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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들 만행 생생한 현장사진 공개되다!

박정대 기자 l 기사입력 202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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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주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였던 박태홍(전 한국일보 사진부장-사진 작가) 사진작가가 지난 5월20일 “나는 사진기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눈빛출판사) 했다. 

 

이 책에는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들의 만행이 생생하게 현장 사진으로 수록돼 있다.

 

불꽃 타오르는 광주

 총을 든 청년들이 전남 광산군 송정리역 광장에서 자동차 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계엄철폐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지만 경찰은 보이지 않고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1980년 5월 21일     ©박태홍 작가.

소총을 든 여성 시민군 

광주 도청 앞에서 열리는 시민군 총궐기대회에 참석하는 시민을 태우고 가기 위해 송정리역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직장 유니폼을 입은 여성 시민군(왼쪽 세번째)이 소총을 들고 버스로 향하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박태홍 작가.

이럴 수가~~계엄군 공수부대가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 기습작전을 벌인 뒤 청년들을 체포해 도청 앞마당에 살벌하게 끌어놓은 가운데 공수부대원이 한 청년의 목을 군화발로 짓누르고 밧줄로 손과 몸을 묶고 있다. (1980년 5월 27일)   ©박태홍 작가.

계엄군 만행 보고대회

많은 시민이 전남 도청 앞 분수대에서 범시민 궐기대회를 지켜보는 가운데 시민군 간부가 계엄군의 만행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1980년 5월 24일     ©박태홍 작가.

취재하는 힌츠 페터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 페터 독일 기자(중앙)가 전남 도청 앞 분수대에서 열린 범시민 궐기대회에서 계엄군 만행을 보고하는 한 여성을 촬영하고 있다. 이 기자는 광주 참상을 세계에 보도하고 영화 택시운전사로 유명하며 사망 후 광주 5·18 구묘역 힌츠페터 기념정원이 조성됐다. 1980년 5월 24일     ©박태홍 작가.

태극기 시신에 드리는 애도의 묵념

 태극기에 덮인 수많은 주검이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 줄지어 누워 있고 시민이 명복을 빌며 애도의 묵념을 하고 있다. (1980년 5월 24일)    ©박태홍 작가.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어느 사진가의 말에 용기를 내 사진기자로서의 반세기 기록을 사진집으로 엮어내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얼핏 대단해 보이고 큰일을 해낸 것 같지만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사진기자로 50년 세월을 보냈을 뿐 ‘이거야’ 하고 내세울 만한 사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진기자로 첫발을 디딘 것은 1970년 3월 1일. 공직에 몸담고 있다가 한국일보견습 25기 기자로 입사한 것이 사진기자 인생의 출발입니다. 한국일보에서 27년간 카메라와 함께 생활하다 사진부장을 끝으로 퇴사하고, 뉴시스 민영통신사 사진영상부에서 제2의 사진기자 생활을 10년 동안 이어왔습니다. "고, 자신을 소개하고 "사진기자로 늦은 나이까지 일하고 있는 것은 사진 실력이나 취재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지난 50년간 저와 접촉했던 취재원과 동료, 선후배 사진기자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여깁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의 지원과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었고, 그 덕분에 사진기자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제가 사진기자로 일하던 시대의 취재현장은 격동과 혼돈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70년대는 유신체제의 억압과 이를 타도하려는 물결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이 러한 혼란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 2000년대 들어서는 심한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급변하는 정세 속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저 또한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한국일보에 재직하면서 국내 사건현장은 물론 북한, 미국, 일본, 아프리카 등을 취재하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이 사진집에 실린 사진들은 그때의 진솔한 기록입니다. 그때의 취재현장을 오늘 돌아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부끄럼이 앞서고 만감 또한 교차합니다. 광주 5·18민주항쟁 현장에서는 목숨을 건 취재와 삶의 본능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고, 이로 인해 때론 현장을 지켜야 하는 기자의 사명을 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72년 12월 2일 밤에 일어난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화재는 사진기자로서 평생 잊을 수 없는 현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몰린 남여 10대 가수 청백전이 끝난 후 발생한 화재로 아비규환이 된 상황에서 3층의 창틀에 끼어 있는 어린이를 발견한 저는 본능적으로 몇 컷을 누른 후 가까이에 있는 소방관에게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천우신조랄까, 아이는 구조됐고 살아났습니다. ‘ 기적의 소녀’로 불렸던 조수아(당시 6세) 양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을까, 손주를 안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입사 3년의 초년생 기자에게 제6회 한국기자상, 제16회 세계보도사진전 은상, 제11회 한국보도사진전 금상을 안겨주었으니 사진기자로서 보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고 술회했다.

 

1980년 5.18 광주주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였던 박태홍(전 한국일보 사진부장) 사진작가가 지난 5월20일 “나는 시진기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눈빛출판사) 했다.    ©브레이크뉴스

 

박태홍(朴泰弘) 사진작가의 약력

 

1943 전남 광양 출생

1961 순천고등학교 졸업

1963 한양공대 중퇴

1966 공군 제대

1970 체신부, 철도청 공무원

 한국일보 사진기자 25기 입사

1997 한국일보 사진부장, 편집위원 명퇴

2010 뉴시스 민영통신사 편집위원 입사

2020 뉴시스 민영통신사 편집위원 계약만기 퇴사

수상

1973 <기적의 소녀> 제11회 한국보도사진전 금상

 제6회 한국기자상, 제16회 세계보도사진전 은상

1983 <대통령의 미소> 제19회 한국보도사진전 동상

1991 <남북 오누이 상봉> 제27회 한국보도사진전 은상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 박태홍 사진 작가.  On May 20, 1980, photographer Park Tae-hong (former head of photography department of Hankook Ilbo), who was a reporter in the Hankook Ilbo's photo department at the time of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published a book titled "I am a photojournalist" (Nunvit Publishing Company).  ©브레이크뉴스

Vivid scene photos of martial law soldiers during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are released!

[New book introduction] Park Tae-hong (former head of photography at Hankook Ilbo) Published the book “I am a photographer”

-Reporter Park Jeong-dae

 

On May 20, 1980, photographer Park Tae-hong (former head of photography department of Hankook Ilbo), who was a reporter in the Hankook Ilbo's photo department at the time of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published a book titled "I am a photojournalist" (Nunvit Publishing Company).

 

In this book, the atrocities of the martial law soldiers during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are vividly recorded on the spot.

 

 In the book's foreword, the author said, "I got the courage to come up with the words of a photographer who said, 'Photos said everything', and I started to weave half a century of records as a photojournalist into a photo book. Having lived with a camera for half a century, it looks great at first glance and seems like a great job, but I can't hide my shame. It's because I don't have any photos to show off, saying, 'This is it,' just spent 50 years as a photojournalist. I first started as a photographer on March 1, 1970. His career as a photojournalist began when he joined the 25th apprenticeship of the Hankuk Ilbo after serving in a public office. After living with the camera at the Hankook Ilbo for 27 years, he resigned as the head of the photography department, and continued his career as a second photographer in the photo and video department of Newsis private news agency for 10 years. I believe that the reason I am working as a photojournalist until a late age is not because of my excellent photography or reporting skills, but because of the consideration of reporters, colleagues, and senior and junior photographers I have been in contact with for the past 50 years. I was truly blessed with the support and kindness of many people, and thanks to that, I was able to enjoy my life as a photojournalist. We would like to express our gratitude to everyone who has contributed with this space. When I was working as a photojournalist, the reporting site was in the midst of turmoil and chaos.” He explained, “In the 1970s, the repression of the Yushin system and the clash of waves trying to overthrow it did not cease, and this chaos continued into the 1980s. In the 1990s and 2000s, there were no serious physical conflicts, but many incidents occurred in the rapidly changing situation, and I was also at the center of it. While working for the Hankook Ilbo, I had the opportunity to not only cover domestic incidents, but also North Korea, the United States, Japan, and Africa. The photos in this photo book are sincere records of that time. It would be meaningful to look back on the coverage of that time today, but the shame prevails and the emotions are crossed. At the site of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in Gwangju, there was a conflict between life-threatening coverage and the instincts of life, which sometimes led to forgetting the reporter's mission to protect the site. On the other hand, the fire at the Seoul Civic Center (currently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that occurred on the night of December 2, 1972 was an unforgettable scene for a photojournalist. After a large number of male and female teenage singers came to a close in a fire that broke out after the blue and white battle, I found a child stuck in the window sill on the third floor, and I instinctively clicked a few shots and asked a nearby firefighter for rescue. As if it were a god of heaven, the child was rescued and survived. Miss Jo Su-ah (6 years old at the time), who was called the ‘miracle girl’, is now her grandmother, and I want to see her holding her grandchildren. This single photo gave a freshman reporter three years after joining the company the 6th Korean Journalist Award, the 16th World Press Photo Exhibition Silver Award, and the 11th Korea Press Photo Exhibition Gold Award, so it is not without any reward as a photojournalist.”

 

Biography of writer Park Tae-hong (朴泰弘)

 

1943 Born in Gwangyang, Jeollanam-do

1961 Graduated from Suncheon High School

1963 Dropped out of Hanyang Institute of Technology

1966 air force

1970 Ministry of Postal Service, Railroad Administration official

 Hankook Ilbo photojournalist joined the 25th

1997 Hankook Ilbo photo department head, editorial staff resigned

2010 Joined the editorial board of Newsys private news agency

2020 Newsis private news agency editorial staff contract expiration

Awards

1973 <Girl of Miracle> 11th Korea Press Photo Exhibition Gold Prize

 The 6th Korea Journalist Award, the 16th World Press Photo Exhibition Silver Award

1983 Bronze statue at the 19th Korea Press Photo Exhibition

1991 <South and North Sister Reunion> Silver Prize at the 27th Korea Press Photo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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