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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고구려의 내분을 이용해 고구려의 멸망을 이루어냈는데...

리채윤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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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채윤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제5장 패망-상

 

배신자 연남생

 

세 사람은 검문을 피해 먼 길로 돌아서 오느라고 열흘이나 걸려서 요동성으로 돌아왔다. 대조영은 참담한 심정으로 고사계와 흑선우를 만났다.

 

“두 분 장군께 면목이 없습니다.”

 

“자네의 잘못이 아닐세. 그나마 살아서 돌아온 것이 다행이지. 썩은 간신배 무리를 처치하지 않으면 고구려는 끝장이 나고 말걸세.”

 

흑선우가 대조영을 위로하며 말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당 고종의 밀서를 공연히 폐하께 드려서 공개되고 말았는데 작전에 차질이 생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대조영은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당나라나 연남생에게 알려지는 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당나라와 연남생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쯤 당나라에서는 구원군이 떠났을 것이고, 연남생은 우리가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으니까 변심하기 어려울 것이니 아직 시간은 우리 편에게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연헌성이다. 조정에서는 평양으로 압송하라고 하는데 보낼 수도 없고 안 보낼 수도 없으니.”

 

흑선우는 이미 평양으로부터 온 사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 대조영 일행이 탈옥해서 요동까지 오는 사이에 조정에서는 벌써 연헌성의 압송을 요구하는 사자를 보냈었던 것이다. 조만간에 조정에서는 다시 사자를 보내 올 것이다.

 

“연헌성을 평양으로 보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연헌성을 인질로 잡고 있어야 연남생과의 담판에서 유리합니다.”

 

“그렇다고 안 보내면 저들은 반역이라고 응징하려고 들 것이다.”

 

흑선우는 신음을 안으로 삼키며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과연 다음날 평양에서 보낸 사자가 또 다시 도착했다.

 

“흑선우 장군은 들으시오. 역적 연남생의 아들 연헌성을 당장 평양성으로 압송 하라는 어명이오. 또한 평양 감옥을 탈옥한 대조영과 미추홀도 압송하라는 어명이시오.”

 

그러자 흑선우는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신은 폐하께 이렇게 전하시오. 우리가 연헌성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연남생이 당나라군을 유인해서 고구려군에 협조하게 하기 위한 장계이므로 당나라의 구원군을 무찌르기까지는 보낼 수 없다 하시오. 그리고 고사계 장군의 부관 대조영과 그의 부관인 미추홀은 평양으로 간 후 소식이 없는데 무슨 수로 그를 압송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소.”

 

흑선우는 대조영과 미추홀이 돌아 온 사실을 감추었다.

 

“어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오?”

 

“폐하께 소장의 충정과 장계(長計)를 이해해 달라 전하시오.”

 

“어명을 거역하면 어떤 징벌을 받는지 잘 알 것 아니오?”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우선 당나라군을 무찌르는 것이 중요하니 그만 들어가시오.”

 

그렇게 흑선우는 도성에서 온 두 번째 사자를 돌려보냈다.

 

한편 당나라는 그 무렵 연남생이 요청한 구원군을 출병 시키고 있었다.

 

연개소문의 사망과 곧이어 그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수개월에 걸친 내란은 당나라에게는 오랜 숙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666년 4월, 신라 문무왕은 당나라보다 먼저 고구려 내란 상황을 파악하고 당나라에게 고구려를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임을 알리는 사신을 보냈다. 신라가 당에게 고구려 공격을 청한 것은 백제의 멸망 이후, 백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당나라 군대가 철수할 명분을 주고, 신라가 실질적으로 백제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신라의 제안은 당나라에게 고구려를 다시 공격할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당나라는 연남생의 투항 제의를 받고도 움직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신라의 제안을 받은 후, 또 다시 연남생이 아들 연헌성을 보내서 천리장성 서쪽의 요동을 내놓겠다는 제안을 해오자 고구려 공격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당 고종은 나당연합을 효율적으로 가동시킬 궁리를 했다. 정세 변화를 예의 주시하던 그는 연남생의 구원군을 보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공세를 펼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구원군이 아닌 침략군이 편성되어 50만 대군으로 증원 되었다.

 

“짐은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50만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치도록 결정하였소. 고구려가 분열되어 있는 이때에 고구려를 병탄하지 못하면 천추의 한을 남길 것이로다.”

 

당 고종은 이세적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5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도록 했다. 이에 호응해서 신라는 김인문과 김유신이 27 만 명의 군사로써 고구려를 침공할 준비를 갖추었다.

 

667년 9월, 당나라군은 산해관을 지나 요동벌로 쏟아져 나왔다. 행군대총관 이세적과 부총관 계필하력이 이끄는 50만 대군은 물밀 듯이 요동을 휩쓸기 시작했다.

 

남쪽에서는 신라의 김인문과 김유신의 대군이 북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그 무렵 연남생은 평양성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었다.

 

‘대조영, 그 어린놈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아무리 의지가 곧고 명석하더라도 부기원의 권모를 당할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알았어야 했건만.’

 

이렇게 생각한 연남생은 그저 당나라에 투항하는 것만이 살 길이란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는 하나 남은 아들 연헌성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어차피 아들의 목숨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현도성 성주 마동관에게 말했다.

 

“며칠 후면 당나라군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오. 그때 우리는 당나라군을 맞이해서 신성을 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연남생은 요동을 향해서 오고 있는 이세적에게 호응할 것을 알리는 전령을 보냈다.

 

요하를 건너온 계필하력의 10만 대군은 곧바로 현도성을 향해서 진군했다. 당나라군이 진군해 오고 있는 소식은 요동 지위부에도 전달되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연남생으로 부터는 연락이 왔는가?”

 

고사계가 대조영에게 물었다.

 

“아직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허, 그자가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로구나. 흑장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고사계가 흑선우에게 물었다.

 

“현도성을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연남생은 당나라군을 맞이해서 신성을 치려고 할 것이오. 그때 우리가 길목에서 연남생의 군대를 막아야 할 것이오.”

 

그때 연락병 하나가 성청 안으로 급하게 달려와서 보고했다.

 

“장군, 연남건 막리지께서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 요동성으로 오고 있다고 하는 전갈입니다”

 

“어디쯤 오고 있다더냐?”

 

“아침나절에 안시성을 떠났다고 하니 해질 무렵이면 도착 할 것입니다.”

 

“알았다.”

 

연락병이 나간 후 흑선우는 탁자에 작전지도를 펼쳐 놓았다.

 

“이제 결전이 가까워 오고 있소이다. 연남건 대막리지의 5만 군사로 현도성을 먼저 공략해서 적의 예봉을 꺽어야 할 것 같소.”

 

흑선우가 고사계에게 말했다.

 

“흑장군, 연남건이가 오면 연헌성를 내어 놓으라 할 텐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달라면 내어 줍시다. 이제 연헌성이를 잡아둔 보람도 없어진 것 같으니 내어 주고서 현도성을 치도록 해야 합니다. 연남생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당나라군과 조우하는 것을 막아야지요.”

 

저녁 무렵, 연남건이 이끄는 5만 병력이 요동성으로 왔다.

 

“어서 오세요. 대막리지.”

 

흑선우와 고사계가 연남건을 맞이했다.

 

“오랜만이오. 장군들. 그런데 두 분은 왜 조정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오?”

 

연남건이 도도하고 호기로운 눈빛으로 흑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흑선우가 자신의 형 연남생의 절친한 친구였던 탓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 역력했다.

 

“보내드린 서찰에서도 밝혔지만 작전상의 필요에 의한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오.”

 

흑선우가 대답했다.

 

“역적 연남생이 현도성에 은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소.”

 

“지금 당나라군이 현도성 구원을 위해 진군하고 있다고 들었소.”

 

“맞습니다. 계필하력이 이끄는 10만 구원군이 2~3일 후면 현도성에 도착할 것이오.”

 

“알고 계시니 다행이오. 그런데 연남생의 협조 약속을 받아내기나 한 것이오?”

 

연남생의 어투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니오. 그는 지금 당나라에 투항하기로 결정한 것 같소.”

 

“그렇다면 작전상의 필요에 의한 피치 못할 사정은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니오? 연헌성이는 지금 어디 있소?”

 

“토굴 안에 가두어 놓고 있소.”

 

그러나 연남건은 조카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작전상의 문제로 넘어가 버렸다. 그것은 적의 대군이 밀고 들어오는 이 마당에 조카 문제를 가지고 더 시상 거론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나라가 파병한 군사는 구원군 10만이 아닌 50만 대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연남건의 이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적병 10만을 맞아 사우기도 벅차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50만 대군이라니!

 

두 장군이 깜짝 놀라자 연남건은 고소를 머금었다.

 

“나는 신성을 방어하러 떠날 것이니 두 분 장군께서는 현도성을 쳐서 연남생을 잡아오세요.”

 

이렇게 말한 연남건은 다음날 군사를 이끌고 신성으로 갔다.

 

흑선우와 고사계는 군사를 내어 현도성을 쳤지만 이미 연남생은 현도성을 빠져 나가고 없었다.

 

연남생이 현도성을 빠져 나가자 당나라군의 주력도 현도성이 아닌 신성 공략에 돌입했다. 당나라는 연남생을 특진요동대도독 겸 평양도안무대사로삼고, 현도군공에 임명했다. 당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고구려 총사령관을 지낸 연남생의 활용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신성을 목숨을 걸고 방어하라!”

 

연남건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고구려 군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형제간에 밤낮없이 싸움질을 하더니 나라꼴이 이게 무엇이냐?”

 

“동생은 고구려군을 지휘하고 형은 당나라 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조국을 치러 오니 결국 쑥대밭이 되는구나! 죽은 연개소문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인가?”

 

군대의 사기가 이 모양이니 전쟁은 이미 반은 지고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역시 용맹스러웠다. 서쪽 요충지인 신성과 북쪽의 부여성 군사들이 당나라 대군을 끈질기게 막아 냈다.

 

당나라의 주력군이 공략에 열중한 고구려 성은 신성이었다. 신성은 당 태종이 참여했던 전쟁에서 당나라에게 패배를 안긴 곳이었다. 당나라군은 신성 서남쪽 산에 올라가서 성벽을 쌓고 공격했다. 마치 그 옛날 안시성을 공략하기 위해 토산을 쌓은 것처럼 이번 신성 공격에서도 막대한 공력을 기울였다.

 

이세적은 요하를 건넌 후, 뒤따르는 장수들에게 말했다.

 

“신성은 고구려 서쪽 변경의 최고 요충지이다. 먼저 그곳을 빼앗지 않고는 나머지 성들도 공략하기 어렵다. 신성만은 기필코 함락시켜라."

 

그러나 당나라가 군사를 총동원하여 공격했지만 반년이 넘도록 신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신성 안에서 내부의 배신자가 생겨났다. 사부구라는 자가 몰래 성문을 열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당나라 포로 출신으로 고구려에 귀순한 자인데, 당나라군이 그에게 접근해서 당나라에 남아 있는 늙은 부모를 죽이겠다는 위협을 가했다. 효심이 지극한 그는 어쩔 수 없이 성문을 열어야했다. 신성이 함락되자 인근의 16개의 성이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신성 함락은 고구려군의 사기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던 신성이 어이없게 무너지다니! 이제 고구려의 운명도 다하는 모양이다.”

 

백성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연남건은 즉시 신성을 되찾기 위해 대군을 파견했다. 하지만 신성과 그 주변에는 당나라 계필하력, 방동선(龐同善), 고간(高侃), 설인귀 등의 맹장들이 대군을 거느리고 주둔해 있었다. 고구려군은 그들의 진지를 습격했다. 첫 습격 작전은 설인귀의 공격을 받아 실패했지만, 두 번째 공격인 금산 전투에서는 고간의 부대를 대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고구려군은 여세를 몰아 계속 공격해 들어갔지만 설인귀 부대의 측면 공격을 받고 5만 명의 군사를 잃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 전투의 패배로 고구려는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 등 3개 성이 함락 당하는 치명적 손실을 입었다.

 

이 무렵 신라군도 남쪽에서 여러 성을 무너뜨리며 평양성을 향해 육박해 왔다.

 

고구려는 북쪽의 당나라군과 남쪽의 신라군을 막느라고 군사를 둘로 갈라서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탓에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박작성마저 당나라군에게 무너지고, 압록강 전투에서 고구려군 3만여 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은 포위당했다.

 

당 고종은 전쟁터에서 일시 군사작전 관계로 돌아온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에게 전쟁 상황을 물었다.

 

“이 번 전쟁은 고구려와의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조짐이 좋은 것 같다. 그대는 어찌 보고 있는가?”

 

그러자 가언충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신이 바라보건데 이번 전쟁에서 당나라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뜻을 이루지 못한 까닭은 고구려에게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말에 이르기를 군사에 중매자 (적군 중에 내통하는 자)가 없으면 중도에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연남생 형제가 집안싸움으로 고구려의 정세가 모두 우리에게 알려지고 연남생이 우리의 길잡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고려비기(高麗秘記)라는 책에 ‘고구려가 900년이 채 못 되어 80살 난 대장에게 멸망할 것’이라 되어 있는데 고씨(高氏)가 한나라 때부터 고구려를 건국하여 어림잡아 900년이 되었고 이세적 장군의 나이가 80살이니 이번엔 반듯이 고구려가 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이번 걸음이 마지막 수고가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듭된 실패로 고구려 원정의 성공을 의심하고 있던 당 고종은 가언충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당 고종은 연남생의 배반을 계기로 고구려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번 전쟁에서도 승리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고구려가 결코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나라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신자가 있는 이상 고구려도 더 이상 철옹성이 아니었다.

 

무너진 천년 사직

 

당나라는 바다를 이용해 곧장 평양을 공격 했다. 지나 번 전쟁에서 당나라의 많은 함선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당나라 해군의 활약은 미약했지만 이세적은 적리도행군 총관 곽대봉(郭待封)에게 해군을 이끌고 평양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 뒤를 이어 별장(別將) 풍사본(馮師本)을 보내 식량과 무기를 공급하게 했다.

 

그러나 강력한 고구려의 해군은 풍사본의 선단을 패수(浿水:지금의 대동강) 앞바다에서 침몰시켰다. 그래서 곽대봉의 군사들은 굶주리고 궁지에 몰렸다. 다급해진 곽대봉은 서찰을 써서 급박한 사정을 이세적에게 알리려 했다. 그런데 고구려 군사에게 그 서찰을 빼앗길 것이 두려워서 이합시(離合詩)를 써서 보냈다. 이합시란 한자(漢字)의 획을 떼어내서 의미를 나타내는 오늘날의 암호문과 같은 것이다. 이합시를 받아든 이세적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버럭 화를 냈다.

 

“이 급한 상황에 시(詩)나부랭이를 써 보내다니, 내 그 자를 참형에 처하겠노라”

 

이때 이세적의 휘하에서 행정 일을 담당하던 원만경(元萬頃)이 그 뜻을 해석함으로써, 이세적은 그제야 식량과 무기를 보내 주었다.

 

이 일로 이세적의 신임을 받게 된 원만경은 고구려를 공격하라는 이합시를 써서 보냈다.

 

不知守碼綠之險 (압록강의 험한 곳을 지킬 줄 모르는구나.)

 

이때 연남건이 첩자를 통해 그것을 전해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 시의 내용을 간파했던 것이다.

 

연남건은 즉시 군사를 압록강으로 이동시켜 당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지 못하게 만들었다. 으스대기 위해 보낸 시가 당나라군의 진로를 은근히 고구려 진영에 알린 셈이었다.

 

나중에 이런 상황을 보고받은 당고종은 이합시를 해석하고 쓸 줄 알았던 원만경을 멀리 영남(領南)으로 귀양 보냈다.

 

고구려는 비록 연남생의 배신으로 인해 국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해군력 이 다시 살아나 적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시켰으며, 정보전과 기습전으로 당나라군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고구려는 여전히 당나라군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었다. 당나라는 기존에 투입된 병력만으로는 고구려를 굴복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추가로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668년 1월, 유인궤(劉仁軌)를 요동도부대총관으로 임명하고 군대를 증파했다. 당 고종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다. 그해 2월 고구려 부여성은 총사령관 이세적, 선봉장 설인귀 등이 이끄는 당나라군의 침략을 받았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부여성의 고구려군은 견디지 못하고 1만여 명이 죽는 참패를 당하며 성을 내주고 말았다. 부여성 부근의 40여 성이 모두 당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부여성은 고구려 요동방어망의 배후 기지와도 같은 곳이다. 당나라군은 이곳을 공격해 북방의 여러 종족들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또한 신성을 점령하기는 했지만, 요동성, 안시성 등을 점령하지 못함으로써 고구려 내지로 진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북쪽의 부여성을 먼저 공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당나라군은 부여성을 함락시킴으로써 고구려 내지로 공격해갈 때 후방이 공격받을 위험성을 상당 부분 차단했던 것이다.

 

부여성 함락은 신성에 이어서 고구려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 무렵, 가인충이 당 고종에게 보고했듯이 고구려가 900년이 못되어 80살이 된 장군에게 멸망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민심이 흉흉해졌다.

 

연남건은 이런 소문을 가라앉히고 부여성을 되찾고자 5만 군대를 보냈으나 설하수(薛賀水)전투에서 3만의 병사를 잃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제 당나라군은 신성과 부여성, 현도성, 남소성, 목저성 등을 점령해서 요동에서 압록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완전히 장악했다. 당나라군은 요동 지역에서 고구려군과 싸우는 한편, 주력군을 이 길을 통해 평양쪽으로 이동시켰다.

 

당나라군은 먼저 압록강 주변의 대행성과 욕이성을 비롯한 여러 성들을 함락시키면서 평양으로 진군했다.

 

이때 동원된 당나라군의 수는 계필하력의 군대 50만에 총사령관 이세적과 다른 부대가 추가되어 무려 100만 명에 육박했다.

 

8월 이후 평양성은 당나라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고 신라군도 당나라군과 합류하고 있었다.

 

고구려군과 신라군은 대동강을 건너는 남교다리에서도 전투를 벌였고, 평양주변의 작은 성에서도 싸움을 했다. 고구려군은 지난번 전쟁에서도 당나라군에 의해 평양이 포위된 적은 있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너무도 달랐다. 이미 여러 지역의 성들이 함락되었고, 나당연합군의 포위망도 전에 없이 두터웠다.

 

한 달 이상 포위가 지속되자, 고구려도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쾅, 쾅!”

 

당나라군의 포차는 연일 돌을 비 오듯 날리고 있었고 여러 가지 공성무기들이 동원되어 공세를 퍼부어댔다.

 

“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한단 말이오?”

 

보장태왕은 중신들을 모아 놓고 물었으나 아무도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잘난 부기원조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혀 아무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다만 대막리지 연남건이 결연하게 말했다.

 

“폐하, 너무 염려 마소서. 우리 고구려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각지에서 구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 적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래. 대막리지만 믿겠소.”

 

연남건은 당나라에 화친을 청하자는 몇몇 대신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평양성 사수 명령을 내렸다.

 

“평양성을 사수하라! 사방에서 원군이 달려오고 있다. 조금만 버티면 승리할 수 있다.”

 

많은 장수와 군사들이 평양성을 구원하려고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연씨 형제가 미워도 나라를 외적에게 내줄 수는 없다는 애국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구려의 군사와 백성은 지쳐갔다.

 

그런데 평양성에서도 신성에서처럼 배신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고구려의 요승 신성이었다. 그는 이세적에게 매수되어 성문을 열 것을 약속했다.

 

신성은 연남산에게 은밀히 말했다.,

 

“장군, 이제는 아무래도 승산이 없습니다. 소승이 당나라군 대총관 이세적 장군에게 약조를 받았으니 항복하는 것만이 살길이오.”

 

그러자 연남산은 보장태왕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폐하, 100만이 넘는 적들이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그러자 태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한 보장태왕은 98명의 신료들과 함께 성을 빠져 나가 당나라군에게 항복했다. 그리고 신성은 성문을 몰래 열었다.

 

“와아, 와아!”

 

기다리고 있던 당나라군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마침내 700여 년을 이어 오던 대고구려의 찬란한 역사가 그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연남건은 항복할 수 없었다. 연남건은 자신의 칼에 엎드려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보장태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가고 말았다.

 

당나라는 결국 고구려의 내분을 이용해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고구려의 멸망을 이루어냈다.

 

668년 9월 26일,고구려는 동명성제 이후 705년 만에 28대 보장태왕을 끝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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