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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 “백기완 선생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 현대사”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l 기사입력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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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5일 고 백기완 선생의 별세와 관련하여 페이스북을 통해 “선생께서 평생 맞섰던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마주하겠다. 고문으로 앙상해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쩌렁쩌렁한 기백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래서 늘 정정하게 곁에 계실 것만 같았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재명 지사는  “선생께서 작사하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삿말처럼 그리고 전 생애로 실천하셨던 것처럼 앞서 나가시는 님을 산자로서 충실히 따르겠다.”며, “선생께서 평생 맞섰던 철옹성 같은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마주하겠다.”며 굳은 결기를 보여줬다.   (사진, 페이스북에서 캡춰)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이 지사는 “(백기완 선생의)삶 자체가 대한민국 현대사이셨던 분!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의 선두에서 온갖 모진 고난을 감내하셨던 분이다”며, “그러면서도 늘 우리 사회 보통사람들 낮은 자들의 유쾌한 연대를 꿈꾸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선생께서 작사하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삿말처럼 그리고 전 생애로 실천하셨던 것처럼 앞서 나가시는 님을 산자로서 충실히 따르겠다.”며, “선생께서 평생 맞섰던 철옹성 같은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마주하겠다.”며 굳은 결기를 보여줬다. 

 

끝으로 이재명 지사는 “영원한 스승 백기완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로 백기완 선생을 추모했다. 

 

한편,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89세의 일기를 끝으로 영면했다. 백기완 선생은 1932년 황해도 은률군 태생으로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해왔다. 특히 독립운동가이자 재야 정치인인 고(故) 장준하 선생(1915~1975)과는 백범사상연구소 설립과 민족학교 운동도 함께 전개했다.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되고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사회장으로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hpf21@naver.com

 

* 아래는 위의 글을 구글번역이 번역한 영문의 <전문>이다. [Below is an English <Full text>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vernor Lee Jae-myeong, “Senior Ki-wan Baek’s life itself was in the modern era of Korea”

As a living child, I will faithfully follow you as a living person, like the lyrics of'March for Impression'.

 

On the 15th, Gyeonggi Governor Lee Jae-myung said, “I will face the wall of vested interests that the teacher has faced his entire life without fear. He expressed his regret, saying, “So it seemed that he would always be right by his side.”

 

Governor Lee said, “(Senior Ki-wan Baek's) life itself was a modern Korean life! He is the one who endured all kinds of hardships at the forefront of the democratization and peaceful reunification movement,” he said.

 

“As a living child, I will faithfully follow you as a living person, like the lyrics of the'March for Being' lyrics written by the teacher, and as you practiced it throughout your entire life." .” and showed a firm texture.

 

Finally, Governor Lee Jae-myeong said, “Please take a rest, Eternal Teacher, Paik Ki-wan. I wish the deceased a good luck.”

 

Meanwhile, the late director of the Institute for Unification Studies, Paik Ki-wan, die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after his 89-year-old diary.

 

Baek Ki-wan was born in Eunryul-gun, Hwanghae-do in 1932, and has been devoted to the peasant, poor, unification and democratization movements since the 1950s. In particular, the late Baekbeom Thought Research Institute (1915-1975) was established and the Korean National School Movement was launched with the late Independence activist and politician Jang Jun-ha (1915-1975).

 

In 1974, he was imprisoned for violating emergency measures while leading a 1 million signature campaign against the Restoration. .

 

His vacancy was set up in Room 1 of the funeral hall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His origin is the chairman of the society at 7am on the 19th, and Jangji is Moran Park. hpf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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