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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채윤 장편소설 <대조영>

리채윤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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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채윤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제3장 하

 

내란

 

국내성으로 들어 간 연연남생은 격문을 사방으로 보내어 동맹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동생들을 도저히 묵과하지 못할 배신자로 치부하고 평양과의 전면전도 불사할 기세였다. 그러자 부기원은 연연남생을 반란을 일으킨 수괴로 단정하고 그를 토벌할 것을 보장태왕에게 간했다.

 

“대막리지 연연남생은 지방 순시를 핑계 삼아 자신의 동맹 세력을 규합해서 지금 도성을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즉각 그의 직위를 삭탈하시고 대역죄를 물으셔야 할 것입니다.”

 

정변을 일으킨 것은 연연남건, 연연남생 형제였음에도 부기원은 아예 연연남생을 반역자로 몰아버렸다. 부기원 일파의 강력한 주장에 보장태왕은 어쩔 수없이 그것을 윤허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연연남생의 아들인 연헌충(淵願忠)은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효수를 당하고 만다. 그의 나이 16살이었다.

 

이로서 연씨 형제들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또한 이렇게 해서 부기원과 신성일당이 꾸민 책략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 되었다. 부기원은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연연남생과 연정토를 동시에 제거하고, 다루기 쉬운 어린 형제들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었다. 다만 연연남생을 도성 안으로 끌어들여 죽이지 못한 것이 아까울 뿐이었다.

 

부기원은 연연남건을 대막리지에 앉히고 그에게 국내성에 있는 연연남생을 소탕할 것을 부추겼다. 연연남건은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내어 국내성으로 진격했다. 바야흐로 골육상쟁이자, 내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연씨 형제가 드디어 골육상쟁의 전쟁을 벌였답니다.”

 

무추홀이 대조영에게 방금 들어온 소식을 보고했다.

 

“나쁜 소식은 그뿐이 아닙니다. 연개소문 장군의 아우인 연정토도 신라에게 고구려 남쪽의 12개 성을 바치고 항복했답니다.”

 

“큰일이구나. 이제 나라가 풍비박산이 나게 생겼다.”

대조영은 이제 고구려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깜박거리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연연남생은 국내성과 오골성을 거점으로 수개월 간 맞서 싸우며 요동의 여러 성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형제간의 명분 없는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치졸한 골육상쟁은 내란으로까지 번졌고 요동의 장수들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립을 지킨 것이 실수였다. 고립무원에 빠진 연연남생은 아들을 시켜 당나라에 원군을 청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무렵 요동을 호령하던 명장 양만춘이 세상을 떠났다. 요동지역의 지배층 사람들이 장례를 위해 안시성으로 모여들었다.

 

양만춘이 사망한 곳은 요동성이었지만 그의 유해는 그가 가장 크게 활약한 안시성에 묻기로 한 것이었다. 장례가 끝나자 안시성의 성주 대중상은 성민과 요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이제 요동의 큰 별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장군께서는 일찍이 대고구려의 웅지를 펴시면서 요동일대를 호령하셨고 안시성 전투에서는 당 태종 이세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불세출의 영웅이셨습니다. 이제 을지문덕, 연개소문, 흑벌무, 지보 장군 등 일세를 풍미했던 대고구려의 위대한 용장들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만춘 장군마저 떠났습니다. 이러한 때에 조정은 간신배들로 득실거리고 국론은 사분오열되어 골육상쟁의 내란마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요동의 성민괴 지도자들이여! 우리들만이라도 대고구려의 기상과 기백과 웅지를 가지고 단군 겨레의 맥을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디 대고구려의 백성들은 합심하여 우리 고구려를 넘보는 당나라와 신라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다시금 대고구려의 면모를 일신하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돌아가신 고인이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안시성 성주 대중상은 성민 상하 모든 사람 앞에서 맹세했다.

 

양만춘의 유업을 이어받는 성민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대중상의 뜻을 따를 것을 다짐했다.

 

장례가 끝난 날 저녁, 안시성 성청 안에서는 요동지역 지도자들의 요동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요동성 성주의 자리를 이어받은 고사계(高舍桂)를 비롯해서 박작성, 건안성, 백암성, 개모성, 비사성, 남소성, 현도성, 신성 등 요동의 중요한 성채의 성주 십여 명 등 20여 명이 모였다. 고사계의 부관으로 새로이 임명된 대조영은 말석에 앉아서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먼저 이 회의의 의장을 맡은 고사계가 입을 열었다.

 

“이제 고구려의 별들이 다 떨어져 내리고 있소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 별들을 대신하리라 믿고 싶소. 다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고구려는 연개소문 장군이 세상을 떠난 이후 지리멸렬해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로 세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요. 우리에게 가장 당면한 문제는 연남생과 연남건 형제의 싸움이요. 이제 이 싸움은 형제간의 싸움이 아니라 내전으로 확대되어서 조국의 존망마저 위협하는 지경이 되어버렸소. 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현명한 대처방법을 찾아내었으면 싶소. 좋은 의견이 있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내놓아 주시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흑선우 장군이었다. 그는 얼마 전 타계한 흑벌무 장군의 아들로서 평양의 정변을 피해서 안시성으로 왔기 때문에 이번 정변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연개소문과 흑벌무가 의형제로 지냈듯이 연연남생의 동갑나기 친구로서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들과는 달리 평양의 왕성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또 지금 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한 연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형제들과는 형제처럼 자란 사이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선친 흑벌무 장군께서는 연개소문 장군과 의형제를 맺은 아우인 탓에 나는 그들 형제들과 형제처럼 자라낫습니다. 그래서 이번 내전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내 형제들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처럼 아프기만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자기들만의 욕심, 자기들만의 명예, 자기들만의 아집을 위해 조국과 동포를 배반하는 것을 보고 요동으로 달려왔습니다. 우리 고구려는 수나라 문제(文帝)의 침략 이래 당나라의 고종에 이르기까지 전후 60여 년 간이나 밤낮 없는 전쟁에 시달려왔습니다. 이 말은 갓 태어난 아기가 환갑을 맞이할 때까지 전란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백성들의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고 모든 백성이 헐벗고 굶주려 있습니다. 지금 요동 벌판에는 그 동안의 전쟁으로 죽어간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이름 없는 고혼이 널려 있습니다. 이제 양만춘 장군을 마지막으로 일기당천의 용장들도 하나 둘 다 사라져 버린 때에 조정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는커녕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간신배들이 장악하고 제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보아하니 이곳에 모인 장수들이나 성주(城主)들은 모두 전쟁 속에서 태어나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연연남생과 연연남건과 조정을 농단하는 부기원을 비롯한 귀족집단을 타도하고 천왕(天王)의 명(命), 태왕의 명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많은 장수와 성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양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선우 장군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본인은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조정을 전폭적으로 쇄신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이오?”

 

고사계가 물었다.

 

“지금 연남생과 연남건은 서로 그들의 직위를 인정치 않고 있으며 오로지 나라와 황제만을 위해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서 그들에게 그러한 결의문을 받아내고 평양으로 가서 조정의 간신배인 부기원 일파를 추방하고 황제께서 직접 친정체제를 구축하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흑선우의 입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연남생, 연남건 형제에게서 그런 결의문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지금 연남생은 당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 일이라면 내가 나서서 목숨을 걸고 처리해볼 심산이니 여러분들은 내 뒤에서 힘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연남생이 당나라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으나 연남생이 당나라로 보내려던 사자인 대형 불덕이 요하를 건너기 전에 우리 군사들에게 잡혀 온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당나라의 확답을 들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신다면 내가 직접 연남생과 연남건을 만나서 해결책을 찾아보겠소.”

 

그러자 백암성 성주인 나만하가 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철천지원수인데 쉽게 합의를 하겠습니까? 또 문제는 만약 흑 장군께서 그 일에 성공을 하시더라도 부기원 일파를 내몰기 위해서는 평양성을 공략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반역의 죄로 몰릴 가능성이 더욱 많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이 일이 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연연남생, 연연남건 형제들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조국의 앞날이 걸린 일이니 목숨을 걸고 도모해보고자라는 것입니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지금쯤은 3형제 모두가 공멸의 길을 가고 있다고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일에 성공하게 된다면 부기원 일파를 몰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기원이 자기 편이라고 믿고 있고 군권을 지니고 있는 연연남건을 움직이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점은 너무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두 사람 중에 하나라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조용히 회의를 관망하던 대조영이 물었다.

 

“그렇지요. 그것이 문젭니다. 그때는 우리가 힘을 모아 압박을 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연남생은 벼랑 끝에 몰린 탓에 타협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연남건이 문제지요. 그는 지금 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문제를 낙관하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이 하나로 뭉쳐만 주신다면 연연남건이도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요통전역의 넓은 땅은 고구려의 심장부입니다. 우리는 연연남건이 거느린 군사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장수들과 성주들만 일치단결해 주신다면 두 형제의 합의를 끌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흑선우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연씨 형제들의 화해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렇다면 됐소. 이제부터 어떻게 그들과의 협상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군요. 흑 장군은 거기에 대한 복안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의장인 고사계가 은근한 목소리로 흑선우의 답을 유도했다.

 

“예. 우선 두 진영으로 밀사를 파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차후의 일은 일이 진전되는 대로 적절하게 대응하면 될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오늘은 여기까지 합의를 보고 이 일에 대한 전권대사(全權大使)를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일은 비밀이 가장 보장되어야 할 일임으로 기본 방침을 정한 후에는 모든 것을 전권대사에게 일임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흑선우의 의견에 동의 했고 전권대사로 흑선우를 뽑았다.

 

성주 회의는 요동의 지도자들이 하나로 뭉쳐서 전 대막리지 연남생과 현 대막리지 연남건의 화해를 어떻게 하든 끌어낼 것과 그 일이 성공할 경우 대막리지 제도를 없애고 태왕 친정체제를 구축해서 국론 통일을 이룰 것을 결의하고 끝났다.

 

 

 

한편 고립무원이 된 연남생은 생각다 못해 당나라로 밀사를 파견하고 구원을 청하게 되었다. 밀사로 간 것은 연남생의 아들 연헌성(淵獻誠)이었다. 연헌성은 평양성에서 효수 된 연충성의 바로 밑 동생으로 연연남생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연정토와 연남건, 연남산 형제들 사이의 전투가 벌어지자 곧 바로 평양성을 탈출해서 혼자서 아버지를 찾아간 영민함과 기민성을 가진 아이였다. 이제 막 16살이 되는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혼자 당나라에 가서 당 고종과 독대할 정도로 대담성과 추진력을 가진 연개소문과 같은 영걸이 될 만한 재능을 가진 장재였다.

 

당 고종은 연연남생이 아들 연현성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하자 직접 면담을 할 정도로 크게 기뻐했다. 그는 아버지 태종 때부터 그토록 집요하게 공략했지만 끄덕도 하지 않던 고구려가 내분으로 구원병을 스스로 요청오니 그보다 기쁜 일이 없었던 것이다. 고종은 이제 고구려를 병탄할 시기가 가까웠음을 깨닫고 연헌성을 맞이했다.

 

“그래. 그대의 아비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고종이 어린 헌성을 너그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억울한 모함에 빠져 성 안에 웅거하고 계십니다. 부디 제 아비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너희들 집안싸움을 도와 줄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그 정도로 한가해 보이더냐?”

 

“이번 싸움은 밖에서는 집안싸움이라 일축하고 있지만 정권 탈취자를 일벌백계 하려는 정의의 싸움입니다. 폐하께서 굽이 살피셔서 반란의 무리를 쳐부수도록 도와주소서.”

 

연헌성은 어린 소년답지 않게 호소력을 가진 언변으로 고종에게 말했다.

 

“우리가 너희를 도와주면 너희는 무엇을 주겠느냐?”

 

“아버님께서는 이번에 폐하께서 도움을 주시어 정권을 안정시키게 된다면 천리장성 서쪽의 요동 땅을 폐하께 바치겠다고 제의 했사옵니다.”

 

이 말을 하며 연헌성은 연연남생이 친필로 적은 밀서를 내놓았다.

 

“허,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당나라와 너희 고구려는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밀서를 찬찬히 읽은 고종은 조정대신들과 숙의를 거친 결과 연헌성에게 이렇게 통고 했다.

 

“이제 짐은 그대 아비의 충정을 이해했다. 짐은 그대의 아비 연연남생을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摠管)을 겸 사지절안무대사(使持節安撫大使)’로 봉하고 요동안무대사(遼東安撫大使) 계필하력(契苾何力)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가서 연연남생의 반란군을 진압하게 할 것이다. 짐의 이러한 결정을 그대의 아비에게 가서 전하거라.”

 

 

평양도행군대총관이란 고구려를 공격하는 총대장을 말하고, 사지절안무대사는 당나라의 명을 받아서 고구려 지역의 민심을 다스리는 직책을 말하는 것으로 훗날 연연남생의 이러한 행보는 요통 일대를 크게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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