandfather!” And liked it.

 

Wherever he went, no matter who he met, he enjoyed dating without hesitation. At one point, when I saw a woman passing by on a trip, she said "beautiful!", and the women stopped walking and took pictures together, making friends like people I had known for a long time. I hardly remember hearing him complaining because my father always sees everything positively. He doesn't usually blame food in the house, so he also liked those who help with the housework. He said he couldn't leave my house because of his father, and he stayed with him for a long time.

 

Cleveland was a place with as much snow as Korea. Once in the morning, when I woke up, opened the door, and went out, it snowed so much that my ankles fell completely. Snow piled up from the yard to the garage door, and his husband couldn't get out of the car, so he couldn't go to work. I had to delay my work a few hours until the snow melted. The father left Marley behind his husband and began to clear his eyes. His father took the initiative to work, so his husband and I helped together. In an instant, the road was open enough for the car to slide out. He got his husband to start, and his father pushed the car with all his might from behind so he could finally get on the road.

 

My father never gave up on even the smallest things like this. “If I had not been in a hurry, I would have been late. People should never give up even small things. Do your best to do your part It should be turned on. Moreover, the company is a place where we work in collaboration, and even one person should not be left out.” It was a scene that showed his father's sincere philosophy of life.

 

At that time, my father was in the transportation business at that time, so his love for cars was unique. He was well aware of the functions of the car and was above the level of driving. 1985 was the year his father celebrated his 60th birthday. That year, my father traveled with his mother to his Kentucky home for the first time. Arriving at Kennedy Airport in New York, USA, it would be difficult to transfer to a domestic flight to Kentucky, so my family decided to pick you up. It was about evening when I left at 6 in the morning and drove more than 12 hours to Manhattan. Thinking that I had seen my parents after a long time, I already felt excited. After waiting another hour or two, we met our parents, hugged and glad to see them. With them, I started running back to Lexington's home in Kentucky. My parents also flew almost 14 hours after leaving Korea, and more than 18 hours have passed since we also left home. However, we didn't even know we were tired, and we were busy sharing stories that had been pushed back. My father sits next to my driving husband and talks mainly about the job, and my mother and I didn't know that time was going to bloom in the backseat of the family story that had been pushed back. The two sons fell completely asleep in the space behind the car.

 

Lexington is Kentucky's largest city and is famous for horse racing. In particular, the Kentucky Derby (an American horse race race that competes for the championship at the Churchilldown Racecourse in Louisville, Kentucky every May) is one of the special events that Queen Elizabeth of England also attends. The Kentucky Derby had a hard time getting tickets, so we went in on the regular monthly race day and had a fun day playing small bets with my dad.

 

My parents stayed for a few days and went out to the eastern part after releasing their nodok. Florida, Disneyland, Washington, DC, the Capitol, Lincoln Center, the Statue of Liberty in New York, and Nigara Falls on the Canadian border, we traveled about 2,600 miles (4,200 km) in two weeks. Our large family of three generations fully enjoyed the beautiful nature and tourist attractions of the eastern United States in early summer.

 

When I entered the hotel, my dad liked what we were paying and set out for you to pay. However, after the meal, the waiter did not know that he had to bring the tipped bill, so the payment was unsuccessful. “It's my turn this time. I will definitely pay the money.” He grabbed the cash and card he had prepared in advance and quickly intercepted the bill and ran to the counter. He said that he was uncomfortable because he was not used to being treated by his children, but when he failed to pay again because of the language barrier, he smiled, saying, “I am strong because of my first child.” He left me alone and worried, but he said he was relieved after seeing us live in person. He regarded her husband as the eldest, and praised him.

 

A few years later, her parents came with her to help her sister in New York dismiss. Then he stopped by Cleveland, Ohio, where we live. The mother came to her second son at Harvard University graduation ceremony, and also came to San Diego to attend, but her father only came twice more.

 

Every time my parents came, I felt heartbroken. Re-engraved the words of the Sunhyuns that the veins can't break the heavens no matter where and how they are. It wasn't even living together, but it was nice to see how my grandchildren understood each other and had fun. It was amazing that my grandmother and grandfather who speaks dialect and our children who cannot speak Korean communicate well in English and dialect. Moreover, even my grandchildren friends were happy to hang out together. My father was embarrassed to use English when we were there, but he seems to have practiced comfortably when hanging out with children. Whenever I think I need it anytime, anywhere, I am always impressed by the passion to actively learn. If we had only been told to study, our 7 siblings would not have studied so hard. Since you set an example for yourself, we naturally followed.

 

*Writer/Namhee Mok

 

The author Mok Nam-hee was born in Hadong, Gyeongnam. She graduated from Ewha Womans University, where she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nd Diplomacy, and after she completed her accounting course at Kentucky State University in the U.S., she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accounting information systems from Cleveland State University and a doctorate in business administration from Dankook University. She was responsible for general accounting at British Petroleum America (US headquarters for British oil companies). She served as the CEO of ScheringPlough Korea (pharmaceutical company), and then served as a professor at the Faculty of Business Administration at Dankook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Commerce for 10 years. She is certified as an American Chartered Accountant (OHIO) and an American Chartered Broker (KY. IL). She has served as president of the Rotary Club of Oksu, International Rotary District 3650 and President of Korea University's AMP Women's Alumni Association. She is currently the female president of the Seocho Forum and is a member of the Dosan Academy Finance Committee. She co-translated the book Management Principles (11th edition, by Stephen P. Robbins and Mary Coutler). Her thesis includes 《International Accounting Information Research》, 《International Business Education Research》 and many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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