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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익명성...나는 밤새 뒤척이며 자신을 꾸짖었다!

오태규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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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규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뜸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간곡히 청했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잠시 불안이 이마를 스쳐갔다. 곧바로 그 남자가 “선생님 댁으로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을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소까지 알고 있구나. 순간 ‘도시의 익명성’이 허술하게 뚫린 것에 아연실색했다.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운 제자입니다.”라고 말했을 땐 ‘기억의 서랍’에서 조금도 즐겁지 않은 쓰라린 과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때 나는 이름 없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늦은 밤에 서울역 앞에서 후암동 쪽으로 육교를 건너가야만 되었다. 그래야만 그곳에서 백마장 가는 막차를 탈 수 있었다. 나는 종로2가에서 부평 가는 삼화고속버스를 놓치면 서울역에서 국도를 달리는 이 시외버스를 타곤 했다.

 

10시 50분에 서울을 떠나는 그 막차를 타기 위해 그 육교를 건널 때는 나는 늘 홀로였다. 통금을 한 시간 앞둔 그 시각에 나는 어김없이 서울역 건물 이마빼기에 박힌 시계를 돌아다보았다. 그건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 시계를 보기 위해 내가 이 육교를 건너는 게 아닌가 하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는 언제나 정확히 10시 50분이었다. 이후로 내가 서울을 떠나는 시간은 늘 10시 50분일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 시각에 서울을 떠나는 사람은 나 혼자일 뿐이라고 늘 생각했다. 내가 서울역 육교를 건너서 백마장행 막차를 타는 것은 나로서는 그만큼 쓸쓸하고 고달팠던 것이다.

 

육교를 건널 때면 해방감, 이젠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희망이 샘솟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가족을 고향에서 부평으로 옮겨 놓았을 때 내가 느꼈던 그 기쁨이 살아났다. 그날은 유난히 행복한 느낌에 잠겨 있었다. 신년 특집 쇼로 방영되는 최초의 컬러 방송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내가 21인치 칼라TV를 사가지고 집으로 가져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거운 TV를 어깨에 짊어지고 육교를 건너고 있었다. 육교 한복판이 낭창거리는 것 같아서 좀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기쁨에 넘쳐서 춤추는 듯한 기분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낯선 청년 하나가 내 옆으로 붙어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아아, 역시 선생님이셨군요. 저는 1년 동안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운 제자입니다. 그 짐은 제게 주십시오. TV를 새로 구입하셨군요.”

 

그 낯선 청년은 내 어깨에서 TV를 내리더니 자기 어깨에 훌쩍 떠메고 내 앞에 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이름 석 자도 물어보지 않고 잠자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시외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 5분 동안 무거운 집을 짊어지고 가는 그 청년에게 조금도 감사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과연 호의인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아무도 나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도시의 익명성’(匿名性)을 들켜버린 듯한 불안감과, 내 초라하고 남루함을 보여버린 듯한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오히려 그를 원망하고 적대하는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육교를 건너서 후암동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그와 나 사이에 흘렀던 그 침묵의 무게를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서울역 앞 후암동 일대는 매춘부들이 우글거리는 하숙이 많았고, 아마 이 청년도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마음은 당황, 수치, 의혹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결국 그가 내 짐을 버스정류장에 내려놓고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까지 하고 골목으로 유유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에게 한마디 말도 변변히 하지 못했다.

 

통금 직전에 부평역 앞에 내려서 그 무거운 TV를 메고 낑낑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새로 컬러TV를 설치했다. 만약 그 청년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내 즐거울 수가 있었을 것이다. 까닭 없이 움츠러들고 우울해지고 부끄러워지면서 나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나는 육교를 건너고 채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그에게 말도 건네지 않고 그 고통스러운 침묵 속으로 자신을 가두어 버렸던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깟 ‘도시의 익명성’이 뭐길래, 내 마음의 평정을 앗아가 버린 장본인으로 치부하고 청년을 미워했던 자신을 한없이 나무랐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연히 낯선 남자가 남긴 문자메시지를 보았다.

 

“선생님에게 유난히 사랑을 받은 제자로서 선생님을 무척 뵙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이 쾌차하시는 대로 기별하고 찾아가겠습니다.”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구실로 만나주지 않자 그렇게 썼던 모양이다.

 

옛날 그 육교의 제자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밤새 뒤척이며 자신을 꾸짖고 깊은 회한에 잠겼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The anonymity of the city...I tossed all night and scolded myself!

"I regarded myself as a man who had taken my peace of mind and hated the young man without limiting myself."

-Oh Tae-gyu novelist

 

I got a call from a stranger. He earnestly asked that he would like to meet the Daemok teacher. How did I get the phone number? Anxiety ran over my forehead for a moment. When the man immediately said, "I want to visit the teacher's house," his heart sat down. You know the address. At the moment, I was stunned that the “urban anonymity” was poorly penetrated. When I said, “I'm a student who learned English from my teacher,” a bitter past, which wasn't even at all enjoyable, popped out of the “drawer of memory”.

 

--At that time, I was teaching English at an unnamed academy. Almost every day late at night, I had to cross the overpass toward Huam-dong in front of Seoul Station. Only then could I get on the last train to the white horse market there. If I missed the Samhwa Express Bus from Jongno 2-ga to Bupyeong, I would take this intercity bus running on the national highway from Seoul Station.

 

When I crossed the overpass to catch the last train leaving Seoul at 10:50, I was always alone. At that time, an hour before the curfew, I looked at the clock stuck in the forehead of the Seoul Station building. It became like a habit. It made me think that I was crossing this overpass to see the clock.

 

Whenever the bus started moving, it was exactly 10:50. Since then, I have been caught up in the illusion that the time I leave Seoul will always be 10:50. At that time, I always thought that I was the only person leaving Seoul. Crossing the Seoul Station overpass and taking the last train bound for Baekmajang was so lonely and painful for me.

 

When I crossed the overpass, I felt a sense of liberation and the joy and hope of returning home now. The joy I felt when I moved my family from my hometown to Bupyeong after being separated for a long time came to life. That day was immersed in an exceptionally happy feeling. This is because it was the first time I bought a 21-inch color TV and took it home to watch the first color broadcast aired as a New Year's special show.

 

I was sweating, carrying a heavy TV on my shoulder and crossing the overpass. I felt a little dizzy because the middle of the overpass seemed to be rumbling, but I felt like I was dancing with joy. Then a strange young man stood by my side and said aloud.

 

“Ah, you were also a teacher. I am a student who has learned English from my teacher for a year. Please give me the luggage. You bought a new TV.”

 

The unfamiliar young man pulled the TV down from my shoulder, floated it on his shoulder, stood in front of me, and walked with strides. I silently followed him without asking for the name stone. It took less than 5 minutes to get to the intercity bus stop. During those five minutes, I didn't even appreciate the young man carrying a heavy house.

 

While contemplating whether his actions were good or not, he rather blamed him with anxiety as if he had noticed the'anonymity of the city' where no one knew my face and name, and with shame and embarrassment that seemed to show my shabby and poor feeling A hostile heart was rising. As he crossed the overpass to the Huam-dong stop, I couldn't forget the weight of the silence that flowed between him and me.

 

In the area of ​​Huam-dong in front of Seoul Station, there were many boarding houses filled with prostitutes, and as I thought that he may be one of the people who visited this young man, my mind was mixed with embarrassment, shame, and suspicion. Eventually, I couldn't say a word to him until he put my luggage down at the bus stop and said "Goodbye" and slowly disappeared into the alley.

 

Right before the curfew, I got off in front of Bupyeong Station, put on that heavy TV, and arrived at home whining. I installed a new color TV with my wife. If I hadn't met the young man, I would have been happy all the time. With no cause, I cringed, depressed, and shy, I was not at all happy.

 

After a long period of time, I regretted that I had crossed the overpass and walked less than a hundred meters, without speaking to him, and trapping myself in that painful silence. Because of what the “anonymity of the city” is, I regarded myself as the person who had taken away my peace of mind, and blamed myself for hating the youth.--

 

The same thing happened after several decades. I accidentally saw a text message left by a stranger.

“As a disciple who was especially loved by you, I really wanted to see you. As soon as the teacher's health is comfortable, I will send a message and visit you.” It seems that I used it when I didn't meet him as an excuse for being uncomfortable.

 

As I had done with a disciple on the overpass in the past, I tossed all night, rebuking myself, and deep 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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