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은미는 하늘을 보았다, 강 건너편 하늘에 별 하나가 보였다!

이헌영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4-19

본문듣기

가 -가 +

▲ 이헌영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4. 강변에서-하

 

강우네 가족이 제주도에서 한 달 정도 있을 거란 경미의 전언에 얄궂은 심사가 들고일어났다. 무사히 끝내게 되겠구나하는 안도와, 이젠 정말 끝났구나 하는 허탈감과, 또 다른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개운치 않은 것이 있었다.

 

그동안 있었던 위태로움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기위한 제주행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잘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앙금의 실체가 그림으로 드러났다.

 

머리를 흔들어 떨쳐 버리려고 했으나 눈앞에 그려지는 영상이 점점 구체적으로 그려지며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벌거벗은 강우와 역시 벌거벗은 날씬한 여자의 격렬한 몸짓, 거친 숨소리, 그리고 강우의 일그러진 얼굴과 땀방울,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괴로웠다.

 

창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양끝이 날카로운 그믐달이 구름사이를 위태롭게 저어가고 있었다. 큰 숨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쉬었다.

 

‘현실을 직시하자! 제발!…나여!…나여!’

 

오래전에 잊었던 기도를 기억해내곤 망설였으나,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조아렸다. 주기도문을 소리 내어 외울까 하다가 소리내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소리 없는 반복 기도에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 상태를 유지했다. 얼마 후 오른쪽발이 저려 와서 자세를 풀었다. 다시 일어나 창가에 서 있다가 한기를 느끼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젠 됐다고 생각 하자마자 순식간에 그 땀투성이 영상은 또 다시 나타나 은미를 힘들게 했다.

 

‘이 판국에 질투라니!… 참!… 나도 꽤나 못났다.’

 

이튿날 아침 송 선생과 박 선생이 작은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거봐, 은미씨 얼굴이 많이 부었잖아…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송 선생이 의기양양하게 말했고 이어서 박 선생이 말했다.

 

“어우 그러네,…은미씨 이 친구가 은미씨 먹으라고 콩나물 해장국을 사왔어요. 나는 안 사주고 은미씨 것만 사왔대요”

 

“네엣?…해장국을요?”

 

은미는 잠을 설쳐 부스스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놀라워했다.

 

“어우 이 친구 오늘 은미씨 한 테 제대로 점수 따게 생겼네.…난 생각도 못했는데…”

 

“저도요. 정말 서프라이즈 입니다. …고맙습니다. 박 선생님 같이 드시면 되죠.”

 

빙긋이 웃으며 듣고만 있던 송 선생이 두 손을 휘저으며 나섰다

 

“그건 안 되지. 그러면 내 점수가 반으로 깎기는 데, 안 되지. 박 선생은 가다가 혼자 사먹어! 하하하! 그래그래, 내가 사줄게…삐지면 안 되니까.”

 

“아!…정말 삐질 뻔 했네! 하하하!”

 

은미는 간밤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두 선생의 호의로 잊을 수 있었다

 

송 선생은 마지막 말까지 은미를 감동케 했다.

 

“어이! 박 선생! 우리 빨리 커피마시고 가자고. 우리가 가야 은미씨 이거 먹지.… 우리가 있으면 혼자 먹기가 좀 그렇지, 은미씨! 이거 데우지 않아도 돼요, 식지 않게 비닐 두 겹으로 싸왔으니까 데우지 않아도 될 겁니다.”

 

두 사람은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시고 감동은 남긴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은미는 그들이 주차장에 이를 때까지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그들의 자동차가 주차장을 나서는 것을 보고 해장국 보따리를 풀어먹기 시작했다.

 

은미는 적잖이 놀랬다, 콩나물 해장국이 입맛에 딱 맞았다.

 

사실 은미는 해장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해장국 집 자체를 가본적도 없었고 왠지 퀴퀴할 것만 같아서 애써 외면했었다, 특히 선지해장국이라는 이름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이야! 괜찮네. 콩나물해장국…다음엔 다른 것도 먹어봐?…’

 

규환이가 오고 은미는 2층으로 올라가 양치질을 하는데 휴대폰 진동이 인다.

 

양치질 때문에 얼른 받지 못하고, 대충 물 헹굼을 하고 휴대폰 창을 열었다

 

강우다. 순간 멘붕 상태가 되었다.

 

“어?…”

 

지속적으로 진동은 울렸고, 은미는 어찌할 바를 몰라 지켜만 보았다.

 

진동이 멈췄다. 하염없이 화면을 들여다보다 변함이 없자 조용히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지?…또, 무슨 변수가 생겼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생각이 뒤죽박죽이다.

 

‘제주도로 간다고 하더니…무슨 일이 생겼나?’

 

그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역시 강우였다.

 

도리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말이 없다. 은미도 침묵을 지켰다.

 

“하아!…”

 

한 참 동안의 침묵 끝에 들려온 한숨 소리다. 은미도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잘 지냈어?…”

 

그 목소리다. 은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

 

강우도 다시 침묵이다. 은미는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웬일이세요?…”

 

“…”

 

또 답이 없다. 은미는 슬그머니 화가 날듯했다.

 

“전화를 거셨으면 … 무슨 일이에요?”

 

“좀 …만나자!”

 

“…”

 

이번엔 은미가 답을 못했다. 한참 후에 말을 밀어냈다

 

“왜요?”

 

“좀…만나! 할 말이 있어…어려워?”

 

“전화로 해요,…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 어려워?…”

 

“아니 어려운건 아니지만…새삼스럽게 …영문을 알아야지요.”

 

“만나서 얘기할게…지금 그쪽으로 출발할게”

 

“아네요.…오지마세요. 저 안 나가요.”

 

“…”

 

답이 끊겼다. 긴 한숨소리만 들렸다.

 

“얘기 끝났으면 끊을 게요.”

 

은미의 말이 떨어지자 말자 강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만나! 우리 얘기야!…만나서 얘기 해보자 네 얘기를 듣고 싶어!”

 

“우리 얘기요? 우리얘긴 끝났잖아요?”

 

“아냐, 아직 안 끝났어,…지금 출발할게…나와 줘라. 출발한다.”

 

“아!… 왜요?”

 

은미가 다그치듯 묻자 강우도 마주 치고나왔다.

 

“만나서 얘기 좀 하자는데…”

 

“무슨 얘기를 해요?…정말…”

 

“ … ”

 

강우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아 !알았어요.…나갈게요. 거기로 가면 되죠?”

 

“그래 고마워 …응, 거기서 보자고…천천히 나와”

 

은미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자에 앉아 생각을 해보았지만 전화의 의미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우리 얘기? …그게 뭐지?’

 

다시 시작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것은 내가 거부한다. 확고하다 또 다시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다.

 

‘안 끝났다고?… 무슨 소리야?’

 

께름칙한 마음을 추스르며 운전을 해서 양평에 도착하여 칭기즈칸 앞에 주차하고 기다렸다.

 

마치 배짱이라도 부리는 것같이, 늦게 도착하여 기다리게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서둘러 왔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음악을 골라 들었다, 언젠가 배미향의 저녁 방송에서 들었던 끌로드 최의 연주곡 ‘Love is Just a Dream' 이다. 평화롭게 흐르는 냇물처럼 감싸듯이 음악이 흐르자 마음도 차분해졌다. 끊일 듯 끊일 듯 이어지는 긴 연주는 잔잔히 흐르며 말했다. 모든 것을 잊으라고, 모든 것은 흐른다고. 제발 두 번 다시 빠져 들지 말라고,

 

연주는 솔바람같이 머리를 어루만지며 긴 여운을 남기고 서서히 스러져갔다.

 

은미는 실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정신 똑 바로 차리자’

 

얼마 후 눈에 익은 자동차가 다가와 골목에 주차를 하고 강우가 내렸다.

 

은미도 차문을 열고 내렸다.

 

“오빠!”

 

순간 강우가 뒤돌아보며 흠칫했으나 이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벌써왔어?…오랜만이야”

 

아직도 깡마른 얼굴 그 대로였다.

 

은미는 미소를 만들지 않았다.

 

“네…”

 

강우는 좀 당황스러웠는지 잠시 말을 잊었다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일단 밥 먹으러 가자”

 

“아니,…식당 말고요 다른 데로”

 

“아! 그럴까? 그럼 어디로 다른 식당으로?…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아니, 밥 안 먹고 싶어요.…어디 공원 같은 곳 …”

 

은미의 말이 단호하게 나왔고 강우도 느꼈는지 말을 못하다가 한참 후에 겨우 말했다.

 

“밥, 안한다고? 공원 같은 곳? 여기는 내가 잘 모르지…그럼 내 차타고 밖으로 돌아볼까?” “그러죠.…오빠 차 말고 내 차로 가요.”

 

“그건 왜?”

 

“오빠 차에 내 화장품 냄새나요…내차는 상관없으니까, 내차로 가요”

 

강우는 체념한 듯 끄덕였다.

 

은미는 강우를 옆자리에 태우지 않고 뒷자리에 타라고 할까하다가 그냥 옆자리에 타도록 했다. 강우는 은미의 태도에서 완강함을 느꼈는지 맥이 풀린 모습이다.

 

은미는 자신이 필요이상으로 딱딱하게 굴었다고 느끼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중미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은미도 강우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

 

풀이 죽은 강우를 마냥 귀머거리로 만들 수는 없었다.

 

“조기 가다보면 ‘사나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쪽으로 들어가면 계곡물도 있고 조용한데가 있을 거예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미안해요 너무 딱딱하게 굴어서…”

 

은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풀지 않았다.

 

“후!…예상은 했지만…그만 두자, 돌아가자 나 그냥 돌아갈게 오늘일 없던 거로하자 적당한데서 차 돌려, 미안하다”

 

은미는 당황했다. 강우의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미안해요. 사과할 게요, 여기 오기까지 많이 망설였을 텐데…미안해요, 기왕 왔으니까 할 얘기는 하고 가요. 나도 궁금하잖아요.… 거의 다 왔어요.”

 

“얘기 하나마나일 것 같으니까 그렇지…나만 미친놈 될 것 같아서 그래…어떻게 그렇게 냉정하냐? 확실히 여자들이 더 독한 거 같다.”

 

은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반성을 했다. 그래도 한때는 연인으로 알몸뚱이를 부비며 탐하고 끔찍이도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가냘픈 사람이 되어 무언가를 애원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모질게 대하고 있나? 라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눈물이 솟아나 시야가 가려져 운전이 어려웠지만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했다.

 

“저 길로 쭈욱 가면 사나사라는 절이 있어요. 저기 보이는 모퉁이를 돌면 좀 넓은 곳이 나와요. 여름철엔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니까 유원지 같이 사람들이 많이 와요. 거기 가면 조용하고… 벤치도 있을 거예요”

 

은미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차분하게 말하자 강우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나, 여기 잘 알아…그전에 윤후명 작가의 ‘나비의 전설’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 내용의 무대가 바로 이 길이었어, 그래서 여기 일부러 찾아 왔었어.…내용은 다 잊어버려서 모르겠고. 그나저나 그동안 나 많이 원망했니?”

 

“원망이요?…아니요. 원망은 무슨 아! 제가 미안하지요. 그런데 끝났는데…또 만나는 게 겁나잖아요. 오빠도 괴로워하고, 회사도 그만 뒀다면서요? 경미한테 다 들었어요. 어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말이 엉켜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왜? 네 잘못이니? 몇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잘못이지…그런 얘기 하지 말고 우리 얘기를

 

심도 있게 해 봤으면 한다.…아픈 덴 없니?

 

“네,…아프긴 오빠가 많이 아픈 것 같은데 괜찮아요?

 

“응, 잠을 못자서 그렇지 아픈 덴 없어”

 

그럭저럭 말을 이어가며 ‘사나사’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둘이 걸으며 팔짱도 끼지 않고 손도 잡지 않고 걸으니 어색했다. 어색함은 어쩔 수 없어 견디며 걸었다.

 

강우가 어렵사리 손을 잡으려 했으나 은미가 웃으며 손을 뒷짐을 지며 피했다. 서로 마주보며 어설픈 미소로 지나치면서도 은미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여름엔 많은 사람들이 오겠지만 지금은 맑은 계곡 물소리만 무심하게 들릴 뿐이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아무도 없는 빈 공터가 있었고 마침 등받이가 없는 긴 나무의자가 눈에 띄었다. 나란히 앉았다. 둘은 잠시 주변을 살피며 숨 고르기를 했다.

 

은미는 강우의 말을 기다렸다.

 

강우는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슬며시 은미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이번엔 빼지 않았다. 지켜만 보았다. 강우는 조금은 안도하는 듯이 긴 숨을 내쉬며 말을 시작했다.

 

“이은미!…얘기는 해야겠는데 두렵다.…사실 이 얘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이 생각했었다 결론을 먼저 말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차분하게 말할 것인가? 많이 망설였었다. 그래서 결론을 먼저 말하기로 하고 여기 왔는데, 지금은 둘 다 부질없는 짓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말을 않고 가면 너도 궁금하겠지만 나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말은 해야겠다. 듣고 부디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주고 이해만이라도 해주기 바란다.…그렇게 해줄래?󰡓

 

은미는 강우의 말이 거창하게 느껴져 고개만 끄덕였다.

 

강우는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고 얘기를 이어갔다.

 

“옛날 너와의 첫 번째 사랑에 실패한 후, 트라우마로 여자에게 접근을 못하고 있었을 때 우리 지금 집사람과 사내 커플같이 되었지만, 프러포즈를 못해 결국 우리 집사람 조진희가 먼저 프러포즈해서 결혼했다는 것은 지난번에 얘기해서 알고 있지? 그런데 사실은 그 조진희 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여자가 같은 사내에 있었어. 그 여자도 분명히 나를 좋아했었고, 그런데 그 여자에게 내가 고백을 못하고 있었고, 그 여자도 내게 먼저 못했어. 내가 먼저 자기에게 고백해주기를 바랐던 거지, 이건 추측이 아니고, 나중에 그 여자에게서 직접들은 얘기야. 술이 약간 들어간 상태였지만,… 우리 집사람 조진희가 먼저 눈치를 채고. 선수를 친 거야, 나는 집사람도 좋아했었으니까 받아들였고, 공식적인 커플이 된 거지.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었지만 실은 문제가 있었어. 듣기 민망하겠지만 …처음부터 아내와 섹스가 맞지 않았어. 아! 말하기가 좀 …그냥 할게, 아내는 섹스의 주도권을 쥐고, 자기가 리드를 하려고 해, 하려고가 아니고 실제로 리드를 해, 나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거지. 그러니 제대로 되지도 않고 죽을 맛이지,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일거야, 실제로 불만을 말하더라고, 그러면서 뭐, 흥! 서로 대화를 해서 해결해야 된대, 맞는 말이지. 그런대 그 대화라는 게, 자신의 불만만 늘어놓는 거야. 마치 나를 성 불구자 취급을 하는 거야,…솔직히 막말로 남자는 그냥 맹탕 아무 때나 벌떡 벌떡 발기가 되니? 그리고 그게 마냥 그대로 서 있느냐 말이야, 아내가 리드를 하려고하면, 발기됐던 것도, 죽어버리는데, 은미! 이은미!… 네가 보기에 내가 성불구자냐? 우리는 솔직히 너무 잘 맞았잖아. 너는 처음이니까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이끄는 대로 다 따라주었잖아. 그러니까 나도 좋고,…자꾸 새로운 것도 시도하게 되고, 우스운 얘기 같지만…연구를 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연구를 하게 되면 그때부터 벌써 마음이 충만해지는 거야…충만?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그랬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하면…흠, 흠,…이혼을 할까 해.…이대로는 도저히 못살 것 같아. 그래서…”

 

“잠깐! 이혼이요?…오빠! 아!…이, 오빠가 정말 어떻게 됐나?”

 

은미가 더 이상 못 들어 주겠다는 듯이 손을 빼며 날카롭게 말했다.

 

강우는 은미의 역습에 잠시 당황한 듯 했으나, 곧 반격에 나섰다.

 

“그래!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어, 말이 안 되지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 그래서!… 그래서 내가 지금껏 고민 고민하다가, 이제 온 거야, 아내한테 말했어. 이대로는 살수 없다고.”

 

“오빠!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나, 더 이상 안 들을래요. 이혼?…자신의 섹스행복을 위해서 가족을 해체하겠다고요? 오빠! 정신 차려요. 제발”

 

“이은미! 내 얘기를 다 듣고 얘기해!…내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안 해보고 이러는 것 같니? 골백번도 더 생각한 끝에 너를 찾아온 거야, 내가 오직 섹스 하나 때문에, 이혼까지 생각하겠니? 섹스도 자기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여자가 다른 것은 오죽하겠니?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일은 다 못 믿는 타입이야. 아이들 일이나 가정일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시댁에 관한일이라든가 심지어는 내 회사생활 까지 시시콜콜 참견하고, 참견정도가 아니라 지시를 내린다고, 자기가 다니던 회사니까 잘 안다는 이유로 박 부장한테는 이렇게 해라 정 차장한테 밉보이면 안 된다. 여자 직원 누구누구하고는 입이 싸니까 차도 마시면 안 된다. 등등,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옛날 자기 동료들한테 전화해서 나에 대해서 캐묻고 이렇게 저렇게 감시하고 참견하고 …하긴 그러다 우리 일도 눈치 채게 된 거지…여하튼 너무 힘들어.

 

웬만해야지 참고 살지. 이건 남자를 바보로 만드는 거야“

 

“그만! 오빠!…나 더 안 듣고 싶어요.”

 

은미는 그만 일어섰다. 괜히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가 은미를 잡아 억지로 앉히려 했으나 완강하게 거부하다가 뒤늦게 스스로 앉았다.

 

“그래, 듣기 거북하지? 그래도 좀 더 들어 줘, 미안하다.”

 

강우의 목소리가 푹 꺼지며 애걸하는 투가 되었다.

 

은미는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이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미안하다. 마저 얘기 할 게… 내가 너와 한참 불이 붙었을 때 내가 의심스러웠겠지, 여자들은 예민하잖아, 그래도 그렇지, 애 하나는 들쳐 업고 하나는 걸리고, 휴!…한번 밖에 못 본 남편 후배한테 찾아가서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거, 애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지? 동욱이를…동욱이가 보냈던 결혼청첩장을 들고 예식장을 찾아가 전화번호를 캐물어서 동욱이 한테 왔더란다. 질리지 않냐? 동욱이도 나한테 말은 안했지만 좀 질렸나보더라고. 그렇지 않겠어? 무슨 죄지은 사람같이…동욱이가 다 알면서 숨기는 것처럼 캐물었으니, 마치 동욱이가 공범이라도 되는 것처럼…얼마나 황당했겠냐고, 물론 내 죄가 크지,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잖아,… 내가 감당이 안 돼.”

 

“오빠! 그래!…무슨 말인지 이해는 돼, 그래도 그런 일도 따지고 보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잖아. 남편이 잘못된 것 같으니까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싶겠어?…남편 후배를 그것도 잘 모르는 남편 후배를 찾아가고 싶었겠냐고?…오빠는 남편으로서 누구를 탓할 자격이 없어, 나도 나쁜 년이고…내가 진짜”

 

강우는 잠시 말을 끊고 물끄러미 은미의 얼굴을 보았다.

 

은미는 외면하고 딴 곳을 보았다.

 

“은미야! 이은미!…너까지 왜 그러니? 나 좀 봐봐, 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니?…내일부터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지내잔다, 싫다고 했어, 여행 계획도, 비행기 표도, 펜션도, 그곳에서의 일정계획도, 다 자기가 짰어, 내 의견 같은 건 아예 없어. 그냥 따라오기만 하래,…심기일전해서 다시 시작해 보재…뭘 다시 시작해? 똑 같지. 그 성격이나 내 성격이나 변하겠니? 나는 여전히 이리저리 치일 거고, 아예 미리 말 하더라고. 갔다 와서 자기가 옷 가게를 할 테니 당분간 집에 있으란다. 그게 무슨 말이겠니? 그게 무슨 심기일전해서 새 출발 하는 거냐고. 남편을 바보천치로 만드는 거지.…저 사람과 계속 살면, 나는 남편 구실은 물론 사람구실도 못하고, 아빠구실도 못해, 그냥 폐인 신세가 되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어,…이은미! 나 좀 살려줘라, 이혼하고 …우리 결혼하자!”

 

“네? 결혼! …이 오빠가 정말 미쳤나?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왜? 안 돼?…남들은 이혼도 잘하고 재혼도 잘하는데 우리는 안 된다고?”

 

“안되지요. 제가요!…제가요! 절대 안 해요.…내가 잘못했어요. 나를 야단치고 오빠! 미안해요. 진짜 그건 안돼요, 오빠 가정파괴하면 안 돼. 애기들 생각하세요. 제발 애기들을 오빠!” 황당한 얘기에 온전한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나오는 대로 쏟아놓았다.

 

은미의 완강한 저항에 강우는 먼 곳을 보며 침묵을 지키다 차분하게 저음으로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애들 때문에 지금껏 망설인 거야.…가슴 아프지 그렇지만 애들 인생도 중요하지만 내 인생도 중요하잖아, 이은미! 놀랐지? 내가 전화한 것부터…많이 놀랐지? 이런 얘기까지 나올 줄은 예상 못했을 테고.…강요는 않을게. 이렇게 해주면 고맙겠어. 오늘 네 말대로, 말도 되지 않는 제안 같지만, 일주일 정도만 진지하게 생각해줄래?…일주일 후쯤에 전화할게, 그때도 네가 싫다면…그대로 받아들일게 그냥 무조건 내치지 말고 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줘. 일주일 후쯤 전화할게.󰡓

 

은미는 난감한 중에도 무조건 내치는 것만이 상책일순 없다고 생각했다.

 

“오빠! …난 정말 좋은 추억,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바랬는데, 이렇게 되면…아! 정말 속상해…말이 돼야 생각을 해보지,…”

 

“네가 이런 제안을 예상 못했기 때문에 황당해 보이는 거야, 차분하게 일주일 정도만 생각해줘, 그때쯤 전화할게.”

 

“좋아! 오빠 말대로 생각은 해볼게,…그럼 일주일 후에 오빠가 전화했을 때 내가 받지 않으면 그게 내 대답인 줄 아세요.… 생각은 해본다고요. 알았죠?󰡓

 

강우는 매우 낙담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눈길을 아래를 향한 채 말했다.

 

“하아!…은미야! 좀 진지하게…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줘라. 나 죽겠다.”

 

“네! 진지하게 생각할게요.…알았어요. 오빠! 힘 좀내! 보기 민망해.…”

 

“알았어.… 전화할게.”

 

강우를 다시 태우고 양평으로 가면서 운전하는 자신을 살피는 강우의 눈길을 알았으나 애써 모른척했다. 마음속에 강우의 존재가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토록 뜨겁게 했고, 애끓게 했고, 안타까워했고, 기다리게 했던 그 사람이 이렇게 초라하게 변하다니 무엇엔가 홀린듯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추해 보이지?”

 

강우가 무겁게 던진 말에 대답은 해야 했다.

 

“아뇨,…오빠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인데 추하다니…힘내세요.”

 

“사랑했던?…이제는 아니라는 거네.…”

 

“오빠! 감정이 그렇게 무 자르듯이 되나요.…가슴 아파요.”

 

강우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먼 곳을 보았다.

 

칭기즈칸 앞에 도착했다. 같이 내렸다, 강우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차를 향해 걸었고 은미도 뒤를 따랐다. 강우가 돌아보았고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울음을 터트리며 다가왔다.

 

은미가 피하며 앞서가 차문을 열어주고 강우에게 타라고 표정으로 말하다 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강우가 다가와 안으려하자 은미가 도리질하며 거부했다. 강우가 어렵사리 차에 올랐다. 은미가 눈물을 흘리며 손을 들어 보였다. 강우가 운전대에 엎드려 오열했다.

 

은미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돌아섰다. 강우가 차문을 열고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간다! 이은미!…안녕!…행복해”

 

은미가 돌아서며 외쳤다.

 

“잘 가! 오빠!…오빠도 행복해!”

 

행인들의 눈길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고. 강우는 떠났다.

 

은미는 갈 곳을 찾아야했다.

 

‘어디로 갈까?’

 

카페로 가기는 싫었다. 카페로 가기에는 너무 밝은 낮이다. 규환이를 대하기도 민망하다.

 

무조건 가다보니 중미산 쪽이다. 다시 사나사 쪽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아까 그 자리에 도착해 그 의자에 앉았다.

 

오늘 일을 처음부터 되감기를 해보았다, 중간 중간에 되감기를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자책하면서도 되감기는 진행되었다.

 

‘이혼?…하아! 참! 그 정도 밖에 안 됐었나? …그런 나는?…어제는 질투도 했었잖아? 하아! 참! 나도 별수 없는 속물이네.… 그럼? 멋진 사랑이고 멋진 이별이라고 생각했었나? 그건 아니잖아?’

 

은미는 자신의 마음속에 강우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은 자신이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강우와 관계를 맺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렇다면 그와의 섹스는 그 야말로 엔조이만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랑한 것이 아닌 엔조이만?…난 분명히 사랑했는데…뭐가 잘못 된 거지?’

 

‘사랑을 계산하고?…그럼? 무턱대고?…무모한 사랑? 그렇게 되나?…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는 틀렸구나,’

 

한참 후에 정리가 되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무모하고 아픈 사랑을 한다.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거리가 탄생하고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 마치 숙명인 것처럼’

 

어둑해질 때까지 이리저리 서성이다 내려와 카페로 향했다.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르는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걸음을 멈추었다.

 

발길을 돌려 강변 둑길로 향했다.

 

주위는 무겁게 내려앉아 서늘하고, 검은 강물은 건너편 불빛에 얼비쳐 일렁인다. 멀리 이포대교 위에 희미한 가로등 밑으로 가끔씩 자동차들이 소리도 없이 지나갔다.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잔물결 소리가 실려 왔다.

 

은미는 하늘을 보았다. 강 건너편 하늘에 별 하나가 보였다.

 

천천히 걸었다, 발자국 소리가 따라온다, 그 자리에 섰다. 소리도 섰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어디로?…나는 어디로?’

 

눈을 감았다. 귀를 막았다.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어디로… 어디로 가야하지?’

 

적당한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소리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리는 감촉도 괜찮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 속에 잠기며 망연히 시간을 보냈다. 막막했지만 괴롭거나 슬프진 않았다.

 

초점 없이 먼 곳을 바라볼 뿐 의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이 생성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 엉덩이에 통증을 느낄 때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통증을 느껴 자리에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거의 동시에 느낌이 다른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생성 되는 듯하여 멈칫했다, 기다렸다. 본능적으로 기다렸다.

 

생각의 가닥 -잡힐 듯 잡힐 듯-아사 무사한 낌새, 그 느낌의 어느 정점에서 머릿속 어디에선가 기어이 한 가닥 불빛이 반짝 피어나는 듯 하더니 이내 전율을 일으키며 전신으로 번져 사정없이 타올랐다.

 

‘정떼기? 아!… 가만 있자. 아! 그래!…이게! 이게!… 바로 그 정 떼기?…마지막 정 떼기? 아! 아! 그거였구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것이 오빠의 마지막 선물?… 호오! 호오!’

 

다음 순간 확신으로 주먹이 쥐어지며 쥐어진 두 주먹을 검은 하늘을 향해 흔들어댔다

 

“정떼기!… 마지막 선물!… 그래! 오빠의 마지막 선물!”

 

결국엔 벌떡 일어나 소리 내어 외치며 주먹을 흔들고 발을 동동 굴러댔다.

 

얼마 후 차츰 안정을 되찾으며 둑길에 홀로 서있는 자신으로 돌아왔다.

 

확신으로 두 손이 모아지며 감사와 감동이 자리했다.

 

검은 강물, 어두운 둑길, 서늘한 바람, 검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 하나, 아름다웠다

 

4. 강 변 에 서

 

해는 어두워지고

 

밤은 깊이 흐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 사람들 속에

 

하나 둘씩 켜지는

 

무심한 저 가로등 따라

 

오늘도 걸어가는

 

난 어디로, 어디로

 

아득해진 거리에서

 

길을 잃고 물어본다.

 

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두커니 바라보다 긴 한숨으로

 

눈을 감는다.

 

이대로

 

아아! 아아! 아아! 난 어디로. 아아! 아아!

 

난 어디로, 어디로

 

( 까무룩한 무아지경,)

 

아득해진 거리에서

 

길을 잃고 물어본다.

 

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두커니 바라보다 긴 한숨으로

 

눈을 감는다.

 

이대로

 

아아! 아아! 아아! 난 어디로

 

더 멀리 떠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도 걸어가는 난

 

어디로, 어디로<계속>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