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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해공스님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리채윤 소설가 l 기사입력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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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채윤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6장 웅비의 세월 5

 

동모산 홀한성

 

대조영이 돌아 온 홀한성은 추운 겨울이었지만 활기가 넘쳤다.

가으내 겨울을 보낼 식량준비를 끝낼 수 있었고, 성안에는 철기방이 설치되어 군사들을 훈련시킬 무기를 생산해내기 시작했으며, 성벽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 탓에 주민들의 걱정 근심이 많이 덜어졌다. 

당나라의 세력은 고구려를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옛 고구려 땅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민들과 부흥군의 반발에 현저하게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동쪽에 자리 잡은 홀한성 사람들은 안심하고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홀한성의 성주로 추대된 대중상은 흑선우와 협의해서 홀한성의 경비와 방어능력을 강화 군비체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성민들의 가옥마다 온돌을 놓는 공사를 시작했다. 추운 겨울을 유민 시절처럼 움막에서 지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대중상은 고구려의 동맹축제에 때를 맞추어 대조영과 숙영공주의 혼례를 치를 것을 선포했다. 주민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혼례를 축복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번 대조영의 혼인식은 고구려 유민들이 동모산에 홀한성을 쌓고 모여서 살기 시작한 이래 가장 뜻 깊은 행사였다. 성민들은 고구려 공주와 대조영의 결혼이 고구려의 부흥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혼인의 날짜가 정해진 다음날 대조영은 미추홀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네가 장안성을 좀 다녀와야겠다.”

“무슨 일인지요?”

“숙영공주의 어머니를 모시고 오너라. 어려운 일인 줄은 안다만 살아계신 어머니도  참석하지 못하는 혼인을 치를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날랜 아이들 몇 명을 차출해서 다녀 오거라. 연헌성에게 보내는 서찰이니 그에게 전하라. 그의 도움을 받으면 별 어려움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해서 미추홀은 장안으로 떠났다. 과연 보름이 지나자 미추홀 일행은 숙영의 어머니를 모시고 홀한성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오시게 하였소.”

생전에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어머니를 만나자 숙영은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모녀는 부둥켜안고 한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말 너무 고마워요.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를 모셔오다니요....”

숙영은 대조영에게 무어라 고마움을 표할 길이 없어서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것은 자식 된 도리를 한 것이니 고마워 할 것은 없어요. 사위로서 어머니를 잘 모실 것을 약속하리다.”

대조영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숙영의 손을 잡고 효도를 약속했다. 

그리해서 홀한성에서는 조촐한 의식을 갖추어 대조영과 숙영공주의 혼인식이 치르어졌다. 흑선우를 비롯한 지도층은 물론 성민들조차 성대한 예식을 올릴 것을 주장했지만 대중상 부자는 아직은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 고사하면서 아주 검소한 혼인식을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성민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혼례용품을 내놓아서 대조영의 혼례식에는 어느 왕족의 혼례에 못지않은 혼례용품이 준비되었다.

혼인 준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되었다. 많은 세간과 폐백을 준비하고 비단으로 옷을 지었으며 수레도 아름답게 장식했다. 

마침내 신행날 아침이 되었다.  

먼동이 터올 무렵부터 홀한성 안에서는 풍악 소리가 요란했다. 마상고, 발랑고, 사현금, 탄쟁, 추쟁, 와공후 등 졸본의 악기들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날따라 아침 햇살을 따뜻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드높았다. 고구려의 풍습대로 신부를 태운 마차는 수많은 시녀, 시동과 무사의 대열에 호위되어 혼례식장에 도착했다. 신부가 말에서 내리자 신랑 측의 사람들이 졸본의 예법대로 붉은 비단 수건을 흔들며 꽃을 뿌렸다. 

숙영은 화려한 진홍빛 비단 예복에 봉황 무늬 장식을 단 허리띠를 차고 있었다. 그녀는 특유의 기품과 위엄을 갖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향기처럼 단숨에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진홍빛 비단 예복을 걸치고 바람결에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단아한 자태에 백옥처럼 흰 살결이 눈부신 이 여자....

이제는 아내가 될 숙영을 바라보면서 대조영은 이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단 예복을 차려 입은 흑원종이 신랑 측 대표로 신부에게 열두 잔의 술잔을 올렸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신부는 그 술을 사방으로 뿌리며 천지신명에게 바쳤다.

성민들 모두가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면서 즐겁게 먹고 놀아주었다.

밤이 되어 손님들이 모두 흩어진 뒤, 촛불들이 두 줄로 늘어선 가운데 대조영은 신방으로 인도되었다. 흐뭇한 기대로  마음이 설레인 대조영은 신방으로 들어섰다. 이미 두 사람은 걸사비우 집에서 마련된 신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대조영은 자신이 정말로 숙영과 혼례를 치루었다는 것이 꿈만 같이 여겨졌다.

대조영은 평양성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를 생각했다. 대조영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신녀(神女)를 본 것만 같았었다. 그리고 그녀와 한 번이라도 말을 걸고 싶었고, 그녀의 이름만이라고 알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었던 그날을 추억했다. 그날 밤, 해공스님과 함께 객관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을 잠은 오지를 않고 등불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 대조영은 그 후로 오랜 세월동안 그녀의 모습을 두고두고 가슴 속에 간직했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푸른 소나무가 싱그러운 가지를 뻗어 올라 있는 오솔길 사이로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다 자신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던 웃음도, 그 말고 낭랑했던 목소리도 그리고 그 숲 속의 솔향기도....

그래서 대조영은 오늘 이 밤이 정말 꿈이 아닌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신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숙영공주!”

대조영은 엄숙한 목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네.”

숙영은 갑자기 엄숙하게 자신을 부르는 남편을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공주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오. 나는 그대로 인해서 고구려의 영광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오. 오늘밤은 고구려의 영광을 위해 준비된 날이라고 생각하오.”

신방에 불이 꺼지자 밖에서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차츰 음주가무를 즐기는 성민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만 높아갔다.

 

과연 해공스님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이해고는 그동안 영주에서의 생활을 따분하게만 여기고 술로 날을 보냈다. 그것은 초린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초린은 그가 영주로 부임해 온지 반년이 지나도록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이진충이 나서서 딸의 마음을 회유하고자 했지만, 초린은 상단을 이끌고 몽골로 월행을 떠나 버렸다. 초린으로서는 이해고를 어린 시절 같이 자라난 오빠 이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검이를 키우면서 차츰 거상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는데 몰두했다. 

이해고는 매일 같이 사냥을 나가거나 술과 여자에 빠져서 세월을 보냈다. 

그 무렵 신라와 당나라의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다툼은 치열해져 갔다. 신라는 옛 백제 땅의 대부분을 통치하기 시작했고 당나라는 한강 이북의 고구려 영토에서도 신라에 밀리기 시작했다. 고구려 부흥군은 신라와 손을 잡고 당나라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검모잠과 부흥군은 한성(漢城 : 지금의 황해도 재령 부근)을 근거지로 군사를 일으켜, 보장태왕의 조카이자, 숙영의 오빠인 고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했다. 신라는 당나라군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했다. 

이듬해 3월, 드디어 고연무가 이끄는 고구려 부흥군 1만 여명이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진출했다. 잇달아 신라의 사찬 설오유가 이끄는 신라군사 1만 명도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진출했다. 

그러자 요동 전역에 널려 있는 고구려 유민들이 곳곳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며 호응하고 나섰다. 특히 안시성 부근의 유민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서 안시성을 점령하고 당나라군과의 일전을 불사할 것을 선언했다. 거기에는 물론 홀한성의 지원을 받은 유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조영은 숙영의 오빠인 고안승이 고구려왕으로 추대되자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조영은 우선 안시성으로 진출해서 안시성을 점령한 유민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당나라 조정은 좌감문위(左監門衛)대장군 고간(高侃)과 우령군위(右領軍衛)대장군 이근행(李謹行)에게 군사 5만을 주어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의 연합군을 공격케 했다. 

고간이 이끄는 3만 명의 군사들이 영주에 도착하자, 이해고의 영주 주둔군도 고간의 휘하로 배속되어 군사는 4만 명이 넘게 되었다. 고간은 설인귀와 함께 고구려를 패망시킨데 큰 공을 세운 맹장으로서 이름난 장수였다.  

고간은 이해고를 군막으로 불러들였다. 고간 또한 고구려 가문 출신의 장수로서 일찍이 당나라에 귀부해서 대장군을 지내고 있는 자였다. 그래서 고구려 귀족 출신의 두 장수가 자신의 조국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자는 고구려 부흥군과 싸워야 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한바탕 벌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당수에 달하는 고구려의 귀족세력들이 이미 당의 포로가 되어 일신(一身)의 영달을 위해 당나라 제국 질서 속에 편입됨으로써 당나라가 변방의 국가를 다스리는 오랜 정책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의 실행자가 되어 있는 셈이었다.

“이 장군, 고구려 부흥군을 치려면 우선 선봉에 말갈족을 내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들은 과거에 고구려에 예속되어 있던 탓에 고구려 놈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으니 말이오. 이곳에 있는 말갈족 중에 병사로 차출할 만한 자가 얼마나 되오?”

"줄잡아 일만은 되는데 군사로 쓸 수 있는 자들은 3천정도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그들을 선발해서 선봉에서 고연무의 군대를 맞도록 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고간의 명을 받은 이해고는 걸사비우를 불러들였다. 

"대장군께서 너희 말갈족들에게 참전의 기회를 주시겠단다. 3천의 장졸들을 소집해서 이번 고구려 부흥군 토벌에 나서도록 하라."

"무엇이라 하셨소, 3천의 장졸이라니요?"

걸사비우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로 나왔다.

"이것은 대당나라 황제의 명령이다. 어찌 이유를 다느냐?"

"영주에 사는 우리 말갈족의 총 인구가 5천이 되지 않는데 무슨 수로 3천의 군사를 내어 놓을 수가 있단 말이오."

"이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영주 도독부에 등재된 너희 말갈족의 수가 1만이 넘거늘 어찌 그런 헛소리를 한단 말인가?" 

이해고는 걸사비우에게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금년 봄에 먹을 것이 없다고 이곳을 떠난 수가 5천이 넘소이다."

사실 두 달 사이에 5천이 넘는 말갈족이 몰래 영주를 떠났다. 그것은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 연합군의 작전계획을 입수한 대조영이 걸사비우에게 정보를 준 탓이었다. 대조영은 당나라군이 고·신연합군을 토벌하기 위해 말갈족을 선봉으로 삼을지 모르므로 장졸들을 안시성 방면으로 보낼 것을 요청했고 걸사비우는 그 뜻을 따랐다.

"그것이 정말이냐?"

"이곳을 관장하는 당나라 장수로서 그런 것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단 말이오."

걸사비우는 오히려 이해고를 질책했다. 사실 이해고는 초린과의 일이 풀리지 않는 바람에 주색에 빠져 있느라고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럼 네가 동원할 수 있는 장졸이 몇이나 되느냐?"

"500도 안 될 것이오. 힘깨나 쓰는 자들은 모두 이곳을 떠났소."

이해고는 낙담한 표정으로 걸사비우를 바라보았다. 

한편 안시성을 장악한 대조영은 그 옛날 어린 시절 안시성 전투를 떠올리며 결전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당나라 장수로 선봉에 나설 이해고와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같은 고구려인으로 태어나서 그와 나는 어찌 이토록 기구하게 운명이 갈린단 말인가?’

안시성에는 걸사비우가 보내온 5천의 말갈족과 요동지역을 떠돌던 유민들 일만을 합쳐서 1만 5천의 인구가 있었고 그 중 전투가 가능한 장졸은 9천 명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식량이며 무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당나라군가 일전을 벌이기에는 역부족이란 판단을 대조영은 하고 있었다. 다행이 고연무와 신라연합군이 승세를 잡는다면 요동성으로 옮겨온 안동도호부를 쳐서 식량과 군장비를 충원하고 요동일대를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형님, 고연무 장군의 1만 군사가 개모성을 탈환하고 요동성을 향해서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들과 합류해서 요동성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추홀이 고연무 군이 보내온 연통을 받아 들고 와서 말했다. 

"그것은 아직 이르다. 자칫하면 말갈 군사끼리 맞붙어 싸우는 경우가 생길지 모른다. 당나라군은 이번 전투에서 말갈족을 선봉에 세울 것이 뻔하다. 그런데 우리가 말갈의 군사로 맞서 나간다면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사기가 엉망이 되어 전투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지켜본 연후에 결정하자."

대조영은 아직까지 당나라 군대와 맞서 싸울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 걸사비우가 보낸 연락병이 도착했다.

“당나라 장수 고간과 이해고는 우리 말갈의 군사 500기를 선봉으로 해서 고연무 군과 전투를 치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연무 군에 급히 연락하시어 전투를 치르지 말고 투항을 받아들이라 전해주십시오.”

대조영은 긴급히 연락병을 파견했다. 양군은 요동성에서 결집하고 있었다. 대조영의 연통을 받은 고연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군진을 짰다. 

다음 날 치러진 전투에서 고연무 군은 쉽사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선봉부대의 투항으로 기가 꺾인 당나라군은 결국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불세출의 장수라고 자부하던 이해고는 그 무렵 주색잡기에 탐닉하느라 심신이 혼곤한 상태에서 선봉에 설 수조차 없었다. 패장으로 물러선 이해고는 고간에게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 이해고는 자신이 왜 그렇게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깊은 회오에 빠졌다.

고간은 이해고의 부대를 영주에 남겨두고 요동으로 출정했다. 

대조영은 머지않아 당나라 군대가 병력에서 열세인 고연무 군을 요동에서 몰아내고안시성으로 밀려 들 것이란 계산을 했다. 대조영은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인가 철수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몽골로 월행을 떠났던 초린이 상단을 이끌고 안시성으로 왔다. 그것은 안시성을 대조영이 장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때문이었다. 초린은 한결 성숙한 여인으로 대조영에게 다가왔다. 상아빛 피부에 유난히 윤이 나는 검은 머릿결이 반짝거렸다.

“나를 찾아 준 것은 고맙지만 여기는 언제 전란에 휩싸일지 모르는 곳이야. 왜 이렇게 위험한 월행을 하는 것이지?”

대조영이 초린을 맞이하며 한 말이었다.

“당신을 돕고 싶어서 왔어요. 우리 상단이 끌고 온 말들은 비호처럼 달리는 몽골의 명마들이에요.”

“고맙군.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사들일 자금이 없는데.”

“내가 나중에 홀한성으로 가겠어요. 그때 내가 원하는 물건으로 알아서 값을 쳐주면 돼요. 그런데 숙영공주는 회임을 했나요?”

“응. 지금 만삭이야.”

그날 밤 초린은 대조영의 침실을 찾아갔다. 그녀는 대조영의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간절했다. 대조영이 자신을 버리고 이미 혼례를 올린 사내였으나 자신은 그의 아이를 낳은 여자가 아닌가. 그녀의 사랑을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대조영은 숙영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초린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초린을 거부한다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또 주게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의 몸은 거부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초린을 원하고도 있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에 대한 보상을 오늘 밤만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주 호수가의 초막에서 촛불을 켜놓고 긴 밤을 지내던 그날이 떠올랐고 회오 깊은 지난날들이 연이어 기억을 새롭게 했다. 

초린은 대조영을 자신의 몸속 깊이 받아들이며 신음했고 울었다.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관능의 불꽃에 의해 그녀는 뜨겁게 타올랐다. 초린은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절절한 지 알 수 있었다. 

‘검이가 벌써 일곱 살인데......’

대조영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은 것은 고구려를 부흥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터였다. 대조영이 자기 대신에 숙영을 선택한 것은 고구려의 장군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초린은 언제까지나 슬픔을 씹고 앉아 있을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총명한 머리는 부단히 무엇인가 생각을 했고, 그녀의 예리하고 빛나는 눈은 주위의 사물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초린은 지금 대조영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 특유의 직감으로 알아 버린 것이다. 남자의 기쁨은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안고 밤새도록 환희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제 눈을 감고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 안긴 행복한 느낌 속으로 잠겨들었다. 

“지금 야수이가 선봉장이 되어서 고구려 부흥군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관계가 끝난 후 대조영이 초린에게 물었다.

“알아요.” 

“야수이가 당나라 장수로 있는 한 우리는 적이 될 수밖에 없어. 나는 당신이 야수이에게 그는 결코 당나라 장수가 결코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길 바래.”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다음날 초린은 상단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떠나 영주로 갔다.

그 무렵 이해고는 고구려 부흥군에 패한 책임을 지고 영주 주둔군 총관직에서 물러나야했다. 그것은 대장군 고간이 이해고가 영주주둔군 총관으로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당나라 조정에 보고한 탓이었다. 또 그의 후원 세력이었던 부기원이 고령으로 사망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 무렵 설인귀도 신라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하고 있었던 터라 그에게는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당나라 군대에서 발판을 잃은 이해고는 무관의 패장이 되어 영주로 돌아와 이진충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헛된 꿈을 접고 아버지와 초린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이해고는 이진충 앞에서 눈물로 통곡을 했다. 이진충은 그들 기른 아버지답게 그간의 방심과 회오를 너그럽게 인정하면서 그를 다독거려 주었다. 이해고는 진정으로 이진충에게서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키워주었던 부성(父性)을 느꼈고 그래서 한참을 더 오열해야 했다.

그날 이후 이해고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술을 끊고 하루 종일 무수연마에 매달려서 그 옛날 청년시절의 기량을 되찾아갔다.

그는 이제 총명한 소년으로 자라나고 있는 검이를 친아들처럼 데리고 다니며 무예를 가르쳤다. 초린은 그런 이해고를 처음으로 남편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대조영의 뜻을 다른 것이기도 했다. 이해고는 이제야 비로소 삶의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안시성의 대조영에게 고연무와 신라군이 고간의 3만 대군에게 내몰려서 압록강을 건너 철수 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는 철수할 것이다. 이 병력을 가지고 고간의 3만 대군과 맞선다는 것은 무리다. 너는 어찌 할 것이냐?”

대조영이 걸사비우에게 물었다. 걸사비우는 500명의 기병과 함께 투항한 후 미리 영주를 탈출한 말갈족들과 함께 안시성에 머물고 있었다.

“우리도 형님을 따라가겠소. 천문령을 지나 오루하(奧婁河)부근에 있는 장령산(長嶺山)에 성을 쌓고 우리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겠소. 당나라 놈들이 거기까지는 쳐들어  오지 않을 것이오. 만약 위급하게 된다면 형님이 좀 도와주시오.”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서 대조영은 또다시 안시성을 내놓고 홀한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또 다시 5천 명의 주민이 늘어서 홀한성에는 6만 가까운 성민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때 대조영은 새로운 인재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는 돌궐 출신의 무사였는데 이름은 주유지(周油支)라 했고 무예가 출중하고 담력이 뛰어났다. 주유지는 원래 기상이나 풍채가 기이한 호걸이었다. 두 손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팔이 긴데다 무인이면서도 성정이 부드럽고 몸가짐이 공손한데다가 병서를 많이 읽어서 병법과 지모에도 탁월했다.

그래서 미추홀, 흑원종, 주유지 세 사람의 정예 참모가 대조영을 보좌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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