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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스승이다

수필가 권오인 l 기사입력 20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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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인 수필가.    ©브레이크뉴스

조용한 병실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먼저 큰소리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출입문을 보니 휄체어를 탄 여성 환자 뒤로 세 명이 따라 들어왔다. 환자는 붕대에 감긴 다리를 조심스럽게 부축을 받아 겨우 침대에 올라앉았다. 그 환자를 향해 한 남자가 격앙된 경상도 어투로 책망을 한다.

 

“이게 뭔 일이고? 응, 한두 번도 아이고”

 

환자도 톤이 높아지며 맞받아친다.

 

“내가 잘못이가? 고만 하라카이.”

 

좁다란 2인실 방안의 공기는 불안하고 무거웠다. 동행한 여성 한 분이 옆에 다른 환자가 있다며 눈짓하자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입을 닫으니 표면상으로는 평온한 듯 잠잠해 졌으나 얼굴은 화난 붉은색이 가라앉기 전이다.

 

 

 

아내가 몇 일전 다리 관절경 수술하고 이 방을 혼자 사용했다. 다행히 다른 환자가 없어 간호를 하는 나는 이틀 밤을 그 빈 침대에서 편하게 잤다.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간이 의자에서 쪽잠을 청할 판이었다. 2인실 병실을 단독으로 쓰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TV도 시청하고 화장실도 사용하면서 불행 중 큰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이렇게 퇴원할 때까지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으나 간절한 바람은 이날까지였다.

 

얼마 전부터 다리가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받아 왔으나 날이 갈수록 심해져 수술을 권했으나 무섭다며 주춤거리는 바람에 병은 깊어갔다. 결국 수술을 결정하고 기다리는 순간의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컸기에 수술 후 안정 가료(加療)가 절대적인 시간이었다. 그 소박한 평화가 가득했던 방안의 공기는 그 찰나에 조각이 났다.

 

상황이 진정되자 그들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는 부유한 사모의 교양미와 지성이 묻어났다. 그리고 남편으로 보이는 경상도 사나이의 인상은 큰 키에 카리스마가 압도하는 중후한 신사였다. 잠시 머물다가 남편과 함께 온 일행은 다시 오겠다며 나갔다. 그들이 떠나고 자연스럽게 동병상린의 마음에서 그 환자는 아내와 서로 입원하게 된 이유와 위로로 이야기가 길어졌다. 아내는 내성적이라서 비교적 낯가림하는 성격인데도 짧은 시간에 친숙하게 대화와 웃음으로 이어졌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날 환자분은 자전거 동호인들과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질주했단다.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는 내리막길에서 페달의 오작동으로 발등이 부러지는 사고가 난 것이다. 그것도 두 번째 사고란다. 그래서 남편이 그렇게 화를 낸 것이라 자초지정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숙부님 댁으로 갔다. 당시 숙부께서는 돌팔이 의사였다. 군 의무병으로 전역을 하고 무의촌인 고향에서 연로하신 의사를 공의로 모셔다 의료행위를 했다. 때로는 의사를 모시지 못하는 경우에는 숙부께서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진찰을 하고 엉덩이에 주사바늘을 찔렀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였지만 그 시절은 오히려 주민들이 고마워했다. 가난하고 이동수단이 없는 오지에서 위급한 환자나 장기치료를 받는 분을 도시에 있는 병원에 모실 수 없는 형편인지라 가까이에서 치료를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겠는가. 그래서 왕진을 다니느라 자전거를 담 밑에 늘 세워 놓았었다. 신장이 컸기에 자전거 바퀴도 내 키보다 높았다. 내 힘으로 그 주체할 수 없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의욕으로 몰래 마당으로 끌고 나와서 안장에 앉지도 못하고 한쪽 페달에 오른 발만 올려놓고 왼발로 땅을 밟으며 밀면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한 바퀴도 구르지 못하고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일어나서 또 타려다 넘어졌다. 수도 없이 넘어지는 바람에 자전거는 어느 날은 타이어 빵구도 나고 때로는 따르릉 소리 나는 벨도 찌그러지고 부서졌다. 나는 매일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손등과 무릎은 피투성이로 성할 날이 없었다. 하루는 왕진 가려는데 자전거가 빵구가 나서 늦었다고 혼도 났다. 그렇게 다리가 짧아 안 된다던 불가능에 도전하여 기여코 안장 위에서 페달을 딸깍거리며 마당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내 기분은 하늘에 있었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안했다면 자전거는 영영 못 탔을 것이다.

 

이후 직장에서 그때 배웠던 실력으로 자전거를 타고 현지 출장을 나갔다. 시골의 유일한 이동 수단은 자전거였다. 산을 넘고 논두렁을 지나 간 그곳에서 이미 공직에서 퇴직하여 감농(監農)하시는 이완순 전 면장님을 뵙게 되었다. 집안으로 안내되어 높다란 마루에 올라 차상을 마주 놓고 앉았다. 그 자리에서 내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며 훌륭한 말씀을 주셨다. 면장님께서는 약 15리 길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꾸밈없이 술회하면서 교훈도 곁들였다.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너무 좋아서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산길을 오를 때는 페달이 고장날까 싶어 끌고 올라가 내리막길에서는 신나게 속도를 내어 내려갈 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행복 시간이었다. 하지만 짜릿한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비례하여 사고의 건수도 늘어났다. 종종 고갯마루에서 과속으로 내려가는 자전거와 함께 구르거나 나무에 처박히는 일이 잦아졌다. 운전 부주의나 브레이크 고장으로 난 사고로 인하여 골절이 되고 피부에 난 상처로 너무 고통이 컸고 자전거도 손상되어 수리비용이 늘어났다. 그래서 타는 방법을 속도보다 안전을 택했다. 산길을 올라갈 때는 양전 줄이 끊어져라 페달을 밟아 오르고 정상에서 내려가는 내리막길에는 정작 끌고 내려갔다. 보통은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치로 인생을 살면서 젊은 시절에는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하여 성공을 거두고 인생 후반기에는 평정심으로 안락하게 살도록 준비해야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날 귀청할 때 귀한 말씀을 실천하려 내리막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는 내 모습을 보며 모자란 사람 같았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분명 그도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가 났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될 것만 같았다. 그날 들려주신 말씀의 숨은 뜻은 편한 길을 갈 때나 잘나갈 때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겸손한 인격을 갖추라는 의미로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때 자전거를 타던 내 청춘은 어느덧 그때의 이 면장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뜻밖에 횡재를 했다. 우연히 이벤트에 응모한 것이 당첨되어 자전거를 상품으로 받았다. 벌써 40여년이 지난 추억까지 포장하여 택배로 보내왔다. 새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자랑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시골길에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던 자전거는 이젠 체력 단련을 위한 운동기구가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자전거는 스승 같은 깨우침을 주었다. 내 자전거의 두 바퀴는 인간의 밴런스 감각을 높이고 독립적이며 평화를 주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진다는 보편성에서 인생도 꿈을 향해 쉼 없이 도전하고 나아가야 생존한다는 진리도 얻었다.

 

오늘도 길이 있어 자전거는 달린다. 바람을 헤치고 새로운 풍경 속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Bicycle is a teacher

-Essayist Kwon Oh-in

 

The door of the quiet hospital room suddenly opened and a loud voice came first. When I looked at the door in amazement, three people followed behind a female patient in a fanchair. The patient barely sat on the bed with the bandaged leg being carefully supported. A man rebukes the patient in an angry Gyeongsang-do language.

 

“What is this? Yes, no one or two times.”

 

The patient also has a higher tone and hits him.

 

“Am I wrong? Goman Harakai.”

 

The air in the narrow double room was uneasy and heavy. When one of her companions glanced at her saying that there was another patient beside her, she turned around and said she was sorry. Closing her mouth calmed her seemingly calm on the surface, but before her angry red color subsided.

 

Her wife had arthroscopy of her legs a few days ago and used this room alone. Luckily, I had no other patients, so I slept comfortably in the empty bed for two nights. Otherwise, it would have been a board to go to sleep in a simple chair. While using a double room alone, watching TV relatively freely and using the bathroom, he was enjoying a great deal of unhappiness. I prayed for staying until I was discharged, but my earnest desire was until this day.

 

I had been receiving physical therapy for a long time because I had a pain in my leg, but it got worse as the days went by, so I recommended surgery. In the end, the moment I decided and waited for the surgery, I had a great feeling of fear or anxiety, so it was the absolute time to take a rest after surgery. The air in the room, filled with that simple peace, shattered at that moment.

 

When the situation calmed down, they caught my eye. The patient was buried with the culture and intelligence of a wealthy wife. And the impression of a man in Gyeongsang Province as her husband was a profound gentleman who was overwhelmed with charisma and tall stature. After staying for a while, the party who came with his husband went out saying they would come again. After they left, naturally in Dong-byeong Sang-rin's heart, the patient was hospitalized with his wife. Her wife is relatively unfamiliar because of her introspection, but in a short time, it led to familiar conversation and laughter.

 

Hearing the story, the patient on that day drove down the road on a bicycle with bicycle enthusiasts. An accident occurred in which the foot was broken due to a malfunction of the pedal on the downhill running through the wind. That is also the second accident. So, he confessed that he was so angry with his husband.

 

Then I remembered the first time I learned to bike. When he was in the fourth grade of elementary school, he wanted to learn to bike, so he went to his uncle's house after school. At the time, my uncle was a quack. He was discharged as a military medic and practiced medical care while honoring an elderly doctor in his hometown, a village of Muui. Sometimes, in the absence of a doctor, my uncle put a stethoscope on the patient's chest, examined him, and stabbed a needle in his ass. It was a tremendous problem that you can't even imagine when you think about it now, but the residents were thankful for those days. It was a poverty and lack of means of transportation, so we couldn't take emergency patients or long-term medical treatments to a hospital in the city. So he always had his bicycle parked under the wall while he was visiting. Because I was tall, my bicycle wheels were taller than mine. With the desire to ride that uncontrollable bicycle with my own strength, I secretly dragged it out to the yard, couldn't sit on the saddle, put my right foot on one pedal, stepped on the ground with my left foot and pushed forward. However, I couldn't roll a single wheel and fell with my bicycle, got up and fell while trying to ride again. In the wake of countless falls, the bicycle one day broke the tires and sometimes the bell that made a whirring sound was crushed and broken. Every day, my clothes were covered with dirt and my hands and knees were covered with blood. One day, I was going to go to a visit, but I was confused that it was late because my bicycle ran out. When I challenged the impossibility of being so short that I couldn't, I felt in the sky when I clicked the pedals on the saddle and turned around the yard. If I didn't get up from the fall, I wouldn't have been able to ride the bike forever.

 

Afterwards, I went on a business trip on a bicycle using the skills I learned at work. The only mode of transportation in the countryside was a bicycle. After crossing the mountain and passing through the rice paddies, I met former head Lee Wan-soon, who has already retired from public office and is a farmer. He was guided into the house, climbed the tall floor, and sat face to face. On the spot, he showed interest in my bike and gave me a wonderful word. Myeon-nim talked about the anecdote he had experienced while commuting by bicycle on the 15-ri road, with lessons as well.

 

I walked to commute every day, and the first time I felt like riding a bicycle was so good that I waited for the morning to come. When I climbed a mountain path, I wanted to see the pedals fail, and when I pulled up and speeded up on the downhill, it was the best time of happiness that couldn't be changed. However, as the number of thrills increased, the number of accidents increased in proportion. Frequent rolling and getting hit by trees, often with bicycles going down the ridge at speed. A fracture was caused by an accident caused by negligence of driving or a breakdown of the brake, and the pain was too great due to the wound on the skin, and the repair cost increased as the bicycle was damaged. So I chose safety rather than speed for the ride. When I went up a mountain path, the two lines were cut, so I stepped on the pedals and dragged down on the downhill road going down from the top. They usually take the easy and comfortable path, but they had to pay the price.

 

He said that while living with the same reason, when you were young, your body was broken. You should work hard to achieve success, and in the second half of your life, you should prepare to live comfortably with a sense of composure.' When I was listening to hearing that day, I felt like a person who was not good enough to see myself dragging a bicycle downhill sweating downhill to practice the precious words. If anyone was watching this, it seemed that he would be treated as a person with a flat tire or a mental problem. The hidden meaning of the words spoken on that day means that when going on a comfortable road or when going well, he lived with his heart in the sense of keeping his fountain and having a humble personality.

 

My youth, who was riding a bicycle at that time, became the age of the chief of staff at that time. But these days, unexpectedly, there was a windfall. I accidentally applied for the event to win and received a bicycle as a prize. Even memories that have already passed 40 years have been packaged and sent by courier. He climbed onto the saddle of his new bicycle, stepped on the pedals slowly, and boasted around the town. The bicycle, which used to be a convenient means of transportation on rural roads, has now become an exercise device for physical fitness. In addition to this, the bicycle gave a teacher-like enlightenment. The two wheels of my bike increased the human sense of banning and gave me independence and peace. From the universality that if you don't step on the pedal, you will fall, and you learned the truth that you have to constantly challenge yourself toward your dreams and survive.

 

There is a road today, too, and the bike runs. Pedal vigorously through the wind and into a new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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