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우리는 하룻밤 스쳐간 바람과 구름입니다. 잘 가세요. 사랑합니다.”

오태규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2-19

본문듣기

가 -가 +

▲ 오태규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백기완 선생 빈소를 찾아 절 올리는 문 대통령을 보고 백기완 장준하 선생 등이 개헌청원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이던 그때 그 시절(1973. 12. 24.)이 생각났다. 이 글을 올린 이유다.--

 

사업에 실패하고 백방으로 고향을 탈출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선배인 여(呂) 선생이 나에게 전보를 쳤다. “급구 학원 강사. 급히 상경 요망.” 나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다.

 

학원을 보고 나서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룹지도를 하는 야간학원이었다. 나의 심사를 눈치 챈 여 선생이 초저녁부터 나를 동대문 근처 단골술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내내 나를 위로했다.

 

“당분간 거기서 강의하면서 함께 풀어가자고. 앞으로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야.”(주연무가 운영하는 이 학원이 나중에 한국에서 가장 큰 ‘정진학원’이 되었다)

 

나는 계속 코가 대자나 빠져 있었다. 낮에 아내와 통화한 게 더욱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내일 당장 내려오세요. 당신이 직접 와서 가게를 처리하세요. 아버님이 ‘모개흥정’으로 너무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고 있어요. 당신이 김 교수에게 보증 서 준 巨額은 꼭 당신이 내려와서 해결해야 해요. 독촉장이 날아왔어요.”

 

헤어질 때 여 선생이 갈현동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사양했다. 나는 혼자서 어디 가서 조용히 생각하면서 쉬고 싶었다. 여 선생을 태운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나는 이 낯선 서울에 내가 홀로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띄는 대로 가까운 여관으로 찾아 들어갔다. 여관방에 누워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쨌든 그룹지도는 안 된다. 정식 학원으로 옮아가야 한다.” 집으로 내려와서 파산(破産)을 확인하고 청산절차를 밟으라는 아내의 말도 생각났다.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후닥닥 일어나서 여관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덮어놓고 동대문에서 청계천 7, 8가 쪽으로 걸어갔다. 불빛이 유난히 밝고 밤늦게까지 흥청이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아직도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끌벅적했다. 얼핏 보니 ‘노벨극장’이란 간판의 불빛이 보이고 골목 안에 즐비한 술집들이 보였다. 나는 근처에서 음악소리가 쿵쾅거리며 들려오는 곳으로 찾아갔다. 카바레였다. 들어가서 한참동안 술만 마시고 있는데 나처럼 테이블에 앉아서 술만 마시고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다가가서 “섈 위 댄스”했더니 눈을 내리 뜨며 손을 내밀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1.02.17.     ©뉴시스

 

▲ 고 백기완 선생 장례식장.     ©브레이크뉴스

 

우리는 블루스나 트롯을 지르박으로 쳤다. 몸을 꼭 부둥켜안고 추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설멍한 다리에 가량가량한 허리에 갸름한 얼굴, 다소 지적인 여자의 모습이 점점 허물어졌다. 이윽고 여자가 가만히 속삭였다.

 

“전 이렇다 치더라도 댁은 웬일예요?”

 

나는 여자의 물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런 델 홀로 나왔느냔 말예요? 오늘 첨이죠?”

 

나는 얼결에 “예”하고 나서 그만 푸념이라도 하듯이 오늘밤에 아내와 통화한 내용까지 이야기해 버렸다. 여자가 자못 걱정스럽다는 듯이

 

“아내를 그렇게 홀로 놔둬서는 안돼요. 선생님 당장 내일 내려가세요.”

 

아내와 똑 같은 소리를 했다.

 

여자가 손목시계를 슬쩍 보고나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통금시간 다 됐군요. 이제 돌아가야 해요.”

 

카바레를 나오자 여자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 집은 안암아파트예요. 여기서 10분만 걸어가면 금방 나와요.”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시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이런 말을 기다렸는데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신설동사거리를 지나고 대광고등학교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나는 여자 뒤를 쫄쫄 따라갔다.

 

암암교를 지나서야 여자가 나를 뒤돌아보더니 잠자코 내 손을 붙잡고 그녀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그 짧은 5분 동안에 여자는 뜻밖에도 ‘끔찍한 화재사고’ 이야기를 봇물처럼 쏟아놓았다. 안암교를 지날 때

 

“나는 이렇다 치더라도 댁은 웬일예요?”

 

하고 아까 여자가 내게 한 물음을 되풀이했다.

 

“너무너무 그리워서요.”

 

이쯤 되면 ‘삼류신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의 다음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나는 불 속에서 뛰어나왔지만 남편은 내가 보는 앞에서 불길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어요.”

 

여자는 울먹이며 화재참사에서 남편을 잃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1972년 12월 2일 서울시민회관에서 문화방송 창립 11주년 기념공연으로 남진과 나훈아가 뜨거운 경합을 벌이던 10대가수청백전이 끝날 무렵이었다. 무대 위쪽 전기장식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었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놀인 줄 알고 남편은 마구 무대 쪽으로 뛰어갔어요. 삽시간에 불길이 번져 무대는 화염에 휩싸이고 울음바다가 되었죠. 불붙은 머리를 막 흔들고 있는 남편을 보았어요. 이내 불길 속으로 사라져버렸죠. 남진을 무척 좋아했던 남편은 대학에 전강이 된 데다가 학교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장만한 기념으로 그날 밤 나를 데리고 연말공연에 갔죠. 그게 마지막 외출이 될 줄을 누가 알았어요.”

 

여자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자기 홀로 살고 있는 집으로 나를 데려온 이 묘령의 여인을 자, 오늘밤 어찌 할 것인가.” 그때 불길 속에서 마구 얼굴을 흔들고 있는 남자를 환상으로 보았다. 전화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들었다. 금세 내 몸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육신의 황홀한 꿈이 사그라졌다. 거의 동시에

 

“이 방에서 주무세요.”

 

하고 여자가 이부자리가 깔려 있는 건넛방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네 활개를 펴고 벌렁 누워버렸다. 거짓말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전후불각 그렇게 잠에 녹아떨어졌으면 오죽 좋았으랴.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문에 노크소리가 나고 문이 벌컥 열렸다. 한 청년이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청년은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로 말을 걸었다.

 

“이게 누구야. 오늘밤 우리 민 여사 손님이오? 영락없이 길 잃은 천살세그려. 하룻밤 풋사랑이 이놈 때문에 깨졌구려, 미안, 미안. 누나야 참으로 미안하다. 그리고 당신, 제발 앞으로 카바레는 가지 마오. 이 얼빠진 양반아. 원래 내 방이니 들어가도 되겠소?”

 

‘민 여사’는 그 여자를 가리키고 ‘길 잃은 천사’는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청년은 거침없이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부자리 위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슴팍에 안고 왔던 소주병들을 방바닥 위에 쏟아놓았다. 놀랍게도 민 여사는

 

“민가야, 너 취한 것 같으니 그만 마시고 일찍 자거라. 그 손님도 오늘밤 몹시 피곤하실 거다.”

 

하고는 안방으로 휑 가버렸다.

 

그 청년은 한마디로 ‘원한과 분노의 화신이었다. 나는 밤새 그의 ‘비분강개’를 들으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기가 먼저 한 잔을 쭉 마시고 나서 잔을 권하면서 한손으로 전깃불에 유난히 번들거리는 그의 대머리를 가리켰다.

 

“오늘 명동에서 세 번째로 장발단속에 걸렸죠. 어찌된 셈인지 두 번째까지 머리칼만 한 뭉텅이 잘라내고 보내더군요. 그 흉한 머리를 깎지 않고 그대로 지내다가 오늘 세 번째로 걸렸어요. ‘뭐야, 그깟 장발로 반항하는 거야.”하고는 머리를 깎아버리더군요. 그길로 이발소에 가서 면도로 밀어버렸죠. 하하하.”

 

청년이 일방적으로 지껄였다.

 

“그 경찰 양반이 내가 반항하기를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작년 10월 2일에 우리 서울문리대에서 처음으로 유신반대 데모를 했을 때 나는 죽기 살기로 저항했죠. 임기 5년, 중임제한 철폐, 그런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체육관에서 뽑았는데도 국민은 근 일 년 동안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어요. 그것 알아요. 박정희보다 국민이 더 미울 때가 많아요. 91,5% 찬성으로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국민예요. 김대중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나대다가 잡혀왔고 기껏 작년 12월에 김수환 추기경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는데. 그 양반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답답하기만 해요. 그래도 기골 있는 장준하와 백기완 등이 작년 연말에 개헌청원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이자 박정희가 간담이 서늘했던 모양예요. 금년 들어 문인 61명이 개헌서명 지지선언을 하자 1월 8일부터 4월 3일까지 잇달아 대통령긴급조치 1~4까지 선포해서 ‘헌법 논의와 민청학련 활동’을 금지했잖아요. 급기야는 7월에 김지하 시인에게 사형까지 선고하게 되었죠. 이게 국민저항의 전부예요. 한심스러워요. 가만히 보면 현 시국은 김지하와 박정희의 싸움인 것 같아요. 지켜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기 짝이 없어요.”

 

청년이 소주 한 병을 비울 때까지 나는 그의 말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고향 탈출도 시국과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유신이란 격랑(激浪)이 얼마나 나를 강타했던가. 가까이 지내던 고향친구 김영민(가명)이 정월에 ‘문인시국선언’에 끼어들더니 ‘문인간첩단사건’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후로 우리 집을 비롯해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아,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의 슬픔과 아픔을 아는가. 나는 더 이상 고향에서 엎드려 지낼 수는 없었다.

 

“국민의 저항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날 겁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짖었다. 사실 그로부터 두서너 달 뒤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구성되었고, 고대 건대 부산대 충남대 전남대 등에서 대모가 일어났고,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고 ‘민주회복국민회의’가 발족되었다. 내 말이 어느 정도 적중한 셈이다. 청년은 지칠 줄을 몰랐다.

 

“마땅히 분노의 불길이 들불처럼 활활 타올라야죠. 나 같은 사람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합니다. 빛나는 청춘의 하루하루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게 뭡니까. 작년에 대모를 한 후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죠. 엊그제야 비로소 쫓기는 몸에서 풀려났어요. 이제야 사직동 부모 집과 여기 누나 집을 오가면서 맘 편히 살게 되었어요. 여기서 본격적으로 사시공부라도 해볼까 했는데 그것도 틀린 것 같아요. 부모가 누나에게 사직동 집으로 당장 들어오라고 성화를 대고 있어요. 누나의 직장인 재동국민학교도 사직동에서 더 가깝거든요. 어느 부모가 여자가 이렇게 홀몸으로 사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잘 아시잖아요, 길 잃은 천사는 너무나 위험한 불청객이란 거. 사실 오늘 부모의 특명을 받고 누나를 데리려 왔어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반가워요. 민경갑입니다. 누나는 민숙희예요.”

 

그가 얼렁뚱땅 누나까지 소개했다.

 

“그랬었군요. 오00입니다. 그럼 책상에 놓여 있는 저 김증한의 ‘민법총칙’ ‘물권법’과 유기천의 ‘형법학’은 민군의 책이었군요.”

 

나는 다소 엉뚱한 말로 어색한 수인사를 끝냈다. 그리고 순진할 정도로 솔직히 오늘 서울로 올라온 경위가 카바레에서 민숙희를 만났던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구요. 저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사시공부를 좀 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유난히 수학에 뛰어났어요. 쫓겨 다닐 때 몇 군데에서 수학을 가르쳤어요. 어쩌면 우리가 학원가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몇 년 후에 이 청년을 학원가에서 만났다)

 

시간은 새벽을 향해 줄달음쳤다. 그는 쉴 새 없이 “국민을 독재에 부역하는 ‘레비아탄’이라고 비난했고, 언론을 독재를 비호하는 신종귀족기득권집단이라고 비판했고, 검찰을 독재의 전횡을 은폐하는 권력의 주구”라고 매도했다. 나는 옴나위없이 그의 비분강개를 밤새 경청했다. 새벽 4시 통금시간이 지나자마자 그는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서울에서 맞은 첫날밤을 나는 거의 뜬눈으로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민숙희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었다. 참으로 희한했다. 아침에 본 여자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우선 여자의 표정이 쌀쌀맞고 새침스러웠으며 하루 종일 가도 입도 열지 않을 것처럼 몸가짐도 차디찼다. 아침에 아주 딴 여자를 만난 것 같았다.

 

“좀 더 쉬고 가셔도 되는데, 그냥 가시려구요. 간밤에 잠을 자지 못했을 텐데.”

 

“아닙니다. 약속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런데 여자의 마지막 인사가 참으로 뜻밖이었다.

 

“선생님, 사모님을 혼자 오래 두지 마세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부랴부랴 갈현동으로 여 선생을 찾아갔다. 둘이서 가까이에 있는 진관사를 찾아가서 한나절을 거닐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식혔다.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간밤에 만났던 오누이를 어느새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득한 세월의 제애(際涯) 너머에서 그들이 손을 마구 흔들면서 주절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룻밤 스쳐간 바람과 구름입니다. 잘 가세요. 사랑합니다.”

 

나는 한없이 가슴이 저려왔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We are the winds and clouds that passed by overnight. Bye. Love it."

People I met at night

 

-Oh Tae-gyu novelist

 

--Senior Paik Ki-wan I remembered those days (December 24, 1973), when I saw President Moon raising me in search of vacancy and when Baek Ki-wan, Jang Joon-ha, and others held a campaign for signing a million people for constitutional amendment petition. This is the reason for posting this article.

 

I failed in my business and was trying to escape my hometown, and my senior, female teacher, sent a telegram to me. “Emergency school instructor. Please urgently go to Tokyo.” I left my hometown as if running away.

 

After seeing the academy, I was greatly disappointed. It was a night academy with group guidance. Teacher, who noticed my judgment, took me to her favorite bar near Dongdaemun from early evening. He comforted me the whole time while drinking.

 

“Let’s talk there for the time being and let’s work together. Something good will certainly happen in the future.” (This academy, run by Joo Yeon-mu, later became the largest “Jungjin Academy” in Korea)

 

I kept getting my nose out. Talking to my wife during the day made me even more depressed.

 

“Please come down tomorrow. You come in person and take care of the store. My father is giving too much concessions to the other person with ‘mogae bargaining’. You must come down to solve the problem you gave to Professor Kim. A dunning letter came in.”

 

When she broke up, she asked her teacher to go to Galhyeon-dong's house, but she refused. I wanted to go somewhere by myself and take a rest while quietly thinking. When the bus carrying the female teacher disappeared from view, I finally thought that I had fallen alone in this strange Seoul. As soon as I could see, I went to the nearby inn. Lying in the inn room, I thought about it again. “Anyway, group coaching is not allowed. I have to move to a formal academy.” It also reminded me of her wife's words to come down to her house to confirm bankruptcy and go through the liquidation process. It seemed like her head would burst. I woke up and ran out of the inn.

 

After covering it, I walked toward Cheonggyecheon 7, 8ga from Dongdaemun. I arrived at a place where the lights were exceptionally bright and were thriving until late at night. People were still crowded and noisy. At first glance, I saw the lights on the signboard called'Nobel Theater', and I saw bars lined up in the alley. I went to a nearby place where the sound of music was thumping. It was a cabaret. I went in and had only been drinking for a while, but I noticed a woman sitting at the table and drinking just like me. She approached and “danced over the shell,” then lowered her eyes and reached out her hand.

 

We struck the blues or trot with a jive. It was because I was afraid to hug my body tightly and dance. The appearance of a rather intelligent woman with a fluffy legs, a slim face, and an approximate waist fell. Before long, the woman whispered quietly.

 

“Even if I say so, what are you doing?”

 

I did not understand the woman's question.

 

“Why was this Dell alone? Is it today?”

 

I said, "Yes," and then, as if complaining, I even talked to her on the phone tonight. As if a woman was very worried

 

“You shouldn't leave her wife so alone. Teacher, please go down tomorrow.”

 

It sounded the same as her wife.

 

The woman glanced at her wrist watch and then spoke to herself.

 

“The curfew is over. I have to go back now.”

 

As I left the cabaret, the woman looked at me and said.

 

“My house is Anam Apartment. Just 10 minutes walk from here and you'll get out quickly.”

 

And she said nothing more. “Where are you going? Then good-bye.” I waited for this to say, but I closed my mouth and walked looking forward. I ran behind the girl until I passed the Sinseol-dong intersection and turned around the corner of Daead High School.

 

It wasn't until Amam Bridge that the woman looked back at me and silently grabbed my hand and took her to her apartment. In those short five minutes until she arrived at the apartment, the woman unexpectedly poured out the story of a “horrible fire”. When passing through Anam Bridge

 

“Even if I say this, what are you doing?”

 

I repeated the question the woman asked me earlier.

 

“I miss you so much.”

 

At this point, I think it's a "third-class new wave", but the woman's next word stabbed her in the chest like a dagger.

 

“I ran out of the fire, but my husband disappeared forever in the fire in front of me.”

 

The woman cried and told her story of losing her husband in her fire disaster. On December 2, 1972, at the Seoul Civic Center, the 11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Cultural Broadcasting was held at the end of the 10th Singer Cheongbaekjeon, where Namjin and Na Hoon-ah competed. Suddenly sparks sprang from the electrical decorations above the stage.

 

“I thought it was the fireworks that decorated the finale, so my husband ran towards the stage. In no time, the flames spread, and the stage became a sea of ​​crying. I saw her husband shaking his head on fire. Soon it disappeared into the flames. Her husband, who was very fond of Namjin, took me to a year-end performance that night to commemorate the opening of an apartment close to the school and becoming a college student. Who knew that would be the last outing.”

 

When she arrived at the woman's apartment, her face was covered with tears.

 

She said, “Sleeping this magical woman who brought me to her house, where she lives alone, what will she do tonight.” Then she fantasized about a man shaking her face in the flames. In the phone she heard the cry of a woman crying in hallucinations. Soon, the enchanting dreams of the flesh that were writhing in my body disappeared. Almost simultaneously

 

“Sleep in this room.”

 

And the woman led me to the sidewalk room where the futon was laid. She then went into her own big room.

 

As soon as she entered the room, she stretched out and lie down. Like a lie, her drowsiness came. It would have been nice if she had melted into sleep like that before and after the war. I was about to fall asleep, but the door knocked and the door opened. A young man stood tall at the door. As soon as the young man saw me, he spoke freely.

 

“Who is this. Are you our Ms. Min guest tonight? Thousand years old, lost and lost. One night's green love broke because of this guy, sorry, sorry. I'm really sorry, my sister. And you, please don't go cabaret forward. This stupid man. It's my room, so can I go in?”

 

'Mrs. Min' seemed to point to the woman and'her lost angel' seemed to point to me. The young man came into the room without hesitation, and he sat down on the futon. Then he poured the soju bottles he had carried on his chest on the floor. Surprisingly, Mrs. Min

 

“Minga, you seem drunk, so stop drinking and go to bed early. That guest will also be very tired tonight.”

 

Then he went straight to the bedroom.

 

In a word, the young man was the embodiment of resentment and anger. I couldn't sleep while listening to his "Bibunganggae" all night. He first drank a cup, then offered a cup, pointing with one hand at his bald head, which was unusually greasy by the electric light.

 

“Today, in Myeong-dong, I had the third long-haired crackdown. Somehow, until the second time, he cut off a chunk of his hair and sent it away. He stayed without shaving that ugly hair, and he got it for the third time today. “What, you're rebelling with that long hair,” and he shaved his head off. He went that way to the barber shop and shaved him off. Hahaha."

 

The young man chatted unilaterally.

 

“How did the policeman know that I liked to rebel, and on October 2nd last year, when we first held an anti-restoration demonstration at Seoul Munri University, I resisted to live. Even though the term of office was five years, the retirement of the middle term, and such a president was elected at the gymnasium by the National Assembly of Unification Subjects, the people remained prone for a year. I know it. There are many times when the people hate more than Park Jeong-hee. It is a citizen who passed the Yushin Constitution with 91,5% approval. Kim Dae-jung couldn't come in and was caught from the outside. Cardinal Kim Soo-hwan requested a presidential meeting at most last December. That's why I'm just frustrated about what to do. Still, when Joonha Jang and Kiwan Baek, who are strong and strong, held a campaign to sign a million people for constitutional amendment petition at the end of last year, it seems that Park Jung-hee had a cool conversation. This year, when 61 writers declared their support for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they proclaimed the presidential emergency measures 1 to 4 in succession from January 8th to April 3rd, prohibiting ‘constitutional discussions and civil affairs training activities.’ Finally, in July, poet Jiha Kim was sentenced to death. This is all about national resistance. It's pathetic. If you look closely, the current situation seems to be a fight between Kim Ji-ha and Park Jeong-hee. As one of the people who watch, I am unfortunate and shameful.”

 

Until the young man emptied a bottle of soju, I couldn't interrupt him. Looking at it, it couldn't be said that my escape from my hometown had nothing to do with the current state. How much was the rivalry of Yushin hit me? His hometown friend, Kim Young-min (pseudonym), who had been close to him, intervened in the “Declaration of the City of Literature” during the New Year's Eve and was swept away by the “literary spies case.” Since then, I have been running away from my house and friends' houses. Alas, do you know the sorrow and pain of conscience that cannot act? I could no longer lie down in my hometown.

 

“The people’s resistance will rise like an agent’s flames.” Without knowing, I clenched my fists and cried out. In fact, a couple of months later, the “National Priests for the Realization of Catholic Reformation” was formed, and a mother-in-law took place at Konkuk University, Pusan ​​University, Chungnam University, Chonnam University, etc. I mean, to some extent, my words were correct. The young man did not know how to get tired.

 

“The flames of anger must burn like wildfires. It should be a world where people like me can grow up and live. What is this because every day of the shining youth lives as a fugitive living as a family house. I haven't been able to go back to school since I became a godmother last year. Only yesterday, I was released from the chasing body. Now, I have been able to live comfortably between my parents' house in Sajik-dong and my sister's house here. I was going to try strabismus study in earnest here, but I think that is also wrong. My parents are giving my sister a torch to come into Sajik-dong's house right away. Jaedong Kookmin School, my sister's office, is also closer to Sajik-dong. A parent would like a woman to live alone like this. You know, a lost angel is a dangerous uninvited guest. In fact, today, on a special order from her parents, I brought her older sister. It's nice to have a relationship just by touching her collar. This is Min Kyung-gap. Her older sister is Min Sook-hee.”

 

He even introduced her sister.

 

“I was. Oh 00. Then, Jeung-han Kim’s “General Rules of Civil Law” and “Real Rights Law” and Yoo Ki-Cheon’s “Criminal Law” were books of the Mingun.”

 

I ended up an awkward hand-in-hand with a bit of awkward language. And honestly, naively, the police officer who came to Seoul today confessed the story of meeting Min Suk-hee at a cabaret.

 

“I started a lecture at an academy. I majored in politics, but I did some strabismus studies. When I was in high school, I was exceptionally good at math. When I was chased, I taught math in several places. Maybe we will meet again at the school district. Hahaha.” (I met this young man in academy a few years later)

 

Time ran toward dawn. He constantly criticized the people as “the Leviathans” who served as dictatorships, criticized the media as a new aristocratic vested group that defended dictatorship, and sold the prosecution as a leader of power to cover up the dictatorship. I listened all night to his bibungang. As soon as the 4 am curfew passed, he disappeared like the wind. On my first night in Seoul, I was almost open to the night.

 

The next day was Sunday. I ate the breakfast prepared by Min Sook-hee. It was strange indeed. The woman I saw in the morning gave me a completely different feeling. First of all, the woman's expression was chilly and sore, and as if she wouldn't open her mouth even after going all day, her body was cold. It seemed to me that I met a very different woman in the morning.

 

“You can rest a little longer, but I’m just going. I wouldn't have been able to sleep last night.”

 

"no. I have an appointment, so I will stop. Goodbye."

 

But the woman's last greeting was truly unexpected.

 

“Teacher, don't leave her wife alone for long. Then good-bye.”

 

I went to Buryaburya Galhyeon-dong to visit the female teacher. The two of them went to the nearby Jingwansa Temple and walked for half a day to cool off their complicated minds. It was strange indeed. I was missing my brother and sister that I met last night. It seemed as if they were shaking their hands and swaying beyond the distant years of love.

 

“We are the winds and clouds that passed by overnight. Bye. Love it."

 

My heart was thrilled endlessly.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