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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굴 대특종]전봉준 장군의 가족과 후손들의 삶

박용규 박사 l 기사입력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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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전봉준의 손자 전익선(1909∼1998)이 아들 전장수(1958∼현재, 64살.)에게 입말로 전해준 내용을 전장수가 기록하였는데, 아래의 글은 전장수가 기록하여 필자에게 보내준 자료에 의거하여, 필자가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없었던 내용이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전봉준의 첫째 부인 여산 송씨

 

여산 송씨(1851∼1877, 27세.)는 1851년 8월 16일 송두옥의 딸로 태어났다. 25세가 되던 1875년에 여산 송씨는 21살인 전봉준(1855∼1895)과 결혼하였다. 결혼한 다음 해에 장녀 전옥례를 낳았다. 그 다음 해에 차녀 전성녀를 낳았다.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았다. 이로 인해 몸이 약한 여산 송씨는 둘째 딸을 낳다가 1877년 4월 24일에 27살 나이로 서거하였다. 

 

전봉준의 전처가 죽은 것도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았기 때문에, 산모의 몸이 견디질 못해 죽게 된 것이라고 전익선이 말씀하였다.(「동학대장 전봉준 장군 후손들의 삶」(이하 「후손들의 삶」으로 약칭), 6쪽)

 

 

전봉준 장군이 일본영사관에서 심문을 받은 뒤에 찍은 마지막 모습(1895년 2월 27일). 2015년 고 양상현 교수가 전봉준 사진을 발굴 공개함 Ⓒ 양상현    ©브레이크뉴스

 

전봉준의 둘째 부인 이순영

 

이순영(李順瑛, 1860∼1903, 44세.) 은 남평이씨 이문기의 딸로 1860년 9월 15일에 태어났다. 청상과부로 있던 남평이씨 이문기의 딸 이순영이 젖이 잘 나와 젖어미로 들어와 전성녀와 전옥례를 키웠다. 자연스럽게 이순영은 전봉준과 함께 살게 되었고, 1877년 이순영이 18살 때에, 전봉준과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결혼하였다. 1879년 장남 전용규와 1882년 차남 전용현을 낳았다. 

 

35살이 되던 1894년에 장남이 폐병이 걸려서, 차남 전용현을 출가한 큰 딸 전옥례에게 맡겨야 했고, 차녀 전성녀를 비구니로 절에 보내야만 하였다. 36살 때인 1895년에는 남편 전봉준이 처형당해 죽고, 자신은 장남 전용규를 데리고 토굴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37살 때인 1896년에 폐병을 앓던 장남 전용규가 죽었고, 자신도 폐병에 걸렸다. 이순영은 차녀 전성녀가 혼인을 하게 되어 함께 살았으나, 폐병이 악화되어 1903년 9월 14일에 44세로 사망하였다.(「후손들의 삶」, 7∼11쪽)

 

▲ 전봉준 장군의 가계도(전장수 박사 제공) Ⓒ 전장수     ©브레이크뉴스

 

전봉준의 장녀 전옥례   

 

전옥례(1876∼1970, 95세.)는 아버지 전봉준과 어머니 여산 송씨 사이에서 1876년에 큰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전봉준의 나이가 38살이 되던 1892년에 장녀 전옥례(17살)가 지금실에 사는 강씨 집안 남자와 혼인하였다. 이 혼사는 아버지 전봉준의 친구인 김개남이 중매하였다. 전옥례가 남동생 전용현을 데리고 있었다.(「후손들의 삶」, 8쪽) 

 

1969년 전익선(61살)이 환갑 때 장남 전장수를 데리고 자신의 고모인 전옥례(94세)를 만나러 갔다. 전옥례는 자신이 “전봉준 장군의 친딸이다.”라고 말했다. 전옥례가 조카 손자인 전장수에게 “들키지 않게 꼭꼭 잘 숨어 있다 죽지 말고 잘 커서 꼭 대를 이으라.”라고 말씀하였다. 1970년 전옥례가 95세로 서거하였다. 전익선(62살)이 문상을 갔다.(「후손들의 삶」, 21쪽) 

 

신복룡 교수의 연구(<전봉준평전>에 의해, 장녀는 ‘고부댁’으로 불리어졌고, 강씨 집안 남자는 강장언으로 밝혀졌다. 신 교수는 고부댁이 딸 강금례의 생모이고, 강금례는 1921년에 박영주와 결혼하여 아들 박승규(1986년 사망)를 두었다고 기술하였다,

 

전봉준의 차녀 전성녀

 

전성녀(1877∼?)는 아버지 전봉준과 어머니 여산 송씨 사이에서 1877년에 차녀로 태어났다. 여산 송씨가 1877년 4월 24일 차녀 전성녀를 낳다가 사망하였다.

 

청상과부로 있던 남평이씨 이문기의 딸 이순영이 젖이 잘 나와 젖어미로 들어와 전성녀와 전옥례를 키웠다. 자연스럽게 이순영은 전봉준과 함께 살게 되었고, 전봉준은 이순영과 재혼하였다. 

 

전성녀는 1894년 동생 전용규가 폐병에 걸리자, 절에 비구니로 들어갔다. 어머니 여산 송씨의 친 오빠가 스님으로 있어서 전성녀가 비구니가 된 것이었다. 1898년 비구니 전성녀가 이씨 집안 남자를 만났다. 1899년 전성녀는 23살에 이씨 집안 남자와 결혼하였다. 전성녀는 자신이 전봉준의 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성과 이름을 ‘김옥련’으로 바꾸었다. 모친 이순영을 모시고 생활하였다.(「후손들의 삶」, 9∼11쪽)

 

1903년 전성녀가 27살 일 때, 모친 이순영이 폐병으로 44살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전장수 박사는 전성녀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신복룡 교수의 연구(<전봉준평전>)에 의해, 전성녀가 결혼한 이씨 집안 남자는 이영찬으로 밝혀졌다. 이영찬과 전성녀는 5남 4녀를 두었다. 그 가운데 아들 이주석, 손자 이희종이 있음이 알려졌다. 신 교수는 김옥련이 1970년 1월 5일에 작고하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전성녀는 94세에 서거한 셈이다. 

 

전봉준의 장남 전용규 

 

전용규(全龍圭, 1879∼1896, 18세.)는 1879년 아버지 전봉준과 어머니 남평이씨 이순영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봉준의 나이 25살 때에 장남이 태어난 것이었다.

 

1894년 전용규가 16살 때에 폐병에 걸렸다. 남동생 전용현은 폐병 전염을 막고자 시집간 큰 누나 전옥례 집으로 보내졌다. 아버지 전봉준이 1895년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어머니 남평이씨 이순영이 장남 전용규를 데리고 산에 들어가 토굴을 파고 함께 숨어 지냈다. 

 

1896년 18살이 되던 전용규가 토굴에 숨어 살다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족보에 전용규는 전동일(全東一)로 기재되었다.(「후손들의 삶」, 7∼9쪽) 

 

전봉준의 차남 전용현  

 

전용현(全龍鉉, 전의천, 1882∼1941, 60살.)은 1882년에 아버지 전봉준과 어머니 남평이씨 이순영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전용현은 어릴 때 집에서 사용한 이름이었다. 아버지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을 이끌고 있던 1894년에 전용현은 형 전용규의 폐병 감염을 피하고자, 누나 전옥례 집으로 들어갔다. 1895년에 아버지 전봉준이 처형되었다. 누나 전옥례가 아버지 전봉준이 처형된 뒤에, 동생 전용현의 이름을 ‘전의천’으로 바꾸어주었다. 1896년 친형 전용규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16살이 되던 1897년 전용현(전의천)은 도박 빚 때문에 전옥례 집에서 쫓겨났다.(「후손들의 삶」, 8∼10쪽) 

 

누나 집을 나온 전용현(전의천)은 24살이 되던 1905년에 함평에서 처녀 이양림을 만났다. 25살이 되던 1906년에 전용현(전의천)이 함평이씨 이춘경의 딸 이양림과 혼인하였다. 무안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1906년에서 1925년까지 약 20년간 무안에서 서당 훈장을 하여 생계를 이어갔다. 1909년에 장남 전상원(전익선;호적에 올려진 이름)이 태어났다. 1919년 38살이 되던 해에 전용현(전의천)이 아버지 전봉준의 유해를 한양에서 가져와 정읍 비봉산 자락에 이장하였다.(「가족사 내용에 관해 생각나는 것들」, 5쪽)

 

1920년에 아들 전익선이 12살에 몰래 가출하자, 1924년에 전용현(전의천)의 아내 이양림이 딸 셋을 데리고 친정인 함평으로 가서 지냈다. 1925년 44살이 되던 전용현(전의천)이 무안에 있는 집을 나와서 가출한 아들 전익선을 찾으러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후 전용현(전의천)은 15년 동안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1926년에 아내 이양림이 함평에서 40살에 사망하였다. 이양림은 함평의 무덤에 안치되었다.

 

1941년 전용현(전의천)이 전남 목포에서 60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목포 유달산 기슭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1952년 아들 전익선이 목포에 머물 때, 부친 전용현(전의천)의 유해를 수습하여 함평 곤봉산에 묻혀있는 모친의 묘소 옆에 이장하였다.(「후손들의 삶」, 14∼15쪽).

 

전용현(전의천)의 묘비(위치는 함평 곤봉산.) 묘비가 ‘천안전공의천지묘(天安全公儀千之墓)’로 되어 있다. Ⓒ 전장수    ©브레이크뉴스

 

족보에는 전용현(전의천)이 전동길(全東吉)로 기재되어 있고, 전태호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다. 제적등본에는 아버지 전민화(全民化)와 어머니 이순영(李順瑛)의 장남으로 전의천(全儀千)이 기재되어 있고, 전의천의 생년월일이 1882년 9월 9일로 기록되어 있다.

 

전봉준의 손자 전익선

  

전익선(全益善, 1909∼1998, 90살.)은 1909년 아버지 전용현(전의천)과 함평이씨 이양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용현(전의천)은 서당 훈장을 하면서 자신의 선대들로부터 자신까지 계속 훈장 일을 하였기 때문에 아들 전익선에게 엄하게 가르쳤다. 전익선은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소학 등을 배웠다. 아버지가 너무 무섭고 엄하게 가르쳐서 전익선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1920년에 부친 전용현(전의천)이 공부를 가르칠 때 매를 들어 혼내서, 전익선(12살)이 몰래 가출하였다.(「가족사 내용에 관해 생각나는 것들」, 5쪽) 

 

1941년 전남 목포에서 전용현(전의천)이 사망하였다. 1952년 전익선이 목포에 머물 때, 유달산 근처의 공동묘지에 있던 부친인 전용현(전의천)의 유해를 수습하여 함평 곤봉산에 묻혀있는 모친의 묘소 옆에 이장하였다.

 

▲ 전장수 박사의 부친 전익선(1960년대 후반쯤의 전익선, 가운데가 전익선.)  Ⓒ 전장수  ©브레이크뉴스

 

1953년 45살이 되던 해, 전익선이 서울로 올라가 광산김씨 김석권의 딸 김연임을 만나 재혼하였다. 막노동을 하였다. 1956년에 장녀 전영자가 태어났고, 1958년 장남 전장수(전우석)가 태어났다. 1966년 아내 김연임이 생선 행상을 하며, 살림을 꾸려갔다. 

 

1971년 전익선이 장남 전장수(14살, 대광중학교 1학년 때)를 데리고, 정읍 비봉산에 묻혀 있는 조부 전봉준 장군 묘소를 찾아갔다. 전익선이 전장수에게 “너의 증조부는 비봉산에 묻혀 있고,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곤봉산에 묻혀 있으니, 이를 절대로 잊지 말라.”라고 말씀하였다. 묘소에 ‘장군천안전공지묘(將軍天安全公之墓)’라고 쓰여진 비석 하나만 서 있어서, 전장수가 부친에게 “어떻게 이 글자만 가지고서 이 무덤이 전봉준 장군의 무덤인 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부친 전익선은 “내가 친손자인데, 어찌 손자가 자기 친할아버지의 무덤을 모르겠느냐”고 말씀하였다고 한다.(「후손들의 삶」, 21쪽)

 

1975년 전장수(18살)가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전장수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 전익선에게 “할아버지의 어릴 때 이름이 무엇이었냐”라고 묻자, 부친 전익선이 “할아버지의 어릴 때 이름은 ‘전용현’인데, 할아버지의 누나(지금실로 시집간 누나 전옥례)가 ‘전의천’으로 새로 바꾸어 주었다.”라고 말씀해 주었다고 한다.(「가족사 내용에 관해 생각나는 것들」, 7쪽)

 

1982년 74살이 된 전익선이 족보를 바로 잡기 위해, 종친 사람인 전만길씨를 만났다. 1984년 ‘천안전씨대동보(문효공파)’의 족보를 만들 때, 전익선(76살)은 족보에다 전용현의 직계 후손으로 본인 전익선과 장남 전장수 및 차남 전용석을 올리기 위해, 전만길씨에게 ‘족보등재’ 비용으로 20여 만 원을 건네주었다. 전익선은 전병호가 전봉준임을 족보에다 밝히고, 전병호의 친자 ‘동일’이 전봉준의 장남 ‘용규’인 것과, 전태호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는 ‘동길’이, 전봉준의 차남 ‘용현’인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바로 잡아서 반드시 고쳐 놓겠다고 전장수에게 말씀하였다고 한다.(「후손들의 삶」, 18∼19쪽)

 

1998년 전익선이 12월 17일(음 10, 29일)에 노환으로 90살에 서거하였다. 전장수는 부친 전익선의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한 후에, 그 유골함으로 가져다가 함평 곤봉산에 있는 조부모님의 묘소 앞에다 묻었다. 전익선은 “전봉준 장군의 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가매장으로 자신을 묻어 놓으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4회로 계속). hispak@hanmail.net

 

▲필자/ 박용규 박사.    ©브레이크뉴스

 참고자료: 전장수, 「동학대장 전봉준 장군 후손들의 삶」(2018, 26쪽), 「도표 전봉준 장군의 가계도」(2018, 3쪽), 「연표정리 전봉준 장군 가계의 역사」(2018, 16쪽), 「가족사 내용에 관해 생각나는 것들」(8쪽), 기타 2건 자료. 

 

*필자/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고려대 사학과 박사.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The life of General Bong-jun Jeon's family and descendants

[Excavation-Exclusive Interview-Part 3] Interview with Dr. Jang-soo Jeon...Truth inherited by mouth, confession at the end of a long and long silence

-Dr. Yonggyu Park

 

The following was recorded by Jeon Bong-jun's grandson Jeon Ik-seon (1909-1998) to his son Jeon Jang-soo (1958-present, 64 years old). So, let me know that I have reconstructed it. This is something that has not been found in previous studies, so I introduce it here.

 

Jeon Bong-jun's first wife, Yeosan Song

 

Yeosan Song (1851-1877, 27 years old.) was born on August 16, 1851 as the daughter of Song Doo-ok. In 1875, when she turned 25, she married Jeon Bong-joon (1855-1895), 21 years old, from Yeosan Song. The year after she married, she gave birth to the eldest daughter, Jeon Ok-rye. The following year she gave birth to her second daughter, former saint. She was born in a year and had two daughters. Because of this, she was weak and she gave birth to her second daughter, Yoosan Song, and she died on April 24, 1877 at the age of 27.

 

Jeon Bong-joon's ex-wife died as a child, so Ik-sun Jeon said that the mother's body could not bear it and died. , Page 6)

 

The last image taken by General Bong-joon Jeon after being interrogated at the Japanese Consulate (February 27, 1895)

 

In 2015, Professor Sang-Hyun Goh discovered and published a photograph of Bong-Jun Jeon Ⓒ Sang-Hyun Lee

 

Jeon Bong-jun's second wife, Lee Soon-young

 

 Lee Soon-young (李順瑛, 1860-1903, 44 years old.) was born on September 15, 1860, the daughter of Nampyeong-i's Lee Moon-gi. Lee Soon-young, the daughter of Nampyeong-i's Lee Moon-gi, who was her Cheongsang widow, came in as her mother, who had her milk well, and raised Jeon Ok-rye with the former saint. She naturally lived with Lee Soon-young and Jeon Bong-jun, and she married Jeon Bong-jun and Jeong Han-soo in 1877 when Lee Soon-young was 18 years old. In 1879, she gave birth to the eldest son Yong-gyu Jeon and the second son Yong-hyeon Yong-hyeon in 1882.

 

In 1894, when she was 35 years old, her eldest son fell ill, and she had to leave her second son Jeon Yong-hyeon to her eldest daughter, Jeon Ok-rye, who had been married, and her second daughter, former saint, had to be sent to the temple as a nuns. In 1895, when she was 36 years old, her husband Jeon Bong-jun was executed and killed, and she took her eldest son Jeon Yong-gyu to a crypt and lived in hiding.

 

In 1896, when he was 37 years old, the eldest son Jeon Yong-gyu, who was suffering from lung disease, died, and himself suffered from lung disease. Lee Soon-young lived with her younger daughter, and her former saint married, but her lung disease worsened and she died at age 44 on September 14, 1903. (“Life of Descendants”, pp. 7-11)

 

  Family tree of General Bong-Jun Jeon (provided by Dr.

 

Jeon Bong-jun's eldest daughter, Jeon Ok-rye

 

Jeon Ok-rye (1876-1970, 95 years old.) was born in 1876 to her father Bong-joon Jeon and her mother Song, Yeosan. In 1892, when her father Bong-joon Jeon was 38, her eldest daughter, Jeon Ok-rye (17 years old), married a man from Kang's family who now lives in Sil. This marriage was arranged by Kim Gae-nam, a friend of his father Bong-joon Jeon. Jeon Ok-rye had her younger brother Jeon Yong-hyun (“Life of Descendants”, p. 8)

 

In 1969, when Ik-seon (61) was 60th birthday, she took her eldest son Jeon Jang-soo to meet her aunt Jeon Ok-rye (94 years old). She said Jeon Ok-rye, she herself, and she said, “She is the real daughter of General Bong-joon Jeon.” She told Jeon Ok-rye to her nephew's grandson, Jeon Jang-su, that she “hides so well that she could not be found. Don’t die, grow up well, and join the family.” In 1970, Jeon Ok-rye died at the age of 95. Ik-seon Jeon (62 years old) went to mourning. (“The Life of Descendants”, p. 21)

According to Professor Bok-ryong Shin's research (<Bongjunpyeongjeon Jeon>, the eldest daughter was referred to as the'high father's family', and the man in the family of Kang was identified as Kang Jang-eon. Professor Shin was the birth mother of his daughter Kang Geum-rye, and Kang Geum-rye in 1921 It was described that he married Park Young-ju and had a son Park Seung-gyu (died in 1986).

 

Jeon Bong-jun's second daughter, Jeon Seong-nyeo

 

The former saint (1877~?) was born in 1877 to her father Bong-jun Jeon and Song Yeo-san as the second daughter. Yeosan Song died on April 24, 1877 while giving birth to her youngest daughter.

 

Lee Soon-young, the daughter of Nampyeong-i's Lee Moon-gi, who was her Cheongsang widow, came in as her mother, who had her milk well, and raised Jeon Ok-rye with the former saint. Naturally, Lee Soon-young lived with Jeon Bong-jun, and Jeon Bong-jun remarried with Lee Soon-young.

 

In 1894, the former saint-nyeo, when her younger brother Yong-gyu fell into a lung disease, and she entered the temple as a nuns. Her mother, Yeosan Song's brother, was her monk, so the former saint became her nun. In 1898, a former bhikkhuni met a man from Lee's family. 1899 years ago, at the age of 23, she married a man in Lee's family. In order to hide that she is the daughter of Jeon Bong-joon, the former saint-nyeo changed her first and last name to "Kim Ok-ryun." She lived with her mother, Lee Soon-young (“Life of Descendants”, pages 9-11).

 

In 1903, when St. Mary was 27, her mother, Lee Soon-young, died of lung disease at the age of 44. Dr. Zhen Zhang said that she did not know when her former saint and her grandmother died.

 

According to Professor Bok-ryong Shin's research (<Jeon Bong-Jun-Pyeongjeon>), the man of the Lee family, whom Jeon Sung-nyeo married, was identified as Lee Young-chan. Lee Young-chan and Jeon Seong-nyeo had 5 boys and 4 girls. Among them, it is known that there are son Joo-seok Lee and grandson Lee Hee-jong. Professor Shin said that Ok-ryun Kim died on January 5, 1970. Then she died at the age of 94, the former saint.

 

Jeon Bong-jun's eldest son, Jeon Yong-gyu

 

 Jeon Yong-gyu (1879-1896, 18 years old.) was born in 1879 as the eldest son of his father Bong-jun Jeon and his mother, Soon-young Lee, Nam Pyeong-i. The eldest son was born when Jeon Bong-jun was 25 years old.

 

In 1894, Jeon Yong-gyu fell sick at the age of 16. His younger brother Jeon Yong-hyun was sent to Jeon Ok-rye's house, his eldest sister, who was married to prevent the spread of lung disease. His father, Bong-joon Jeon, passed away by hanging in 1895. Nampyeongi's mother, Lee Soon-young, took her eldest son Jeon Yong-gyu into the mountain, dug a crypt and hid together.

 

In 1896, Jeon Yong-gyu, who turned 18 years old, died of a lung disease while hiding in a crypt. In the genealogical tree, Jeon-gyu is written as Jeondong-il (“Life of Descendants”, p. 7~9).

 

Jeon Bong-jun's second son, Jeon Yong-hyeon

 

Jeon Yong-hyun (Jeon Eui-cheon, 1882-1941, 60 years old.) was born in 1882 as the second son of his father Bong-jun Jeon and his mother, Pyeong-i Lee, Soon-young. It was the time when Imohgunran took place. Jeon Yong-hyun was the name he used at home when he was young. In 1894, when his father Bong-jun Jeon was lead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Yong-Hyun Lee entered the house of his older sister Jeon Ok-rye to avoid the lung disease infection of his older brother Yong-gyu. In 1895, his father, Bong-jun Jeon, was executed. After his older sister Jeon Ok-rye changed his younger brother Jeon Jeon's name to "Jeonuicheon" after his father Bong-jun Jeon was executed. In 1896, his brother Jeon Yong-gyu died of a lung disease. In 1897, when he turned 16, Jeon Yong-hyeon (Jeonuicheon) was expelled from Jeonokrye's house because of a gambling debt (“The Life of Descendants”, pages 8-10).

 

Jeon Yong-hyeon (Jeon Ui-cheon), who left his sister's house, met his maiden Lee Yang-rim in Hampyeong in 1905 when he was 24 years old. In 1906, when he was 25 years old, Jeon Yong-hyeon (Jeonui-cheon) married Lee Yang-rim, the daughter of Mr. Hampyeong-i Lee Chun-gyeong. He began his honeymoon in Muan. He earned his livelihood from 1906 to 1925 by serving as a Seodang medal in Muan for about 20 years. In 1909, the eldest son Jeon Sang-won (Jeon Ik-seon; the name on his family register) was born. In 1919, when he was 38 years old, Jeon Yong-hyeon (Jeonuicheon) brought the remains of his father Bong-jun Jeon from Hanyang and moved it to the foot of Mt. Bibong, Jeongeup.

 

In 1920, when his son Jeon Ik-seon secretly ran away at the age of 12, in 1924, Lee Yang-rim, the wife of Jeon Yong-hyun (Jeonuicheon), went to Hampyeong, his father, with his three daughters. In 1925, 44-year-old Jeon Yong-hyeon (Jeonuicheon) left his house in Muan and began wandering the country to find his son, Jeon Ik-seon, who had run away. Since then, Yong-Hyeon Lee (Jeonuicheon) has lived and wandered for 15 years.

 

In 1926, his wife Yang-rim Lee died in Hampyeong at the age of 40. Lee Yang-rim was enshrined in the tomb of Hampyeong.

 

In 1941, Jeon Yong-hyeon (Jeonuicheon) died at the age of 60 in Mokpo, Jeollanam-do. She was enshrined in a cemetery at the foot of Yudal Mountain in Mokpo. When his son Jeon Ik-seon stayed in Mokpo in 1952, he recovered the remains of his father Jeon Yong-hyeon (Jeonuicheon) and moved it next to his mother's mausoleum buried in Gonbong Mountain, Hampyeong.

 

The tombstone of Yong-hyeon (Jeonuicheon) (located at Gonbongsan Mountain in Hampyeong) is made up of the “Cheon-Sung Gong's Cheonji-Myo (天安全公儀千之墓)”. Ⓒ Battlefield number

 

In the genealogy, Jeon Yong-hyeon (Jeonuicheon) is described as Jeondong-gil, and it is registered as the adopter of Jeon Tae-ho. In the copy of the weeding, Jeon Ui-cheon is the eldest son of his father, Jeon Minhwa and his mother, Lee Soon-young, and the date of birth of Jeon Ui-cheon is recorded as September 9, 1882.

 

Jeon Bong-jun's grandson Ik-seon Jeon

  

Jeon Ik-seon (Jeon Ik-seon, 1909-1998, 90 years old.) was born in 1909 as the eldest son to his father Yong-hyeon Yong (Jeon Ui-cheon) and Yang-rim Lee of Mr.

 

Jeon Yong-hyun (Jeon Ui-cheon) sternly taught his son Ik-seon Jeon because he continued to serve as a medal from his ancestors to himself while serving as the Seodang Medal. Jeon Ik-seon learned Cheonjamun and Sohak from his father. Ik-seon Ik-seon couldn't study properly because his father taught him so scary and strict. This disappointed and angered his father. In 1920, when his father Jeon Yong-hyeon (Jeon Ui-cheon) was teaching his studies, he was punished by a falcon, and Ik-seon (12 years old) secretly ran away from home.

 

In 1941, Jeon Yong-hyeon (Jeonuicheon) died in Mokpo, Jeollanam-do. When Ik-seon stayed in Mokpo in 1952, he recovered the remains of his father Yong-hyeon (Jeonuicheon) in a cemetery near Mt. Yudal, and moved it next to his mother's mausoleum buried in Mt.

 

 Ik-seon Jeon, the father of Dr. Jang-soo Jeon (Ik-seon Jeon in the late 1960s, Ik-seon Jeon in the middle.) Ⓒ Jang-soo Jeon

 

In 1953, at the age of 45, Jeon Ik-seon went up to Seoul to meet Kim Yeon-im, the daughter of Kim Suk-gwon of Gwangsan Kim, and remarry. He worked hard. The eldest daughter Jeon Young-ja was born in 1956, and the eldest son Jeon Jang-soo (Jeon Woo-seok) was born in 1958. In 1966, Kim Yeon-im, his wife, went to live in a fish market.

 

In 1971, Jeon Ik-seon took his eldest son Jeon Jang-soo (14 years old, when he was a freshman in Daekwang Middle School) to visit the graveyard of his grandfather General Bong-jun Jeon, buried in Bibongsan, Jeongeup. Jeon Ik-seon said to Jeon Jang-su, "Your great-grandfather is buried in Bibong Mountain, and your grandfather and grandmother are buried in Gonbong Mountain, so don't forget it." There was only one tombstone written in the mausoleum with'Jangguncheon Safety Notice', so Jeon Jang-soo asked his father, "How do you know that this tomb is General Jeon Bong-jun's tomb?" Said, “I'm a real grandson, but how can a grandson not know his own grandfather's grave?” (“The Life of Descendants”, p. 21)

 

In 1975, Jang-soo Jeon (18 years old) entered the Middle East High School. When Jeon became a high school student, he asked his father Jeon Ik-seon, "What was his grandfather's name when he was young?". Jeon Ok-rye) changed it to'Jeonuicheon'.” (「Things I remember about the contents of my family history」, p. 7)

 

In 1982, 74-year-old Jeon Ik-seon met his last son, Jeon Man-gil, to correct his genealogy. When creating the genealogy of'Cheonsafety Seeds Daedongbo (Moon Hyo Gongpa)' in 1984, Jeon Ik-seon (76) told Mr. Jeon Man-Gil to raise his own Jeon Ik-seon, the eldest son Jeonjangsu, and the second son Jeon’s seat as a direct descendant of Jeon Jeon-hyeon in addition to the genealogy. He handed over 200,000 won for the cost of genealogy registration. Ik-seon Jeon revealed in his genealogy that Byeong-ho Jeon is Bong-Jun Jeon, and clearly knows that ‘Dongil’ of Jeon’s parent-child is the eldest son ‘Yong-gyu’ of Jeon Bong-joon, and that ‘Dong Gil’, who is adopted as Tae-ho Jeon’s adopted son, is the younger son ‘Yong-hyun’ of Jeon Bong-joon. It is said that he told Jeon Jang-soo that he would make sure to correct it so that he could fix it.

 

In 1998, Ik-seon Jeon died on December 17th (Um 10th and 29th) at the age of 90 due to old age. After cremating the body according to the will of his father's former Ik-seon, the warlord took it to the ashes and buried it all in front of his grandparents' mausoleum on Mt. Jeon Ik-seon said that he left a will, saying, "Buri yourself in a tentacle until it is revealed that you are the grandson of General Jeon Bong-joon." (continued with 4 times). hispak@hanmail.net

 

 Dr. Yonggyu Park

 

References: Jang-Soo Jeon, 「Life of the descendants of General Bong-Joon Jeon, Commander of Donghak (2018, p. 26), 「The Family Tree of General Bong-Joon Jeon (2018, p. ), 「Things that come to mind about the contents of my family history」 (p. 8), and 2 other materials.

 

*Writer/Park Yong-gyu

Research Fellow, National Research Institute Doctor of History,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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