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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란 나라는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사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구나~

리채윤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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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채윤     ©브레이크뉴스

제5장 패망-중

 

마지막 불꽃마저

 

평양성이 함락 당한 후에도 요동성과 안시성은 굳세게 성문을 닫아걸고 당나라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성 모두 식량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자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장, 안시성의 아버님이 성문을 열고 동쪽으로 행군해 나갔다고 합니다.”

 

부관 미추홀이 대조영에게 보고했다.

 

“뭐라고, 아버님이 안시성을 포기 했다고?”

 

“예, 식량이 떨어져서 성민을 이끌고나와 동쪽의 홀한하(忽汗河) 쪽으로 이동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당나라군의 포위망을 뚫고 아버님과 합류해야 할 것 같다. 이곳의 식량도 10일을 버티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대조영은 고사계와 흑선우가 있는 지휘부 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구려란 나라는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사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구나. 결국 이렇게 망할 것을 그 숱한 백성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단 말인가?

 

대조영은 사뭇 비통하고 처량한 마음이 되었다. 지금쯤 숙영공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나라는 고구려 왕족과 귀족들을 당나라로 끌고 간다는 소식이 들려 왔는데 그녀도 지금쯤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평양성이 함락 되었을 때 무사하기나 한 것일까?

 

지휘부 사무소 안으로 들어서자 두 장군이 지도를 펼쳐놓고 숙의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 장군, 이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좋을 것 같소?”

 

흑선우가 고사계에게 물었다

 

“대중상 장군이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봅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고사당하고 말 것이오.”

 

“그럼 당나라 포위망을 뚫고 우리도 동쪽으로 가서 대중상 장군과 합류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려”

 

대조영이 들어 보니 두 장군의 결론도 자신과 같았다.

 

“저희 아버님은 홀한하 쪽으로 진도를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밤 북문을 열고 이동 합시다. 당나라 군사들은 남문 쪽에 집결해 있으니 날랜 군사 2천을 풀어서 그들의 진중을 공격하게 하고 그 사이에 성민 모두를 이동 시킵시다. 대조영 부장은 특공대 2천명을 선발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제가 특공대를 이끌겠습니다.”

 

“자네가?”

 

“예. 제가 맡겠습니다.”

 

“알았네.”

 

그리하여 그날 밤 요동성 탈출 작전이 실시되었다. 대조영은 토굴에 가두었던 연헌성을 불러냈다. 연헌성은 아버지 연남생이 당나라군의 앞잡이로 완전히 변신했고 그 덕에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무척 상심한 채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너에게 조국을 위해서 마지막 충성을 할 기회를 주겠다.”

 

“무슨 일이오?”

 

“우리는 오늘 이 성을 버리고 탈출한다. 성민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서 특공대가 당나라군을 막아야 하는데 네가 나와 같이 앞장서겠느냐?”

 

그 말을 들은 연헌성의 눈이 빛났다.

 

“좋소. 그런 일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오.”

 

그리해서 연헌성은 특공대의 좌익을 맡고 대조영은 우익을 맡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자 대조영은 직접 2천명의 특공대를 이끌고 동문을 열고 나가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당나라군 진지를 공격했다. 한 달 이상 수비만 하고 있던 고구려군이 갑자기 공격해 오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당나라군 진영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 사이에 2만여 요동성 사람들은 홀한하로 가는 길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서 당나라군의 추격을 벗어났다.

 

그러나 당나라군을 습격한 특공대는 차츰 워낙 많은 적군에 둘러싸여 퇴로가 막히고 말았다.

 

“혈로를 뚫어라.”

 

대조영은 에워 싼 당나라 병사들을 마구 베면서 특공대원들과 함께 내달렸다. 그의 장검이 허공을 휘젓자 적병들은 썰물처럼 밀려났다. 연헌성도 장창을 휘두르며 적군을 베면서 뒤를 따랐다. 하지만 적진을 돌파해서 산기슭에 당도해서 돌아보니 대조영을 따라오는 병사는 500여 명에 불과했다. 1500의 병사들이 성민을 구해내기 위해서 죽거나 포로가 된 것이었다. 대조영은 성민들을 구해내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른 것이 안타까웠다.

 

“요동성 놈들이 달아나고 있다”

 

새벽녘에야 혼란을 수습한 당나라군은 요동성 주민들이 이동하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

 

“쫓지 마라, 어차피 망한 나라의 백성들이니 그들을 죽여서 무엇하냐. 성이나 접수하라”

 

당나라 장수가 추적을 만류하고 요동성을 접수 할 것을 명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항쟁하던 안시성과 요동성이 당나라의 수중에 들어감으로서 고구려는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대조영은 500여 병사를 이끌고 앞서간 일행을 뒤쫓아 홀한하로 향했다.

 

홀한하로 이동한 요동성 사람들은 오산 부근에 정착하고 있는 대중상이 이끄는 안시성 사람들과 합류했다. 5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자 당장 의식주가 문제가 되었다. 성안에 있던 많은 물자들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한하 건너편 마을에 피난 간 백성들이 많아서 추수하지 않은 곡식이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런 제안을 했다. 과연 홀한벌 가득히 주인 없는 곡식들이 영글어 있었다.

 

“하느님이 우리를 아주 버리시지는 않았구나. 죽으라고 하시지 않는구나!”

 

사람들은 감사하며 곡식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5만 명이 겨울을 나기는 미흡한 것이었다. 대중상과 고사계, 그리고 흑선우는 각자 주민들에게 책임을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주민들의 절반은 산과 들로 나가서 식량을 구하고 절반은 만아서 성을 쌓고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집을 지었다.

 

고구려의 난민들은 억척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홀한성(忽汗城)을 쌓았다. 대중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의 잠도 자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일을 독려했다.

 

“아버지 여기 일은 저에게 맡기시고 들어가서 좀 쉬십시오. 이러다 쓰러지시겠어요.”

 

대조영이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해서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지독한 독려의 힘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성이 완성이 되었고 그런 데로 들어가 살 삶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다행이 부근에는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이 많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산야로 나간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식량을 구해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홀한성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홀한성이 자리 잡은 곳은 홀한하 동남쪽이었다. 그곳은 백두산에서 북쪽으로 500리에 위치해 있었고, 서북으로는 험준한 장광재령 산맥, 서남으로는 부이령 산맥, 그리고 동남으로는 로야령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여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위치였다.

 

나중에 이 성은 고구려 유민들의 활동의 근거지가 되고 그 주민들이 대조영과 함께 대발해국을 새우는 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9도독부, 42주, 100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설인귀를 도독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당나라는 자신들의 점령지를 제대로 통제하고 다스릴 수 없었다. 사실상 당이 장악한 곳은 요동일대에 불과했고, 압록강 상류와 동북 만주지방에는 여전히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요동과 평양 일대 가도를 중심으로 한 몇몇 중요 거점만을 지배할 수 있었을 뿐, 검모잠(劍牟岑), 안승(安勝), 고연무 (高延武) 등 고구려 부흥군의 활동으로 안동도호부는 평양에서 쫓겨나 신성으로 옮겨야 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비록 태왕이 항복을 했지만 668년 이후 673년까지 계속해서 여전히 당나라와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670년 검모잠과 안승의 부흥군이 당나라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671년 안시성과 요동성이 무너지자 고구려 부흥 운동은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672년,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와 연합해서 백수산(白水山) 전투에서 패배하고, 673년에도 호로하(瓠瀘河) 전투를 치렀지만 당나라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고구려 유민들이 끊임없이 저항하자 당나라는 보장태왕을 영주로 보내서 요동주도독(遼東州都督) 겸 조선왕(朝鮮王)에 임명하여 사실상의 자치를 허용했다. 이렇게 되자 인심은 크게 변했다. 보장태왕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부흥 운동을 꾀했다.

 

그러나 몇 해 후, 요동 일대의 반란계획이 발각되어 보장태왕은 반란음모죄를 덮어쓰고 다시 당나라로 끌려가 먼 곳으로 유배당하고 말았다.

 

측천무후는 진노해서 고구려 백성들을 격리 분산시켜 다시는 부흥을 꿈꾸지 못하게 쐬기를 박는 조치를 내렸다. 당나라에 대항 하는 자가 많은 지식층, 상류층 고구려 사람들을 다시 양자강과 회수의 남쪽 및 산남과 경서 등 고구려와 아주 먼 지역으로 이주시켰고, 가난하고 나약한 사람들만을 안동도호부 관할 하에 남겨 두었다.

 

“당나라의 속임수에 속지 않겠다!”

 

그러나 고구려인들이 계속해서 항당 투쟁을 벌였다. 당나라는 보장태왕이 유배지에서 죽은 후인 686년에는 보장왕의 손자인 고보원(高寶元)을 '조선군왕'에 봉하여 요동 지역을 다스리고자 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다스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당나라는 고구려 정복을 위해 막대한 국력을 소모한 탓에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고구려를 마지막으로 주변 제국들이 하나하나 당나라에게 굴복 했지만, 그것이 곧 당나라의 국력이 강성해지는 것과 모두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나라의 과다한 대외원정은 국력의 소모를 가져왔고, 그것은 곧 주변세계에 대한 지배력의 약화와 내정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670년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쟁을 지켜보던 토번 세력은 당나라를 공격해서 설인귀, 곽대봉이 이끈 당나라군을 대비천 전투에서 몰살 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거기에 돌궐이 다시 부흥에 성공하여 제2돌궐 제국을 건립해서 당나라에 큰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유민

 

나라의 멸망으로 고구려의 5부 176개 성 69만 호는 당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각지에 흩어지기도 하고 당나라의 영토로 강제로 끌려가기도 했다.

 

당나라는 고구려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669년 5월부터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쓰기 시작했다. 사민정책이란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 백성과 똑같이 대우하는 정책이라 했다.

 

“이제 고구려인은 당나라 국민이 되었다. 본국으로 옮겨 사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들은 그 말에 속지 않고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고 저항했다. 그러나 측천무후의 사민령은 가차 없이 실시되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잔여세력을 강제로 분산시켜 거세하는 사민정책을 강행해서 고구려 평양성과 국내성, 요동성, 신성 지역의 부유한 집 3만 8천 200호 20여만 명을 솎아내어 요하 서쪽인 영주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마차들, 소떼들, 말떼들의 끝도 없는 행렬이 이어졌다.

 

이것은 고구려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들의 반발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들을 여러 곳으로 집단 이주시켜 감독했다. 그 중에서 많은 고구려인들이 영주에 끌려와서 살게 되었다. 당시 영주는 강제이주 당한 고구려 유민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었다. 고구려의 모든 생활 근거지가 영주 땅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또 영주는 중국 내륙으로 압송되는 고구려인들의 중간 집결지이기도 했다.

 

이주 작업은 여러 지역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올 때가지 계속 이어졌다. 압록강을 건너 이주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며,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영주에는 고구려 유민 외에도 요동과 요서지역의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한인은 소수에 불과했고 거란, 돌궐, 해족, 습족, 말갈, 고구려 등의 이민족들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에서 제각기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당나라는 영주의 정착민들에게 자치권을 주며 사민정책을 펼쳤다. 마을마다 촌장을 뽑아 주민의 대표로 삼고, 촌장들이 부족의 추장을 뽑아 부족을 대표토록 했다.

 

촌장과 추장은 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영주도독에게 건의하여,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말뿐이었다. 유민들의 건의는 대부분 묵살되었고 더 많은 노역과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착취가 이어질 뿐이었다.

 

당나라는 ‘5가 1통’ 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주민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그것은 5가구를 하나의 통 단위로 묶어서 함께 노역도 하고 세금도 내게 하는 제도였는데 그것은 주민들 서로 서로를 감시하며 어떤 가구가 당나라에 반대하는 언행을 하면 밀고하게 만드는데 쓰였다. 밀고자에게는 상금을 주고 노역에서 제외시켜 주었기 때문에 살기가 궁핍한 그들은 스스로 감시자와 밀고자로 변해갔다. 또 당나라는 많은 밀정을 풀어서 주민을 감시했다. 이들의 밀고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멀쩡한 사람이 이유도 없이 끌려 들어갔다가 거적때기에 둘둘 말린 시체가 되어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노역에 꾀를 부렸다고 끌려가고, 세금을 제때 내지 못했다고 끌려갔다.

 

“이게 사람 사는 곳이야? 이건 지옥이야, 지옥!”

 

주민들은 당나라의 지나친 억압과 착취에 분노했지만, 나라 없는 백성은 그저 노예와 같은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홀한성을 쌓고 안정을 찾은 흑선우, 고사계, 대중상 그리고 대조영은 군막 안에 난로를 켜 놓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었다.

 

왕실과 귀족 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당나라로 끌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흑선우와 고사계는 침통해 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나야겠소. 우리 가족이 당나라로 끌려가고 있다 하니 쫓아가서 구해 내야 할 것 같소”

 

흑선우가 말했다.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의 가족도 끌려갔다고 하는데 나도 다녀오겠소.”

 

고사계는 요동성 성주인 탓에 아내와 아이들은 요동성에 데리고 와서 살았지만 다른 가족들은 평양성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대조영의 가족은 안시성에 있었기에 모두 이곳으로 안전하게 철수해 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주 쪽으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그쪽으로 가 봅시다. 대 장군은 당분간 이곳에 있으면서 대고구려의 재건을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시오. 지금 사방에서 고구려인들이 당나라에 저항하고 있으니 멀지 않아 온 겨레가 합심하여 일어서서 조국을 다시 일으킬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오. 나는 가족을 찾는 데로 돌아 올 것이니 그동안 힘을 아끼고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기를 바라오.”

 

흑선우가 대중상에게 말했다.

 

“저도 함께 영주로 가겠습니다.”

 

대조영이 문득 나섰다.

 

“아니, 자네는 찾을 가족도 없는데 왜 나서는가?”

 

흑선우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저도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네가 누굴 찾는단 말이야?”

 

대중상이 놀라서 물었다.

 

“미래를 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구해와야겠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

 

대중상은 아들이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서 물었다.

 

“평양성에 갇혀서 죽을 뻔한 나와 미추홀을 구해준 사람입니다.”

 

“오라, 그 숙영공주를 말하는구나.”

 

흑선우가 알겠다는 듯이 빙긋이 웃었다.

 

“어떻게 장군께서 그것을 아십니까?”

 

대조영이 놀라서 물었다.

 

“내 아들 원종이가 말하더구나. 그 공주라면 자네 같은 사내가 미래를 약속할만하지. 그런데 이전 전란에 무고하신지 걱정이구나.”

 

“아니, 네가 공주마마와 인연을 맺는단 말이냐?”

 

대중상이 궁금증을 더해서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닌데요. 저를 구해 주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구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람입니다.”

 

“자네가 간다는 것은 말리지는 않겠지만 왕족들은 당나라군이 특별한 관리를 해서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그것이 걱정이구나.”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대중상은 아들의 고집을 잘 아는 터라 말리지 않았다. 대조영이 영주로 떠난다고 하자 미추홀과 연헌성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연헌성은 요동성 탈출 작전에서 공을 세운 후, 자유로운 몸으로 풀려나서 홀한성을 쌓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연개소문의 자손답게 성격이 강하고 우직한 반면 아버지가 지은 죄를 자신이 속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며 성실한 자세로 일관해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으로 변신해 있었다. 대조영은 그를 가까이 두고 많은 것을 의논했는데 그는 자라나면서 보고들은 것이 남달라서 대조영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참모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조영은 미추홀과 연헌성을 데리고 떠날 것을 약속했다.

 

며칠 후, 수달피 장사꾼으로 변복한 흑선우와 그의 아들 흑원종, 고사계, 대조영, 그리고 그를 따르는 미추홀, 연헌성, 이렇게 여섯 사람은 눈보라 속에서 길을 떠나 영주로 들어섰다. 영주는 고구려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영주에는 아직도 강제 이주되고 있는 고구려 유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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