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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공연 "시대음악정신 고민"

김태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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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을 기념하여 코로나19가 사방을 장악한 형극을 뚫고 어렵게 기념공연으로 <야진연-사진>을 열었다.    ©국립 국악원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이다. 작년 국립극장 설립 70주년에 이어, 해방 후 대한민국의 민족문화를 선도해온 두 기관의 70주년을 기념하고 국립기관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두 기관을 축원해본다.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을 기념하여 코로나19가 사방을 장악한 형극을 뚫고 어렵게 기념공연으로 <야진연>을 열었다. 궁중의 주요의식인 연회(宴會)의 장면을 기록한 진연도(進宴圖)를 토대로 국운이 기울던 고종 때의 우울이 담긴 연향(宴饗)을 오늘 날 무대에 올렸다.

 

연향. 잔치야 말로 종합예술이다. 기로연 오늘날 말하면 환갑잔치인 셈이니 인생 축원이다. 춤과 음악이 그림으로 생생히 드러나는 <임인진연도병>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무대예술로 그려졌다. 임진년(1902년) 고종이 망육(望六), 즉 육십을 바라보는 51살에 들어 기로소에서의 기로연을 누차에 고종의 사양 끝에 이루어진 진연이라한다.

 

2021년 4월 9일에서 14일까지 공연된 <야진연>을 보았다. 1902년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하에 처한 상황이니, 고종이 사양한 이유를 알만하다. 그러나 수 많은 진찬도가 있음에도 굳이 고종때의 진찬도를 가지고 야진연을 공연무대화한 이유를 찾고자 유심히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조선조 궁중음악과 궁중정재의 극전성기로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해답은 아니지만 연출의 글에 있는 “보내는 자의 마음”이란 제목과 ‘ 혹시 순종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안식과 평안의 무릉도원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같은 선상에서 야진연도 그렇게 해석해 볼 수 있었다.’는 글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존해야할 전통문화유산을 시대를 담는 새로운 기술에 담아내었다. 전통적인 방법 대신 오늘날의 것들로 그릇을 만들어 세대의 사각지대 없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작품이 잘 전달되게 하고’ ‘뉴미디어라고 불리는 오늘의 창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징검다리가 생겨나고 전통은 이것을 거쳐 과거에서 내일로 훼손 없이 흐르게 될 것이다’ 라는 글을 통해 야전연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뉴미디어와 연향, 잔치형식의 예법의 흐름을 토대로 헌가(軒架)와 등가(登歌)로 된 악단의 음악을 그리고 재주(才)를 모아 바치는(呈), 화려한 궁중정재가 순서로 이어지며 잔치는 화려함을 더했을 것이다.

 

이날 공연 순서는 “정동방곡(조선 건국의 송도가)”,“제수창(나라의 융성과 군왕의 만수무강을 담은 춤)”, “여민락”, “장생보연지무(일월오봉도와 피어나는 궁중의 봄빛을 가상한 정재)”,“춘앵전(정재)”, “수제천”,“헌선도(천도를 바치며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정재)”, “학무,연화대무” “선유락(정재)”, “해령”으로 여몄다.

 

공연의 시종(始終)은 한편의 화폭처럼 단아하게 무대에 펼쳐졌다. 무대 양쪽에 악단이 올라있고, 가운데는 용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그리고 궁중정재의 정중동의 춤이 펼쳐지고, 그리고 무릉도원의 꿈을 그리듯 뉴미디어아트가 펼쳐졌다.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과의 거리두기인지, 대상화된 흡사 무대에 갇힌 독짓는 옹(翁)의 모습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의 흐름에서 대취타가 들어오는 선유락을 통해 판의 흥취를 높일 수 있었고, 학연화대무 합설을 통해 화려함을 펼칠 수 있었고, 궁중음악의 백미인 수제천과 해령을 통해 특히 이들 음악의 연음구조를 이용한 연주를 통해 색다른 묘미를 연출할 수 있었는데, 보통 공연을 통해 관객과 주고받는 호흡이나 감동창출의 기재가 전혀 발휘되지 않은 답답함과 아쉬움을 느꼈다.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이 갖는 시공간적인 차이가 있다. 시공을 초월한 환상적인 호흡의 역동적인 장면을 관객은 기다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살아오는 역사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화폭에서 살아오는 진연도의 생생함을 어찌 무대예술로 감동적으로 그려낼까 앞으로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조선의 성리학이 구가한 성정미학(性情美學)과 품격론(品格論)을 어찌 무대화폭에 담을까는 앞으로 <야진연>과 같은 재현공연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이와 같은 공연을 통해 국립국악원의 존재이유를 알 수 있고, 국립국악원만이 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평이 있다. 공연을 보면 형식으로 굳어진 악단 포맺이나 시종 영산회상류의 향당교주, 그리고 단조로운 정재의 몸동작만 남았다. 국립국악원이 70년동안 남긴 성과를 무엇인가 생각이 공연을 보는 내내들었다.

 

과연 연출의 글처럼 ‘오늘의 창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징검다리가 생겨나고 전통은 이것을 거쳐 과거에서 내일로 훼손 없이 흐르게 될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조선조 내내 돌고돌아 이루어진 영산회상과 삼현육각패들의 음악 그리고 당악정재를 간소화한 향악정재, 그리고 문화재가 테두리 안에서 원형보존에 갖혀 전승된 정재춤의 전통을 보면 화석화된 세월의 존망을 느낀다. 과연 저와 같은 전통은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시대에 어떤 의미와 삶의 희망을 줄까. 조선조 궁중연향이나 제례, 아직 무대화하지 못한 군례의 현대화는 여전한 과제다.

 

독 짓는 옹의 모습같이 시종 향당교주를 타고 있는 홍주의를 입은 악단을 보며, 국립국악원 70년 역사를 무엇을 남겼는가 생각해본다. 두 개의 악단은 분명 양부악(兩部樂)의 전통이다. 당악이 들어오니 좌방에는 당악과 우방에는 향악이, 그리고 아악이 들어오니 아악은 좌방에 당악과 향악은 우방을 이루며 궁중음악의 전통이 이루졌다. 그리고 댓돌 위 아래 음양을 조화하며 등가,헌가의 악단 연주가 이루어졌다. 훼손 없이가 아니라 신구의 충돌과 조화를 통해 새로운 전통의 부단한 창출이 바로 생명력이다. 세종의 신악 창제정신이 그렇지 아니한가.

 

무형문화재라는 무형박물관에 갇힌 형해화된 낡은 전통의 왜소함을 벗어나 조선문화의 위대한 재현과 창조가 기다려진다. 그런 면에서 조선문화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의미를 심도있게 고민해야한다. 국립국악원이 궁중의식 재현과 창조라는 현장성 복원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의 궁궐이라는 공간을 이제 시간예술인 공연을 결합하여 현장성을 높이고,세계적인 독특한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들어야 전통의 본래의미가 산다.

 

시대에 대한 긍정성도 살아난다. 국립국악원, 이제 궁중아악이든 궁중의례든 조선의 찬란한 전통의 회복을 위해 담힌 공연장이 아닌 궁궐문화 창출을 위한 존재전환을 해야 할 때이다. 70년동안 지원해준 국민에 대한 보답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이제 서초동에 있는 음악당, 오페라극장, 국립국악원으로 본말이 전도된 현실을 반성해보고 국립민족음악원으로 위상 전환도 고민해볼 시점이다. 국립국악원 70년을 돌아보며, 이제 환골탈퇴를 통해 시대음악정신을 고민해 본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 김태균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National Gugak Center's 70th Anniversary Performance "Contemplating the Musical Spirit of the Age"

"Through today's window, a stepping stone of the past and the future will be created, and tradition will flow from the past to tomorrow without damage."

-Kim Tae-gyun columnist

 

It is the 70th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Following the 70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National Theater last year, I wish to commemorate the 70th anniversary of the two institutions that have led the national culture of Korea after liberation, and wish two institutions that boast of their dignity as national institutions.

 

In commemoration of the 70th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the ``Yajinyeon'' was held as a commemorative performance, breaking through the tragedy where Corona 19 dominated all directions. Based on Jinyeondo (進宴圖), which recorded the scene of a banquet, the main ritual of the royal court, he put on the stage today a song containing the melancholy of Gojong's inclination.

 

Incense. The feast is truly a comprehensive art. Ki Ro-yeon Today, it is a 60th birthday party, so it is a wish of life. <Im In Jin Yeon Do Byeong>, in which dance and music are vividly revealed through paintings, was drawn as a stage art on the stage of Yeakdang, National Gugak Center. In the year of Imjin (1902), when King Gojong was 51 years old looking at the sixties, the Giroyeon at Giroso is called the Jinyeon after Gojong's declination.

 

I watched <Ya Jinyeon>, which was performed from April 9th ​​to 14th, 2021. In 1902, the country's destiny was under a storm, so it is worth knowing why Gojong refused. However, even though there are many Jinchandos, I tried to find out the reason why Ya Jinyeon was staged with Jinchando during the Gojong period, but the proper answer could not be found. This is because it is not the peak period for the royal music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royal court jeongjae.

 

It is not necessarily the answer, but the title of “Sender's Heart” in the director's writing and “Isn't it possible that obedience wanted to present the Mureungdowon of rest and peace to his father? Then, on the same line, Ya Jin-yeon could have interpreted it that way.' And'the traditional cultural heritage that we need to preserve has been put in a new technology that captures the times. Instead of the traditional method, we make vessels with today's things so that the works are well delivered to us today without the blind spots of generations.'Through the window of the day called new media, a stepping stone bridge of the past and the future is created, and the tradition goes through this from the past. You can read the intention of the field show through an article that says, "It will flow without damage tomorrow."

 On the basis of the flow of new media, reunion, and courtesy of the feast type, the music of the orchestra in Heungga and the equivalent (登歌) is presented, followed by a splendid court jeongjae (呈), followed by a feast. Would have added splendor.

 

The order of the performances on this day was “Jeongdongbanggok (Songdo of Chosun's founding country)”, “Jesuchang (dance of the prosperity of the country and the Mansumugang of the king)”, “Minrak Yeo”, “Jangsaengbo Yeonjimu (Ilwol Obongdo and the blooming palace) 'Jeongjae, which simulates the spring light of the children')”, “Chunakjeon (Jeongjae)”, “Sujecheon”, “Heonseondo (Jeongjae praying for the longevity of the king by offering a thousand islands)”, “Hakmu, Yeonhwadaemu” “Seon Yu-rak (Jeongjae)”, It was opened as “Haeryeong”.

 

The beginning of the performance was gracefully unfolded on the stage like a canvas. There were bands on both sides of the stage, in the middle there was a staircase going up to a dragon statue, and a dance of Jeong Jung-dong by the royal court was unfolded, and new media art unfolded as if drawing a dream of Mureungdowon.

 

As I watched the performance, I felt that it was a distance from the audience, or that it was like a poisonous ong trapped in a stage like an object. In the flow of the performance, Daechwi-ta was able to enhance the enjoyment of the pan through the seonyu-rak, and through the Hakyeonhwa Daemu joint venture, it was possible to unfold the splendor, and through Sujecheon and Haeryeong, the highlights of the royal music, specially performed using the link structure of these music. Through this, I was able to create a different taste, but I felt frustrated and regretful that the description of creating emotions or breathing exchanged with the audience through normal performances was not exhibited at all.

 

There is a difference in time and space between performing arts and visual arts. The audience waits for the dynamic scene of fantastic breathing that transcends time and space. And through this, you can feel the historical emotion that comes to life. How to express the vividness of Jinyeon-do living on the canvas with stage art is an important assignment in the future. In addition, how to put the theory of sexuality and dignity in the scene of the Joseon's Sung Confucianism is an important issue in recreated performances such as <Yajinyeon> in the future.

 

Through this performance,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the reason for the existence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through such a performance, and it is criticized that it is a performance that only the National Gugak Center can perform. Looking at the performance, only the movements of the orchestra Pokool solidified into the form, the Hyangdang Gyoju from the beginning of the year, and the monotonous movement of Jeong Jae were left. I heard some thoughts about the achievements that the National Gugak Center had left over the past 70 years while watching the performance.

 As in the direction of the director's writing, what is'the stepping stone of the past and the future will be created through the window of the day, and tradition will flow from the past to tomorrow without damage' through this! I think about it.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you can feel the existence of fossilized years when you look at the tradition of the Yeongsan recollection, the music of the three strings of six strings, the hyangakjeongjae, which was simplified from the Dangakjeongjae, and the tradition of Jeongjaedance, inherited from the original preservation of cultural assets. What meaning and hope of life will a tradition like me give to the Republic of Korea? The modernization of the Joseon Dynasty's royal courts, rituals, and military rites that have not yet been staged remains a task.

 

Looking at an orchestra dressed in Hongju, riding on Hyangdang Gyoju from beginning to end, like a poisonous ong, think about what left the 70-year history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The two bands are clearly a tradition of Yangbuak (兩部樂). When Dangak came in, Dangak and Hyangak were on the left, and Hyangak was on the right, and Dangak and Hyangak were on the right, and the tradition of court music was fulfilled. In addition, the orchestra of Eungga and Heonga were performed by harmonizing the yin and yang on the top and bottom of the Daetdol. The vital force is the constant creation of new traditions through conflict and harmony between old and new, not without damage. Isn't Sejong's spirit of creation of new music?

 

I am looking forward to the great reproduction and creation of Joseon culture, freeing from the dwarfness of the old tradition that has been confined to the intangible museum called an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In that sense, we need to think deeply about the lessons and meanings of Joseon culture to us today. The National Gugak Center must consider a plan for restoring the presence of the court consciousness and creation. The original meaning of tradition can be lived when the world cultural heritage palace is now combined with time-art performances to enhance the practicality and become a world-class unique cultural tourism product.

 

The positivity for the times also comes alive. Now is the time for the National Gugak Center to change existence to create a palace culture, rather than a performance hall for the restoration of the splendid tradition of Joseon, whether it is a royal music or a royal ritual. I think it is in return for the people who have supported them for 70 years. In addition, it is time to reflect on the reality that the original language has been transferred to the Music Hall, Opera Theater, and National Gugak Center in Seocho-dong and consider the transition to the National Academy of Music. Looking back at the 70 years of the National Gugak Center, we will now consider the music spirit of the era through the withdrawal of the Hwa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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