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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에게 강우는 독이며, 약이었다.

이헌영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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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제3장 녹턴-상

 

은미에게 강우는 독이며, 약이었다.

 

가을이 왔고, 가을이 주는 애틋한 감흥이나 아련한 정감을 느끼긴 했으나, 강우와의 일은 그것들조차 덮어 버렸다.

 

강우로 부터의 전화는 은미의 모든 생활을 압도했다.

 

강우에게서 전화가 없으면, 안절부절 하며 일에 집중하지 못하다가도, 전화가 오고 만날 약속이 잡히면 비로소 마음과 행동이 차분해지고, 의욕이 솟아나 은미다워졌다.

 

‘내가 왜 이러지?’

 

시간이 가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늘어나고, 강우에게 집착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죄의식도 느껴져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정작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태가 닥칠까봐 늘 불안 불안했다.

 

은미는 자신과 강우와의 관계가,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몸의 느낌으로 알았다.

 

은미는 자신이 강우를 옛날부터 사랑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었다.

 

그리고 강우도 그것은 확실하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섹스에 이렇게까지 빠져들 줄은 생각지 못했었기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색을 밝히게 됐지?…색골?’

 

섹스의 위력이. 오르가즘의 욕구가, 이렇게 지독한 갈증을 일으키며 자신을 지배할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것은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집요했다. 끝없이 갈망했고, 끝의 끝까지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매번 그날의 섹스설계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오는지, 매번 새로운 시도를 했고 매번 은미의 헌신적인 호응을 받아 성공에 이르렀다.

 

은미는 매번 거부 없이 기꺼이 응했고,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서 함께 절정에 이르렀고 강우를 만족감으로 달아오르게 했다

 

한번은 은미가 섹스 중에, 자신이 토한 말에 놀라 되레 질겁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아! 오빠!…아!…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가 있지?”

 

강우도 놀란 나머지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한참 후에 되짚었다.

 

“그렇게 좋아!”

 

“응…오빠는?”

 

“나도…”

 

그 통에 자극이 일었는지 솟았는지 강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죽기 살기로 돌진해왔고 은미도 질세라 적극적으로 받아주자 마치 서로 죽이기 위해 으르렁 대며 싸우는 투견 장을 방불케 했다. 늘 그렇듯 투견놀이가 끝나고 나면 까마득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 같은 잠을 잤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같은 시간에 깨어나 격렬한 투견놀음을 다시 시작했다. 매번 거의 같은 패턴이었다.

 

언제부턴가는 강우와의 관계가 사랑보다 섹스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다가, 어쩌면 섹스뿐일지도 모른다는 비약으로 번져갔다..

 

강우가 자신을 만나는 것이 ‘나를 사랑해서인가? 나와의 섹스를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다가 ‘나는?’ 하고 되묻곤 놀라 소름이 끼쳤다.

 

‘나는 정말 욕정 덩어리인가? 색정광?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늦게 배운 도둑질 같은 건가?’

 

‘시간이 지나가면 달라지는 건가?’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들을 은밀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리 세심히 살펴보아도 그들의 표정엔 섹스의 흔적이나 갈망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신혼부부에게서도 낌새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천연덕스러워서 그 흔적이나 기색을 찾아보려는 은미 자신의 얼굴만 달아오를 뿐이었다..

 

‘나는 저들과 왜 다르지? 나는 수시로 생각날 뿐만 아니라 그 생각만 해도 얼굴아 화끈거리는데…어떻게 된 거지?’

 

결국 강우에게 물어보았다. 강우의 대답은 어이없을 정도로 명료했다.

 

“흐! 흐! 흐! 이런! 바보!…너도 표 안나!”

 

은미와 강우는 거의 매주 만났고, 만날 때 마다 예외 없이 같은 모텔을 찾았다. 양평에서 만날 때와 서울에서 만날 때 각각 진즉부터 단골 모텔이 생긴 셈이고 이젠 처음 모텔을 들어갈 때 곤혹케 했던 민망함은 많이 무뎌져 거의 스스럼없이 드나들었다.

 

민망함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잠시 후에 일어날 일들의 기대에 묻혀 아주 짧게 스치듯 지나칠 뿐이었다. 민망함은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운 짓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꼴이고 부끄러운 짓을 하고 나오는 꼴이니 당연히 민망하긴 했으나 제법 익숙해져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은미와 강우를 가장 곤란케 한 것은, 매월 한 번씩 모임에 참석하는 문제에 있었다.

 

둘이 같이 참석하여 시치미를 떼고 자연스럽게 대하기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불참만 할 수 없어서, 논의 끝에 한번 씩 번갈아가며 참석을 해서 모면을 했는데, 몇 번을 그리하다보니 그 자체가 몇 사람에게 의구심을 샀다.

 

그날도 순번에 의해 은미가 참석한 모임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기어코 불거지고 말았다.

 

“아니! 은미씨는 강우선배가 나오지 않을 때만 나오네, 묘하게 마치 서로 짠 것 같이…서로 원수 진거 있나? 있으면 만나서 풀어야지”

 

동욱의 지나치듯 던지는 가벼운 말에 은미는 아찔했다. 더구나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치며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바람에 당황했으나 잠시 후, 들고 있던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당당하게 외쳤다.

 

“진짜!… 강우선배는 왜? 내가 안 나올 때만 나오는 거야?…난 원수 진거 없는데…”

 

모두들 깔깔대며 웃으며 “그러게”를 외치는 통에 은미도 웃었지만 불안과 죄책감으로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강우선배 요즘 정신없을 거야. 출장도 많이 다니고, 이제 애도 둘이나 됐으니 어? 애 백일도 얼마 안 남았을 걸…언제쯤이지?”

 

정모의 말에 이어서 지은이 톡 쏘듯 말했다.

 

“무슨 백일! 이제 겨우 한 달 좀 지났는데 벌써 무슨 백일 타령이야!”

 

“그런가?”

 

은미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매주 만나다시피 했지만, 두 번째 아이를 최근에 낳았다는 것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강우선배 둘 째 낳았어? 처음 듣네,…아들이야 딸이야? 첫째는 딸이라고 했지?

 

은미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가는 질문세례를 멈추지 못했다.

 

“어! 이번엔 아들, 제대로 구색을 맞춘 거지, 강우선배 재주도 좋아,…은미씨만 몰랐구나, 하긴 은미씬 강우선배 본지가 꽤 오래됐지? 서로 전화도 없으니”

 

정모의 말에 은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용케도 빠져나올 구실을 찾아냈다

 

“진짜 재주가 좋네.… 아! 그리고 동욱씨! 가을에 식 올린다고하지 않았나? 언제야 혹시 나만 빼놓고 연락하는 거 아니지?”

 

지목을 받은 동욱은 멋쩍은 듯 웃더니, 속주머니에서 청첩장을 꺼내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줄려고, 청첩장 갖고 왔는데…23일 이니까 이제 한 20일 남았네. 그때 올수 있겠어?”

 

“그럼 와야지, 카페 문 닫고라도 와야지…축하해, 신부는 뭐해? 직장 다녀?󰡓

 

“중학교 선생이야,… 국어선생”

 

“와! 공무원이네, 좋겠다. 다시 한 번 축하해 동욱씨.…아! 참! 문숙이하고 정모씨는 잘 돼가고 있어? 아직 날 안 잡았어?”

 

곁에 있던 경미가 은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묻지 마라! 은미야! 재들 지금 냉전중이란다.… 사랑싸움 같은데 지들은 심각하대,”

 

“그래? 재미있겠다. 호! 호! 호! 문숙아! 결혼 전에 확실히 잡아, 문숙이 화이팅”

 

“그러지마! 그러지 않아도 문숙씨 한테 정모 맨 날 터지고 사는데”

 

동욱이 말에 모두 큰소리로 웃었지만 정모와 문숙이는 웃지 않았다.

 

은미는 겨우 상황은 모면했지만, 머릿속에선 이런 저런 생각들이 엉켜 덜그럭 거렸다.

 

이들을 언제까지 속이며 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답이 있을 수 없다, 답이 없으니 답답했고 그래서 술잔을 자주 비웠다. 그러한 은미를 그들은 술 실력이 좋은 여자로, 그리고 홀로 떨어져 있어 술 마실 기회가 없는 여자로, 치부하고 자주 술을 따랐다. 은미 역시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라도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리가 끝났을 때는 제법 취기를 느끼면서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은미야! 자고 내일 아침 가라! 너 좀 취한 것 같아, 고집부리지 말고, 기집얘야!”

 

경미가 붙잡았으나 취한 중에도, 그랬다가는 꼬투리라도 잡힐 것 같아, 한사코 사양했다.

 

“아냐! 괜찮아, 여기서 한 정거장 가서, 옥수역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양평까지 가니까, 걱정 마! 경미야 엄마한테 안부 전해 줘, 야! 엄마보고 싶다.”

 

“야! 너 정말 괜찮겠어? …너 취했어. 자고 가라! 응!”

 

“괜찮다니까, 안 취했어요. 언니!…봐봐! 멀쩡하지?”

 

은미는 또박또박 걸음을 보여주었고, 경미는 못 미더워했다.

 

무사히 모두와 작별을 하고 한 정거장을 간 옥수역에서 갈아타고, 응봉역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강우였다, 의외감과 반가움이 확 밀려왔다.

 

“아! 오빠. 나야…웬일?”

 

“끝났지?”

 

“응, 끝나고 지금 지하철 타고 가는 중이야”

 

“어! 그래?… 지금 어디쯤 가고 있어?”

 

“여기가…아! 여기가 응봉역이네”

 

“응봉역?…그럼 다음 역은 어디지?”

 

“다음 역? 왜?… 오빠.”

 

은미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미 강우의 의도를 머릿속에서 정의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 다음 역 1번 출구로 나와! 다음 역이 무슨 역이지? 내가 그리 갈게”

 

“그리 온다고?… 다음 역은 왕십리역이야, 1번 출구?”

 

“어! 왕십리역? 알았어, 1번 출구로 나와 있어, 지금 그리 출발할게.”

 

“알았어. 오빠… 1번 출구”

 

은미는 자신이 술기운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애써 또박또박 걸음을 옮겼고 한 템포 쉬면서 1번 출구를 찾아 올라갔다

 

1번 출구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있자 처음에는 술기운이 가시는 듯하더니

 

잠시 후에는 다시 슬며시 몽롱해졌다. 한 곳에 서있기가 불편해 주변을 천천히 거닐며 기다렸다. 불과 이십여 분 만에 강우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만난 시간은 10시 42분이다,

  

예정에 없었던 섹스는 매우, 아니 지나치게 뜨거웠다. 지나치게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몇 가지 예상치 못했던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찾아들어간 모텔은 그동안의 단골 모텔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새로운 모텔방도 설레게 했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거의 노골적으로 섹스를 위한 방 구조에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놀랍게도 둘이 들어앉기 딱 맞는 야릇한 욕조시설이 있었고 한쪽 구석엔 완전 오픈된 샤워시설이 돼있었다. 따라서 바닥은 아예 타일바닥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침대가 보통의 사각침대가 아닌 원형인데다 새빨간 인조 가죽으로 되어있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구조에 조명 또한 자극적으로 현란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비쳐볼 수 있는 바퀴달린 대형 거울이 있었다.

 

벽이나 칸막이가 전혀 없는 원룸으로 첫 인상은 놀랍기보다 천박해보였다.

 

그런데 그 천박해 보이는 것들이 강우와 은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천박해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은근한 유혹, 그리고 은미의 술기운과 강우의 실험적인 도전이 제대로 어우러져 이제까지 도달해보지 못했던 극치의 정점에서 미쳐 날뛰게 만들었다.

 

처음엔 이색적이고 엉뚱한 구조에 잠시 아연했으나 어차피 섹스가 목적이었던 강우와 은미는 금방 호기심으로 달아올랐고 곧바로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은 팽개쳐 버렸다.

 

허겁지겁 서로의 입술을 유린하며 서로의 옷을 벗기며 섹스는 시작되었고 그대로 알몸으로 엉킨 채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손과 입술 그리고 온몸을 이용하여 서로를 마구 희롱하고 농락하여 상대가 더 들끓어 오르도록 집요한 애무를 했다.

 

얼마 후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둘은 물기를 닦아내지도 않고 빨간 가죽 침대에 엉켜 뒹굴며 거울속의 자신들의 용트림을 곁눈질로 확인하며 짜릿함을 만끽했다.

 

강우는 모든 짓을 다해보고 말겠다는 듯이 은미에게 끝없이 체위를 바꾸기를 요구했고 은미는 기꺼이 응했다.

 

은미는 자신도 모르는 신음과 옹알이를 하다가 숨이 끊어지다 괴성을 지르며 몸을 떨어댔다. 은미의 괴성과 몸부림의 자극으로 더욱 힘을 얻은 강우는 절정을 넘기고도 죽지 아니하고 그대로 살아나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연타석 안타를 넘어 연타석 홈런을 치기위해 용을 썼다. 이번엔 은미를 일으켜 욕조로 이끌어 들이고 마구 물탕을 튀기며 난동 질을 쳐서 은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은미는 이미 눈이 풀리고 입이 벌어져 기진한 채 잠시 망설이다 무엇에 홀린 듯 말했다.

 

“오빠! 우리 오늘… 변태 같아”

 

“변태면 어때!… 좋잖아! 그치?”

 

흥분으로 고조된 강우는 소리쳐 답하며 더욱 맹렬히 달려들었다.

 

전에도 매번 오르가즘을 느꼈었으나 이번은 너무나도 짜릿했고 지나치게 강렬했다.

 

괴성과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떨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났을 때는 겁이 덜컥 났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그만! 그만!” 소리를 수없이 질러대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강우와 은미는 방안의 시설들을 두루 섭렵한 뒤에야 빨간 침대위에 널브러져 죽었다

 

그리고 얼마 후엔 기어이 깨어나 샤워부터 다시 시작해서 순례하듯 시설들을 알뜰히 섭렵했고 그 밤에 죽을힘을 다하여 그 일을 세 번이나 해냈다. 은미는 강력한 토네이도 속에서 번번이 까무러쳤고 강우는 쾌재를 불렀다.

 

“네가 술이 취했을 때가 좋더라,”

 

은미는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은미가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네 시가 넘어서였다.

 

겉옷만 벗은 채 침대에 쓰러져 죽음 같은 잠 속으로 떨어졌다. 

 

. 머리맡에서 휴대폰 진동을 느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진동은 멈췄으나 곧 다시 울렸다, 내버려뒀다. 멈췄다. 또 울렸다. 내버려뒀다.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간에 다시 진동이 울렸다. 내버려 뒀다, 멈췄다. 또 울렸다.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았을 때 진동이 멈췄다.

 

화면을 열어 실눈으로 보았다. 받지 않은 전화가 14통이라고 표시 돼있다. 시간은 9시28분, 겨우 통화기록을 누르니 경미에게서만 14통이었다.

 

‘경미?…경미?’

 

어렵사리 겨우 일어나 앉았다. 잠시 생각을 하고 경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 어떻게 된 거야? 이 기집얘야!”

 

경미가 다짜고짜 악을 써대며 소리를 지른다.

 

“뭐가?… 어떻게 돼?”

 

어리벙벙한 채 겨우 말했는데 하고 보니 쇳소리다

 

“왜? 전화를 안 받고 지랄이야! 야! 이 기집얘야!… 왜? 목소리는 그 모양인 데!…”

 

살기가 등등하다

 

“목소리?… 지금 막 일어나서 그렇다, 왜? 이 난리야? 이 기집얘가!”

 

“ 너 어제 저녁부터 왜? 전화 안 받았어?”

 

“어제 저녁? …술이 취해서 …차를 타니까, 술이 오르고…핸드폰은 가방에 있어서 울리는 걸 몰랐지. 지금 막 일어나 확인하니까 너한테서 열네 통이나 와 있어서 깜짝 놀라서 전화 했지,…야! 그런데 무슨 일이 있니?”

 

거짓말을 꾸미지도 않았는데 술술 잘도 나왔다.

 

“있긴 뭐가 있냐? 아! 이 기집얘야! 네가 술이 취했는데…집에 잘 가고 있나? 잘 도착 했나?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도대체 전화를 받아야지, 아이고 참… 별별 상상을 다했다, 이 기집얘야”

 

은미는 안도했다.

 

“아이고! 미안하다,…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그러니까. 자고 가랬잖아? 술을 조금씩 마시던지,”

 

“알았어,…나 카페 영업 준비해야 돼. 미안해 언니, 다음엔 전화 잘 받고 신고 잘 할게”

 

“얼씨구 이럴 때는 언니냐? 너 땜에 못살아 으이구!…“ 

 

전화를 끊고 겨우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몸은 피곤해도 어젯밤 일들을 생각하면 온몸이 짜릿해지며 순간순간들이 오버랩 되어 허청거리게 했다..

 

그런 중에도 마음 한편엔 찔림이 있었다.

 

‘아!…그와 언젠가는 헤어져야한다…아! …불륜!…그래! 불륜!’

 

그가 유부남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쫒아가다 보니 그 옛날의 둑길에서의 첫 키스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워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때 기쁘게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 괴로움은 없었을 텐데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성이 현실을 들춰낼 때마다 더 큰 유혹이 덮어 씌워 이성을 외면했으나 그 께름칙함은 기어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성이 꿈틀거릴 때마다 강우로 향하는 갈망도 더불어 커져갔다. 

 

강우와 만나 모텔에서 한 번의 파도가 휘몰아친 후, 강우의 팔을 벤 채 가슴을 파고들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이다.

 

“오빠!…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흐…흠…글쎄…”

 

강우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곤 말없이 은미를 당겨 안고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강우가 곤혹스러워 하는 것을 알았으나 내친김에 또 물었다.

 

“오빠! …둘째 낳았다며? 아들이라며?…든든하겠다.”

 

“… 으응”

 

강우는 은미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작게 주억거리곤 희미하게 미소를 만들었다.

 

은미는 더는 묻지 않았다. 강우를 더는 곤혹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강우도 자신 못지않게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강우라고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은미 자신이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오빠…흐윽 흑”

 

어쩔 수없이 울음이 삐져나왔다. 울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격해지는 자신을 다독이느라 기침을 해댔다. 차츰 숨 쉬기가 편해지며 안정되었다.

 

“미안해 오빠…”

 

이번엔 울지 않았다.

 

강우는 그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벽 쪽에 눈길을 둔 채 한참 후 겨우 한마디 했다.

 

“ …한숨 자”

 

그렇게 했다. 강우의 팔베개를 한 채 몸을 뒤돌아 옆으로 하고 잠을 청했다. 돌아눕자 다시 격해지며 눈물이 흘렀다. 손으로 훔쳐 이불에 문질렀다.

 

강우가 팔에 힘을 주어 당겨 안으며 깊은 목소리로 처연히 말했다.

 

“울지 마!…한숨 푹 자”

 

별수 없음을 고백한 것으로 이해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확인이 끝난 것이다.

 

서서히 나른함이 밀려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잠에서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을 잊은 듯 두 번째 파도를 위해 강우를 파고들었다

  

동욱이 결혼을 일주일 앞둔 토요일 오후, 둘은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동욱이 결혼식과 그다음 강우의 둘 째 애기 백일잔치 때, 부득이하게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만나야 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가 심사숙고의 주제였다.

 

그나마 동욱이 결혼 때는, 그냥 모처럼 선후배가 만나는 연기를 잘만하면 된다고 치더라도,

 

강우의 애기 백일잔치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어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오빠! 어떻게 하지?…동욱씨 결혼식에는 어수선하니까 그냥 참석해서 얼렁뚱땅 때우고 나서 카페 핑계대고 일찍 나오면 될 것 같은데, 애기 백일 때는…무슨 핑계 거리를 만들어야 되는데…“

 

“글쎄…그냥 카페 핑계대고 오지 마. 그게 낫겠지?… 그렇게 해! 너도 곤란하겠지만, 나도 마찬가지지”

 

강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하고 나섰다.

 

“다들 뭐라 그러겠지. 공휴일엔 규환이가 오는 걸 다들 아는데, 그리고, 솔직히 오빠 애기들도 보고 싶다. 언…언니도, 궁금해 언니라니까 이상하네, 애기들 오빠 닮았어?”

 

은미는 자신의 마음에 궁금함은 있었지만 굳이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무심코 말을 뱉으며 제풀에 당혹스러웠다.

 

‘어?…생각이 없는데 말은 나가네’

 

강우도 언니라는 호칭에 당혹스러웠는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언니지,…그래…아무래도 오지 않는 게 낫겠다. 그렇지? 그게 낫겠지?”

 

“그러게, 그래야 되겠지. 그나저나 동욱씨 결혼식에서도 오빠를 어떻게 대할지…오빠는 나를 어떻게 대할 건데?”

 

“글쎄…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해야겠지, 오랜 만에 만나는 거지만, 너무 호들갑 떨면 안 되지. 아! 몰라! 그냥 맞닥뜨리면 어떻게 되겠지.”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공포의 도는 더해갔다.

 

모두의 앞에서 모처럼 만나는 선배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떤 말로 첫 인사를 하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얼굴이 빨개지진 않을지, 목소리는 떨려 나오진 않을지,

 

첫 인사야 “오랜 만이예요” 하면 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 날 강우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은미를 아예 늪 속으로 밀어버린 꼴이 되었다.

 

“이은미! 곤란한 일이 생겼다. 집 사람이 내일 동욱이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거야. 슬쩍 말려 보았는데, 한사코 가겠다는 거야. 아이들 데리고, 막무가내로 그냥 나 혼자 가겠다고 우기는 것이 더 이상할 것 같아서…그냥 자연스럽게 대해! 나도 그럴 테니까, 다른 방법이 없어, 이은미 파이팅”

 

“어머! 정말? 어떻게 해?…어떻게…어떡하지?”

 

은미는 암담했다. 내일 일을 얼마나 많이, 시물레이션 해 봤던가? 담대하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자신이 없었는데, 이젠 정말 절망이다. 막막하고 두려웠다.

 

‘이 판국에 파이팅 이라니!’

 

‘무슨 핑계거리가 없을까? ‘어떻게 하든, 참석을 피해야 된다. 참석했다가 꼬투리를 잡히거나, 끔찍한 곤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니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라고 결론은 냈으나, 핑계거리는 찾질 못했다.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한 채, 하루가 다 지나고 밤이 되었다.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별별 안 좋은 상상을 하다 잠이 들어 악몽에 시달렸다. 

 

늦은 아침 몸이 무겁다. 이불 속인데도 몸이 떨려온다. 이불을 바짝 당기다가 이불이 축축한 것을 안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전깃불이 확 켜졌다.

 

‘아! 몸살이다! 진짜 몸살! …가지 않아도 된다! 살았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소리를 질러봤다.

 

“아악! 어. 아. 악, 으 억?”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떨렸다. 이빨이 덜덜 부딪쳤다.

 

분명 안 좋은 현상이지만, 은미는 핑계거리를 찾은 기쁨에 다음 행보를 그리기에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아직 너무 이르다.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다. 그래도 가다리는 시간은 오기 마련이다.

 

9시를 막 넘어가는 시간에 경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기다렸다.

 

오늘 따라 경미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끊고 다시 걸어야 하나? 하고 망설일 때 받는다.

 

“어? 이은미! 왜? …이따 만날 텐데 웬일?”

 

이제 목소리를 내보내야 한다,

 

“어!…억 경미야 큰일…목이 …어 윽”

 

“어? 야! 목소리가 왜 그래?…감기가 왔니? 목감기?”

 

성공이다. 경미의 호들갑스러운 하이톤에 성공을 자신했다.

 

“경미 야하!… 아우! 엊저녁부터, 으윽! 으슬으슬하더니, 아침에,…오늘…가야 되는데…”

 

목소리를 굳이 꾸미지 않아도 쇳소리에 바람 빠지는 소리에 갈라지는 소리까지 제대로 곁들여 나왔다.

 

“야야! 지금 결혼식 참석이 문제니? 그건 내가 말 잘 해줄 테니까, 병원에나 가봐, 야! 그러나 저러나 너 혼자 병원은 갈수 있니? …오늘 토요일이라 병원 오전만 할 걸, 빨리 가야되는데”

 

“아! 윽! 이거 참! 미치겠네.…큼! 큼! 경미 야하! 윽! 동욱씨 한 테 말 잘해줘 그리고 내 대신 축의금도 내주고 …”

 

“알았으니까, 걱정 말고 병원이나 가봐, 갔다 와서 푹 자,…오늘 아르바이트생 오지?”

 

“으응,…부탁해 큼! 흠!”

 

마지막까지 목소리는 잘도 삐쳐 나왔다.

 

온몸이 몸살로 괴로웠지만 천만다행이라고 마음 놓고 쾌재를 불렀다.

 

‘휴… 살았다. 아자! 아자!’

 

 

 

규환이에게 카페를 맡기고 병원엘 다녀왔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와 먹고 그대로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경미의 지시대로 충실히 이행을 한 셈이다. 일단 잠속으로 빠져들자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분량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끼니도 거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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