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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감시의 눈이 많은 곳이니 말조심을 해야 해요.”

리채윤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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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채윤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제6장 웅비의 세월 2

 

숙영과의 해후

 

다음날 정오가 되었을 무렵, 연헌성이 돌아왔다.

"가족들은 만나 보았느냐?"

대조영이 상당히 고무되어 보이는 연헌성의 낯빛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아버지께 대장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대장을 도와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살려주고 동생 대접을 해준 것과 나라를 위한 대장의 애국충정을 무척 칭찬 하셨습니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들리시랍니다.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헌성은 아직 소년티가 안 가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자신이 대조영을 도와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다는 마음의 표시이기도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나도 너희 아버지 대막리지의 애국 충정은 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잘못된 판단을 한 것도 이해한다. 이제라도 그걸 깨닫고 조국의 부흥을 위해 도와주신다면 좋겠구나."

대조영은 다소 감정을 과장해서 감격스레 말했다.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찾아가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대조영은 즉석에서 수락했다.

대조영은 미추홀도 데리고 연남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연남생은 고구려인 집성촌 외곽에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고구려인들은 측천무후의 사민정책에 의해서 20만 명 이상이 당나라로 끌려왔는데 장안에는 왕족과 귀족 등 1만여 명이 집성촌에 옮겨와 살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대조영 장군"

연남생은 전보다 혈색이 훨씬 좋아지고 신수도 훤해 보였다. 대조영은 속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저렇게 멀쩡하게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종까지 거느리고 살고 있다는 것이 치가 떨렸지만 꾹 참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제분을 통해서 도움을 주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쏜살같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소장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아 용서랄 것이 무엇이 있겠나. 다, 자네의 애국 충정에서 나온 비분강개요 계책이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네, 용서를 구할 자는 바로 나일세. 더구나 내 아들 헌성이를 돌보아주어 이렇게 훌륭한 무장으로 키워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래서 자네를 돕고 싶네, 듣자하니 동모산에 웅거하고 있다던데 내가 도와 줄 일이 무엇인가? 능력이 되는 한 도와주겠네."

연남생의 낯빛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배인 감정의 흐름이 나타났다.

"두 가지 정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한 가지는 철기방 기술자를 제가 데리고 가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연남생은 금새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두 번째는 보장태왕 폐하를 만나 뵙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대조영은 첫 번째 부탁에 대한 대답도 듣지 않고 두 번째 부탁마저 해버렸다.

"보장왕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연남생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연남생은 태왕의 격을 낮추어서 왕이라 호칭하고 있었다.

"태왕 폐하는 이곳에 계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 계셔야 한단 말인가?"

"고구려 땅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고구려는 쉽게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구심점이 생길 것입니다."

"당나라 조정에서 그것을 모르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보장왕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들이 이곳에 붙잡혀와 있는 것 아닌가? 그 일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닐세."

"그럼 첫 번째 부탁은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평양성에서 제일가는 야철대장 역고제(易庫濟)도 이곳에 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막리지께서는 그 자를 평양성에 계실 때부터 중용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조영의 말을 들으면서 연남생은 연신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알겠다, 그런데 역고제는 나이가 벌써 60이 넘었다. 역고제의 기술을 전수 받을 사람은 있느냐?"

"예, 우리는 이미 철기방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다만 기술자들이 다 이곳으로 붙잡혀 온 탓에 제대로 된 칼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2개월 정도 가서 그곳의 기술자들을 가르쳐 주고 오게 하면 되겠구나, 내가 무슨 핑계를 대서 평양성을 다녀오는 것으로 꾸밀 것이니 그때를 이용해서 기술을 전수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자가 완전히 사라지면 의심 받을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탁 건 말씀인데요. 태왕폐하를 만나게만 해 주십시오"

대조영은 진작부터 속으로 노리던 것을 말하기 위해서 다시 두 번째 부탁을 거론했다. "

"만나서 무엇을 하려는가?"

"만나 뵙고 언젠가 고구려 부흥 운동이 성공할 것이니 그때까지 옥체를 잘 보존하시라는 주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연남생은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부탁 같구나, 자네는 보장왕과 구면이라고 들었는데?"

"예, 대막리지께 보낸 당 고종의 밀서를 태왕폐하께 직접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연남생의 얼굴빛이 일순 핼쓱해졌다.

"알았네, 내가 연락을 취해 본 후에 헌성이를 통해서 소식을 주겠네."

"저희가 돌아갈 날이 나흘 밖에 남지 않았으니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알겠네."

 

 

연헌성은 다음날 정오가 되기 전에 소식을 들고 달려왔다.

"태왕께서 만나시겠다는 연락이 왔답니다."

대조영은 미추홀과 함께 보장태왕이 기거하고 있는 외궁으로 갔다. 그곳은 볼모로 와서 사는 이민족의 왕이나 왕족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정문과 외곽에 경비병들이 많기는 했지만, 정작 궁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당나라 조정의 감시가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당나라까지 와서 자네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자네의 아버지 대중상이 동모산에 웅거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있네만, 무고하신가?"

보장태왕은 아주 반갑게 대조영을 맞으며 대중상의 안부를 물었다.

“예. 아버님은 훗날을 기약하시며 힘을 모으고 계십니다.”

“그런데 자네는 어인 일로 장안에 온 것인가?”

“거란의 상인들과 함께 동행을 한 것이 옵니다.”

"자네들이 어찌하여 거란의 상인이 되었는가?"

"폐하, 소장은 다시 대고구려 제국을 일으키기 위해서 거란과 힘을 합하여 분골쇄신하고 있사옵니다. 부디 옥체 강령하시어 먼 훗날을 기약토록 하여 주옵소서."

대조영은 무릎을 꿇고 낮게 외쳤다.

"고맙네, 이따금 우리 백성들의 저항운동 이야기를 듣기는 하였네만, 자네와 같은 무장의 충정어린 말을 듣고 보니 이렇게 편하게 지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 어서 일어나게."

태왕은 감시의 눈을 의식한 듯 말했다. 대조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태왕이 물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고구려 부흥군이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자 함입니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시는 그날까지 옥체 만강 하십시오"

그러자 보장태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알겠네. 우리 같이 하루빨리 그날이 올 수 있도록 기원하세.”

그때 내전 쪽에서 태황후와 몇몇 여인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쪽을 바라보는 순간 대조영은 자신의 심장을 쏘는 눈빛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숙영이었다. 변함없이 단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의 그녀가 대조영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의 청년 장수가 이곳까지 왔다기에 반가워서 달려 나온 것이오. 우리 숙영공주가 어찌나 안달을 하던지."

태왕후가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태황후 곁에는 평양성 산사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숙영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부인은 수수한 옷차림새를 하고 있었지만 숙영처럼 단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여서 숙영이 어머니를 빼어 닮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대조영은 그녀에게 꾸벅 목례를 했다. 

“전에 평양성 산사에서 볼 때보다 더 늠름해지신 것 같구려.”

숙영의 어머니는 전날의 대조영을 기억하고 그렇게 말했다.

“하루 빨리 부흥군을 일으켜서 망국의 한을 씻어드리겠습니다.”

불쑥 대조영이 그렇게 말하자 태황후와 숙영의 어머니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이곳은 감시의 눈이 많은 곳이니 말조심을 해야 해요.”

숙영의 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대조영은 태왕과 태황후, 숙영의 어머니와 하직하고 숙영과 함께 후원 뜨락을 나란히 거닐었다. 

"이렇게 이곳까지 찾아다니다 당나라 감시자들의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숙영은 대조영의 안위가 무엇보다도 걱정인 듯 말했다.

"숙영 공주 난 당신을 데리러 이곳까지 온 것이오, 나와 같이 가 주겠소?"

대조영은 간절함이 담긴 시선으로 숙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가고는 싶지만 어떻게 이곳을 탈출해 나갈 수 있겠어요. 이곳에서는 이중 3중의 감시망이 있고 설사 빠져 나간다 해도 고구려까지의 먼 길을 가다가 붙잡혀 올 것입니다."

숙영은 자포자기를 하고 있는 듯이 말했다.

"아니오, 방법은 있을 것이고 공주께서 나와 함께 가주신다는 결단을 내려만 주시면 내가 방법을 찾을 것이오."

"좋아요, 함께 떠나겠어요."

대조영은 그녀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옥반지를 보았다. 대조영은 몸을 떨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고맙소, 연락을 취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소?"

"지금 객관에 머물고 계시죠?"

"그렇소."

"내가 시종을 보낼게요."

"우리는 사흘 후면 이곳을 떠나오. 그 때까지 떠날 준비를 할 수 있겠소?"

"해볼게요."

"공주는 이 궁에 묵고 있소?"

"아니요, 저 옆의 주택이 우리가 사는 집이예요." 

숙영은 담장 밖으로 지붕이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부모님들께는 무엇이라 말씀드릴 것이오?”

“제 아버님은 나라가 패망 한 직후에 슬픔에 잠기셔서 돌아가셨어요. 어머님께서는 저라도 이곳을 빠져나가 장군과 훗날을 기약하는 것을 반기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숙영의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좋소. 내일 저녁에 시종을 보내시오. 진전 사항을 전해 줄 것이니."

"알겠어요."

두 사람은 후원을 걸어 나와서 정문으로 향했다. 

그때 정문에 보장태왕을 감시하는 당나라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거만하게 다가왔다.

"당신은 거란의 상인이라면서 이곳에는 무슨 볼일로 온 거요."  

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조영이 궁 안으로 들어온 것이 무척 불쾌하다는 듯이 따지고 들었다.

"물건을 팔러 왔소이다. 우리 공주님께서 좋아 하시는 장신구 말이오."

대조영은 미리 준비해간 보퉁이에서 장신구 몇 개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제 일들 다 보았으니 돌아가겠소, 공주님 다음에 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대조영은 그렇게 하직 인사를 하고 외궁을 빠져 나왔다.

"공주께서 무어라 하셨습니까?"

미추홀이 객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가시겠단다."

대조영이 짧게 대답했다.

"어떻게 모시고 가실 겁니까? 궁을 빠져 나오실 수 있다고 해도 요동까지의 먼 길을 돌파할 수 없을 겁니다. 또 우리는 상단을 떠날 수 없는 입장이 아닙니까?"

"그냥 무작정 달아나자는 것이 아니다.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서 떠나야지."

"어떻게요? 정말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그걸 궁리중이다."

대조영은 이미 머리 속에 그 해법을 찾아 놓았지만 그것을 결단하기에는 너무도 한 여인에게 비정한 짓거리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는 마음이 생겼다. 객관으로 돌아와서 초린을 마주하자 그의 마음은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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